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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스승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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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쉬는 월요일, 학부와 대학원 강의가 있다. 강의 마지막쯤에 질문받으면서 정리하는 시간이다. 한 분이 말하다가 눈물을 보이면서 운다. 조금 당황했다. 강의 마친 후 울음 보인 만학도 학생이 단톡방에 미안하다면서 오늘 배운 내용 중에 자기 삶과 그대로 연결된 내용이 있어서 감정을 주체 못 했다고 했다.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스승의 날이었다. 성경에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일만 명의 스승이라? 요즘 우리 사회에 스승이 그렇게 많을까? 스승은 누구일까? 제자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존재, 제자를 옹호하는 사람, 제자를 힘들게 하는 어떤 틀과 같은 정책을 부딪쳐서 깨는 존재, 아니면 친구와 같은 동반자인가? 

오래전 홍콩의 쿵후 영화는 비슷한 줄거리가 많았다. 적들에게 목숨을 간신히 건져 숨어 있거나,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피해 도망 나온 청년이 어렵게 스승을 만나서 훈련하고 복수한다는 이야기. 그 복수의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도움을 주었다는 스승의 이야기다. 그리고 스승은 떠나고 제자는 혼자서 삶을 살아 내면서 또 다른 스승이 되어 간다. 홍콩 영화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는 알겠다. 스승은 자기 후배인지 제자인지 그 어떤 존재가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또는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로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가 힘들어하는 어떤 틀을 대신 또는 함께 부딪치면서 깨 주는 선배이기도 하다.

30대 중반에 청소년활동시설의 기관장이 됐고 잠시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다녔던 학교에 찾아가 지도교수님 찾아뵙고 시험 친 후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서울 군산 오고 가면서 많이도 힘들 때였다. 어느 날인가 교수님이 밥 먹었냐면서 교수 식당 데려가더니 밥 사 주면서 잘 먹고 다니라고 했다. 석사 할 때도 고생한다고 학교 뒷문에 아직도 기억하는 작은 식당에 된장찌개 사 주면서 힘내라고 하셨다. 현재 청소년의 관점과 가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교수님이다. 아마 내가 그분의 두 번째 박사학위자일 거다. 교수님은 은퇴 이후 대학원에서 작곡 공부하셨고 지금은 작곡가로 변신해서 활동하고 계신다.

고3 때였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내 안에 갈등도 심했고 마음이 바닥일 때 성적도 좋지 않았다. 담임이었던 박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학교 다니는 12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담 비슷한 것을 했다. 그때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건희야 너는 성실하고 착하니 뭐든 잘할 거다.” 고3 말미에 아르바이트해서 첫 월급으로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렸다. 선생님은 교장으로 은퇴하셨다. 어쩌다가 지역에서 뵈면 ‘건희야’라고 먼저 이름 불러 주는 박 선생님. 몇 달 전 출판한 <삶의 바다로 모험을 떠날 용기>라는 청소년 진로 책에도 박 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실명을 기록해 놨다. 책 나오자마자 선생님께 바로 선물 드린다고 한 권 빼놓고 아직도 드리지 못하고 있는 못난 나. 식사도 대접하고 책도 선물하려고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오늘 스승의 날에 선생님 얼굴만 다시 떠오른다. 

내 가슴에 스승으로 존재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스승의 날을 지나다가 알았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스승이었다. 하루 동안 연락해 오는 이전의 청소년, 청년들이 있었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어떠한 일을 해 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된 것은, 스승이란 그 존재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며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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