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없는 폭염을 겪어서인지 조석으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유난히 반가운 가을입니다. 가을을 맞아 국회 국방위원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가 화두로 던져진 가운데,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국방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근길 모공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겨우 깨닫는 시간입니다. 쏟아지는 일정을 소화해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우리 안보와 국민의 삶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독자 제현(諸賢)께서는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서두에 언급하였다시피, 지금 국회 국방위원회의 현안 가운데 하나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입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합참의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역시 이 합의가 주요 이슈였습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합참의장 후보자는 우리 국방에는 빈틈이 없다는 점과 정부의 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저는 국방위원장으로서 이번 합의가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합의가 발표된 이후 국방부나 합참 관계자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보고받았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점들에 대한 현황이나 대책도 점검하였습니다. 우리 군의 확고한 대비태세를 확인하였기에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군사적 신뢰조치를 환영한다.」는 제목의 국방위원장 성명도 발표하였던 것입니다.
기실 남북 사이의 합의는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있었고, 2000년, 2007년에는 각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마다 우리 국민이 받아야 했던 상처는 컸지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북한 지역의 막대한 자원이나 통일의 경제적 효과 등의 물질적 효과뿐 아니라, 남북은 이 땅에서 5천년을 함께 살아온 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70여 년 전 냉혹한 정치논리가 그은 선이 제약한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열어가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전(前) 정부에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기치 아래 남북 사이의 신뢰 회복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 대결주의와 북한의 잇따른 도발은 상호간 불신을 키우기만 했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이념과 정치적 욕망을 뛰어넘는 인내심과 의지를 가지고 상대가 마음을 열 때까지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는 누구의 자존심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전쟁의 참혹함이나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면 각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철학을 가지고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신뢰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헐뜯기나 책망이 아니라 자기 성찰로부터 시작됩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남북 간의 깊은 불신입니다. 서로에 대한 ‘악마의 불신’을 없애고, 진정성과 사고의 유연성을 품으면 충분히 신뢰 프로세스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그리고 신뢰의 회복을 추동할 군사분야 합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합의의 이행을 바탕으로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인내를 가지고 민족사의 대업을 이뤄나가야 합니다. 마음의 길은 지극한 정성에서 오듯이, 평화의 길은 고도의 전략·전술이 아닌 우리의 간절한 마음속에서부터 옵니다. 이번만큼은 유불리를 넘어 여야가 한 마음으로, 그리고 남북이 함께 신뢰를 쌓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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