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원평집강소 체계적인 보존 관리 활용방안 마련 필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평집강소가 복원되었다. 지난 21일 오전 차가운 날씨속에서도 그 뜻을 기리는 준공식이 열렸는데 현지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121년전, 이땅의 수많은 백성들은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차원 높은 인본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낡은 신분제의 폐습을 제거하고, 밀려드는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있어났다. 그 1884년 갑오년의 동학농민혁명군의 함성이 김제 원평땅에서 재현된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김제 원평집강소는 1894년 5월(음력) 동학농민군이 조선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한 이후 7월경, 동학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53개 군·현에 설치하기로 합의하였고, 원평집강소는 이 때 설치되었다.
이 건물은 1882년에 초가로 지어졌으며 백정 출신 동록개가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덕명 장군에게 ‘신분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헌납하였고,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면사무소, 해방 후에는 개인주택 등으로 사용되었으나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최근 몇 년간 점차 붕괴되었다. 다행히도 김제시·전라북도·문화재청·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적극적인 노력 끝에 토지매입과 복원공사를 거쳐 오늘날 이렇게 감격스런 기념식을 갖게 된 것이다.
민관이 함께 폐정개혁을 추진한 집강소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동학농민혁명의 지방자치 기구로서 주민자치, 국민자치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효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원평집강소의 복원이 갖는 상징성은 무엇보다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복원된 원평집강소는 앞으로 문화재청이 김제시에 관리를 위탁하여 김제시가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함께 관리·운영할 계획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으로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또한 이와 아울러 준비해야 할 것으로는 원평집강소의 문화재 지정 추진 및 체계적인 보존관리, 활용방안 마련 등이 필요할 것이다.
원평 구미란전투, 황토현 전승지, 무장기포지 등 도내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와 연계한 역사관광벨트화를 통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수학여행단을 유치하고, 교육적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가족단위 관광객들을 전북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 행정과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들의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전북은 동학농민혁명의 산실이자 주무대이다. 전라도 53개 군현에 그 꿈이 실현되었던 집강소가 설치되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지방자치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해온 지방행정연수원도 이미 120년전 이 곳에 정착할 운명이지 않았나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지방행정연수원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으러 연중 찾아오고 있다. 그들을 대상으로 원평집강소 현장방문과 지방자치의 근원적인 역사교육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그 의미가 매우 클 것이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독립운동, 민주혁명, 민중항쟁 역사의 원천으로서의 동학농민혁명의 꿈이 이번 원평집강소 복원을 계기로 더욱 큰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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