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도 그 정체가 모호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0월 블록체인이라는 디지털 암호화 기술을 사용한 새로운 금융 거래 체계를 제안했다.
현재 금융거래를 하려면 먼저 은행에 계정을 개설한 다음, 이 계정을 통해 입출금 및 송금 등의 거래를 한다. 그러나 사토시 나카모토가 제안한 방식에는 은행과 같은 중앙 관리 기구가 없고,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거래를 승인함으로써 거래의 신뢰성을 인정받는 방식을 사용한다. 물론 거래 내용은 암호화를 통하므로 보호되면서 거래의 유효성만 승인된다. 유효하다고 승인된 한 건의 거래 정보를 ‘블록’이라고 한다. 블록들은 순서대로 한 줄로 엮이게 되어 있어 이를 블록체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거래에는 일반적인 화폐 대신 이 체계 내에서만 통용되는 기호화폐가 사용된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 화폐의 이름을 ‘비트코인’이라고 하였으며, 발행 수량의 한도를 미리 정해두어 희소성을 부여하였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최초의 오프라인 거래는 이후 2010년 5월 22일에 이뤄졌다. 미국의 한 프로그래머가 당시 41달러(USD)에 해당하는 1만 비트코인(BTC)를 주고 피자 2판을 산 것이다. 지금 가치로 따지면 피자 2판에 6천억 원이 훨씬 넘는 값을 치르는 말도 안 되는 거래였지만, 그 당시 이것은 피자가게와 구매자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일반인 모두에게 하나의 새로운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이후 매년 5월 22일을 ‘비트코인 피자데이’라고 하여 최초의 거래를 기념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새뮤얼슨(P. Samuelson)은 불(火), 바퀴와 함께 화폐를 인류의 3대 발명품으로 꼽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화폐는 교환수단, 가치척도, 가치저장수단이라는 3가지 주요 기능을 가진다. 최근 가히 광풍이라 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가 과연 화폐의 고유 기능을 어느 정도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비록 비트코인의 오프라인 사용 실험(?)은 성공하였지만,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비트코인이 실생활에서 거래에 직접 사용되는 경우를 보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의 ‘교환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쉽게 공감되지 않는 이유이다.
처음 우리 돈 몇 백 원에 불과했던 1 비트코인(BTC)의 가격이 올해 4월 한때 7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되돌아보면 비트코인의 가격은 지난 12년간 롤러코스터를 타듯 급격하게 등락을 반복하였다. ‘가치의 척도’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불안정하다는 의미이다.
이제 남은 기능은 ‘가치저장수단’이다. 그동안 코인 자체의 거래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이 기능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이고, 암호화폐가 새로운 디지털 자산으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거래 체계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심각한 우려가 남아있다. 최근 암호화폐에 희망을 걸고 있는 2030세대와 금융당국 그리고 정치권의 입장 차이도 본질적으로는 자산으로서의 거래 체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보면,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이에 수반되는 사회 환경의 변화가 이루어질 때에는 예외 없이 혼돈과 조정의 과정이 있었다. 암호화폐도 지금은 비록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기존의 금융 환경을 뒤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선의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양현호 (군산대학교 기획처장·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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