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 독서율 높아 / 시민 독서운동 전개 / 책속에서 길 찾기를
전주에 오기를 잘했다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좋다. 진중하면서도 유머감각이 있고, 정의감도 강하지만 그렇다고 내색하는 법도 없다.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소양은 또 어떻고. 늘 듣고 보고 배울 수가 있어서 좋다. 연말엔 전주의 대표적 독서동아리인 리더스클럽의 조석중 부회장(44)을 만났다. 업무 연관성 때문만은 아니고 그저 궁금했다. 인문지향(人文之鄕)이라는 전주에서 독서운동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14년째 리더스클럽을 이끌어오고 있는 그는 50여개 독서클럽으로 구성된 전주독서동아리연합회 활동도 주도하고 있다. 독서가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이 지역의 독서 특징에 대해 물었더니 한마디로 ‘선비의 책읽기’라고 했다.
가벼운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보다는 묵직한 책, 예를 들면 ‘논어’ 같은 책을 오래 붙잡고 깊이 읽는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론 좀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책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회원 4명으로 시작한 리더스클럽은 정회원 250명, 온라인 회원 3000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요즘도 매주 월, 토요일에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한다. 전라북도는 독서율이 84.2%로 전국 16개 시 도 중 1위다. 여기에는 조 씨 같은 독서운동가들의 기여도 컸을 것이다. 독서율은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로 한국 평균은 71.4%다.
독서의 가치나 효용을 얘기할 때면 흔히 인용하는 게 시카고대학의 ‘허친스 플랜’(일명 시카고 플랜)이다. 1930년∼1951년, 이 대학의 학장과 총장을 지낸 허친스는 1학년 학생들에게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고전 100권을 의무적으로 읽게 했다. 시카고대학이 명문의 위상을 굳힌 데는 이 플랜이 밑바탕이 됐다고 한다. 시카고대학은 지금까지 8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에서도 한양대와 부산 해운대구가 ‘시카고 플랜’을 가동 중이다. 한양대는 누구든 졸업 전에 고전 100권을 읽어야 한다. 해운대구는 2012년 ‘해운대 플랜’ 선포식까지 갖고 부산대학이 추천한 양서 101권을 읽도록 권장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 등 주민들이 자주 가는 곳마다 책을 비치하고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읽기를 독려한다.
전북도 이런 플랜을 해보면 어떨까. 기초체력(독서율)이 상대적으로 튼튼하니까 그 효과도 클 것이다. 이웃인 광주 전남만 해도 전남대학이 주도하는 시민독서운동(한 책 운동)이 한 창이다. 시민 투표로 그 해 필독서 한 권을 선정해 읽도록 하는데 이를 위해 독서클럽 결성을 지원하고, 작가 초청 콘서트, 서평 공모전도 열어준다. 책을 추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읽도록 동기부여를 한다는 점에서 독서실천운동인 셈이다.
리더스클럽이 새해 읽을 첫 책으로 고른 건 김난도 교수(서울대)의 ‘트렌드 코리아 2016’. 올해 한국사회를 지배할 10대 소비 트랜드를 예견하고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을 택한 데서 변화에 대한 갈망 같은 걸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베스트셀러나 찾는 독서행태보다 논어 깊이 읽기를 더 좋아하는 쪽이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책 속에 길이 있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정체(停滯)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무릇 읽어야 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전주로 온지 5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다. 그 고마움을 독서운동 지원을 통해 갚아나가겠다.
△이재호 원장은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논설위원실 실장, 국회의장 헌법연구회 자문위원, 한국신문협회 산하 출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사회통합형 대북정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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