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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눈길'에서 만난 치유

▲ 이승수 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두 소녀가 눈에 밟혀 며칠을 울었어요.”

 

영화 〈눈길〉을 본 한 심리상담사는 가정파탄으로 오갈 데 없는 자기 내담자도 함께 떠올렸다고 했다. 영화는 순백의 설원에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매끈하고 잘 생긴 자작나무들을 여러 번 보여준다. 그 숲을 일본군 위안부 소녀 둘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걸어간다. 자세히 보니 자작나무는 몸 곳곳에 시꺼먼 흠집이 나 있다.

 

사람은 실감으로 세상을 살아

 

많은 세월이 흐른다. 영화는 홀로 당차게 사는 할머니 ‘종분’을 비춘다. 종분은 위안부 갈 때 납치를 당했기에 공적 기록이 없다. 자작나무 숲을 같이 걸어가던 친구 ‘영애’ 이름으로 살고 있다. 연립주택 옆집에는 홀로 사는 여고생 ‘은수’가 있다. 정학당하고, 집세도 공과금도 못 내서 곧 거리로 나앉아야 할 처지에 놓인 절박한 아이다. 늦은 밤, 종분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은수에게 처음으로 자기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한다. 지옥보다 무서운 나날을 영애와 둘이 의지하며 버텼다고, 기진맥진한 몸을 끌 듯하며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그 부대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영화가 일본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세계를 닮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대고모 밑에서 자란 감독은 외톨이로 세상을 떠돌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영화는 항상 우울하고 죽음에 대하여 지순(至順)하다.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죠?” 실감(實感)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무엇인가에 닿았을 때 전달되는 에너지, 그 느낌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감독은 또 문을 강조한다. 영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의 원제는 ‘두 번째 문’인데, 이는 세상을 여는 장치를 뜻한다. 그러니까 ‘삶이란 소중한 사람과의 애착, 연대 그리고 또 다른 문을 여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일본군의 만행, 위안부 참상 등을 다룬 영화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번도 자신의 아픔을 들춘 적 없는 종분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은수가 실감을 느끼게 하려고, 다른 문을 열게 하려고 자기를 버렸다. 은수에게 전달된 할머니의 에너지는 구원으로 전환된다. 이제 할머니는 세상을 향해 자기가 먼 길 다녀왔다는 고백을 해야 한다. 자기 주민등록 만들고, 다른 문을 열어야 한다.

 

고통을 내보내는 방법 터득해야

 

지구에는 명칭과 방법을 달리하는 심리치료법이 400여 개 있다고 한다. 세상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인간의 심리 정서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치료법들이 비례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다. 살면서 고통이 들어오는데, 내보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영화치료도 여러 방법의 하나이다. 각종 영상매체를 심리상담·심리치료·교육에 활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심리적·생리적 채널을 통해 전달되는 효과가 커서 날로 이용자가 느는 추세다.

 

오늘 영화를 통해 극한상황을 이겨내는 두 인물을 모델링 했다. 영화 보는 동안 경험한 수용성은 고통과 두려움에 대하여 내적 전환을 도와준다. ‘그 험한 시간 나를 지탱한 힘은 나를 속이는 데서 나왔다.’라고 말하는 종분을 보면서 나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문을 열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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