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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반기문이 아니야!

여야 간 대권주자 쟁탈전 / 줏대·인물없는 불임정치 / 한국 정치 자성의 계기로

▲ 이재호 동신대 교수(정치학)

나도 반기문을 조금은 아는 축에 속한다. 90년, 그가 외무부 본부에서 핵심보직인 미주 국장을 할 때는 출입기자였고, 92년~95년 주미대사관의 정무공사를 할 때는 워싱턴특파원이었다. 당시 한국일보 특파원이 지금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 의원이다.

 

북핵문제로 한반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고, 이에 맞서 클린턴 행정부는 평양 영변의 원자로에 대한 국지타격(surgical strike)을 검토했다. 미국의 CNN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생중계하겠다고 중계팀을 서울에 보내놓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94년 10월 북미 간에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되면서 해소됐다. 당시 반기문은 한국 측 실무총책이었다.

 

우리는 그의 냉정함과 침착함에 놀랄 때가 많았다. 수습과정에서 자신도 모종의 역할을 했음이 분명한데도 내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객관적인 분석가의 입장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절제된 브리핑부터가 그랬다. 아무리 긴박해도 말이나 표정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다고 임기응변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지도 않았다.

 

그 때나 그 후에나, 그에 대한 나의 평가는 다르지 않다. 머리가 좋고 치밀하며, 매사 최선을 다하는 성실하고 유능한 외교관의 전형이 반기문이다. 물론 나와 다른 시각도 있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깊이가 얕고 아둔한 역대 최악의 총장”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내 가 보기엔 서구 우월주의의 편견과 질시가 다분히 깔려있는 평가다.

 

반기문이 뜨자 새누리당 사람들은 대체로 표정이 밝다. 어떤 계파는 하늘에서 굵은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듯한 분위기라고 한다. 소란스럽긴 야당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배신감을 토로하고 깎아내린다. “유엔사무총장으로 추천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 한 번 찾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련을 버린 것 같지도 않다. 한 친노 인사조차도 내게 “반 총장을 데려올 수 있으면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열풍’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예단하기 어렵다. 성공이든 실패든 한국정치에 주는 임팩트는 작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도전이 우리 정치에 통렬한 자성(自省)의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여야 모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어찌해서 한국사회의 보수 주류를 자처하는 집권 여당이 마땅한 대권주자 한 사람이 없어서 그에게 목을 매게 됐을까. ‘60년 정통야당’을 자랑하는 더민주당은 또 뭐가 두려워서 벌써 신경이 곤두섰는가.

 

누가 한국정치를 이렇게 허약하게 만들었을까. 반기문이 보다 더 한 사람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아웃사이더(국외자)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정치판을 이토록 쉽게 흔들어버릴 수 있을까. 반기문을 놓고 목청을 높일수록 제 손으로 한국정치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는 꼴인데도 계면쩍어하는 사람 하나 못 봤다. 줏대도 없고 인물도 없는 진짜 불임(不姙)의 정치판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여야가 반기문을 놓고 기꺼이 쟁탈전이라도 벌일 태세다. 누가 아는가, 뺏긴 쪽에서 “다음번엔 우리”라며 이참에 계약서라도 한 장 써놓자고 덤빌지.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승자독식의 권력구조 앞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치러지는 대선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참담하다.

 

겨우 이런 꼴이나 보여주려고 밤잠 안자고 그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정치했는가. 그런 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또 뭐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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