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이루어지는 아트 페스타를 4년째 기획·운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살아남는 미술축제, 아트마켓은 어떠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고택 아트 페스타’(Gotaek Art Festa:GAF)는 완주군과 무주군의 고택·고건축에서 K-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3년간은 공모사업을 통해 국비를 유치하고 자부담을 투자해 ‘전통과 시각예술의 색다른 만남’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GAF 운영팀은 늘 질문한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단순히 보존이냐 활용이냐의 논의 너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관심과 책임을 요구한다. 지금의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전통은 어느 순간에도 흘러야 전통이다. 흐르는 전통만이 미래에도 소중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던지는 질문과 사유의 산물이다. GAF는 이러한 시각적 결과물들을 오랜 시간, 여러 시대를 견뎌온 ‘그릇’인 고건축물에 담아보는 실험이다. 그 그릇에 담기는 예술적 질문과 실행은 다양한 형질과 형태로 표현되며, 예술적 다양성을 획득한다.
또 GAF라는 하나의 축제를 통해 만나는 시각·공연 예술가, 지역민, 유관기관, 비평가, 학자, 지자체장 등 수많은 주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전통은 새롭게 정의되고 재구성된다. 거창하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점진적인 움직임은 청년을 지역으로 유입시키고, 지역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하며 활력을 불어넣는다.
올해부터는 이 유의미한 움직임을 도내가 아닌 타지역에서 펼치게 되었다. 옮기게 된 이유는 두 가지, 공간과 비용이다. GAF의 핵심 공간이 되는 고택은 보통 100년 이상 된 한옥이나 근대문화유산이다. 한 공간에 축적된 시공간의 힘은 전통의 가치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불편하고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라진 고택들, 보존에만 급급한 관리자들, 고택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행사진행이 가능해 보이면 고비용 대관료를 요구하거나 대관 자체를 거절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매해 반복된 공간 섭외의 어려움 속에서, 올해는 행사지 자체를 안동시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지역은 이미 여러 이점과 협력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GAF가 성장하기에 더 나은 토대를 제공한다. 그간 우리가 지역에서 읍소하고 설득하며, 때로는 갈등을 겪으며 축제의 필요성과 공간의 가치를 설명했던 지난한 과정들이 생략되었다. 대신, 전통의 가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국비를 유치한 민간단체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그간의 분투가 생생했기에, 민간단체와 협력하는 지자체의 태도 차이는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공간에서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가야 하는 지금, 기대와 우려는 여전히 공존한다.
다만 전주에 기반을 두고 성과를 만들어온 한 조직의 대표로서, 그리고 이 지역에 정주하며 살아온 시민으로서 이번 이동이 아쉽고, 솔직히 말하면 씁쓸하다.
이 감상에서 조금 거리를 두면, 지역 문화예술인으로서 냉철한 질문을 던져야 할 지점이 보인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우리 지역은 문화도시로서 전통을 계승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그릇된 정체성에 매몰되어 안팎을 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단체와 같은 ‘이탈’이 유사한 이유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흐르는 전통 위에, 머무를 예술이 쌓이기를. 그 길 위에서 묻고, 또 시작한다.
김현정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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