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사람이 한 달 뒤에 베풀 잔치를 위해 소젖을 모으기로 했다. 그런데 소젖을 한 달 동안 보관하는 일이 어려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낸 그는 한 달 동안 소젖을 짜지 않기로 했다. 그뿐 아니라 소에게서 새끼를 떼어내 젖을 먹지 못하게 했다. 소젖을 짜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잔치 당일에 한꺼번에 짤 생각을 했다. 이윽고 잔치 당일이 되어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모여들었을 때 그는 소를 끌고 와 즉석에서 젖을 짜 사람들에게 따끈한 젖을 주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소에게서는 단 한 방울의 젖도 나오지 않았다. 날마다 젖을 짜지 않고 새끼에게 먹이지 않아 완전히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앞의 이야기는 불교의 비유 경전인 <백유경>에 나오는 일화이다. 소 주인은 한꺼번에 자신의 소유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나누지 못한 채 소젖을 말라붙게 했다. 소젖을 마르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날마다 소젖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새끼 소에게도 나눠줬다면 매일 따뜻한 젖을 모두가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재산을 많이 모은 후에 세상에 나눠주겠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눌 수 있을 때는 가진 것이 풍족하고 넉넉할 때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때이다. 큰 나눔을 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하지만 작은 나눔은 작은 마음이면 충분하다. 나눔의 근본은 물질이 아니고 마음이기 때문이다.
헌혈이 그렇다. “시간이 없어서요”, “아, 피곤한데…, 다음에 하지요” 시간이 없고 피곤해서가 아니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가 아닐까. ‘나 아니어도 많이 하는데 굳이 나까지?’ 하며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채혈 현장에서 상담하다 보면 간혹 헌혈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헌혈이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다. 헌혈, 말이 쉽지 실제로 찔리는 바늘도 무섭고 또 헌혈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 왜 계속 피가 부족하냐고 묻는다.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아직까지 대체할 물질이 없고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없다. 특히 장기간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적정 보유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이고 꾸준한 헌혈이 필요하다.
실제 헌혈을 꾸준히 하는 분들도 많다. 우연한 기회에 생애 첫 헌혈을 하고 헌혈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한다. 처음이라 긴장되고 주사바늘도 무섭고 아플까봐 망설였는데 막상 헌혈을 해보니 전혀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남을 도왔다는 뿌듯함이 좋았다고 했다. 게다가 건강한 신체에서 남아도는 혈액을 나누니 꾸준한 헌혈을 위해 건강관리에 더 힘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하다 보니 어느덧 헌혈 마니아가 되신 분들이다.
헌혈 나눔은 사랑 공식과는 다르다. 나에게서 내 것을 덜어내는데도 오히려 행복이 더해진다. 단순한 사칙연산으로 설명할 수 없고 사랑 공식처럼 상처받지도 않는다. 나의 몸에서 빠져나간 피가 타인에게 전달돼 새로운 삶을 탄생시키는 헌혈의 마법은 작은 나눔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 것을 덜어내더라도 아무것도 줄지 않는다.”라는 이 거짓말 같은 공식은 헌혈이 이제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핵심 가치이다.
동절기 혈액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겨울 한파와 방학 등으로 헌혈자가 감소하면서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원에서는 매일 5,116개 정도의 혈액이 사용되고 있다. 언제 당신도 혈액을 필요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불의의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헌혈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혈액을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우리 가족이 될 수도 혹은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이은정 전북특별자치도혈액원 간호팀 과장 (<헌혈, 사랑을 만나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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