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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기사

사전이 운다

▲ 김제김영 시인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 개편안에서 종이사전이 제외되었다는 기사는 하루 종일 나를 헛헛하게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종이사전이 거의 필요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몇몇이 친구의 친척집을 구경 간 적이 있다. 거대한 기와집의 위용에 주눅이 든 우리들은 문 앞에서 초인종 누르는 걸 서로 미루다가 솟을대문만 올려다보고는 돌아왔다. 검은 바탕에 하얀 자개로 집주인의 이름을 새겨 넣은 문패는 강물이 휘돌아나가는 듯 유려한 한문이었다. 나는 기와집의 위용보다 읽을 수 없는 한자 문패에 더 기가 죽었다.

 

기술 발달로 종이 사전 사용 않지만

 

집에 돌아와 온 집안을 다 뒤져서 손바닥만 한 옥편을 찾아냈다. 중학교 때 잠깐 한문을 배웠을 법도 한데 옥편 사용 방법을 모르니 첫 자부터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비닐 표지가 다 닳아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나의 사전 읽기는 시작되었다.

 

그 후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신기철, 신용철 편저의 『새 우리말 큰사전』을 할부로 샀다. 두 권으로 된 사전이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까만 천으로 된 표지가 너덜거릴 때까지 국어사전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전 읽기에 대한 개인적인 취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휘의 수준이 개인의 격과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에게도 사전 찾는 법을 가르치고, 모르는 단어는 반드시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한동안 사오정시리즈가 유행할 때였다. 늦게 대학에 간 내 친구는 사전을 가져오라는 말에 두툼한 종이사전을 들고 학교에 갔다가 전자사전을 들고 온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사오정이 되어 버렸다고 토로하며 반 웃고 반 울던 기억이 있다.

 

나의 작은 서가에는 외국어 사전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우리 말 사전이 있다.

 

『우리말 풀이 사전』, 『우리말 활용사전』, 『우리말 뉘앙스 사전』, 『주제별로 엮은 좋은 말 사전』, 『우리말 갈래사전』, 『아름다운 우리말 찾아 쓰기 사전』, 『보리 국어사전』, 『우리말 부사사전』, 『비슷한 말 반대 말 사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한국어』, 『우리말 깨달음 사전』, 『전라도 방언사전』 이런 사전들로 빼곡하다.

 

다양한 종류의 사전을 갖고 있고, 사전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도 지금은 종이 사전을 거의 뒤적거리지 않는다.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컴퓨터에게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사전 찾는 법은 디지털에 밀려 이젠 죽은 지식이 되었다.

 

종이사전이 활용도가 거의 없어졌다고 해서, 사전 찾는 법이 죽은 지식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말이 사라지진 않는다.

 

1949년 3월 국민당을 내쫓고 베이징으로 입성하는 마오저뚱의 짐 보따리엔 책 네 권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 중 두 권이 어휘사전인 사해(辭海)와 어원사전인 사원(辭源) 이었다고 한다.(나머지 두 권은 사기와 자치통감이었다고 한다.)

 

우리말 지키려면 좋은 사전 만들어야

 

한글의 역사가 600년이 되어가고 있다. 한글을 국보 1호로 지정하자는 서명도 진행되고 있다. 과학적인 창제과정이 있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말을 지키고 키우려면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언어가 국가의 근간이고 문화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전, 그리고 다양한 사전을 만드는 일은 이젠 국책사업 1순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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