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여기에 머리가 없어요?”
고개를 숙이고 청소를 하는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4살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일찌감치 시작된 탈모에 남몰래 가슴앓이 해온 남편은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답을 했다.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해서 머리가 많이 빠졌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남편에게 아이는 크게 외쳤다. “아빠! 걱정마세요. 제가 씨앗을 심어줄게요. 머리 씨앗을 심으면 자랄 거예요!” 반짝이는 눈빛으로 전 세계 탈모인들을 위한 놀라운 처방전을 발표했으니, 바로 머리씨앗이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4살 아이가 어찌 알았을까. 이후에도 며칠 간 생각이 나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진짜 농사가 무엇인지 배우게 됐다. 언제 방문을 해도 손을 쉬지 못하시는 시부모님께 명절이라도 좀 쉬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언제나 정직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시간이 곧 수확으로 연결되는 농업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씨앗에서부터 농작물의 질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 때에 맞춰 준비를 하지 않으면 훗날 거둘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땀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 다는 것, 인생의 가르침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린 시절 심어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조기교육 열풍으로 이어졌고, 여러 우려를 낳으면서도 관심은 커져간다. 최근 영유아 사교육비가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하고, 심지어 영어교육의 시작 시기도 점점 내려가며 ‘초(超)저연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이병민 교수는 ‘국내에서 특정 시기의 언어 교육은 필수가 아니며 불안이 만들어 낸 가설’이라 주장하지만 부모들을 안심시키긴 어렵다. 그렇다면 시대가 변해 좋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자란 자녀들은 그만큼의 효과를 보고 있을까?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초·중·고 학생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총 549명이고, 4년 사이 55%나 증가했다. 정작 삶의 편의와 질 높은 교육은 제공됐지만, 중요한 가치와 인성, 성품에 대한 투자는 소홀하게 여겨졌기에 이상 결과가 나타났다. 결국 기회비용의 한계를 극복하고서라도 얻으려 한 건 기성세대의 위안일 뿐이라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교육학자이자 목사인 칼 비테는 발달장애를 보이는 미숙아 아들을 세계적인 학자로 키워냈다. 지적장애를 판단 받았던 아이는 열 살에 대학교에 입학, 열여섯 살에 법학대학의 교수가 됐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남다른 교육법을 기대했지만, 칼 비테는 단순히 똑똑한 자녀 양육이 아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온화한 성품과 인성으로 세상의 도움이 되는 자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처럼 성공보다는 사랑을, 경쟁보다는 화합을, 자랑보다 공감의 능력을 심는다면 그러한 아름다운 열매들을 언젠가 맺을 수 있다.
성경 시편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126:5)’라는 교훈을 준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안다면 열정과 성의를 다해 뿌려야 할 것이다. 2020년 한 해, 무엇을 위해 어떤 것들을 심을 것인가. 우리의 선택으로 추수할 종목이 결정될 것이다.
탈모를 걱정하는 남편에게 효능 좋은 발모제 대신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자신감’을 심어줘야겠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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