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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몸통언론'으로 거듭나라

좌우 균형감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불편부당 실천하길

▲ 이재호 동신대 교수·전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02년 1월 미국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보스턴 교구의 사제들이 십수 년 간 성당에서 일하는 많은 아이들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충격적인 보도였다. 연루된 사제만 90여명에 달했다.

 

세계는 경악했다. 교구의 추기경이 사임하고 교황청까지 수습에 나섰지만 같은 일이 독일 영국 등 16개국에서도 벌어졌음이 속속 드러났다.

 

이 희대의 특종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의 작품이었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이름의 특별취재팀이 1년여에 걸쳐 증거를 찾고 피해자들을 설득해 얻어낸 기자정신의 개가였다. 다들 “종교, 더욱이 가톨릭을 건든다니, 그게 가능이나 하겠어?”라는 반응을 보였고 외부압력도 거셌지만 이겨냈다. 팀은 그해 퓰리처상(공공부문)을 받았고 취재·보도과정은 ‘스포트라이트’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올해(2월 29일)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다.

 

잘 만든 영화였다. 국내에도 팬이 많은 마크 러팔로(헐크), 마이클 키튼(버드맨) 등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스토리를 과장 없이 담담하게 끌고 가면서도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솜씨도 뛰어났다.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준 콘텐츠는 말 할 것도 없었다. 한때 언론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부러웠고 또 부끄러웠다.

 

한 영화평론가는 블로그 후기에 “정의? 사명감? 언론의 역할?, 한국에선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고 한국 언론을 겨냥했다. 지나친 폄훼다. 좋은 영화 한 편에 우리 언론이 애꿎게 덤터기를 쓴 셈이다.

 

그럼에도 왜 이런 조소(嘲笑)가 나오는지 자성(自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에 상영된 한국영화 ‘내부자들’에선 권언(勸言)유착이 한국 언론의 전부인 것처럼 그려지지 않았는가.

 

이 지독한 불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언론학자 수만큼이나 이유가 많겠지만 크게 보면 언론의 정파성 때문이다. 독립된 언론이기를 포기하고 특정 정파(진영)의 일원이기를 자처한 탓이다. 정파의 이익에 봉사하다보니 다른 정파의 신문이 보도한 건 믿지 않는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몰아가거나, 기사 뒤에는 무슨 음모가 있겠지 하는 식으로 매도까지 한다.

 

언론이 언론을 불신하는데 독자나 시청자가 언론을 신뢰할 리 없다. 오죽하면 “한국에는 두 가지의 진실이 있는데, 하나는 보수언론이 믿는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언론이 믿는 진실이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런 ‘진영의 벽’을 허물지 않고서는 한국 언론에 미래는 없다. 스포트라이트 같은 기사가 터져도 절반의 특종, 절반의 진실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도 관훈저널 2015년 겨울호에서 진영언론의 폐해를 통렬히 지적했다)

 

원로 언론학자 김민환(71·고려대 명예교수)은 일찍이 한국 언론을 향해 ‘몸통언론’을 지향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흔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몸통이다. 한쪽으로 쏠리는 걸 막고 균형을 잡아준다. 김민환은 좌우를 포용하는 몸통의 눈으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고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실천하는 언론이 돼주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전북일보가 오늘로 지령 2만호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욱이 눈도 높고 생각도 깊은 인문지향(人文之鄕)의 땅에서 60여 성상, 정론지의 위상을 지켜온 것은 대단한 성취다. 그 자긍심과 사명감을 딛고 몸통언론으로 거듭나 한국 언론의 중심에 우뚝 서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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