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는 견훤이 900년에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전라도를 중심으로 36년동안 운영된 국가체였다. 전북도민과 전주시민들은 후백제와 견훤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후백제의 역사문화를 접할 자료도 부족하고, 기회도 별로 없었다. 한국사에서 후삼국시대가 설정되어 있고, 후백제와 견훤은 엄연한 역사적 실체인데도 역사인식이 부족했었다. 후백제 연구 부진은 사료 부족, 편협적 인식, 조사연구의 미진에 있었다.
후백제의 사료는 『삼국유사』의 후백제 견훤전과 『삼국사기』 열전의 견훤전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후백제 역사와 연대기를 기술하지 않은 채 열전에 인물을 평가한 견훤전 기록에 그쳤다. 김부식은 열전에 궁예전과 견훤전을 기술한 후에 자서하기를 궁예와 견훤을 가장 악독한 자, 흉악한 자, 천하의 원흉이라고 기술하여 사관(史官)으로서 자질을 의심케하는 편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편향적 관점에서 기록한 견훤전은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사학자들은 『삼국사기』견훤전을 토대로 역사연구를 해왔고, 후백제와 견훤에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었다. 후백제는 후삼국시대에 속한 나라였지만, 통일신라와 고려 사이에 끼어있는 틈새국가로 기술해 놓았다. 사학자들은 후삼국시대의 시대구분을 아예 빼버리거나, 남북국시대와 고려 사이에 후백제를 끼워넣는식이다. 후삼국시대에 중국도 5대10국시대가 전개되었다. 중국의 역사연대표에는 5대 10국의 역사와 연대를 사실그대로 기술해 놓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역사연대표에는 후삼국시대와 후백제가 사라지고 없다.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도 후백제의 역사 서술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다.
후백제의 왕도(王都)였던 전라북도와 전주시가 후백제역사를 바로세우고 재정립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 2020년 6월 9일 법률 제 17412호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입법 예고되었고, 2021년 6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특별법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역사문화권을 그 범위로 설정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역사문화권의 역사문화, 문화환경 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명시되었다. 그 역사문화권의 범위에 후백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사학계에서는 고대사의 범위를 통일신라말, 후삼국시대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최근 역사고고학자들과 문화재발굴기관에서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후백제 역사유적과 유물 발굴이 진행되면서 후백제의 국가적 위상과 문화적 역량이 드러나고 있다. 후백제의 역사유적으로 도성유적, 궁성유적, 왕릉유적, 사찰유적, 불교문화유산, 청자문화, 도자문화, 성곽문화, 해양문화, 대외교류 등 고대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 유물들이 전라남북도 전역에서 속속 발굴되었고 발굴중에 있다.
2000년 고 전영래 교수와 후백제문화사업회를 주도하고, 2001년 『후백제 견훤정권과 전주』(주류성) 발간을 주도하였다. 문헌 중심 후백제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2015년 고고학자 중심의 후백제연구회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후백제 연구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하여 2019년 후백제학회를 발족시켰다. 최근 민간단체인 후백제선양회가 발족되었고, 전주시가 주도하여 후백제 시·군협의회도 발족시켰다. 후백제문화권 추진은 오로지 전라북도, 전주시와 전북도민의 몫이다. 민·관·학 연대하여 후백제문화권이‘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반드시 추가되도록 긴밀히 협력하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송화섭(후백제학회장·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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