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LH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한 정황이 드러나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여기에 개발 정보를 취급하는 지방 공무원들의 부동산 투기까지 드러나면서 공직자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면 이는 엄연한 범법 행위이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공직자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가족의 장례식 때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어 저승 갈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학창시절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립하면서부터 재물을 탐하기보다는 삶의 가치를 중시하여 교수직을 성직처럼 여겼다. 총장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립대 총장은 청와대로부터 엄격한 인사(도덕성)검증을 거친다. 그 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대통령의 임명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 교수, 직원 등 내부 구성원들이 선출한 총장을 그렇게 혹독하게 검증을 해야 하는가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의 조직문화는 원래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거대한 대학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총장의 도덕성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는 대학 총장 8년간 공적인 것의 사유화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공적인 일의 연장선에서 사비를 쓰는 일이 잦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컨대 총장 자리에 있기 때문에 국회를 비롯하여 중앙부처, 지자체 등 유관기관 관계자의 애경사를 챙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주말이나 평일 저녁 9시 이후에는 업무추진 카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외적 활동이 많으면 많을수록 개인카드 사용과 지출이 늘어났다.
지금 돌아보면 가족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구성원들의 지지로 막중한 총장직을 맡게 됐으니, 그 큰 대학 조직을 능동적으로 움직여 발전시키려면 그런 희생은 감수할 수밖에….
나는 오랜 세월 학생들에게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그런 내가 부정한 일을 생각하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백보를 양보하여 부정한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국립대는 조직 생리상 총장이 이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행정직원의 경우, 5급 사무관 이상의 공무원을 승진시킬 수 있는 권한은 교육부에서 행사하므로 총장으로부터 자유롭다. 또한 교수의 경우에도 인사문제가 전적으로 학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더더욱 총장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나는 총장 재임시 대학 내의 각종 공사나 물품 구매에 직·간접으로 단 한 번도 관여한 적이 없다. 전적으로 실무부서 책임하에 업무를 처리하도록 했다.
따라서 국립대 총장은 조직을 장악하고 통솔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이 전혀 없는 명예직이나 다름없다. 자유로운 대학 문화에서 총장을 위해 충성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고, 총장이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여지도 없다. 오로지 총장 자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소통하고 설득하는 것이 공동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청렴은 모든 공직자의 기본이다. 청렴하지 않으면 조직은 병든다. LH직원이나 공무원들의 땅 투기는 공익을 침해한 정도를 넘어 사실상 그 조직을 무너뜨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고위직공무원에 대한 청렴 의무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왜 전쟁에서 지휘관이 선봉에 서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이제 미담의 소재가 아니라, 고위공직자가 지켜야 할 덕목의 하나이다. 이를 밖으로 드러낼 필요도 없다. 의무이기 때문이다. /서거석 국가 아동정책조정위원·전 전북대 총장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