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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세계정부 없이 국민국가들이 결정하는 세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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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ESG연구소 소장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20일 막을 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보상을 위한 기금 조성에 합의해 역사적인 진전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일 개막한 COP27은 원래 18일 폐막 예정이었으나, 주요 쟁점에 당사국들이 견해 차이를 보여 20일 새벽까지 협상을 연장하며 마라톤 회의를 한 끝에 손실과 보상 기금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지구 차원에서 기후정의에 한 걸음 다가간 조치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대부분을 먼저 산업화를 이룬 부국들이 배출했지만, 기후변화의 악영향은 빈국들이 더 많이 받았다. 예컨대 올해 파키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고 1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십조 원의 물적 피해를 보았다. 수재민이 전체 인구의 약 15%인 33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홍수 피해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세계 최빈국 연합을 대변하는 셰리 레흐만 파키스탄 기후 장관은 기금 조성 합의 후 “우리는 지난 30년 분투했고, 그 여정이 첫 긍정적 이정표에 당도했다”며 “합의는 기후 취약국의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라고 평가했다.

파키스탄 기후 장관이 말한 대로 그동안 최빈국과 개도국들은 기후변화 보상 기금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홍수, 가뭄 등으로 인명 피해나 이재민 발생, 시설 파괴, 농작물 피해 등이 점차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부국들은 온난화의 유발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보상 액수가 천문학적인 수준이기에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번 기금 조성 합의에도 불구하고 부국들은 기금이 ‘보상(compensation)’ 성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신 결정문에 “손실과 피해 복구에 초점을 맞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fund for responding to loss and damage)을 조성한다”라고 표현했다. ‘보상’을 ‘대응’으로 규정한 것은 일종의 정치적 절충안이다. 보상을 요구하는 빈국에 부국이 응답하되 보상이라는 용어는 피했다.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에 특별히 취약한 개도국을 지원하고자 신규 재원 지원체계를 설치한다”라는 문구 또한 부국의 이해가 반영됐다. ‘특별히 취약한 개도국’에만 기금이 지원되도록 하여 수혜 대상 국가를 제한했다.

‘합의’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지만 갈 길이 멀다. 누가 돈을 내고 누가 돈을 받을지, 어떤 종류의 피해와 언제부터 발생한 피해를 지원 대상에 포함할지 등 기금 운영의 세부원칙을 정해야 하는데 이게 누가 봐도 합의보다 100배는 어려운 일이다. 유럽연합(EU) 등이 돈을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공여국은 대체로 성의표시 차원에서 금액을 결정할 공산이 크다.

최근 분석으론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55개국이 지난 20년의 기후 재앙으로 인한 피해액이 5250억 달러(약 700조 원)로 추정된다. 선진국이 개도국을 위해 연간 1000억 달러를 기후변화 대처 재원으로 제공하겠다는 (사실상 선언에 불과한) 약속의 이행을 COP27에서 빈국들은 촉구했다.

세계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합의’의 후속 조치는 마냥 눈치게임으로 흘러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세계의 기후정의 못지않게 각국 내부의 기후정의가 시급한데다 ‘정의’는 대체로 국민국가의 핵심 관심사가 아닌 까닭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또 내부적으로 어떤 국가가 될 것인가. 그것은 결국 국민이 결정한다. 또한 세계정부가 없는 가운데 세계의 미래는 국민국가들이 결정한다. 어떤 미래일까.

/안치용 ESG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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