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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정이는 가라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6.10.18  / 최종수정 : 2016.10.18  23:51:16
   
▲ 고미희 아동문학가·전주시의원

올 한 해 농부들에겐 잔인할 만큼 날씨가 냉정했다. 마치 작금의 얼어붙은 남과 북의 기류처럼 농사와 기후는 서로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그런 와중에도 농부는 천직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일사병에 걸려 신음하는 곡식을 보며 열사병에 시달리면서까지 들판을 쏘다녀야 했다.

동네 개들이 아무리 짖어도 마이크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행상 차는 덤덤히 지나가게 마련이던가! 들판의 곡식들이 화상을 입었든, 농부들 가슴이 다 타버린 연탄재가 되었든 간에 망설임 없이 추수의 계절은 돌아왔다.

 ‘판사’나 ‘검사’처럼 ‘사事 자字’ 붙은 사람이 되라고 논밭 팔아 뒷바라지 해주었더니 엉뚱한 일에 휘말려 감옥에 가 있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동안 흘린 땀만큼이라도 수확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알곡보다 껍데기가 더 많은 들판에 서서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만 내쉬는 농부들의 심정이 참담하기만 하다. 농사는 하늘과 농부가 동업을 하여 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결과 앞에서면 누구라도 먼저 책임을 회피하려고 발뺌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다고 하늘을 원망하랴! 곡식을 원망하랴! 수확이 넉넉지 않은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농부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논밭을 갈아엎는다. 그것은 들판을 지키며 자기보다 더 뜨거웠을 곡식들에게 갖는 미안함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민초들은 허가 안 난 도인들이다. 그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씨 뿌릴 때를 알고 거두어들일 때를 안다. 적당히 만족할 줄도 알고 하늘과 땅이 베풀어주는 은혜에 감사할 줄도 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의도에서도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추수가 한창이다. 빛 뜨거운 농사철에는 보이지도 않던 양반들이 추수철이 되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마치 농사를 자기가 다 지은 것처럼 저마다 나서서 땅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을 캐내고 탈곡기로 탈탈 털며 농사꾼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깊이 캐봤자 껍데기뿐이고, 아무리 털어봤자 쭉정이뿐이란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추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추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할리우드 액션을 하고 있다는 것을.

흉내만 내며 그렇게 먼지만 날릴 거라면 애당초 추수를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그랬다면 적어도 올해엔 수확물이 얼마나 나올까 하고 눈이 빠지게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 아닌가!

괜스레 껍데기를 탈탈 터는 바람에 그 먼지가 안 그래도 중국 발 미세먼지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의 눈앞을 흐리게 하고 있다. 단 한 알이라도 알곡을 얻겠다는 진정이 없다면 차라리 추수 하겠다고 덤비지 마라.

껍데기를 캐는 척, 쭉정이를 터는 척하며 먼지로 국민의 눈을 가리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껍데기고 쭉정이다. 껍데기는 가라! 쭉정이도 가라! 또 다시 할리우드 액션으로 속이려 들면 바로 국민들이 내미는 레드카드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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