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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추도사-한승헌 변호사님 영전에] 고향과 후배들을 특히 사랑하셨는데....

동학농민혁명 뒤틀린 역사 바로잡으시고
전주, 전통문화 중심도시 추진에 큰 역할
모교 전북대 도서관에 '산민문고' 기증도

우리 시대의 사표이신 한승헌 변호사님께서 우리 곁을 운명처럼 왔다 가셨다.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이내 필연이 되었고 마지막 만남, 아니 헤어짐은 기어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고향을 그리도 사랑하고 후배들을 아끼시던 당신께서는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전주를 찾아 마지막 수발을 허락하셨다. 아득한 예감에 두 손을 부여잡고 머리도 정성스레 쓰다듬어 드렸다.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시면서 입놀림으로 무엇인가를 속삭이셨다.

“자랑스럽게는 못 살망정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

“지식인의 도리는 다하지 못할지라도 학기(學妓)는 되지 말자!”

그렇게 새긴다. 삼십 년 넘어 스승으로 모셨으니 당신의 자계(自戒)를 불초한 후학의 좌우명으로 받들 수 있겠다 싶어서다.

당신은 분명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산증인이다. 개인의 이력을 나라의 역사로 읽을 수 있는 거인이다. 하지만 부족한 후학은 고향과 모교와 후배들을 애지중지한 당신의 삶을 우리 지역의 소사와 견주어 읽어보고 싶다. 그것이 더 곡진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민주운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은 일이다.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평소 명실상부(名實相符)의 원칙을 중시하는 분답게 이름뿐인 대표직을 계속 고사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수락을 하신 후에는 그 이름에 걸맞은 엄청난 일을 하셨다. 기념사업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다.

1994년 ‘고부봉기역사맞이굿’으로부터 시작된 백주년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보여주신 정성과 역량은 그 이후에 오히려 더 화려한 결실로 이어진다. 1997년 “역사의 정신, 역사의 인물” 서예전시회, 1999년 국립중앙극장 [천명] 초청공연, 2001년 “동학농민혁명의 21세기적 의미” 주제의 국제학술대회 등을 통해 혁명정신의 확산은 물론 기념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되었다.

가장 주목할 일은 일본 북해도대학 한 연구소에 방치된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봉환 및 안장 사업일 것이다. 1996년 시작된 이 일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2019년에야 마무리된다. 안장이 늦어져 죄송한 마음 가눌 수 없지만 그 덕에 전주는 수많은 무명농민군을 추모하는 상징 공간 하나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정부 산하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꾸려지고 국가기념일도 정해져 기념식을 정부 차원에서 치르게 되었다. 백년 넘게 왜곡돼온 우리 근대 역사가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더불어 전북의 정신도 올곧게 제자리를 잡아가게 되고.

한 변호사님의 고향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04년 완전을 꿈꾸는 땅 전주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총체적인 도시 발전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를 조직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추진단이 꾸려지는데 이때 변호사님은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의 각별한 인연이 여기에서도 큰 도움을 주었다. 대통령 취임 전에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응원해주시더니 퇴임 후에는 이희호 여사와 함께 전주한옥마을을 방문하시어 언론의 큰 주목을 받게 해주셨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노무현대통령께서 전주한옥마을을 직접 방문하게 주선해 주신 일이다. 2006년 2월 21일, 참여정부 핵심정책의 하나인 혁신도시의 출범식이 있던 날. 전국 시장·도지사와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청와대 주요 인사들도 전주를 찾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 중요한 잔치의 축하자리에 가지 않고 한옥마을을 찾았다. 전주문화예술인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택한 것이다. 한 변호사님의 주선으로 성사된 쾌거였다.

이 이례적 배려로 전주전통문화도시 조성사업은 큰 탄력을 받게 된다. 그 대표적 성과가 무형유산원과 유네스코 아·태무형문화센터의 전주 유치다. 국립기관과 국제기구가 동시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역거점대학인 모교 전북대학교에 사랑과 정성 또한 지극했다. 중간 심부름이 버거울 정도였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유치 및 정착에 결정적인 역할 해주셨으며 후배들을 위해 평생 모은 도서를 ‘산민문고’ 이름으로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하셨다.

이런 지역의 큰 스승이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 하여 4월은 거듭으로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이 계절이 되면 당신 글씨의 현판이 걸려있는 법학전문대학원 옆에서는 철쭉들이 다시 흐드러질 것이다. 당신과 함께 찾았던 지리산 와운마을 가는 계곡 옆 물철쭉도 화사함을 또 뽐낼 것이고. 서울 가실 때마다 서있던 전주역 야외 대합 공간의 휑한 바람은 또 어찌 견뎌낼까?

당신이 남긴 시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다독여 본다. “절망의 생명을 어루만지던/ 불운한 수인의 대부/ 당신은 결코 흙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온 누리 음지의 영혼 속에서/ 상록의 무성한 모습으로/ 두고두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당신은/ 법복만이 아니라 성의의 모습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영생하는 것입니다.”([어느 대부에게])

부디 영면하소서!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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