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멘토를 만나 보고 숙달하는 게 학습의 원칙일 것
나이가 들면서 생긴 버릇 하나를 들자면 옛날 기억을 되돌려 보는 일인 듯하다. 지금 돌아가는 세시풍속이 너무 현란하기도 하거니와 마뜩치 않은 구석들이 눈에 밟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최근 몇 년간의 기억들은 분명하지 않은데 오래전 어렸을 적 기억들은 여전히 선명하다는 점이다.
필자의 고향은 익산이다. 마을 앞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있고 뒤쪽으로는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농촌마을이다. 겨울 농한기에는 1년에 한 두 차례씩 동네 남정네들이 토끼몰이를 벌이곤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산을 탈 수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우리 또래 아이들도 몰이꾼에 들어갔다.
형들을 따라 토끼몰이에 끼면 너무나도 신이 났다. 아이들은 지시에 따라 자리를 잡고 능선을 따라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몰이를 시작하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야산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내려오는 그 기간은 진저리를 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물론 사이사이에는 경험이 있는 형들이 끼어 있었다. 정상 쪽은 이동거리가 적지만 내려오면서 훨씬 빨리 걸어야 몰이의 망을 유지할 수 있었다. 토끼몰이가 끝나면 몇 마리 잡았다느니,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느니 했지만 토끼는 한 번도 본적이 없고, 우리 또래들은 눈깔사탕 한 두 개로 충분했다. 어차피 토끼몰이 행사의 책임은 형들에게 있었고 긴 겨울 방학의 무료함은 토끼몰이 한 두 번이면 거뜬히 해결되었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 겨울방학 때였다. 친구와 둘이서 토끼몰이를 시도해 보려 했다. 동네 형들이 하던 대로 흉내 내어 옛날 그 능선에 길이 20m, 높이 1.5m정도의 포획그물을 설치하였다. 나는 그물 한 쪽을 지키고 친구가 형들이 그랬듯이 동네 꼬마들을 인솔하여 몰이를 시작하였다. 처음 역할 놀이를 하게 된 처지라 과연 이 산의 한 능선에 작은 그물을 치고 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희망을 가지지 않았다. 더구나 형들을 따라 다니면서 토끼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몰이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가까워지고 토끼 기척은 들리지도 않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온갖 상념들이 스쳐갔다.
그런데 “그러면 그렇지”하고 포기하는 순간 갈색의 물체가 그물에 철렁 꽂혔다. 토끼였다. 토끼는 한번 그물에 막혔으니 뒤로 도망해야 할 텐데 그저 앞으로만 밀고 가려하다가 내 손에 잡혔다. 아, 그 짜릿함이란…. 여세를 몰아 다른 산으로 이동했고 또 형들이 하던 대로 흉내 내어 몰이를 시도했고 다시 한 마리를 더 잡았다. 지금도 그 때 토끼몰이의 감각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처음 시도에 예측하지 못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럴 것이다.
그저 따라다니면서 눈으로만 경험했던 일을 시도했으면서도 그 때 어떻게 성공했을까?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그물을 설치하는 능선, 몰이 시작지점 등을 전혀 모르고 했으면 아마도 한 마리도 못 잡았을 것이다. 어린 눈이지만 형들이 했던 짓을 기억해내며 따라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성과를 내려면 정확한 예측이 필요하지만 예측이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몸을 써서 해야 하는 분야라면 흉내 내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학병원 수련의 학습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보고 흉내 내고 숙달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다. 좋은 멘토를 만나 흉내 내는 것이야 말고 학습의 원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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