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4명 5개월간 경쟁 시작 / 아름답기 위한 예술이 아닌 작품에 새로운 가치 담아야
6월에는 이들을 위한 전시가 열린다. 먼저 이들에게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한 칸씩 배분해 주었다. 또 어떤 작품을 어떻게 걸건 상관치 않겠다고 말했다. 이들 공간은 각자의 것이니 기량껏 준비해서 마음대로 걸라고 했다.
작품 준비를 위한 재료비는 각 200만원씩 지원키로 했다. 미술관이 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을 주고 간섭하지 않으며 작가들 마음껏 준비해서 최고의 작품성을 보여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 결과에 따라 최고의 작가는 아시아현대미술전에도 참여시키고 앞으로 구축될 레지던시 공간 입주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들은 실천될 것이다. 작가들은 긴장과 침묵을 지키다가 돌아갔다. 앞으로 5개월여 남은 ‘전북청년 2015’전의 경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작가 한 사람이 전시실 한 칸을 채운다는 일은 꽤 벅찬 일이다. 그들도 나도 알고 있다. 78대4의 어려운 관문을 뚫고 온 작가 4명을 경쟁시키며 최고의 기량을 보여 달라니, 주마가편의 힘든 요구이다. 그러나 전북미술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이들부터 크게 달라져야 한다. 주변의 칭찬과 기대에 만족해서는 희망이 없다. 물론 결과에 따라서는 4명 모두 희생될 수도 있다. 그러나 1명이라도 기대할 만한 결과를 낳으면 미술관은 최대한 이 작가를 키울 것이다.
아름다워야 할 예술 무대에서 왜 그리 살벌한 경쟁을 유도하느냐는 반문이 오기도 한다. 예술계에서 아름다운 평화는 깨졌다. 예술은 이제 아름답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답기 위하여 고통을 겪고 삶의 바닥으로 나가야 한다. 예술처럼 보이기 위해 아름다워져야 하는게 아니고 예술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아직 작가들은 5개월 후 어떤 작품이 구축될지 자신도 모른다. 미술관은 작가를 믿고 미술관을 통째 열어 주었다. 이제 미술관 전시실은 각각 작가들 것이 되었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걸지, 새로운 작품으로 가득 채울지 또는 텅 비우게 될지 무엇으로 예술을 말할지 모두 작가들 몫이 되었다.
작품과 그 설치까지 작가들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2015 청년 전시는 진행될 것이다. 최대한 작가들에 대한 설명을 간략화 하여 관객들은 순전히 그 작품으로 작가들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작가들은 작품으로 말을 하는 존재들이다. 작품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지 않으면 그 작가는 관객으로부터 멀어진다. 그 어떤 의미란 작가도 관객도 아직 알 수 없는 새로운 가치, 이 시대 우리의 삶 가운데 각인시켜야 할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란 더 이상 미술을 규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어느 날 무기직 여직원이 상설관 청년전에 걸린 이주리 작가의 작품이 좋아서 자주 보러 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예술에 문외한인 그 직원도 치열한 작업을 알아보고 있었다. 사실 이주리의 작품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남과 여의 신체가 뒤얽혀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장면에서 삶의 어쩔 수 없는 고리, 사는 동안 빠져나올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그 무엇을 예술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예술은 설명 이전에 더 큰 무엇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안되는 모순을 갖고 있다. 마치 우리들 삶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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