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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줄터이니 다 가져라!

자본주의 사회에선 욕망이 가치를 창출, 청정심 지키는 삶을…

▲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
개인전으로 파리를 다녀온 제자가 선물로 주머니칼을 사 왔다.

 

낯선 그 물건에 대해 이유를 물었더니, 개혁에 대한 마음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몇 개 사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그 칼은 곧 사무실 서랍에 들어갔지만 이따금 꺼내어 날카로운 칼날을 만지작거릴 때가 있다.

 

개혁은 깨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고, 기존의 틀을 부수는 것이며, 이권과 관련된 각종의 고리를 끊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어찌할 수 없는 끈으로 얽매어 있다. 단칼에 자르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유와 끈끈한 관계망…. 하긴 잘라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잘라낼 부분과 살려낼 부분을 구분하여 잘해야 한다.

 

배가 고파본 사람은 음식의 가치를 알고 삶의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은 예술의 가치를 느낀다.

 

죽을 때 순간적으로 일생을 회고하게 된다는데 수십 년 일생이 눈 한번 깜박이는 순간이라고들 하지 않나. 찰나에 오고 가는 것임을 안다면 좀 허무를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들 한다. 두뇌가 느슨해진 탓도 있고, 욕심도 더 부릴 수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인생은 욕망의 뚜껑을 열면서부터 시작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있는 욕망이라는 저돌적이고 무지하며 일방적인 짐승을 타보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살아봤다고 할 수 없다.

 

또 욕망이라는 짐승에 끌려다니다가 진흙탕에 처박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은 아직 자신의 초상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다. 두려우면서도 뚜껑을 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이 생의 무모함, 덧 없슴, 찰나적 쾌락, 소유의 갈등이다. 마음대로 껍데기를 벗어 던질 수 있다면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욕망이 가치를 창출한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은 욕구가 소비를 자극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훌륭한 것을 갖고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물신이다. 시시각각 광고는 물질적 욕구를 자극한다. 인생은 지루하기 때문에 새로운 상품으로 상쾌하게 소비하고 즐겨라! 즐길 수만 있다면 얼마를 소비해도 좋으니 즐겨라!

 

이와 반대도 있다. 욕구를 비우고, 절제하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짐승을 멀리하고 수도사처럼 사는 것.

 

그러나 일반인이 수도사처럼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질투도 안하고 비교도 하지 않는 청정심을 지키기가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다고 짐승처럼 살다가 수도사처럼 살기도 하는 이중생활은 더더욱 힘들다. 그리고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사람은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다 줄 터이니 다 가져라.

 

나는 언제부터인가 혼잣말처럼 이 말을 즐겨 되뇌인다. 다 줄 터이니 더 귀찮게 하지 말고 다 가져가고 너의 주린 배를 채우고 멋지게 살아봐라. 기왕 죽을 바엔 호랑이 등에 타기로 했다. 다 줄 터이니 실컷 달려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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