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진로 고민 등 상담…청소년 멘티·멘토 문화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를
금년 1월 필자는 동문들에게 등 떠밀려 광주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맡게 되었다. 대학 때 서울로 진학한 후 초·중·고등학교 동기회장도 맡은 적이 없는 필자로서 총동문회장을 맡게 되어 우선 동문회 회칙을 살펴보았다.
어느 동문회 회칙이나 대동소이하겠지만 회원 상호 간의 친목 도모와 모교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동문회의 목적으로 명기하고 있다. 신임 회장으로서 무슨 일을 해야 모교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필자의 추억을 되살려 멘토-멘티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되었다.
갓 졸업한 대학생 선배와 고등학교 재학생 후배를 멘토와 멘티로 맺어주는 ‘사랑의 가교’ 프로젝트다. 졸업생과 재학생을 1대 1로 연결한 이번 프로젝트의 다른 이름은 ‘좋은 형-아우 맺어주기’다. 형과 아우처럼 학업·진로·이성 교제 등 각종 고민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자는 취지다.
필자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1967년 3월 전남 광주시(당시)에 소재한 광주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한국전쟁 중에 첫 아이로 태어난 필자는 한 살 때 아버지가 군인으로 전사하시는 바람에 홀어머니 슬하에서 외동아들로 자랐다. 당시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형, 누나, 또는 동생이 있었지만 필자만 유독 외톨이로 자랐다. 중학교 시절만 해도 함께 진학한 초등학교 친구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친구 한 명 없는 섬 같은 곳에 보내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고등학교와 붙어 있는 소위 동계 중학교 출신 동급생들의 텃세나 괄시도 만만치 않아서 1학년 때는 덩치 큰 친구들한테 맞은 쓰라린 경험도 있다.
그럴 때면 필자는 이들로부터 보호받을 수고 있고, 학업과 진로에 관한 고민, 심지어 이성 교제에 관한 상담을 할 수 있는 형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회장 취임 후 동문회 명부를 살펴보다가 필자의 입학 동기 가운데 졸업하지 못한 준회원이 25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이나 학교 폭력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것이리라.
당시 길잡이가 되어줄 선배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울러 거의 한 자녀만 낳는 요즘 가정의 고등학생들도 당시 필자처럼 그런 선배를 갖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교 측과 상의해 ‘좋은 형-아우 맺어주기’ 프로젝트를 가동키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신경을 쓴 부분은 멘티의 고민에 맞는 멘토를 연결해주는 일이었다. 교사를 꿈꾸는 후배에겐 사범대 선배와 화가가 희망인 후배에겐 미대 선배와,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 후배에겐 치대 선배와 맺어주는 식으로 연결했다.
여기에 사회에 진출한 선배를 대학생 멘토와 고등학생 멘티의 ‘시니어 멘토’로 맺어주어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장학금을 후원하고 정신적인 후견인 역할도 맡도록 했다.
대학생 멘토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가수 리아킴의 ‘위대한 약속’이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가사 중에 ‘위급한 순간에 내 편이 있다는 건 내겐 마음의 위안이고’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대학생 멘토가 고등학생 멘티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역할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맹자는 군자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천하의 영재를 교육하는 일을 들었다.
필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90점짜리 영재를 95점짜리로 가르치는 일도 즐거움이지만 60점 미만의 학생을 잘 키워 자기 몫을 제대로 하게 만드는 일 또한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가정과 학교에만 맡길 수 없는 청소년 교육을 동문회가 함께 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널리 확산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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