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양성 증진 통해 서로를 이해·소통하는 인권 존중 사회 만들어
국가들이 제정하는 헌법의 기초가 되는 세계인권선언은 전문과 총 30조로 구성되어 있다. 제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양심을 지니고 있으며, 형제애의 정신에 입각해서 서로 간에 행동해야 한다’이다. 24조에는 휴식과 여가를 요구할 권리, 27조에는 문화권이 명기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과연 인권을 잘 지키고 누렸는지 자문해본다.
새삼스럽지만 이 지면을 통해 늦게나마 서 지현 씨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다.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굴종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8년을 견디고 기다려 온 그녀의 노고와 용기에 놀랐다. 어느 누구도 그녀가 성추행을 당하고 인사 불이익까지 겹으로 받은 고통을 대변해줄 수 없었다.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직접 그녀의 입을 통해 피해와 고통을 발언하고,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깨달은 진리도 요약해주었다. 첫째, 피해자가 입을 다물면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째, 잘못에 대한 사과는 당사자에게 직접 해야 한다. 셋째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오직 가해자의 전적인 잘못이다. 따라서 피해자는 부당한 죄책감으로 피해자 자신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권력이 중심이 된 문화, 약한 자들의 인권은 논외로 취급되던 역사는 이제 재를 남기며 사라질 수순을 밟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저지른 폭력적 행태와 질서를 걷어내는 마라톤과 같은 혁명이 시작되었다. 인권은 표현될 때 지켜진다. 묵종, 굴종이 가정과 조직과 사회를 위한 미덕이던 시대가 떠나간다. 생존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을 지닌 모든 약자들에게 세뇌되어 온 묵종의 미덕은 권력자의 지시를 숨죽이고 따르도록 억압하는 시스템으로까지 강화되었고,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적 가치관으로 변질되어 우리 인권의 날개는 꺾였다.
커피 수다가 좋고, 가맥 수다가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억압적 질서를 해방시켜 자유롭게 정서와 분노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억압의 반대편에서 우리가 진정 원했던 이해와 소통과 인정에의 갈망이 임시적으로나마 그 수다의 공간에서 충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런 수다의 공간에서도 어김없이 폭력의 유혹이 상존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권의 잣대와 인권의 횃불을 늘 목숨처럼 붙들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 중의 하나인 문화권은 문화적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이며, 2000년 이래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증진은 전 세계의 문화인이라면 주목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 서로 다른 문화가 서로를 억누르지 않고 표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연다. 이제 문화다양성은 사회통합에 장애가 되는 문제 꺼리가 아니고, 오히려 사회가 정체되는 것을 막고 발전을 모색해갈 수 있는 발전적 자원이며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여겨진다. 우리 스스로 정직하게 표현하고 또 누군가가 표현하는 것을 경청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고 인정해가는 인권 존중의 사회를 만들 의무가 문화다양성 증진을 통해 성취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돌아가, 모든 국가와 국민이 합의한 세계인권선언 1조에는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양심이 있다’는 틀림없는 명제가 있는데, 2018년에도 욕망의 노예가 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크고 작은 일상의 권력들에 의해 그 명제가 냉소적으로 무시되고 있지 않은지 우리 각자가 차분히 점검해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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