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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정여립이 걸어간 길

더 좋은 세상으로 / 나아가고자 했던 / 열린 생각 지식인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학문(學問)은 배우고 묻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여기서 배움은 과거의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치중한 것이라면 물음은 현재의 관점이 작용된 것이다. 전자가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적극적인 실천행위이다. 학문이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라고 정의되는 것은 후자의 비중이 더 높다는 말이다. 따라서 학문은 과거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묻고 해석하여 실천하는 데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 남송 대에 주희(朱熹)에 의해 체계화된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과 통치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성리학은 조선전기에는 새로운 문화 창달의 원동력으로서 조선사회의 질서와 권력을 공고히 다지는데 이용되었다. 16세기 중·후반에는 성리학이 이론적으로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기호학파로 대표되는 율곡 이이(李珥)와 영남학파의 퇴계 이황(李滉)이 조선의 성리학을 토착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 성리학자들의 학문적 특징은 주희를 좌표로 삼아 자신의 학문적 세계관을 확립하는 데에 치중되어 있었다. 특히 사서오경으로 대표되는 경서는 주희에 의한 해석만을 신봉하며, 심지어 주희와 다른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 학문을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의 ‘사문난적’이라고 하여 배척당하곤 하였다. 새로운 해석이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새로운 사유가 열릴 가능성은 희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주에서 태어난 정여립(鄭汝立)은 성리학이 조선의 향촌사회에까지 정착되던 16세기 후반 선조대에 활동했던 학자이다. 경서교정청(經書校正廳)에서 근무했을 정도로 경학에 밝았던 그는 기존의 해석을 고증하고 새롭게 재해석하는 데 흥미를 가졌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주희의 이론에서 벗어나 사실을 확인하고 원시유학이 갖고 있는 본연의 사유를 자기화하고 싶었다. 특히 촉나라가 한나라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는 주희의 역사관에 대해 위나라를 정통으로 한 사마광이 직필(直筆)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그저 답습하기 보다는 정여립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의구심과 경각심, 진실에 접근하려는 열린 생각이야 말로 지식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정여립의 학문적 자세와 용기는 어디에 근원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의 ‘대동(大同)’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인이 함께 공유한다는 ‘천하공물(天下公物)’ 의식을 통해 그가 꿈꾸는 성리학적 이념은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동사상은 오경 중의 하나인 <예기(禮記)> 에 근원을 두고 있다. “대도(大道)가 행하는 세상에서는 온 천하를 공공(公共)의 것으로 여겨,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다스리게 하고, 교육으로 신의와 수양과 사회적으로 화목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 어버이만 친애하지 않고 남의 노인도 친애하며 자기 자식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사랑한다. 노인에게는 안심하고 삶을 마칠 수 있게 하고 장년에게는 직업을 갖게 하며….”

 

정여립은 고전을 넓고 깊게 탐구한 학자였으며, 경학에서 얻은 지식을 사회화하고자 애쓴 선비였다. 그의 이상과 실천은 기축옥사(1589)를 당하며 좌절되었고, 그 여파는 호남 선비문화의 토대를 괴멸시켰지만,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서 전혀 퇴색되지 않는다. 그에게 반역자, 혁명가, 공화주의자 등의 수식은 부질없는 것이다. 그가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노력은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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