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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승마

송태규 원광중 교장

송태규 원광중 교장
송태규 원광중 교장

뱀 사(蛇), 노끈 승(繩), 삼 마(麻)를 쓴다. 어떤 나그네가 달밤에 길을 걸어갔다. 갑자기 길 가운데에서 시꺼먼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급히 돌아서 도망가다 넘어졌다. 무릎이 깨지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아프고 놀라서 주저앉아 울었다.

얼마 후 지나가던 사람이 왜 우느냐고 묻기에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사정을 들은 그가 뱀이 어디 있는지 가보자고 했다. 등불을 들고 가서 자세히 보았다. 조금 전 그것은 뱀이 아니라 끊어진 노끈의 한 부분이었다.

나그네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눈여겨보았다면 뱀(蛇)이 아니라 삼(麻)으로 만든 새끼(繩)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고, 무릎도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혹한 우리가 마음속에 뱀에 대한 불안과 공포라는 잠재의식(선입견)을 키우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착각과 허상에 놀라고, 화내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이 뒤얽히고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린다.

담임을 맡았던 시절이었으니 벌써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우리 반에 2년 전 졸업생과 이름이며 얼굴이 비슷한 학생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친형제였다. 공교롭게 내가 형제의 담임을 맡았다. 형은 예의가 바르고 단정한 흔히 말하는 모범 학생이었다. 동생이 학기 초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그와 몇 차례 상담했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동생과 형을 비교했다. 동생은 서서히 열등의식이 생겼다. 밤늦도록 인터넷 게임에 정신을 팔았다. 당시 내 눈에는 장점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는데 녀석이 공부는 도저히 관심이 없고, e스포츠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이쪽에 흥미가 있으면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함께 진로를 고민하자고 했다. 공부야 하고 싶어질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그 뒤로 자기 생각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했다.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자유분방했다. 편견을 버리고 틈날 때마다 그의 진로에 관심을 보이며 격려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서인지 차츰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였다. 3학년 2학기를 시작하면서 일찌감치 수시모집에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 원하는 게임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그 학생이 지닌 성품(본질)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는 단지 그 자체일 뿐이다. 앞서 형의 담임을 맡았던 내 편견이 걸림돌이었다. 애초에 내게 형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그를 왜곡해서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는데 선입견이라는 상(편견)에 가려 해석하고 대했다. 내 마음 한구석에 다른 감정의 찌꺼기가 고여있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그 순간 이미 내 마음이 요란해진 것이다.

사람을 대하면서 먼저 판단(주관)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경험하고 깨우치도록 기다려야 한다. 한동안 미로 안에서 헤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가 길을 찾고 지난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태 사람의 속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어두컴컴할 때 새끼 토막을 뱀으로 보는 그런 시각을 떨치지 못했다. 사승마(蛇繩麻)라, 오늘도 새끼 토막을 뱀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예쁘다 밉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 말이다. /송태규 원광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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