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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죽음을 막는 사회’를 넘어, ‘삶을 함께하는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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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현실을 드러낸다. 인구 10만 명당 28.3명이라는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이며, 이는 단순한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정부는 10년 안에 자살률을 17.0명까지 줄이고, 5년 내 자살 사망자를 1만 명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고위험군 집중 대응, 자살예방관 지정, AI 기반 모니터링 강화 등 다각적인 대응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책의 효과는 숫자로만 평가될 수 없는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래 전 영화 ‘레인 오버 미’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뒤 깊은 상실감과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지만, 결국 새로운 우정과 관계를 통해 조금씩 삶을 회복해 간다. 영화는 상실과 슬픔이 개인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동시에 관계와 연대가 치유의 시작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자살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구조적 압박 속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년간 동반자살 건수만 1,500여 건을 넘어섰으며, 이 중 상당수가 가족이나 연인과 얽힌 문제였다. 심지어 400여 건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자살이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책은 ‘개인 치료’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 사회적 안전망 전체를 아우르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레인 오버 미’의 주인공이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 역시 개인을 고립시키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취업난, 부채, 관계 갈등, 정신적 질환 같은 위기 요인은 개인의 의지로만 극복할 수 없다. 국가가 제시한 자살예방전략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서로 돌보고 지지하는 연대의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정신적 고통은 누구나 겪을 수 있으며, 상실과 절망은 특정 집단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자살 문제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산물이다. 따라서 해답도 공동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정책은 더 촘촘한 안전망과 온국민 돌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안부를 묻는 한 통의 전화, 함께 걷는 짧은 산책, 소소한 모임이나 대화가 생명을 이어주는 힘이 될 수 있다.

 자살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선택이 아니다. 2024년 보건복지부 분석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들은 평균 4.3개 이상의 복합적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정신적 고통, 가족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이 겹쳐 쌓이다가 결국 무너진다. 그래서 무너지는 그 순간 전에, 누군가의 곁을 지켜주고, 함께 짐을 나눌 수 있는 토대가 매우 중요하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죽음을 막는 사회”를 넘어서 “삶을 함께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고통 속에 홀로 남겨진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변화될 수 있다.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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