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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대중의 비극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히게 마련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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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우석대 교수

대학 선배의 자동차 뒷자리를 얻어 타고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아버지는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아들의 헤어 스타일을 문제 삼고 있었다. 하긴 수탉의 벼슬처럼 정수리 부근에서 이마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머리칼을 빳빳하게 세운 모습은 내 눈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연극 연출을 공부한다고 들은 적 있는 그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말에 꼬박꼬박 토를 달고 있었다.

딸만 둔 나로서는 오래 묵은 친구처럼 흉허물없이 지내는 두 사람의 모습이 평소에는 적잖이 부럽기도 했는데, 그날은 느낌이 좀 달랐다. 곱잖게 오가는 부자의 대화에 끼어드는 건 아무래도 마땅한 일 같지 않아서 나는 잠자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쯤 달렸을까. 잠시 눈이나 좀 붙일까 하고 있는데 자동차가 갑자기 속도를 낮추는 것이었다. 저 앞 반대편 차로 한가운데에 뭔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흰색 국화로 장식된 화환이었다. 누군가 장례 절차를 마친 뒤 그걸 싣고 가다가 떨어뜨렸는지 화환은 거의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에이, 저건 아니다. 우리가 치웁시다, 아버지.” 선배의 아들이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거야 당연하지.” 하는 선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창밖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들은 차가 오는 방향을 살피며 버려진 조화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더니 그걸 반대편 갓길에 옮겨놓고는 손바닥을 탈탈 털면서 차에 다시 올라타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등받이에 뒤통수를 대고 잠든 척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다시 출발하자마자 앞자리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너같이 꼼지락거리기 싫어하는 놈이 저걸 치울 생각은 어떻게 했냐?” “그렇잖아. 저거 그대로 두면 운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어?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어이구, 그러셔? 가만 보면 내가 우리 아드님 교육 하나는 똑바로 시켰단 말야, 히히. 아니 그렇냐?” “참 내, 대갈통이 닭대가리 같다고 할 때는 언제고….” “임마! 이렇게 생긴 대가리가 닭대가리지 그럼 꿩대가리냐?”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오래전에 어떤 어른에게 들었던 말 하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분의 표현을 옮겨 적으면, 바로 ‘대중의 비극’이다. 자기 욕심만 챙기는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히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교통량이 많은 길에 누군가가 불법주차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차를 거기 둔 사람은 주차비도 아끼고 가까운 곳에서 일을 볼 수 있을 테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 하지만 그 차가 길 하나를 가로막는 바람에 수많은 운전자들은 속도를 낮춰야 한다. 갑작스러운 병목현상이 생겨서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자기 기분만 생각해서 마구 울려대는 경음기 소리에 어떤 초보운전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먹다 만 음식물을 함부로 버려서 악취를 풍기게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대중의 비극을 야기하는 이기적 행동 아니고 무엇일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선배 부자는 ‘닭대가리’ 말고도 몇 가지 사소한 문제로 아옹다옹 티격태격하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이 오히려 정겨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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