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2-05 06:12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문화마주보기]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쁨 - 이명훈

옛날에는 공연을 어디에서 했을까? 주로 마당 판에서 이루어졌다. 공연장이 생기기 전에는 포장을 치고 관람료를 받고 공연을 했다. 열린 판에서 닫힌 공간으로의 과정이 포장걸립이 아니었을까 싶다. 판을 벌이면 언제 어디서든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실내 공연장에서 화려한 조명과 음향 아래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규모, 중규모, 소규모 공연장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났으며 자꾸만 자꾸만 안으로 들어가서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워졌다. 전라북도에는 전주시에 크고 작은 공연장이 집중되어 있다. 시,군 단위에는 문화예술회관, 문화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지역민의 문화예술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건립된 곳이 많이 있다. 그러한 공간들은 현재 어떠한 역할들을 하고 있을까? 애초에 전용극장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연장이라기보다는 문화 행사를 하는 곳이 대부분일 것이다.내가 사는 인구 6만의 작은 지역에 도시 공연장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은 훌륭한 문화의 전당이 개관을 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공연장을 짓겠다고 나섰을 때 6만의 인구가 사는 작은 지역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큰 공연장이 왜 필요하냐라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군민들의 우려반, 기대반으로 지어진 문화의 전당을 향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모두가 관심이 쏠린 가운데 개관식은 화려하게 치러졌으며 개관 공연 이후 1년 동안 문화의 전당은 공연과 영화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복합공연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창극, 음악회, 연극, 퓨전국악, 농악, 뮤지컬, 무용등의 다양한 공연물들이 올려 졌고 625석이 매진되는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그동안의 공연을 분석해 보면 창극 및 악극, 연극, 국악에 대한 호응도가 높이 나타났다. 그만큼 군민들의 문화를 대하는 관심과 수준이 높아짐으로 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적은 관람료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공연 티켓을 구입하여 공연을 관람하는 부분에 익숙하지 않았던 군민들이 표를 예매하기위해 줄을 서는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도시에서는 공연물이 넘쳐나기 때문에 공연마다 좌석을 어느 정도 채우고 공연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라 한다.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적거나 풍요속에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고 보여지는데 오히려 지역에서는 적당한 공급과 수요를 통해 공급하는자나 수요하는자가 서로 행복해졌다. 문화의 전당을 운영하는 행정에서는 군민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어서 즐거울 것이고 군민들은 영화나 공연을 보기 위해서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매주 다양한 장르로 공연되는 공연물을 보고 취향대로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문화의 전당 개관 1년을 되돌아보면서 더 많은 고민들을 하겠지만 바라옵건데 군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다양하고 수준높은 공연들을 볼 수 있는 혜택을 주기위해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통해 고민하고 발로 뛰어야 할 것이다. 군민들과 학생들을 위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만들고 지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자원과 재원들을 이용해 그 지역만의 색깔을 지닌 공연 프로그램도 개발하여 지역의 문화를 알려내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전라북도가 문화중심지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문화를 대표하고 향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잘 운영되어 서로가 행복한 문화적 삶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 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11.10 23:02

[문화마주보기] 길을 걷는 이유 - 전성환

나는 자동차가 없다. 거창하게 환경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다보니 굳이 차를 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의 하루는 천변을 걸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호사스러운 출근길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동차 운전대를 잡는 사람과, 강물결과 바람결을 느끼며 시작하는 사람의 하루는 결코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걷는다는 아주 단순한 행동 속에는 취미를 넘어 치유의 기능까지도 들어있다. 고깃비늘처럼 윤나던 갈대꽃이 어느 순간 깃털처럼 활짝 펴서 바람에 흩날린다. 철철이 피어나는 꽃과 풀을 보는 재미, 물이 줄거나 불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 바람결에 실려 오는 계절의 냄새를 맡는 재미 이런 재미를 어찌 자동차 운전하는 것에 비길 수 있으랴. 자동차로 갈라치면 10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시나브로 걷다 보면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이 아침시간 때문에 나의 하루에 윤기가 생긴다. 하여 나는 자연스럽게 '걷기 예찬론자'가 되고 말았다.그런데 요즘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전라북도 곳곳에 '걷는 길'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지난 10월 17일에는 변산 마실길이 개통됐다. 이미 오래 전부터 '걷기'에 선견지명이 있었던 신정일 선생을 필두로 '우리땅걷기모임' 회원들이 제안하고 다듬어놓은 길이다. 바다를 따라 걷는 변산 마실길은 제주도 올레길 못지않은 빼어난 길이라고 한다. 아직 걸어보진 못했지만 벌써부터 걷고 싶어 다리가 근질거린다.지난 31일에는 전라북도 4대 종교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순례길'이 열렸다. 순례길은 전주, 완주, 익산 지역에 있는 4대 종교의 성지를 연결하는 길이다. 종교순례길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위엄을 요구하는 길이 아니다. 중간 중간에 가람 이병기 생가, 강암 송성용 기념관, 만경강 갈대밭, 송광사 돌담길, 고산천 오솔길 등이 포함돼 있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길이다. 4대 종교를 아우를 수 있는 곳은 전라북도가 유일하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잘 살린다면 산티아고 순례길 부럽지 않은 독보적인 순례길이 만들어질 것이다.전라북도는 산업화에 뒤처져있던 탓에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길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군산에는 '구불길'이 있고, 진안에는 '마실길'이 있고, 고창에는 '질마재길'이 있다. 전라북도는 이 모든 길을 이어서 '예향천리 둘레길'을 조성할 계획이다.전라북도만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자동화의 편리함, 유비쿼터스의 첨단기술을 선망하던 사람들이 이제 비로소 걷기의 소중함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순간의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길을 걸어보지 않는다면 그 길은 결코 자신의 길이 되지 않는다. '길 위의 풍경'의 저자 김병용의 말처럼 "몸을 부리는 것만큼 자신의 상태 앞에 정직한 일도 없다. 마음이 먼저 달려갈 수도 있지만, 몸이 가지 않는 길은 존재하더라도 아직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단풍이 지고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다. 길을 떠나기 좋은 때이다. 길 떠나는 이에게는 세 가지 길잡이가 있다고 한다. 풍문, 충동, 길 그 자체.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기 위해 길을 떠나는 이도 있고, 문득 떠나고 싶은 아름다운 충동에 못 이겨 길을 떠나는 이도 있고, 그저 길이 좋아서 탐구하듯 길을 떠나는 이도 있다. 이 가을, 당신은 무엇 때문에 길을 떠나겠는가?/전성환(전북도 홍보기획과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11.03 23:02

[문화마주보기] '수정의 밤'과 눈물의 팔레스타인 - 김윤태

지금부터 71년 전 1938년 11월 9일 독일 저녁의 밤은 온통 수정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정 빛에 반사된 독일인의 광적인 모습은 전 세계로 반사되어 갔다. 악몽의 그날 밤을 크리스탈 나하트 즉 수정의 밤이라 부른다. 거리 곳곳에 깨어진 유대인 상점의 유리가 사방으로 빛을 반사하는 모습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수정의 밤은 17세 유대인 청년 헤르헬 그린슈판이 독일에서 강제로 추방된 누이의 편지를 받고 파리의 독일대사관을 찾아가 젊은 외교관 라트를 저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독일 전역에서 유태인을 향해 공격으로 시작 됐다.이 사건으로 91명의 유태인이 목숨을 잃고 1만여 상점이 약탈당했으며 유태인의 공회당인 193개의 시나고개가 불에 탔고 3만명의 유태인 남자가 강제 이주되어 수용소로 보내졌다. 심지어는 유태인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을 나무라는 독일여성을 폭행하는 일도 발생 하였다. 수정의 밤을 시작으로 10만명이 넘는 유태인이 독일에서 쫓겨났고 나치는 유태인 600만명 이상을 학살했다.독일 선정상 요세프 괴벨스는 SS보안방첩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두고 "독일 대중의 건강한 본능이 표현된 것"이라고 옹호 하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 세계를 분노 하게한 이 사건을 기억 저편에서 불러낸 것은 이스라엘 샤론에 의해서다. 1982 학살사건과 관련된 당시 국방부장관 샤론은 "이스라엘은 유태인 나치라고 불려도 좋다, 죽은 성자보다는 낫다"며 세계를 분노케 하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하는 광적인 모습은 어쩌면 샤론의 말처럼 유태인 나치의 모습일 수도 있다.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세워진 1948년 5월 14일을 팔레스타인들은 대재양이라는 뜻인 "나크바"라고 말한다. 170만 팔레스타인 중에 75만명이 집과 땅을 빼앗긴 날이다. 바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야빌리아 난민촌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이 날 쫓겨난 팔레스타인들과 이들의 후손이다.최근에 연이어 이와 관련된 책이 출간되었다. 영국의 저명한 유태계 학자인 마틴 길버트가 쓰고 김세준이 옮긴 "크리스탈 나흐트"와 김재명이 쓴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이다. 크리스탈나흐트는 유태인이 경험한 비인간적인 충격적 사건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은 수정의 밤을 경험한 유태인이 오늘행하는 광적인 모습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하여 생각 하게 된다.편협된 소수에 의해 왜곡되어 다수가 행하게 되는 인류에 대한 폭력. 이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독일은 신나치주의가 점차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가장 큰 걸림돌은 건강한 사회가 갖고 있는 가치를 왜곡 시키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김윤태(우석대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9.10.27 23:02

[문화마주보기] 일본의 상업사회와 그 전통 - 임경택

한일 양국의 사회를 비교해 볼 때 다른 양상을 보여 주는 것 중의 하나로 상업이나 상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들 수 있다. 일본의 상업사회는 동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사회와 비교하더라도 매우 특이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며, 그것은 일본의 근대화나 경제발전의 특징을 밝혀내는 데 큰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상업이 경제의 틀 안에서 파악되기 이전에는 어디까지나 인간관계 그 자체였고, 상품의 품질보다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 그리고 그 '이에(家)'에 대한 신용에 의해 질서가 지탱되어 왔다.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한복판에서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지방의 소도시에서는 여전히 과거로부터 맺어 온 이러한 이에끼리의 단골관계는 대대로 계승되어 왔고, 세대가 바뀌어도 단골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 왔다. 필자의 옆집에 살던 할머니는 물품마다 가는 가게가 정해져 있었던 것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또, 내가 냉장고를 사려고 가전제품가게를 하던 친구에게 부탁하였더니, 우리 집은 비싸니까 강 건너의 마트에서 구입하라고 일러주기에 의아해 했던 적도 있다.이러한 양상의 뒷배경을 살펴보니 무엇보다도 가게가 고객의 상담을 기다렸다가 물건을 알맞게 골라서 갖춘 뒤 거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었다. 즉 고객이 하나하나 자세하게 주문을 하지 않더라도 여태까지의 거래를 살펴본 뒤 적절한 상품을 제시했고, 고객은 가게를 믿고 안심하여 그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신뢰관계는 소매상과 도매상의 관계에서도 발견되며, 대대로 이어지는 이러한 신뢰관계가 기초가 되어 단골이 형성되는 것이다. 개인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거나 속마음을 탐색한다든지 흥정을 한다든지 하여 합의에 이르는 거래는 되도록 회피해 왔던 것이다.일본의 전통적인 거래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양상은 이른바 시장교환과는 거리가 멀고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개인의 주체적인 의사와 선택, 흥정과 단기적 합리성 등이 상정되지 않는 것이다. 단골관계로 엮어진 이러한 상황에서는 경제논리의 합리성보다도 사회의 실태를 존중하고, 지역사회 내부의 인간관계가 집적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한편 유동적이고 익명성이 강한 시장에서는 상품의 경쟁력이 상품에 관한 일정한 객관적인 평가기준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끊임없는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경험적인 전략으로서 상품에 독자적인 가치를 갖추게 하여 안정된 고객을 확보하려 한다. 특히 가업으로 이어 온 경우에는 같은 종류의 상품이라도 독자적인 역사문화적 부가가치에 의해 상품성을 고양시키려 한다. 차별화를 통해 객관적 비교를 무효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고요타츠(御用達)라는 것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상업전략이 우리의 재래시장 문제에 던질 수 있는 시사점은 없는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임경택(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9.10.20 23:02

[문화마주보기] 무형문화유산의 세계적 가치 - 이명훈

지난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4차 무형문화유산정부간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남사당놀이, 강강술래,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그리하여 한국은 2001년에 선정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2003년에 선정된 판소리, 2005년에 선정된 강릉단오제와 함께 8종목의 세계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무형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참으로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무형문화유산정부간위원회 위원국(24개국) 및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심사 보조국(6개국)으로 활동하는 등 이미 무형문화유산분야에서는 상당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세계무형문화유산 추가 등재를 통해 이 분야에서 한국의 지도력이 한층 더 증대될 것으로 보이며, 한국의 선진 무형문화유산 제도를 배우려는 나라들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우리나라의 무형의 유산은 1963년부터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지원을 받아왔으며 이후 각 지방 자치단체별로도 수많은 유산들이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원을 받아왔다. 하루가 다르게 많은 무형의 유산을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수천년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져 내려왔던 무형의 문화유산이 정책적으로 보호받아 대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한 우리나라의 노력이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은 셈이 된 것이다. 유형의 문화유산과 달리 무형의 유산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따라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농업이 근간을 이루었던 시대에 노동과 함께 했던 노동요, 농악, 민속놀이등 무형문화의 보고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지만 다행이도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무형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많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 울려 퍼졌을 노동요나 농악, 민속놀이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본다.세계무형문화유산 제도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아래 유산이 가지는 탁월한 가치에 주목하기보다는 다음 세대를 위해 인류 공동의 무형문화유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국가와 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며, 정치적 쟁점화를 지양하고 있다.문화재청은 '앞으로 해당 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해나가는 한편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와 관련하여 범사회적 인식과 이해 도모 및 폭넓은 참여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우리 고유의 무형문화유산임에도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산을 조사 연구하여 목록화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의 노력에 발맞추어 지방 자치단체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수 천년 사람과 사람을 통해 이어져 왔던 우리의 무형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을 계기로 더욱더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막중한 임무가 되었다. 행복한 아우성이 절로 난다./이명훈(고창 농악보존회 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10.13 23:02

[문화마주보기] 막걸리 예찬 - 전성환

나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남들이 알아주는 애주가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먼저 술을 권할 만큼 주량이 센 것도 아니지만, 막걸리만큼은 술이 아니라 '먹거리'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까닭에 누가 막걸리 한잔 마시자 하면 왈칵 달려들고 싶은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술을 벗해 인생을 살았던 시인 천상병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막걸리에 대해 이런 시를 썼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밥이나 마찬가지다/밥일 뿐 아니라/즐거움을 더해주는/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천상병 '막걸리'중)밥이자 즐거움이자 신의 은총이기까지 한 막걸리. 시인처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니라 나는 그저 추억이 좋아 막걸리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수 십 년 간 전주를 떠나 살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것이 막걸리였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에 가발까지 불사하고 막걸리 집을 쫓아다녔던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조우였다.이 막걸리가 요새 뜨고 있다고 한다. 이미 전주에서는 3-4년 전부터 막걸리 바람이 불었는데, 이제서야 서울과 일본에 막걸리 소식이 닿은 모양이다. 올 4월 도쿄에서 열린 음식박람회에서 최고 인기상품이 막걸리였다고 한다. 서울 대학가에서도 막걸리의 인기가 급상승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막걸리와 에스프레소 커피를 섞은 '에스프레소 막걸리'까지 등장했다고 한다.그러나 역시 막걸리 맛의 진수는 '탁주'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요즘엔 더러 '맑은 술'도 권하는 모양인데, 맑은 술이면 어디 그게 청주이지 탁주인가? 막걸리는 역시 '막 거른' 술이라야 제 맛이다. 그러나 막 걸렀다고 해서 다 똑같은 맛은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발효를 시켜 빨리 생산한 막걸리는 뱃속에 가스가 차고 트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막걸리의 80%는 물이기 때문에 물이 가장 중요하고, 발효기술이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한다.예부터 물맛이 좋은 전주는 막걸리 맛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전통이 있다. 어디 전주뿐이랴. 물 좋은 장수 번암, 산서, 임실 관촌도 막걸리의 본고장으로 이름깨나 날리는 곳이다. 통칭 전주막걸리는 그 화려한 '안주발'로 인해 전국적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흥에 취하고, 안주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값에 취한다'는 말이 술꾼들 사이에 회자될 정도다. 이에 발맞춰 전주시에서도 한옥마을에 전통주막을 조성한다고 하니 은근히 기대가 된다. 이제는 막걸리집 앞에서 "이리 오너라!" 호령하면서 주모를 부를 날도 곧 오게 될 것 같다.이미 전주막걸리가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지난 9월 25일, 전주막걸리의 해외수출이 시작된 것이다. 발효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유통기한을 열 달로 늘렸다고 한다. 특히나 반가운 것은 전라북도 농가에서 재배되는 우리밀 20%, 우리쌀 80%로 막걸리를 빚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농가에도 도움 되고 좋은 품질로 승부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해법이 아니겠는가.이번 추석 민심의 핵심은 '쌀값 하락'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쌀 소비가 최대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쌀막걸리가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청와대에서도 막걸리로 건배를 하는 마당인데, 지금 막걸리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대체 언제 '막걸리 르네상스'가 일어날 것인가. 곤두박질치는 쌀값 때문에 애써 키운 벼를 갈아엎는 지금, 쌀막걸리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 본다./전성환(전북도 홍보기획과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10.06 23:02

[문화마주보기] 여왕의 시대 - 이윤애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시청률이 40%가 넘는 드라마는 봐줘야 한다. 왜? 안보면 대화가 안 되니까. 물론 논란이 많았던 화랑세기를 근간으로 하고 픽션임을 전제로 하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이냐 왜곡이냐 논쟁의 중심에 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선 드라마 전개가 속도감 있고, 각각의 캐릭터들에 흠뻑 빠져들 수 있어 재밌고, 덕만의 탁월한 지혜와 비범한 담력은 물론 명철한 수단까지 겸비된 정치력에 감탄한다. 그렇다. 드라마는 재밌어야 한다.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재미가 아니라 두뇌를 자극하는 재미여야 함은 필수적이다. 화백회의에서는 풍월주에 대한 인준청문회도 열리고, 드라마 속의 캐릭터와 정치인을 등치시켜 보는 등 현실정치에서 지도자의 덕목이나 정치상황과도 비교할 수 있어 그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 제1야당의 워크샵에서도 미실국회와 덕만국회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정치의 지향점을 드라마에서 찾는가 보다.가끔 사람들은 역사적 착각을 주문받기도 한다. 여왕의 시대에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권한이 컸으며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었을 거라고 기대치를 높이면서 말이다.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에서 오늘날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세계사 어디를 봐도 여왕의 시대에 전체 여성의 권한과 역할이 확대되고 여성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가부장적 권력놀음에 여자가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당위만 존재했을 뿐이다.그러나 여왕의 정치력은 탁월했다. 당대의 뛰어난 수학자이고 화학자, 철학자였던 클레오파트라는 호시탐탐 노리는 로마제국 정치꾼들에 맞서 탁월한 재능과 정치전략으로 이집트를 안전하게 통치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고대 중국봉건사회에서 측천무후는 수렴청정의 준제왕 자리가 아니라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로 등극한 인물로서 합리적이고 개혁적 치세(治世)로 강한 정치력을 과시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의 어머니로 칭송될 정도로 중세유럽의 영토분쟁 속에서 전쟁을 최소화 시키며 사회전반의 부흥기를 일궈낸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제였다. 분명 여왕들은 역사 속 대다수의 남성 황제들보다 합리적인 정치력을 발휘했으며, 자국의 사회적 진보를 가져왔고, 국가안정이나 경제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치와 향락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여왕을 기록하고 평가할 때 그들의 통치력보다는 클레오파트라의 콧대, 측천무후의 남성편력 등 왜곡된 여성성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사관들에 불편할 따름이다.진정한 정치력을 갖추고 젠더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여왕을 갈망하는 우리들에게 대한민국 여성부장관이 새로이 내정되었다. 여성운동에 관여한 적도 없고, 여성관련 학문업적도 없어 여성부장관으로서 전문성이 결여되어 부적절하다는 여성단체의 논평에, 청와대 관계자는 '한식조리의 세계화에 앞장섰고, 가정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응수했다. 식생활분야 전문가이기 때문에 여성부장관에 적임자라는 친절한 설명이다. 2001년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신설된 여성부와 여성부장관의 역할에 대해 2009년 우리는 다시 학습해야 할 것 같다./이윤애(전북여연 공동대표)

  • 오피니언
  • 기타
  • 2009.09.30 23:02

[문화마주보기] 입학사정관제 정착하려면 - 김윤태

입학사정관제의 기원은 미국대학의 대입전형에서 찾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상위권 대학에 유대인 학생의 입학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버드 대학의 유태인의 입학비율은 1900년에 7%에서 1922년에는 21.5%로 증가했고 콜롬비아 대학은 1918년에 40%에 이르렀다. 따라서 유대인 학생 비율을 낮출 수 있는 입학제도의 개선이 절실했다. 그래서 미국 대학 당국은 학업성적 외에 지원자의 인성, 운동실력, 성향, 리더십 등을 고려하여 학생들을 뽑겠다며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성적의 빛에 가려있는 지원자의 창조적인 면을 발굴하여 키우겠다는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아주 좋다. 하지만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도의 도입은 유태인 학생을 배제하고자 하는 은폐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 결과 하버드 대학의 유태인 학생 입학비율은 10%대로 낮아지게 된다.이명박대통령이 지난 7월 27일 라디오 연설에서 임기 말(2012년)쯤 가면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100% 가까이 학생을 뽑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인 이후 입학사정관제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대통령은 또 충북 괴산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교육 받지 않고 학교 교육만 받은 사람이 대학가기 쉬운 시대가 열리며, 논술도 시험도 없이 면담만으로 대학에 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입학사정관제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한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선발방법이라는 미명하에 시행되는 한국의 입학사정이 엘리트 운동선수, 연예인, 동문의 자제, 그리고 기여입학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또 대학의 서열화와 빈익빈 부익부, 학벌의 세습으로 이루어지는 은폐된 목적은 없는지 의심스럽다.포털사이트에서 '입학사정관'을 검색해보라! 입학사정관제도 관련 컨설팅을 자처하는 사교육기관이 이미 넘쳐나고, 이른바 스팩(자격증이나 경시대회 수상 등 눈에 띄는 활동 성과물)쌓기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TOEFL, TOEIC, TEPS 등 각종 영어 능력 시험에 각종 경시대회, 봉사 체험이 지옥의 입시경쟁을 낳고 있다. 현재의 입학사정관제도가 사교육열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현상이다.공교육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다양한 입학사정 문제점은 이미 서울대 특목고 입학자 분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서울대 특목고생 비율은 1998학년도 24.1%까지 증가하다가 1999학년도 13.9%로 뚝 떨어졌다. 그 이유는 동일계열 비교내신제가 폐지된 결과이다. 하지만 서울대가 2005학년도부터 특기자 전형을 도입하자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특목고 출신이 대거 합격해 신입생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9학년도에는 다시 24.3%로 크게 증가했다. 서울대 입학생 4명 중 1명이 특목고 출신이 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도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전망이다. 결국 입학사정관제가 강조하는 다양한 전형방법에 특목고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국의 입학사정관제도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 도입 때처럼 은폐된 목적이 없어야 한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한국에 올바르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입학사정 방법을 통하여 오히려 일부 특수계층 자녀의 입학비율을 낮추고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들로 입학사정대상을 제한하여 이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김윤태(우석대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9.09.29 23:02

[문화마주보기] 일본인의 가업 - 임경택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약간의 칭찬조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가업(家業)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동경대학을 졸업한 수재가 고급관료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대를 이어 국수집을 경영한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마치 일본인의 근면성과 성실을 상징하는 것처럼 회자되곤 하지만, 실제로 사회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이러한 가업의 연원은 고대의 가직(家職)에까지 거슬러 갈 수도 있지만, 가업이 제도로 정착하게 되는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개혁부터이다. 도요토미는 집권 후 전국에 걸쳐 병농분리정책(刀狩令)을 실시하여, 일본 열도의 주민들을 직업별로 거주하게 하였다. 그리고 거주단위를 무라(村)와 초(町)로 나누고 자유롭게 상호이동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때부터 일본인의 각 이에(家)는 고유한 직업을 갖게 되었고, 신분과 주거와 직업이 일치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며, 그것이 결국 가업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도요토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이어받아, 메이지 유신이 성립되는 시기까지 3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른바 가업이 성립되었다. 일본의 이에가 혈연집단이라기보다는 경영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가업은 당연히 그 집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고, 정체성의 근간이 되었다. 즉, 혈연적 계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와는 달리, 일본의 이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적인 성격을 띠고, 그것이 유지되어야만 그 안의 구성원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에의 유지를 보증하는 것이, 가업가산가옥의 온존과 유지이다. 그 이에의 가장은 자신의 대에 그 이에를 잘 유지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최대의 사명이자 임무이다. 실제로 내가 현지조사 중에 만난 한 가게의 주인에게 가업이란 무엇인가 물어보았을 때, 그는 '내 생명'이라고 대답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이에인 것이다.습명제(襲名制)라는 제도에서도 이러한 관념은 뚜렷이 나타나는데, 습명제란 초대 당주부터 동일한 이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 중 유명한 심수관이란 분이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한 분도 심수관인 것이다. 후자는 14대 심수관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에의 유지가 최대의 목표이고, 그 이에를 현세에서 담당하는 가장은 그것을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의 임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에의 유지가 가업과 가산 및 가옥의 유지로 상징되는 만큼, 이에를 존속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차세대의 가장으로 선정하고, 뒤를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혈연관계가 중요하게 개입될 소지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데릴사위로만 이어가는 집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이와 같이, 문화는 역사적 시간 안에서 인간이 만들고 학습해 오는 것이지, 결코 본성적으로 애초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타문화를 마주보는 것도 가능해 질 것이다./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9.09.22 23:02

[문화마주보기] 도심속의 축제 - 이명훈

지난 9월 6일 서울에 있는 동덕여대에서 고창굿 한마당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서울 하늘아래에서 풍물굿을 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든 현실에서 그날 열린 굿판은 그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신명의 도가니로 끌어들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매년 9월 초순이 되면 세대와 지역을 아울러 하나 되는 고창굿 한마당이 열리는데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다.처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성황리에 굿판이 벌어지는 데는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 달 전부터 정성스럽게 소원지를 쓰고 만장을 쓰고 각자 준비한 굿판을 위해 모임을 갖고 연습을 하고 서로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들은 더욱 돈독해 진다. 사는 곳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은 굿이었다. 굿은 그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즐겁게 놀아지게 하는 힘이 있다. 굿은 각 지역마다 마을마다 이루어졌던 작은 축제였다. 오늘날 마을에서 작은 축제들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굿치는 마을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산제를 올리거나 줄을 비벼 줄다리기를 하거나 백중날 막걸리 한 동이씩 내놓고 노는 날에도 항상 굿 소리와 함께 했었는데 그 굿 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마을마다 성행했던 굿 축제가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작은 굿 축제가 살아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굿 축제를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장 큰 힘은 굿을 치는 주체와 굿을 향유하는 주체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고창굿 한마당을 예로 들자면 고창군에서는 행정적으로 예산을 뒷받침 해주고 고창농악보존회원들은 한마당의 문을 여는 문굿을 준비하고 고창농악 전수관 에서는 행사장 무대 셋팅과 음식을 준비하고 그리고 고창굿 한마당을 즐기기 위해서 고창군 14개 읍,면에서 농악 동호인들이 버스를 여러 대 준비하여 서울로 출발한다. 서울에서는 고창농악 대학생 전수생들과 사회풍물패가 각각 젊은 굿판을 준비하고 고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맞이굿을 쳐준다. 한마당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공연도 여러 풍물 명인들을 초대하여 멋진 공연을 준비한다. 재경 고창인들은 고향의 문화 향수를 느끼기 위해 매해 빠지지 않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굿전도 내고 하루 종일 고창농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고창인 으로서 고창의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날이 된다. 또한 고창을 모르는 외부사람들도 고창농악을 통해 고창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종일 고창농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작은 정성을 모으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서 작은 신명의 축제의 장에 몰입하게 된다. 그 옛날처럼 굿으로 유명한 어느 동네에서 굿 축제가 열리면 집집마다 쌀이 한 가마씩 없어질 정도로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드는 축제는 아니지만 도심에서 벌어지는 두 달 동안 준비한 굿판은 그렇게 대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내년의 고창굿 한마당을 기약하며 고창으로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내년에는 서울 하늘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작은 굿 축제가 열릴지 미지수지만 매해 한마당에 다시 찾고자 하는 마음들은 해가 갈수록 늘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기대감 때문에 굿치는 것이 즐겁고 준비과정의 힘듦도 잊게 만든다. 전국 어느 도심에서든지 지역에서든지 굿 소리와 함께 하나가 되는 작은 축제들이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그 옛날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내고 마을 굿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줬던 마을의 작은 굿 축제처럼./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09.15 23:02

[문화마주보기] 친절의 힘 - 전성환

"여보세요! 거기 아무개 식당이죠? 점심 예약 좀 하려고 하는데요.""그냥 오시면 돼요. (뚝!)"똑같은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나는 전주 음식을 좋아하고 전주의 문화를 사랑하는 편이지만, 이런 식의 불친절한 태도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다. 한번씩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집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 해도 다시 가기가 싫어진다. 내가 새삼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음식점의 불친절함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절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태도가 너무나 안타까워서다. 왜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더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우지 못하는가? 조금만 친절하면 되는데.최근 스티븐 M. R.코비의 〈신뢰의 속도〉라는 책을 흥미 있게 읽었다. 신뢰가 얼마나 강력한 자산인지를 밝혀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다수가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신뢰는 실증이 어려운 관념적이 것이 아니며, 실행 가능한 유형의 자산이다."라고 말한다. 신뢰가 있으면 강력한 정부, 성공하는 기업, 번영하는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를 테면 기업의 회계부정, 테러리스트의 위협, 조직 내 관계의 단절은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신뢰만 있다면 이러한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그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나는 '신뢰'라는 단어 자리에 '친절'이라는 말을 슬쩍 대입해 본다. "친절은 글로벌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역량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친절의 속도만큼 빠른 것은 없다." 신뢰가 결과적 가치라면, 친절은 신뢰를 불러오는 과정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친절하면 신뢰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친절은 이자까지 붙어 되돌아온다〉의 저자 에드 호렐은 "친절은 우리 몸속의 세라토닌 호르몬을 분비시켜 만족과 감동을 유발시키고 고객을 끌어당긴다."고 말한다. 때로는 경제적인 손해까지도 감수할 만큼 친절의 힘은 강력하다. 수수료는 저렴하지만 기계가 업무를 보는 은행과, 수수료는 좀 비싸지만 친절한 직원이 있는 은행 중 어느 곳을 선택하는가를 실험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25년 전 도쿄 디즈니랜드가 개장했을 때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쿄 디즈니랜드는 미국 본사가 인정한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것은 친절의 힘이다. 디즈니랜드의 친절 매뉴얼 북은 무려 300권을 넘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친절하지 않음으로 해서 지출해야 할 비용과 친절함으로 해서 얻게 될 경제적 효과를.과연 전라북도는 '친절'이라는 자산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가?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고 맛있는 먹을거리가 있고 독보적인 스토리가 있다 해도, '친절'이라는 무형의 인프라가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예향,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맛의 고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전성환(전북도 홍보과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09.08 23:02

[문화마주보기] 사람과 물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차이 - 임경택

한국사회와 비교할 때, 일본적인 특질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주위의 물건에 대한 관심이나 물건에 구애받는 모습일 것이다. 사람과 물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달라서, 놀라고 당혹스러웠던 적이 매우 많았다.수없이 많은 예가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매년 2월 8일은 일본에서 바늘을 공양하는 날이다. 이 날에는 평소에 집에서 사용하다 버리게 된 바늘을 죄다 절에 가지고 온다. 본당 앞에는 두부가 놓여 있고, 그 두부에 가지고 온 바늘을 꽂는다. 스님의 염불이 끝나면 그 옆에 설치된 바늘무덤(針塚)에 넣고 공양을 한다. 일본 전국을 다니다 보면 이러한 종류의 물건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내가 필드워크를 했던 사와라 지역은 과거에 잠사업이 발달하였었는데, 시내 한 곳에 누에공양탑이 있다. 고래를 많이 잡았던 지역에는 고래공양탑, 새우요리 전문점의 식당 뒤뜰에는 새우공양탑, 부채공양탑 등등, 오랫동안 쓰던 물건을 정성스레 공양하는 풍습이 있는데, 과연 이것은 무슨 마음에서 행하는 것일까?장례식 이틀째에 고인의 유품을 나눠가진다든지, 자신의 탯줄이나 배냇머리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우스갯소리로 일본인이 3박 4일의 신혼여행을 간다면, 그 중 이틀은 오로지 선물을 사는 데 소비한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선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일본TV에서 본 장면인데, 자기네 집과 가장 인연이 깊거나 의미있는 물건을 하나 들고 나오라고 하니, 어떤 할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기 집 옆에 떨어진 포탄의 탄피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아연해진 적도 있었다.이처럼 물건이 차지하는 존재감과 현실감이 우리와 다른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애니미즘적인 신앙체계를 지닌 신도(神道)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신도를 근저로 하는 일본인의 민간신앙에서는 자연계의 수목, 암석, 동물에 대해서도 영적인 주체를 상정하고, 물건에 깃들인 이러한 주체의 의사나 영역을 범해서는 안된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한 관념은 용어에서도 나타나는데, 일본의 토착개념인 '모노'라는 말은 물건(物)과 사람(者) 그리고 영적인 주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괄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연속적인 관계를 가졌음을 인정하고 있다. 즉 절대적인 신이나 권위가 결여된 일본문화에서는 물건이나 장소의 상호성 안에 인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이와 같이, 자기 주위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에 대한 관심은 일본인의 즉물적인 사고나 행동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것은 일본인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경험의 중시나 실천지향을 초래했다고 생각된다. 일본인의 장인정신을 이러한 관념과 결부시켜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한편 구체적인 물건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일본인에게는 추상적인 논리나 보편적인 가치 혹은 이념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결국 일본인들에게 진리란 '눈앞의 현실'이며 그것을 보여주는 물건에 대한 감성을 강조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다는 것이다./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9.08.25 23:02

[문화마주보기] 지역문화가 살아나는 참 쉬운 방법 - 이명훈

'아리-씨구나----앗. 어 어허어--야-아----암. 모 오호-----홋. 에 에헤--'지난 8월 9일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논에서 울려 퍼졌던 풍장소리 후렴이다. 기계화 이전에 농사짓던 때였다면 이맘때쯤 각 마을마다 만두레 풍장굿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전라도는 넓은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들노래가 많이 발달되어 왔다. 전라도 서부평야지대는 선후창 방식의 들노래, 동부산간지역은 교환창 방식의 민요가 주로 성행했다.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항상 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일노래가 존재했었다. 전라북도에서 잘 알려진 들노래로는 1972년과 200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통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익산삼기목발노래와 순창금과들노래이다. 한 지역에서도 마을마다 소리가 다르게 불리워질만큼 풍성했던 전라도 들노래는 문화재 지정으로 인해 위의 두 지역 들노래가 대표격이 되었다. 그러나 익산삼기목발노래는 2005년 보유자 박갑근 선생의 타계로 인해 문화재 지정이 말소가 됨으로써 행정적 지원이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소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서 후대에 까지 전해질 수 있는 좋은 전범이 되고 있다고 본다. 현장에서 불리워지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소리를 하는 어르신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 풍성했던 소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는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의 현 주소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동안 민속학자들에 의해 민요는 많이 조사되어서 자료로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그 민요들이 영원히 자료로서만 남아있을 것 같은 우려는 나만의 생각일까? 사람에 의해 소리가 불리워지고 사람에 의해서 전해져왔던 민요가 현재에도 살고 후대에까지 사람들에 의해 불리워질려면 현재가 중요하다. 학계에서든 행정에서는 아니면 개인적으로든 각 지역의 민요를 찾아내고 현재 민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아계실 때 함께 불리워져야 한다. 이번에 고창에서의 풍장소리가 그러했다. 성송면 향산리에 살고 있는 78세 홍순삼 선생이 선창을 하고 같은 마을사람들을 포함하여 젊은 사람들이 함께 받는소리를 했는데 선창자가 3명이었다. 78세 어르신과 30대 젊은이 둘이였으며 서로 노래 전장을 보내면서 주고받는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무대에서나 경연장에서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던 들노래를 실제로 현장에서 해보니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다. 저절로 흥얼거려지고 그 소리들이 점점 퍼지면서 주의의 모든 분들이 함께 부르는 그 소리에 저절로 애정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동네의 소리니까 더 정감이 가게 되었고 자꾸만 부르게 되었고 부르다보니 저절로 흥이 생긴 것이다. 각 지역의 소리는 그렇게 지역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나야 하며 직접 해 보니까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우리네 삶과 함께 했던 우리의 소리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전라도 들녘 곳곳마다 살아 숨쉬며 대대손손 내려왔던 우리네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굿과 함께 일년 농사과정 시기마다 그 시기에 맞는 우리네 노동요를 지켜내는 일은 우리네 일상 속에서 자꾸만 부를 수 있게끔 우리 모두 일상적으로 유행가를 흥얼거리듯 흥얼거리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듯 하다./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08.18 23:02

[문화마주보기] 명품도시는 지금 이곳에서부터 - 전성환

요즘 들어 '명품도시'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인천세계도시축전에서도 '미래를 여는 명품도시'를 주제로 담론이 진행되고 있고, 새만금을 '세계가 부러워할 명품복합도시'로 개발한다는 정부 계획안이 발표되기도 했다.도시 앞에 명품이 붙으니,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시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명품도시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보았을 때 아름답고, 살았을 때 편안하고,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에게서 기품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바로 명품도시가 아닐까. 파리 사람들은 '불편한 것은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지 못 한다'고 한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명품도시 파리는 그러한 시민의식의 결과물이다.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거꾸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아도 불편한 것은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서부 신시가지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곳도 한때는 '명품도시'의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명품'은 사라지고 '원룸'만 남았다. 품격이 느껴지고 살기 좋은 명품 신시가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곳이 이렇게 됐다면, 분명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물론 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똑같은 돈을 투자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물과 건축방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건축은 오로지 이윤획득의 수단일 뿐이다. 행정 입장에서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으니 그저 그들의 안목과 자질에 호소할 뿐이다. 그러나 돈 앞에서 건축의 공공성이나 미적 측면에 대한 고려는 설자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재질, 똑같은 구조, 똑같은 층수의 거대한 원룸촌을 보고 살아야 한다. 이것은 공공의 시각적 측면에서는 거의 폭력에 가깝다.그렇다고 좋은 건축이 화려함과 웅장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말뫼나 함마르비 같은 도시의 주거지구에서는 고층 빌딩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아한 단층 아파트에 물과 숲과 정원이 어우러져 더없이 안락한 분위기를 풍긴다. 수십 명의 건축가가 주거지구 조성에 참여했지만 행정기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층수, 색깔, 전체적인 톤만 고르게 유지하되, 각각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래서 멋진 명품 주거지구가 탄생했다.우리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도시 한복판에 건축을 하면서도 공공성을 고민하는 건축가는 없고 눈앞의 경제적 이득만 따지는 건축주만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어떤 작업이든 공간적 개념을 품고 있다면 반드시 건축가가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건축은 지어지는 순간 공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새만금만 명품도시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하루하루 명품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좋은 건축은 좋은 삶을 만들지만 나쁜 건축은 반드시 나쁜 삶을 만든다고 한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작은 장소 한곳을 기획하더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삶을 사유하는 건축가가 있고 미래를 내다보는 철학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전성환(전북도청 홍보기획과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9.08.11 23:02

[문화마주보기] "통섭은 안돼, 한예종은 하던 거나 하라?" - 김윤태

현대 무용은 인습과 형식에서 벗어나 해방된 몸으로 춤을 춘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다. 현대무용의 대표적인 춤꾼 세인트 데니스는 동양의 정신적인 요소가 담긴 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특히 동양의 무녀의 춤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녀가 추는 춤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영혼의 소리를 발견했다. 한자의 '무'는 양 소매를 자유롭게 늘어뜨리고 기교와 형식을 초월하여 신명나게 춤을 추는 무녀를 표현하고 있다. 데니스는 자신도 모른 채 서양 춤꾼으로서는 최초로 무녀의 모양을 본떠 만든 한자 '무(巫)'가 품고 있는 비밀을 푼 셈이다.이사도라 던컨에 의해 촉발된 유럽 현대무용은 루돌프 폰 라반에 의해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무용수인 라반은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용 이론에만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과의 학제간 연구를 중시했다. 그는 무용에 운동학의 움직임 이론과 인문지리학의 공간이론 뿐 아니라 철학, 수학, 기하학, 해부학 이론을 접목시켰다. 음악을 활용하여 무대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대학에서 학제간 통섭 교육은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에서도 학과가 없어지고 학부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다. 어떤 대학에서는 심지어 인문학부와 자연학부도 구분하지 않는 자유전공학부가 생긴다는 고무적인 소리도 들린다.현대무용의 대가 데니스가 자신의 춤을 통해 영혼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춤만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하게 동양의 무녀의 춤을 응용한 결과이다. 라반이 유럽 현대무용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도 바로 무용을 초월하여 학제간 통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소위 '한예종 사태'이후 통섭이 세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예종의 통섭교육은 예술 장르간 그리고 예술과 과학기술간의 다양한 소통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예종에서 통섭교육을 주도했던 심광현 교수에 따르면 통섭은 어원상 "함께 도약하기"라는 의미이여 "수많은 지식들이 양팔을 벌려 함께 도약하면 다양한 유형의 지식들 간의 결합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 (...) 이런 유형의 도약의 귀결은 미리 결정될 수 없지만, 반복되다 보면 마치 여러 실들이 꼬이듯 여러 지식들이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지식들 간에 '가족적 유사성'이 형성될 수 있다." 또 "이렇게 얻어지는 가족적 유사성은 결국 전체 지식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확산하게 될 것"이다.정부는 틈만 나면 소통을 이야기한다. 촛불집회와 같이 무슨 일이 터졌다하면 소통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마치 정부 현안이 소통인 것처럼 들린다. 그걸 감안하면 소통을 지향하는 통섭교육을 기치로 내걸었던 한예종은 정부의 시책을 앞장서서 실행한 셈이다. 상을 주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예종에 대해 "하던 일이나 하라"며 통섭교육 중단을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와 관료들의 생각이 얼마나 엇박자가 나고 모순을 이루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김윤태(우석대교수유아특수교육)

  • 오피니언
  • 기타
  • 2009.08.04 23:02

[문화마주보기] 일본의 마츠리(祭)와 지역사회 - 임경택

2주 전에 일본의 마츠리(祭)를 보고 왔다. 나리타 공항에서 가까운 사와라라는 곳이었다. 이 곳은 일본의 도쿠가와 시대에 토네가와라는 큰 강의 유로를 변경하면서 생겨난 상업도시로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기 위한 필드워크를 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그 당시부터 지역주민들만의 마츠리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시행해 오고 있다. 십 수 년에 걸쳐 관찰하고 조사해 왔지만, 언제나 일본 지역사회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마츠리, 한국인이 일본문화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의 하나이다. 일본관광공사의 달력을 보면, 일본열도 어디에선가 하루도 빠짐없이 마츠리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얼핏 보면 단순한 축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본인의 삶을 질서 짓고, 그 안에 작은 해방공간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기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일본의 지역사회와 그 질서를 이해하는 데 마츠리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일본의 마츠리는 크게 도시와 농촌의 마츠리로 나눌 수도 있는데, 농촌에서는 농사의 주기에 맞추어 신에게 제사를 지내왔고, 도시지역에서는 주로 여름철에 역병이 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실시해 왔다. 역신보다 더 강한 신을 모심으로써 그 역병을 제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며, 거기에 축제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소박한 믿음에서 출발한 마츠리는 관의 도움없이 철저하게 민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그들은 지역 사회 내에서의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내부의 역할분담을 통하여 자치의 경험을 익히고 축적시켜 왔던 것이다. 일본어로 정(政)과 제(祭)를 모두 '마츠리'라고 읽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대부분이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지만) 역병을 막기 위해 열리는 사와라의 경우 그 안에 초나이라는 지역집단이자 생활집단이 마츠리를 수행하는 실행단위가 된다. 각 초나이는 마츠리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스스로 충당하며, 그 해의 당번이 된 초나이가 전체 운영경비를 좀 더 부담한다. 각 초나이의 내부는 연령집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자가 맡은 역할이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러한 각 단계를 경험해 가면서 사와라의 주민들은 '사와라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전체 초나이들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그 해의 당번 초나이이다. '내부완결체제'와 '협동 속의 경쟁'을 통해 그들은 지역사회의 자치를 경험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츠리가 그들에게는 삶이요, 일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마츠리 바보'라고 부르고, 사와라를 떠나고 싶기도 하지만 마츠리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어쩌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도, 바로 그것이 그들의 삶 안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한국의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축제들이 경쟁하듯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지속성을 가지고 지역주민들의 삶 속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츠리와 축제의 간극 속에 그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임경택 교수는 일 동경대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했다. 동경대 연구원,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2년부터 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09.07.28 23:02

[문화마주보기] 꿈은 이루어진다 - 이명훈

10년 넘게 키워오고 있는 꿈이 있다.커다란 당산나무 옆에는 아기자기한 솟대가 세워지고, 정갈한 마을 공동샘과 시원한 모정이 자리를 하면 주변으로는 소박하지만 정취 있는 흙집과 한옥들이 들어선다. 그곳에는 오래된 지인들이 산다. 글을 쓰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조각을 하는 사람, 굿을 치는 사람 그리고 오래도록 황토빛 흙을 일궈온 사람들, 그들과 함께 마을을 이루고 싶은 꿈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항상 굿이 함께 하는 굿치는 마을을 이루어 같이 사는 꿈이다.이러한 꿈을 꾸게 된 것은 어르신들께 20여년간 굿을 배우고 후배들에게 굿을 가르키면서 어떻게 하면 마을에서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굿을 제대로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마을에서 항상 굿과 함께 했던 당산제, 줄감기, 천제, 풍어제등이 굿치는 사람이 없어 점점 사라지고 있거나 남아있어도 형식적으로만 남아있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수 천년동안 이어져온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문화가 각 마을에서 굿을 연희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사라지고 있고 있는 현실이라니. 무형의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연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통해서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교육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육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현실도 아니거니와 전수관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도 다행이기는 하지만 말이다.요즘 굿을 교육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젊은 학생들이다. 이들은 굿의 근간을 이루었던 농촌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서 전통의 문화예술을 배우고 익히고 각자 학교에 돌아가서 발표회라는 형식으로 굿을 치고 있다. 판굿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판굿이 굿의 전부인양 인식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들에게 굿을 치는 일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전수관 마당에 당산나무도 옮겨 심고 당산에 줄을 감고, 솟대와 장승도 함께 매년 세우고 있다. 이후에는 이곳에 집도 여러 채 짓고 공동샘도 만들고 하여 굿치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 이미 농촌에서 굿을 치기 위한 기본이 사라져버린 오늘날 새로운 개념의 마을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굿치는 마을은 전국 곳곳에 있어야 한다. 지역마다 생활풍습과 억양이 다르듯이 그 지역의 풍토에 어울리는 마을과 굿이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만이 그 옛날 굿으로 화합하고 자존심을 가졌던 우리 한민족의 정신이 아름답게 되살아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한 지역에서 20년 넘게 한 지역굿만을 지키고 살아오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꾸준히 여유를 가지고 지역굿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을 하면서 지역의 굿이 그 지역만의 색깔을 가지고 올바로 살아나야 우리나라 전체의 굿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나름대로 큰 생각이 생겼다. 작게는 풍물 굿판의 중심이었던 전라도 굽이굽이 마을 곳곳에서 모심을 때, 김 맬때, 백중 때, 칠석 때, 정월대보름 때, 아플 때, 기쁠 때마다 주기적으로 굿과 함께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되살아나는 희망을 가져본다. 온 들판 가득 초록 물결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요즘 굿치는 소리가 마을마다 울려 퍼지기를 꿈꾸며./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 회장)▲ 이명훈 회장은 서울예술대와 전북대를 졸업했다. 98년 전주대사습 장원, 2006년 한국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고창농악전수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타
  • 2009.07.21 23:02

[문화마주보기] 창고를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역발상 - 전성환

지난 6월, 북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유럽의 거리를 걷는 동안 내 손에는 늘 위치우이의 책이 들려 있었다. 그가 쓴 〈유럽문화기행〉은 한 문명과 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한 문명이 외부 세계를 똑바로 볼 수 없다면 자신의 역사 또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마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박물관거리였다. 마인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박물관 거리는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모여 있어 마치 작은 마을처럼 보인다. 흔히 박물관하면 거대한 건물과 방대한 유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구 국립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 등 진귀한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들이 있고, 이 가운데 건축박물관, 유대인박물관 같은 테마별 박물관들이 섞여 있다. 이 때문에 박물관 거리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도 했다.재미있는 것은 원래 이곳이 부둣가 창고단지였다는 점이다. 19세기 초에 이 일대를 매립하면서 건축가 쉰켈의 주도하에 최초로 박물관이 들어섰고, 이후 갖가지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명소가 된 것이다.이런 사례는 유럽 어딜 가나 한 두 개씩은 있다. 영국의 시골마을 '헤이 온 와이'는 책마을로 유명하다. 1962년 리차드 부스라는 사람이 낡은 성을 사서 헌 책방을 열었고, 세계 곳곳의 헌책들을 사서 모았다. "이곳에 가면 헌책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마을 전체가 헌책방이다. 37개의 헌책방과 16개의 갤러리에서는 세미나, 강연회,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그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인구 1천3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마을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이다.창고를 박물관으로, 낡은 성을 헌책방 마을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발상의 전환이다. 나는 전주 한옥마을을 박물관마을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옥의 느낌과 구조를 그대로 살려서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굳이 건물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고 거창한 유물을 들일 필요도 없다. 옛 선조들이 썼던 농기구 박물관, 고서?고지도 박물관, 생활용품 박물관, 사투리 박물관. 생활 속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도구들이 모두 박물관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영국의 책마을처럼 주민들이 직접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너무 터무니없는 발상이라고? 모든 성공한 문화도시는 터무니없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개발계획을 세우고 인공조형물로 치장하는 것이 쉽고 빠른 길일 수 있지만, 그것은 빨리 망하는 길일 수도 있다.위치우이는 문화도시의 등급을 세 단계로 매겼다. '맨 아래 등급은 생활에 가치를 두는 것이고, 그 다음 등급은 역사에 가치를 두는 것이고, 가장 높은 등급은 자연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 두는 상태가 가장 높은 문화라는 얘기다.'진정한 문화인 혹은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문화예술계 안에서 있는 힘을 다해 반대자 노릇을 하는 일'이라고 했던 콜링우드의 말을 새겨본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관계자들은 더 멀리 떠나볼 필요가 있고, 말갛게 씻긴 눈으로 모든 문화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전성환(전북도 홍보기획과장)▲ 전성환 과장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주)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서울미디어 대표이사,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를 거쳐 현재 전북도청 홍보기획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타
  • 2009.07.14 23:02

[문화마주보기] '탈라'와 '대한늬우스'의 화려한 복귀 - 김윤태

탈라는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법관과 성직자가 착용하는 긴 겉옷을 말하지만 대학졸업식에서 교수들이 입는 겉옷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학졸업식에서 교수들이 탈라를 입는 전통은 프로이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마다 저마다 독특한 유형의 탈라를 갖고 있었지만 학과에 따라 깃의 색깔은 똑 같았다. 신학과는 보라색, 법학과는 자색, 의학과는 진홍색, 철학과는 감청색 깃으로 과의 고유한 전통을 과시했다.탈라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독일 대학교수들의 졸업식장 공식복장이었다. 하지만 탈라는 1968년 최고조에 달했던 독일 학생운동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독일 대학 졸업식장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특히 그 당시 함부르크 대학의 학생들은 "탈라 속에 천년 묵은 곰팡이가 피어난다(Unter den Talern der Muff von tausend Jahren)"며 탈라 착용을 빗대 대학교수들의 보수적이고 소시민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68운동은 독일에서 나치의 전통을 극복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시민혁명으로 평가된다. 독일은 이 운동의 결과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건강한 사회로 진일보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독일 사회학자들은 68운동의 '脫탈라'로 상징되는 변화에서 중요한 시대적 의미를 찾는다. 독일 대학은 탈라를 벗음으로써 중세풍의 세레모니에서 나타나는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학문의 본연의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최근 독일신문에서 탈라가 독일의 대학 졸업식에 다시 등장 했다는 기사를 읽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탈라의 복귀소식에 남의 나라 일이라고 부리던 여유는 며칠 전 오랜만에 영화관에 들렀다가 갑자기 '대한늬우스'를 접하면서 사치가 되고 말았다. 코미디언들이 나와 벌이는 코미디에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다. '복고 마케팅 광고'일 뿐이라는 재미나고 멋들어진(!) 해명도 믿고 싶다.하지만 요즈음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대한뉘우스'의 복귀는 단순히 코미디도 아니고 추억의 복고 마케팅도 아닌 것이 분명하다.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야 할 청계천이나 시청 앞 광장이 가두리 양식장처럼 전경차로 그야말로 물 샐 틈 없이 둘러 쳐진 것을 보라. 누가 그것이 사라진 군사정권의 종식을 추억하며 퍼포먼스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또 시국선언교사들을 징계하는 모습에서는 권력의 비열함이 엿보인다. 정작 시국선언을 시작한 교수들을 징계하겠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김윤태(우석대 교수유아 특수교육)

  • 오피니언
  • 기타
  • 2009.07.07 23:02

[문화마주보기] 생태의학과 건강한 밥상문화 - 한면희

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는 주민이 고작 8천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산호초로 둘러싸인 천혜의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서양인들이 몰려오면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그것에 수반되는 사회적 후유증도 심각하게 앓고 있다. 주민들은 관광수입으로 벌어들인 외화로 현대식 슈퍼마켓에서 코카콜라와 각종 통조림 등 인스턴트식품을 구매하여 일상으로 섭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서구식 생활습관으로 인해 1954년까지는 거의 없었던 당뇨병 환자가 최근 41%로 늘어남으로써 국가 보건체계에 비상이 걸렸다.미국은 닉슨정부 시절에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10년 동안 25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한 바 있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갈수록 커져서 1940년에 GNP의 4%에 해당하는 40억 달러 규모였는데, 1992년에는 14%에 달하는 8천억 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현재도 3명 가운데 1명이 암에 걸리고, 5명 가운데 1명이 사망하고 있다. 의료기술이 높아지는 것 이상으로 의학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과 그 환자가 계속 늘고 있는 셈이다. 돈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산업사회의 생활양식이 사태의 주범이다. 지난 주 유명을 달리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성형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다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미국에서 암과 각종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1992년에 대체의학연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대체의학은 마음과 몸을 통합해서 바라보고, 질병치료보다 예방에 우선적 주안점을 두며,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자연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고서는 인간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렬하게 싹트고, 이에 따라 생태의학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대체의학의 연장선상에서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자연적 이치에 따라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알고 보면 동아시아 문명의 의학적 이해는 생태의학의 원형에 해당한다. 장기와 신체, 몸과 마음, 인간과 자연을 유기적 연관관계로 조망했다. 음식도 에너지 공급원이자 질병 예방의 눈으로 보았다. 이제 의식동원(醫食同源)의 관점에서 위험한 밥상을 건강하게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주식으로 쌀밥을 유지하면서 수입 밀 섭취를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짜며, 유익한 미생물이 많은 발효식품의 섭취 비율을 늘려야 한다. 유기농 재배를 계속 늘리고, 패스트푸드를 피하며, 생활 속에서 약초를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건강하게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자연의 생기를 향유하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9.06.30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