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뜻이 담겨있는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를 들려주면 원래의 의미를 생각하기 보다는 술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에 비해 인간성 상실, 정체성과 소속감의 부재, 공동체문화의 해체 등으로 몸과 마음을 둘 곳도 둘 바도 모르면서 그저 단순히 ‘처음처럼’ 술로만 세상과 인생을 잊으려고 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문해 본다.
얼마 전에 김병일이 쓴『퇴계처럼』(글항아리, 2012),『선비처럼(나남, 2015)』두 권 “처음처럼”과 같은 ‘처럼’ 돌림의 책을 읽었다. 『퇴계처럼』에서는 학식이 높고 근엄한 대학자로만 알았던 퇴계선생 아니라 평생토록 자신을 낮추고, 자신보다 지위나 신분이 낮은 사람과 얼마나 공감하고, 배려했는지, 그리고 상대 누구든지 간에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일상 실천적 삶을 살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퇴계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겸손’과 ‘배려’,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선비와 선비정신은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사회적 어른이며 인류보편의 정신적 자산이다. 선비는 수양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추구해나가는 인물이다. 선비가 도야하는 수양의 내용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을 근본으로 한다.
앞으로 선비의 고장 전주에서, 선비문화를 선도하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선비문화의 가치를 조명하고 재발견하여, 창출하고 새롭게 선도해 나가려고 한다. 전주 지명 뒤에 ‘양반’, ‘선비’라는 명칭을 붙여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국립박물관 유일의 ‘선비문화’ 중심은 국립전주박물관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선비의 모습을 제시하고, 특화된 공간·콘텐츠를 구축하려고 한다. 선비문화를 조사연구하고, 상설전시와 특별전시, 어린이박물관 전시를 통해 가시적으로 구현하며, 선비아카데미와 다양한 교육을 통해 국립전주박물관은 명실 공히 국립박물관 유일의 선비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선비, 글을 넘어 마음을 전하다”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편지글을 통해 우리가 알리 못했던 선비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현재 3천편 이상 연구논문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퇴계와 고봉의 100여 통 편지, 다산이 아내가 보낸 다홍치마에 아들과 딸을 위해 쓴 편지 『하피첩』과 『매화병제도』, 아들에게 고추장을 보낸다는 『연암선생서간첩』, 딸과 사위의 싸움은 타이르는 효종의 편지『숙명신한첩』, 기생과의 추문은 사실이 아니니 걱정마라고 아내에게 보내는 「추사의 한글편지」, 서른에 죽은 사랑하는 남편의 관 속에 넣은 가슴 저미는 애절한 「원이엄마편지」와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신발’ 등 선비들의 편지와 사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 유물들은 보물, 중요민속자료 등으로 지정된 쉽게 만날 수도 없고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자료들이다. 근엄하고 학문만 하는 선비들이 아니라 편지로 애틋한 우정, 따스한 사랑, 가족에 대한 애정을 나누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과 함께 꼭 한번 관람 하시기를 강권한다
이제 선비와 선비정신에 대한 우리 시대의 왜곡과 편견을 걷어내고 새로이 탐구하고 구현해야 한다. ‘배려와 섬김’이라는 선비와 선비정신을 현대에 다시 불러내어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관과 자신의 생활 지침으로 삼는다면,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이룩하는 데 해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선비문화는 전주에서부터 출발한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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