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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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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성 왱이집 대표

어머니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신식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셨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방을 든 채로 자주 외출을 하셨는데 그게 일본어 번역을 위한 걸음이란 걸 알았던 나는 어머니의 한복자락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어머니가 조그만 책상 위에 책을 펼쳐두고 뭔가를 쓸 때면 슬그머니 그 옆에 가서 책 읽는 시늉을 하곤 했다. 시늉에 불과했어도 열에 한두 개쯤은 걸러 들어갔을 것이다. 한번쯤 일본어를 배워볼테냐 물어보실 법도 하지만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가끔 책 읽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실 뿐이었다. 

어머니는 신식학교에서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신여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위로 오빠를 셋이나 낳은 중년여성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예절만큼은 엄격하게 전통을 지키려 하셨다. 외출할 때는 물론이고 집안에서도 가능하면 한복을 입으려 하셨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주 잔소리를 하지는 않으셨지만 자식들에게도 꼭 지켜야 할 것들을 강조하셨는데 이를테면 식사예절 같은 것이었다. 

막내인 나는 밥투정을 하거나 밥상 앞에서 떼를 써본 일이 없다. 또 아무리 맘이 급하거나 볼일이 끝났더라도 오빠 셋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밥상 앞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너무 서둘러 먹거나 지나치게 늦게 먹어도 안 됐으며 다른 식구들과 속도를 맞추어 식사해야 했다. 

어느 날인가 계산대에 앉아 책 읽는 내 모습을 보고 손님이 건넨 말이 있었다. 

“국밥집 사장님 취미치고는 너무 고상한 거 아뇨?”

글쎄, 책 읽는 것이 고상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국밥집 사장이라고 책 읽는 취미 갖지 말란 법도 없다. 도대체 국밥집 사장에게 어울리는 취미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어릴 적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떠올랐다.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국밥 냄새처럼 내 몸에 배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습관들이 먼지처럼 내 몸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져나가기를 반복했지만 좀처럼 벗어지지 않는 습관들도 있기 마련이다. 

명절이며 여름 겨울 휴가철, 또 5월 가정의 달 즈음에는 3대가 함께 식당을 찾는 일이 많다. 그들을 볼 때면 ‘핏줄은 못 속인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묘하게 닮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비단 외모만이 아니다. 말투와 표정, 습관, 행동, 사소한 것들이 유전처럼 닮아있다. 국밥을 받으며 할아버지가 “감사합니다.”하면 아버지도, 아이도 돌림노래처럼 “감사합니다.”를 이어 붙인다. 아버지가 할머니 숟가락에 김치를 놓아주면 아이는 제 엄마 숟가락에 젓갈을 올려준다. 서툴러도 어린 아이가 혼자 먹을 수 있도록 지켜봐주면, 아이는 식당을 돌아다니지 않고 스스로 먹는 일에 열중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이 외출해본 아이들은 식당에 들어올 때도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할머니와 팔짱을 껴고 있다. 

누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은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사랑하는 가족이 밥을 먹는 모습이 얼마나 배부른지, 스스로 배워나가는 세상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가족이란 얼마나 따뜻한 의지인지를 말이다. 

5월이다. 새삼 되새겨본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

/유대성 왱이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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