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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그해 여름 삼계탕은 서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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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이른 폭염부터 물폭탄 장마까지 유난히 거칠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 같은 고추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하얀 벼꽃이 촘촘하게 올라오는 농촌의 8월은 평화로운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한없이 분주한 계절이다. 풀 관리, 물 관리, 병해충 관리까지 공을 들이는 만큼 가을 수확이 달라지기에 꼭두새벽 논밭을 누비는 남편은 비 맞은 것처럼 온몸에 땀을 적셔야 하루의 과업이 끝나곤 한다.

예로부터 복날은 이 고단한 계절에 쉼표 같은 역할이었을 것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농촌에 살다 보니, 절기를 잊고 사는 도시 생활과 달리 정월대보름과 복날, 동지에는 되도록 가족과 함께 절기음식을 챙겨 먹으려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이른 더위에 질려버려서 처음으로 레토르트 삼계탕에 눈길이 갔다. 마침 건강한 간편식품 잘 만들기로 소문난 남원 사회적기업에서 들깨 삼계탕을 출시했기에 핑계 삼아 압력솥 꺼내지 않고 복날을 넘겼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네에 있는 지렁이 비료 공장에서 이맘때면 토종닭에 전복 한두 개 넣어 집집마다 돌리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봉지 삼계탕을 보내온 것. 매년 초복 잔치를 하는 성당에서도 주일 아침에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아 의아했는데, 비밀은 유명 식품기업 봉지 삼계탕이었다.

어쩌다가 봉지 삼계탕을 두루 섭렵한 복날을 보내고 나니, 절기가 무색할 정도로 노쇠한 농촌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동네 단위로 모여서 챙기던 대보름도 복날도 이제는 면 단위 중심지에서 큰 행사처럼 치를 뿐, 가가호호 흩어져 사는 어르신들은 무얼 같이 먹자고 도모하기에 이제는 동력이 없다.

이러한 농촌 현실을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노(老)-노(老) 케어를 준비해 온 마을이 있다. 남원 솔바람영농조합은 덕과면 신양리 비촌·양선·작소마을과 만도리의 도촌·만동까지 5개의 작은 마을이 모인 권역 공동체이자 예비 마을기업이다. 농촌 어르신들이 생애 후반부를 도시 아파트에서 생활의 주도권 없이 지내다가 결국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는 문제에 주목하여 2014년부터 주거·복지형 마을만들기를 추진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 창조적 마을 공모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8년 독거노인 공동 주거 공간인 노노 돌봄센터를 건립하였다.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눈 감는 노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4년여 동안 주민들이 스스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마을 환경을 정비하며 준비해왔지만, 공동체 안에서 돌봄의 자급자족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현재 솔바람영농조합은 노인들이 참여하기 좋고 도시민에게는 치유 경험을 선사하는 꽃 관련 체험 사업으로 새로운 마을 활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솔바람센터는 남원시 북부권의 경증 치매환자 거점 쉼터로 활용되어 도심권 치매안심센터 내에서만 운영해 왔던 쉼터 사업을 전북 최초로 읍·면 지역에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농촌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이제 시행된다. 일자리와 주거, 교통, 교육, 보건의료, 환경, 취약계층 돌봄 등 지역 서비스를 주민 공동체가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핵심은 연결이다. 이미 공백이 커진 지역 인프라 속에서 생애주기에 대응할 서비스를 촘촘히 엮어나가려면 지역 안에서 그리고 지역 바깥과의 면밀하고 창의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마중물은 온전히 사람에게 달려있다. 행정은 현장을 중심에 둔 실질적이고 유연한 거버넌스 구성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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