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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짓고, 다시 고친다는 것
이름을 짓고, 다시 고친다는 것
  • 기고
  • 승인 2020.06.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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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강원도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던 때의 일이다. 우리 분대에 분대장으로 일반하사가 전입을 왔다. 그날 점호 시간에 포대장이 순시를 하다가 물었다. “이름이 뭐야?” “예 하사 노재산입니다.” “재산이 노라고?” 포대장의 이 말에 사람들은 다 웃었고 그 하사는 군대 생활 내내 ‘재산이 노’라고 불렸다.

성과 이름이 연결되어 일어난 현상인데, 그만큼 이름이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으로 옛 사람들의 글에도 이름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국필이 어느 날 퇴계 이황선생에게 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일찍이 국필(國弼)이란 제 이름이 천하기도 하고 뜻도 없는 이름이라 하시면서 늘 고치고자 하였는데, 이제 아버지의 그 뜻을 따라서 아버지의 영전靈前에 고하고 고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국필은 본래부터 성질이 경박하여 깊고 무거운 구석이 없으니, 청하건대 그윽한 뜻을 이름자 가운데 넣으면 고명사의(顧名思義·이름을 보고 뜻을 생각하는)의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국필의 말을 들은 퇴계 선생이 말했다. “비록 아버지께서 고치고자 하는 뜻은 있었다고 하지만 이미 고치지 않았으니, 지금도 고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현재의 정한 이름이 뜻이 없다거나 천하지 않은 데에야 말할 수 있는가. 또 그대가 성질이 경박해서 깊고 무거운 곳이 없는 결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마땅히 마음을 두고 힘을 써서 허물을 고쳐 착한 데로 옮겨가면 족한데, 어찌 이름을 고친 다음에야 그 결점이 고쳐질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가령 이름을 고치고도 그 허물을 고치지 못한다면, 또 그 허물을 이름이 잘못된데 돌리어, 또 이름을 고쳐서 허물을 고치려고 들 것인가. 이게 또한 그대의 결점이자 병통이다.”

퇴계의 제자인 이덕홍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퇴계 선생이 이덕홍을 부른 뒤 물었다. “너는 너의 이름의 뜻을 알고 있느냐?” 이덕홍이 말했다. “저는 모릅니다.” 퇴계가 말했다. “덕(德)자는 행(行)을 따르고 곧음(直)을 따르고 마음(心)을 따를 것이니, 곧 ‘곧은 마음을 행 한다’는 말이다. 옛 사람은 이름을 지을 때에, 반드시 그 사람에게 관계를 주는 것이다. 너도 이름을 본받아라.”

오래 전 장수 팔공산에 있는 어느 절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아침 공양을 한 뒤에 주지 스님이 차를 따르며 한자로 내 이름을 물었다.

매울신(辛) 바를정(正) 한일(一)이라고 써주자 한참 있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사님 그 이름 짊어지고 사느라 힘들었겠습니다.” 주지스님의 말을 듣고 새삼스럽게 내 이름을 뒤늦게야 파자해 보았다. 그런데 내 이름에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이나 명예에 관한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이름을 열여섯 나이에 내가 스스로 바꾸었기에 누구를 탓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에야 내가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 놓았고, 그때부터 입에 풀칠은 하게 되었다. ‘버림으로써 얻는다.’ 그 말은 만고의 진리다.

이름에 관해 논한 퇴계 선생의 말은 지극히 원론적인 말이고, 이름 때문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래서 범죄의 소지가 있다고 개명을 안 해 주던 정부에서도 꼭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이라면 그 원인을 따지지 않고 개명을 해주는 시대가 이 시대이다.

자기에게 마땅치 않다고 여기는 이름만 바꾸고서도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기분이 새롭고 여태까지 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매 순간이 새로운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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