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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격물에 대한 심심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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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대학'에 나오는 글귀이다. 여기서 강조점은 일의 우선 순위이다. 즉  천하를 다스리려면 먼저 자기 몸을 반듯이 닦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는가. 수신제가 앞에 더 우선해야 할 4가지 덕목이 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이다. 

수신에 앞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정심),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성의), 그에 앞서 제대로 알고(치지), 알기 위해 사물을 탐구하라(격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흔히 경전은 마음가짐을 가르치는데, '대학'은 도덕과 윤리에 앞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며 과학적 탐구를 강조한다. 

지식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호하고 불안해 미신에 빠지고 미흡한 판단으로 잘못된 뜻을 세울 수 있다. 마녀사냥 같은 역사상 인류가 저지른 많은 재앙은 과학적 지식이 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로운 문명이 밀려올 때 무지로 인해 물결에 저항하다 휩쓸려버린 사례는 넘친다. 산업혁명의 본산인 영국에서조차 한동안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다. 앎이 바르지 않으면 뜻도 마음도 바로 세울 수 없다. '격물치지'를 우선해야 하는 이유다.

난 '격물치지'를 '대학'이 아니라 고 1때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는데 읽자마자 밑줄을 쫙, 그었다. [격물치지: 사물의 원리를 연구해서 앎에 이른다.]

그런데 맘 한켠에 의문이 남았다. 격물을 하면 진정한 앎에 이르는가? 격물은 무엇인가!

격물(格物)의 격(格)은 '나무의 가지를 친다'는 뜻이니, 격물은 사물의 요소에서 잔가지를 쳐내고 본질적인 속성을 잘 정리해서 규격화하는 것, 정도의 뜻이겠다. E=mc² 같이 사물의 원리를 다 파악하고 나면 이처럼 간단하게 규격화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규정하려면 그를 속속들이 알아야만 가능하다. 알지 못하면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하지 못하면 그건 아는 것이 아니다. 난 오랜 세월 그런 의식으로 무엇에 대해 규정하고 정의를 내리고 규격화하려 애쓰며 살아왔다.

현대는 무규정의 시대다.

사회에 나와 동창생을 만나고서 '이 친구가 그랬나?' 놀랄 때가 많다. 내가 규정한 그는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경험에 의존한 이미지일 뿐이었다. 다시 보니 그는 내가 생각한 그가 아니었다. 훨씬 풍부했다. 애초에 그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꾸준히 변화했을 것이다.

우린 몇몇 경험으로 사람을 규정하지만 사실 누군가를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무언가를 규정하는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도서관의 나, 탁구장의 나, 뒷골목의 나는  나의 백,천,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실은 자신마저도 자신을 모른다.

'나'의 생각, 의식은 '내'가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가 지배한다. 진짜 '나'는 드러나지 않게 깊숙히 감춰 무의식의 창고에 저장된다는게 뇌과학자의 주장이다. 진짜 '나'의 9할은 무의식에 있으니 내가 어찌 나를 알 것이며, 내가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겠는가? 학생은 어떠해야 한다는 규정, 무엇이 성공이라는 규정, 상식, 정의, 진보라는 규정, 

이 모든 규정을 경계해야 한다. 

규정은 수많은 요소를 쳐냄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잘라버린다. 무규정은 모든 요소를 그대로 살려 모든 가능성을 북돋운다. 무의식 속에 감춰진 학생 개인의 잠재력을 찾아 일깨워야 한다. 규정함이 없이 열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생각,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그것이 진보요, 창의다. 

/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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