찬란했던 문화·행적 재현 / 고장의 역사 똑바로 세워 / 한옥마을 등 관광벨트화
전라감영은 전주성내 중앙동에 옛 도청사와 경찰청자리에 설치하고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제주도까지 호남지역을 감사가 총괄하는 행정기관이었다.
전라감영은 포정문布政門, 선화당宣化堂, 연신당燕申堂, 내아, 관풍각, 내삼문 등 40여 채의 웅장한 규모를 갖추었고 행정의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자치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大都所가 설치된 자리로도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곳이다.
이렇듯 전주는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동안 전라도 전체를 다스리는 관찰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총체적인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전주 중앙동에 위치했던 전라감영이었다.
전라감영이 자취를 감추고 자료마저 대부분 소멸消滅되고, 보존하지 못한 애석함이 너무도 크다.
조선말의 전주모습을 담은 고지도가 아직 남아있고, 전라감사의 집무처인 선화당의 사진이 구술기록과 함께 전해오고 있으니 국가기록원의 배치도면을 면밀하게 살펴서 복원자료로 활용함 직하다.
그리만 한다면 그나마 얼마나 고마운 노릇이겠는가.
일찍이 풍수와 지상가地相家들이 전주를 행주형行舟形이라며 많은 사람과 재물을 한 배 가득 싣고 계류하고 있는 형상이라 설파했다. 상제님께서도 군산이 세계 물류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군창(群倉-군산)이 천하의 곳간이 될 것 이니라.”라고 예언했다.
이 땅에 군창(군산)이 있으니 천하를 비우게 하지 아니 하리라. 왜국과 청국이 멀고 서양은 더욱 머나 저곳은 텅 비고 이곳은 가득 차리라. “군창群倉이 천하의 큰 곳간이 될 것이니라.”라는 뜻이다.
당시 전주는 한양 평양 다음으로 번성하였으니 예언대로 조선의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늦었지만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전라감영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해서 당시의 건축문화와 가치관을 되살려야 한다. 과거 찬란했던 문화와 행적을 재현하여 이 고장의 역사를 똑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요즈음 인산인해를 이루는 한옥마을도 연계하고 객사와 연지공원, 건지산, 산성, 치명자산까지를 포함한 벨트를 조성하여 관광콘텐츠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구도심도 살아나고 관광산업도 육성시킬 수가 있다. ‘삼락농정’ 미래의 경제동력 ‘새만금’을 풀가동하여 떠내려가는 뱃머리를 다시금 전주성 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단단히 붙들어 매야한다.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여 영화롭던 3대 도시의 옛 성세가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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