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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하얼빈 역’ 시간표 대신 웬 대작 그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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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귀 김제 귀농인

아리랑문학마을은 금산사, 벽골제와 더불어 김제시의 대표적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 1900년 초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의 일제강점기 일본인과 친일파에 의한 악랄하고 잔인한 만행,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 그리고 힘 없는 우리 민족의 억울하고 분한 수난사를 실감나게 묘사한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12권)이 조성 배경이다.

김제는 대한민국에서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의 고장이다. ‘징게 맹갱 외에밋들’로 불렸는데 징게는 김제, 맹갱은 만경, 외에밋들은 끝없이 넓은 들을 뜻한다. 그나마 아리랑 문학마을은 조금 높은 언덕 같은 곳에 소나무가 있었던 곳으로,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나지막 하지만 어쨌든 홍지뫼라고 불리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김제시가 2012년 이곳 9000여 평의 부지에 100억여 원을 투입, 소설 아리랑의 주 무대를 조성하고 아리랑문학마을로 명명했다. 작가 개인도 큰 영광이겠지만 지역주민으로써도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는 소설 속 삶의 터전인 초가집들과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를 명목으로 농토 수탈에 앞장섰던 면사무소 건물, 성폭력의 온상지였던 미선소로 대표되는 정미소 건물, 첩보 수집과 첩보원 양성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우체국 건물, 총과 칼을 앞세워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을 밥 먹듯이 자행한 주재소 등 당시 대표적 수탈기관 4동을 실감나게 재현해 놓았다.

또 지금은 철거된 식민통치의 본산인 중앙청 건물, 산더미 같이 쌓아 놓은 쌀가마, 신작로 작업자들의 노동착취,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군사훈련을 시키는 광경, 을사오적 등의 사진도 본관에 전시돼 있다.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만주땅 하얼빈역이 실물의 60%로 축소돼 세워져 있다. 플랫폼에는 안중근 의사가 초대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을 기차와 마네킹으로 재현했다. 안중근 의사가 쥐고 있는 권총의 버튼을 누르면 실제 권총을 발사할 때 나오는 음향이 당시의 상황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문제는 이 하얼빈역 구내 광경이다. 하얼빈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역사 대합실에 기차 시간표가 없다는 것을 의아해 한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대합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찾는 게 기차나 버스 시간표인데 이 시간표가 없는 것이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역 구내에 러시아와 중국어로 된 열차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시간표가 떼어지고 그 자리에 만경들판을 소재로 한 대작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이곳은 개인이나 친구 또는 가족끼리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방문객마다 시간표 대신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이다. 차라리 김제시청 청사나 만경읍사무소에 배치하면 알맞은 그림을 역 구내에 걸어놓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어떠한 연유로 시간표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만경들판을 소재로 한 대작 그림을 걸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감나무에 배나무를 접 붙인 격이요, 양복에 고무신을 신은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대합실 풍경이다.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열차시간표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은 잘못이다. 아리랑문학마을에는 하얼빈역 대합실보다 더 크고 좋은 위치의 그림을 걸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적당한 곳을 선정해 제자리를 찾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하얼빈역 대합실에는 기차시간표를 배치하여 안중근 의사의 거사 시간과 현장을 좀 더 실감나게 묘사하고, 관광객들의 의아심도 풀어주었으면 한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역사의 아픔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역사교육의 체험학습장으로 이만한 곳도 없다는 생각인데 대합실 광경은 옥에 티다. 

/김용귀 김제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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