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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매듭

최병관 행정안전부 대변인
최병관 행정안전부 대변인

한 해를 보내면서 마무리가 중요한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마무리는 매듭을 잘 짓는 거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을 하게 된다. 시작은 잘 하였으나 끝을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다”하여 시작을 중요하게 여기는 말도 있지만, “다 가서 문지방 못 넘어간다”는 말로 끝마무리의 중요성을 우리 선조들은 함께 가르쳐 주었다. 시인 롱펠로우는 “시작하는 재주는 위대하지만, 마무리 짓는 재주는 더욱 위대하다”고 말했고, 세익스피어는 “끝이 좋아야 모두가 좋다”라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야기가 있다. 고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란 나라가 내란으로 혼란할 무렵,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되리란 신탁에 따라 농부였던 고르디우스가 왕으로 추대된다. 왕이 된 그는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봉안하고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 둔다. 그리고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리란 신탁을 함께 내린다. 그 후로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매듭 풀기에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약관의 알렉산더가 나타나 단칼에 매듭을 잘라 버린다. 알렉산더는 결국 신탁에 따라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 애를 써도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를 남들이 생각지 못한 대담한 방식으로 단번에 해결한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다. 중국의‘쾌도난마’(快刀亂麻)와 비슷하다.

대나무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랜 시간에 거쳐 마디를 형성하는 매듭을 지으며 하늘 높이 자란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심한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마디와 매듭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도 하던 일을 멈추고 매듭지어 줄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시간’이다. 본래 시간에는 매듭이 없다. 즉 구분이 없고 무한정이다. 이러한 무한정의 시간에 인간이 여러 개의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년, 월, 일, 시 등이다. 이러한 시간의 매듭을 통하여 시간의 지나감을 인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무한정의 시간이 각각의 매듭 단위에 의해 구분되어 지고 한정된다. 시간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이다. 만약 이 시간의 매듭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아마도 무아, 혼돈, 그 자체가 아닐는지 싶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매듭을 짓는 일이다. 매듭이라고 하는 말에는 종결의 의미와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매듭은 고통이며 상처이다. 매듭지을 때까지 한 동안 아픔이고 시련이다. 그러나 이 아픔 때문에 발전과 도약이 이루어진다.

시작보다 더 중요한 끝마무리를 멋지게 하기 위해서는 매듭을 잘 짓는 지혜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암울한 터널 속을 우리는 지나가고 있다.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터널은 끝이 있다. 우리는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끝에 다다를 때 우리도 모르게 아픈 만큼 성숙되어져 있을 것이다. 지금은 고르디우스의 매듭보다는 대나무의 매듭과 같은 슬기로운 마무리가 필요하다. 대나무의 매듭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지금의 고통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매듭짓기를 한다면 어두운 긴 터널을 통과해서 다시 찾아온 일상의 소중한 시간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소망해 본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 최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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