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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계절은 현재에서만 만날 수 있다

봄이면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동네 꽃집으로 향한다. 초여름이 오면 자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선다. 장미로 시작해 능소화, 백일홍으로 알록달록 물드는 여름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가을이면 하루하루 다르게 물드는 나뭇잎의 색을 관찰하며 더 자주, 오래 걷는다. 겨울이 오면 따뜻한 차와 커피를 마시며 몸의 온도를 높인다. 꽃이 피고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제철에 맞는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지금 이 계절을 살아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계절은 늘 현재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마음을 현재에 두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발붙인 채 삶의 순간순간에 감응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언제부터 오늘보다 내일을 먼저 살아가기 시작했을까. 지금의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먼 미래를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대비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유예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은 어느새 현재를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온통 불안이 스며 있고, 젊은 세대는 역설적으로 그 불안을 극복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들에 몰두한다. 어쩌면 불안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너무 오래 살아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수없이 상상하고, 그 가능성 속에서 이미 여러 번 지쳐 버린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미래를 미리 살아버릴 필요는 없다. 반대로 현재는 지금 내 손에 닿아 있는 시간이다. 내가 보고, 걷고, 먹고, 숨 쉬는 모든 감각은 오직 ‘지금’에서만 존재한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미래를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감당할 힘을 오늘에서 길러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계절에서 찾곤 한다. 봄이면 꽃을 사고, 여름이면 짙어진 녹음을 찾아 길을 나선다.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 속도를 눈으로 좇고, 겨울이면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쉬게 한다. 거창한 의식도, 특별한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동안만큼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생각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몸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간다. 꽃의 향기를 맡고, 바람의 온도를 느끼고, 제철의 맛을 음미하는 순간에는 조급했던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현재를 회복하는 가장 소박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계절은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장미는 자신의 때를 알고, 능소화는 여름을 기다리며, 나뭇잎은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든다. 자연은 늘 정직한 속도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그런 태도인지 모른다. 미래를 준비하느라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예하지 않는 것.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오늘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고, 오늘만 맛볼 수 있는 계절의 음식을 먹는 일.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현재는 특별한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 곁에 늘 머물러 있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삶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계절이 건네는 작은 신호들에 기꺼이 응답하는 오늘들의 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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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18 18:06

[청춘예찬] 실패도 청춘의 일부다

우리는 자기 인생을 설계할 때조차 스스로 남의 눈치를 본다. 몇 살에 취업해야 하고, 언제 결혼하며, 언제까지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정해진 평균 삶의 궤적이 공식처럼 존재한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뒤처졌다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체크하고 스스로 재촉한다. 새로운 시작에 마지노선 나이가 있을까.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약대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들은 말은 “결혼은 언제 하고, 학교를 언제 졸업하냐”였다. 사회는 한 번의 진로 선택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어 했다. 무모함 혹은 용기라는 말로 선을 그으며 거리감을 뒀다. 내 청춘의 이면은 사실 수많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나 역시 남들이 말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달렸다. 대학 시절 품었던 공인회계사의 꿈은 연이은 낙방으로 바스러졌고, 7급 공무원 시험도 면접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수많은 오답을 거친 끝에야 검찰청 마약 수사관으로 임용되었고, 비로소 남들이 말하는 안착의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내 삶은 여전히 미완성의 연속이었다. 직장 생활과 병행했던 공인중개사와 경영지도사 시험은 최종 2차 문턱을 넘지 못했고, 부산지방검찰청 강력범죄수사부 다크웹수사팀 근무 시절 도전했던 방송통신대 컴퓨터과학과 역시 끝내 중도 포기했다. 이 오답 노트는 서른이 넘어 새로 입학한 약대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다. 국회 교육위원장 표창과 대구광역시장상, 전주시장상, 전주시장 표창, 연이은 정책·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수상과 청년문학상까지 무려 11개의 상을 탔고, 전주시 청년희망도시 정책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학신문사 편집장 직함까지 달며 화려한 1학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버려진 기획서 더미와 유기화학 F가 남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무언가라도 해보고 결과를 마주하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한 번의 선택이 전부가 되고, 한 번의 실패가 낙인이 되곤 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이력의 공백은 감점 요인으로 읽히곤 한다. 빨리 증명하고 안착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공포가 사회에 만연하다. 그러나 세상의 혁신은 언제나 오답 노트 위에서 피어났다. 세계적인 플랫폼 유튜브는 원래 영상 데이팅 앱으로 시작했고, 협업 툴 슬랙은 망해가는 온라인 게임 회사의 사내 채팅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이들이 실패를 종착지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혁신과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방향을 찾아내는 유연성, 즉 피벗은 우리네 삶에도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아직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고 흔들리고 있다면, 그가 바로 청춘이다. 모든 도전 앞에 실패할 권리를 허락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지고,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하게 된다. 도전 없는 삶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잃고 바싹 마른 숲과 같다. 나는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틀린 선택을 하고, 끊임없이 방향을 수정하겠지만, 그 실패가 결코 인생의 종착지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작에 마지노선 나이 따위는 없다. 꿈을 좇아 기꺼이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과정 속에 있는 청년이다. 시행착오를 인생의 공백이 아닌 가치 있는 경험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지금 다시 시작하려는 모든 청춘에게 진짜 필요한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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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11 18:21

[청춘예찬]계획이 틀어진 자리에서

현대인의 일상이란 정해진 시간표를 오차 없이 소화해 내는 과정에 가깝다. 밤에 잠들기 전,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에서 달력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정해진 기한과 스스로 정해 둔 마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의뢰인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매일을 다투는 직업이다 보니, 작은 변수 하나라도 놓칠세라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눈앞의 상황을 통제하고 예측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 때문일까. 일상의 피로를 벗어나려는 여행조차 철저한 계획에서 출발하곤 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안동, 영주, 청송 등 조용한 목적지를 정해 두고, 며칠 전부터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여행지 사이의 이동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고, 식당이 문을 닫을 때를 대비해 대안까지 몇 군데 찾아둔다. 정체 구간을 피하는 동선을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손쓸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한 낯선 타지에서도 하루를 빈틈없이 장악하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고단한 일상을 버티게 해 준 작은 도피처였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막상 현장에선 크고 작은 변수를 마주하게 된다. 기상 예보를 비웃듯 쏟아지는 장대비에 발이 묶이고, 고대하던 식당은 하필 내부 수리로 문을 닫는다. 내비게이션 오류로 엉뚱한 국도에 접어들어 애써 계산한 동선이 무너지기도 한다. 완벽을 기했던 만큼 처음에는 당혹감이 밀려오고, 이내 짜증이 치민다. 표정은 굳고,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조바심을 내며 다음 계획을 꿰맞추느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씨름한다. 역설적이게도 여행이 끝난 뒤 뇌리에 남는 가장 선명한 장면은 대체로 그 계획이 틀어진 순간이다. 소나기를 피하려 뛰어든 낡은 카페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넘기던 책장.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마주친 한적하고 다정한 골목길. 일정에 쫓겨 걷다 엉겁결에 멈춰 선 언덕에서 바라본 서늘한 노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기대했던 유명 관광지보다, 무방비 상태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이 한층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지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매일 촘촘하게 내일의 계획표를 짠다. 남들이 다져 둔 안정적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변수가 생기면 몹시 불안해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공들여 세운 계획이 어그러지는 날이 수없이 찾아온다. 뜻밖의 일 앞에서 길을 잃고, 애써 들인 공이 한순간에 허사가 되어 허탈한 쓴웃음을 짓곤 한다. 그렇지만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도 밖으로 밀려났을 때 비로소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다. 억지로 이전의 동선으로 돌아가려 애쓰기보다, 낯선 길에 놓인 우연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은 안전하고 효율적이지만, 때로는 계획이 어긋난 곳에서 소중히 간직할 경험을 하기도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나는 습관대로 여전히 달력의 기한을 확인하고 촘촘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기치 못한 변수로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예전처럼 당황하거나 조바심 내지는 않으려 한다. 지도가 가리키는 반듯한 길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도, 때로는 가장 오래 남는 풍경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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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4 18:20

[청춘예찬] ‘빈틈엮읆이’ 예술가는 무엇을 할까?

왠지, ‘작가’ 란 어두운 아틀리에 안에서 홀로 고독을 씹으며 캔버스와 싸우고, 끝없는 고민과 내면 속에만 머무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이미지와 다른 일들이 훨씬 많았다. 지금은 예전엔 상상도 되지 않았을 만큼 여러 일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게 칼럼을 기고하는 일, 전시의 해설, 지원 사업을 기반으로 전시를 기획하거나,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일,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공연의 VJ 역할을 맡아 보기도 했고, 기관과 연계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도 있다. 학교를 다닐 때에 상상하던 ‘작가’ 와, 지금 마주하는 ‘예술가’ 사이에는 간극이 너무나 크다. 그러한 간극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팔복예술공장 A동 옥상 공동경작 프로젝트 ‘도시상조’(2024)에 참여했다. 벽에 그림을 거는 일도 낯설던 때에, 아무 설비도 없는 옥상에서, 의자를 제작하기도 하고, 예술가의 작업에 기반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프레임을 사용해 제작한 작업들을 관람객들과 함께 옥상에서 1층으로 옮겨 자유롭게 배치하고, 다시 가지고 올라오는 형식의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처음에 생각했었던 ‘작가’의 일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작업은 단순히 ‘만들어진 것’을 공개하는 고립된 제작에만 머물지 않았다. 장소와 사람, 서로의 관계망을 재배치하는 실천에 더 가까웠다. ‘개인 작업’을 하는 일은 물론 기본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어떤 환경을 읽고, 그 환경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그 고민들을 어떤 감각으로 드러낼지 탐색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인 것 같다. 일상적 감정과 삶들을 드러내고, 그 사이에 새롭게 끼워 넣을 감각을 상상하며, 익숙한 틈을 새로운 형태로, 다른 가능성으로 다시 조합하는 일. 그것이 현장에서 느낀 예술가의 역할이었다. 최근에는 익산예술의전당 기획전 ‘이리 꼬뮨’(2026)에 참여했다. 1980년대 이리 수출자유지역 사회운동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이 서로를 돕고 연대한 방식을 오늘날 지역 예술단체의 작업과 생태계에 연결하는 기획이었다. 이곳에 지난 4월 전자음악 씬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획된 공연 ‘GOOD’(2026)에 협력한 설치 작업을 3배 규모로 확장하고 재구성하여, 시각예술가 세 명의 서로 다른 정체성과 작업 방식을 충돌시키고 하나의 공동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으로 출품했다. 이를 통해 ‘공동 작업’ 만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공연과 연결된 연대의 서사, 하나의 주제를 해석하며 겹쳐진 대화와 노동 자체를 옮겨가고자 했다. 예술가는 무엇을 할까? 개미핥기를 일본어로 읽게 된다면 ‘개미먹음이’가 된다며, 이름이 너무하지 않냐는 농담처럼, 왠지 친숙하지는 않은 ‘예술가’ 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역할만 불러보면 어떨까. 삶섥기, 가상두들김이, 이상해서 즐거운 이름들처럼, 이제의 예술가의 일 또한 괴상하지만 왠지 이상해서 즐겁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예술가는, 홀로 고독을 씹으며 캔버스와 싸워나가야도 하지만, 어쩌면 관계와 환경과 감각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이젠 어떤 예술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은 우선, 일상 사이의 빈틈을 읽고, 빈틈을 다른 감각으로 다시 엮어내는 일을 먼저 하고자 한다. 당분간은, ‘빈틈엮읆이’ 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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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28 18:13

[청춘예찬] 심는 자와 베는 자의 거리

여름이 서서히 깊어져 가는 무렵, 길을 걷다 문득 꽃향기가 파고들 때가 있다. 봄이 찬란하다면 여름은 아름다움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여름 장미가 담벼락을 에워싼 거리를 지나다 보면 하루하루 옷차림이 가벼워진다.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본격적인 뜨거움 속으로 향하는 요즘,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맞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올해 또 어떤 재난이 찾아올지 덜컥 걱정이 앞선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내리쬐는 폭염, 새벽 내내 식지 않는 열대야, 무섭게 쏟아지는 장마와 순식간에 사방을 적시는 스콜성 폭우까지. 얼마만큼 더 더워질 수 있을지, 또 장마는 얼마나 더 길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매해 재난은 새로운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내가 자주 걷던 집 앞 길가와 산책길 천변은 점점 더 허허벌판이 되어간다. 2023년 3월부터 전주시는 앞장서서 수천 그루에 달하는 나무들을 무분별하게 벌목해 왔다. 나무가 베어나간 그 자리에서 나는 자연의 빈자리를 피부로 느낀다. 나무가 만들어 주던 그늘도 없이 머리 위로 곧장 내리꽂히는 태양의 뜨거운 맛을 본다. 땡볕 위를 걷다 보면 금세 지치고 늘어진다. 이제 여름의 전주천은 더 이상 마음 편히 거닐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사라진 것은 시민들의 그늘뿐만이 아니다. 초록빛 잎사귀를 흔들며 위로를 건네던 버드나무, 그 품에 깃들어 살던 전주천의 상징적인 생명체들도 한순간에 터전을 잃었다. 지난 수십 년간 시민과 지자체가 땀 흘려 가꾸어 쉬리와 수달이 돌아오게 만들었던 생태하천의 역사가 단 몇 줄의 행정 명령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연둣빛 새순으로 봄을 알리고, 한여름에는 쉼터를 내어주던 그 싱그러운 풍경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은 신기루가 되었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열대야가 일상이 된 여름, 타 도시들은 바람길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도시의 열섬현상을 막으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전주시의 생태 관념과 기후 시계는 거꾸로 흐르고 있다. 재해 예방과 하천 정비라는 해묵은 명목 아래, 수십 년간 천변을 지켜온 버드나무들이 단 며칠 만에 밑동만 남긴 채 잘려 나갔다. 최소한의 솎아베기만 하겠다던 시민사회와의 상생 약속은 기습적인 모두베기 앞에 무력하게 깨어졌고, 하천 환경에 미치는 기초적인 조사나 정교한 데이터 분석조차 없이 성급하게 중장비가 밀려들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도 당장 내리쬐는 볕을 막아줄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을 모르는 행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비인가. 나무들이 서 있던 그 쓸쓸한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비단 그늘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자연과 인간이 다정하게 공존하던 전주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우리는 통째로 빼앗겼다. 다가올 여름을 온전히 날 자신이 없다. 누군가는 지구를 살리겠다고 나무 한 그루를 정성껏 심고, 누군가는 행정 편의를 위해 수십 년의 시간을 단 몇 초 만에 베어낸다. 심는 자와 베는 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왜 이토록 다른 방향으로 가는가. 생명을 품어 안는 자들이 미래의 가능성을 길러낸다. 잘려 나간 나무의 빈자리는 시리도록 뜨겁지만, 그늘을 빼앗긴 우리가 서로의 그늘이 되어줄 때, 전주의 여름은 다시 다정하게 만개할 것이다. 잘려 나간 전주시의 나무들을 기억하며, 다시 뜨거운 여름으로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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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21 18:22

[청춘예찬] 도와주는 사람은 왜 늘 부족한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늘 부족한 이유를 “요즘은 이기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말로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질문의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 도움은 왜 늘 개인의 희생에 기대는가. 우리 사회에서 돕는 일은 여전히 개인의 선의로 설명된다.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간을 쪼개어 헌신하는 사람, 보수를 바라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사회의 찬사. 공공의 책임이 개인의 미덕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공공의 책임이 미담의 영역에 머무는 구조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선의는 무한하지 않고, 헌신은 자동으로 재생산되기 어렵다. 특정 개인에게 반복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는 결국 헌신적인 사람들을 가장 먼저 소진시킨다. “제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라는 미담에 의존하는 구조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사명감은 노동 조건을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이에 기대는 구조는 그들의 값어치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를 어렵게 만들고 침묵을 강요한다. 필수적인 것은 저렴해도 된다는 전제가 있다. 언제나 거기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공급될 것이니까 말이다. 팔수록 손해가 나도 괜찮다고 말이다. 수요가 필수적이니 값을 올릴 이유가 없을까. 하지만 공급이 무너지면 그 계산은 첫 단추부터 틀린 것이다. 약이 하나씩 사라지고, 사람이 하나씩 떠나 현장이 비워진 뒤에야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알파제약의 알파아세트아미노펜정 500mg의 상한 약가는 11원이다.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도입된 지 25년이 넘었지만 가격이 그대로다. 원료비와 인건비, 품질관리 비용 상승이 반영되지 않아, 팔수록 손해가 나는 역마진 구조이다. 채산성 문제로 결국 제약사들이 하나씩 생산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2025년 한 해 동안 공급 중단 의약품 신고 건수는 332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그중 채산성 부족이 원인인 사례가 106건(38.6%)이다. “대체 가능한 약제가 있어 환자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이러한 판단이 누적될 때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2mg당 약가가 782원에 불과한 아티반 주사제의 국내 유일 생산처인 일동제약이 2025년 말 식약처에 생산 중단을 보고했다. 이 약은 소아 경련 환자의 1차 치료제로서 간 대사 부담이 적어 생명줄과 같은 약이다. 정부는 미다졸람이나 디아제팜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전문가들은 “작용 시간과 부작용(호흡 억제 등)이 달라 단순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경고한다. 식약처가 대체 위탁생산을 논의중이나, 낮은 수익성 때문에 선뜻 나서는 곳이 없어 난항중이다. 의료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명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열악한 처우와 그 값어치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보상 구조에 처해 있다. 여기에 법적 구조상 최선을 다해도 쉽사리 수십 억원의 민사배상 판결을 받고 형사처벌의 피의자가 되기도 한다. 저렴한 약가와 수가. 그에 따른 희생은 당연한 것일까. 사명감으로 시작해도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떠나게 된다. 선의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사명감은 구조를 대신할 수 없다. 필수적일수록 그에 걸맞은 조건이 필요하다. 그래야 약이 남고, 사람이 남는다. 11원짜리 약과 소진된 의료진은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데 우리는 기꺼이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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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14 14:52

[청춘예찬]시작이 가장 무거운 이유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우리는 종종 주춤거린다. 설렘보다는 막막함과 버거움이 앞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나도 다르지 않다. 정해진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역할이나 낯선 책임을 마주해야 할 때면, 눈앞에 놓인 과정이 까마득하게 느껴져 시작부터 지쳐버리거나 슬그머니 포기하고 싶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주로 발사하는 로켓을 떠올린다. 로켓이 지구 중력을 이기고 궤도에 오르려면 이륙 중량의 약 90%를 연료와 산화제로 채워야 한다. 구조물과 엔진, 우주로 보내려는 탑재체를 다 합쳐도 중량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짙은 대기권을 가르며 공기 저항이 극심해지는 최대 동압점의 압력을 견뎌내는 동안, 발사체는 거세게 진동하며 탑재된 연료의 대부분을 격렬하게 불태운다. 그러고 나서 궤도에 안착하면 대기 저항이 사라지고, 별다른 추력 없이도 관성에 실려 지구를 유영하게 된다. 우리 삶도 이 로켓을 닮았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유독 큰 피로를 느끼는 까닭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익숙한 일상의 중력을 이기고 새 환경이라는 짙은 대기권을 돌파하는 비행 중이라서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행위 자체가 본래 가장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소소하게는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 익숙한 업무 방식을 버리고 새 시스템에 적응하는 일, 오랜 침묵 끝에 다시 펜을 드는 일부터 크게는 새로운 진로나 창업에 도전하는 일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대기권을 뚫기 위해 치열하게 연소한다. 결국 시작 앞의 두려움은 흠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비행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수습변호사 시절, 소송 기록을 처음 마주한 날을 기억한다. 혼자 힘으로 사실관계와 법리의 실타래를 풀어야 했던 그 시기의 압박감이 참 컸다. 서면 한 줄을 쓰려고 수십 페이지를 다시 들췄고, 새벽까지 기록에 파묻혀도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로스쿨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하급심 판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한숨짓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간을 가까스로 견딘 뒤에야 사건의 흐름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음에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새 사건을 맡을 때마다 여전히 그 무게를 다시 마주한다. 다만 이제는 그것이 성장의 일부임을 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자기만의 대기권을 거듭 뚫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며칠 만에 주저앉고 싶어졌다면,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하며 자책하지 말자. 지금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두꺼운 대기를 가르며 궤도를 향해 거세게 연소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오늘도 저마다의 팍팍한 대기권을 뚫느라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이웃들을 생각한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에서, 늦은 밤 책상 앞에서, 새벽 작업장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당장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고 일상의 중력에 끌려 다시 내려앉고 싶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 어느새 각자의 궤도에 올라,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한결 가벼워질 내일을 상상하며, 벅찬 시작의 무게를 꿋꿋이 감내하는 우리 모두의 고단한 어깨에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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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07 18:09

[청춘예찬] 샤갈! 사랑을 설명한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사 지원서’를 작성해 팔복예술공장에서 전시 보조로 4개월간 기간제 근로를 하게 됐다. 사원증도 착용해 보고, 9시에 맞게 출근해 지문을 찍고, 정해진 시간을 지켜 점심도 먹어보며, 프리랜서에게는 생경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연차도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3월부터 ‘마르크 샤갈 展’ 이 진행 중이며, 주로 전시를 해설하는 ‘도슨트’ 업무를 맡고 있다. 전시장에 있는 작업들이 왜 이런 형상을 띄고 있는지, 이 작가는 왜 이런 작업들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었는지 등, 작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일이다. 샤갈의 작업들에는 다양한 사랑과 서정 등이 깊게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설명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작업은 작가의 삶과 기억, 감각이 뒤얽혀 만들어낸 복합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샤갈의 화면 속에서 부유하는 연인들, 기이한 마을, 비현실적인 색채들은 분명 사랑을 품고 있지만, 그 감각을 ‘사랑’ 이라는 일상적 언어로 직역하는 순간 품고 있는 여러 겹의 미묘한 레이어가 무뎌져 버린다. 해설을 하며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작품의 정보를 습득하게 되는 순간보다, 그 이해를 통해 작가와 연결되는 순간에 반응한다는 점이다. 작품 뒤에 있는 한 사람의 시간과 고민, 감정과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감상은 경험이 된다. 그 순간, 미술관은 더 이상 낯선 공간이 아니라, 타인의 세계를 알아가는 장소가 된다. 퇴근 후에는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가 프로젝트들의 기획 회의 등을 진행한다. 가끔, 도슨트와 기획자의 일이 유사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작가들 또한 종종 자신이 만든 그 복합적인 대상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 가까운 것 같다. 그들에게 ‘그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는 어떤 감각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전시를 통해 타인과 공유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계속 질문하게 된다. “이건 왜 이렇게 되었나요?” 혹은 “이 감각은 어디서 근원한 걸까요?” 때로는 작가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맥락을 함께 더듬어 가며, 하나의 서사를 구성한다. 그래서 기획자의 역할은 작가와 작업을 심화시키는 것을 넘어 심화된 작업을 문맥화하는 곳에도 있는 것 같다. 이 매개는 번역에 가까워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작가가 무심코 지나친 감각을 붙잡아 언어로 풀어내고, 관람객이 놓칠 수 있는 맥락을 다시 건넬 수 있다. 매개하며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 그 언어를 나의 언어로 바꾸어보는 일, 한 사람의 세계를 다시 건네는 일. 이 순환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간다. 영원히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불완전한 시도 사이에서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일들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려는 방식’과 닮아 있는 것 같다. 그 사람과 함께 고민하고, 깊게 들여다보게 될 때,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흔히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하던데, 전시를 매개하며 나는 매일 지고 있다. 해설이나 기획이 끝나고 나면 왠지 정이 든다. 사람을 설명한다는 것은, 알아가는 일이자 내어주는 일, 지(知)는 일이자, 지는(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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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23 18:34

[청춘예찬] 찬란한 봄은 짧고 우리의 산책은 길어도 좋다

어느 도시의 봄이 아름답지 않겠느냐마는, 전주의 봄 또한 유난히 찬란하다. 이 계절의 전주는 자꾸만 걷고 싶게 만든다. 최근 전주를 다룬 웹 콘텐츠가 높은 관심을 얻는다. 그만큼 이 도시를 찾고 소비하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이 어디를 찾는지 자연스레 주목하게 되지만,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고 싶다. 나의 발걸음을 오래 붙잡아두는 가게들을 이 도시에 온 이들에게 조용히 건네고 싶다. 내가 자주 걷는 길의 끝에는 제철을 담아내는 카레집이 있고, 조금 더 걸으면 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 맥주집이 있다. 그리고 다시 몇 걸음이면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동네 책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색을 유지한 채 천천히 쌓여가는 공간들이다. 나에게 하루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출발점은 치명자산 자락의 ‘바람 쐬는 길’이다. 전주천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무릎 아래로는 작은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머리 위로는 연둣빛 이파리와 봄꽃이 겹겹이 피어난다. 이 계절의 풍경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향교길이 나온다. 소담한 한옥 담장 너머로 퍼지는 음식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계절의 맛을 담아내는 카레 집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이주의 카레’로 계절의 흐름을 식탁 위에 올려낸다. 단정한 한 접시에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배불린다. 다시 길을 나서면 얼마 가지 않아 테라스가 있는 수제 맥주집이 나타난다. 이 도시에서 빚은 맥주들 사이에서 평소 마셨던 취향 그대로보다 오늘의 날씨와 기분에 어울리는 맥주 한 잔을 고심하여 골라본다. 봄볕을 안주 삼아 마시는 한낮의 맥주는 그 자체로 쉼표가 된다. 기분 좋은 취기가 번질 즈음, 구도심을 향해 걷다 보면 동네 가게들이 이어지고, 연이어 나타나는 책방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주의 책방들은 저마다의 책장을 지녔다. 책방지기의 성향이 공간과 책의 배열에 스며 있고, 그 안에서 한 권의 책을 고르는 일은 이 도시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이 공간들의 특징은 이야기가 흐른다는 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쌓아가며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계절을 담은 음식, 지역에서 빚은 술, 취향으로 고른 책들. 그래서 이곳에서의 기억은 단순한 소비로 지나치지 않고 경험으로 남는다. 이러한 경험은 빠르게 소비되는 방식과는 다른 결을 지닌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고 지나가는 일은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그 속도 안에서는 도시가 가진 층위와 시간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곳에서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는다. 전주는 오래된 시간과 현재의 감각이 겹겹이 쌓인 도시다. 그렇기에 전주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속도로 머무느냐’에 더 가깝다. 더 많은 명소를 쫓기보다, 걷는 속도를 잠시 늦추어보는 여유가 필요한 이유다. 이 봄이 다 가기 전,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러보길 권한다. 내가 만든 여유의 틈 사이로, 전주는 비로소 진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찬란한 봄은 짧고 우리의 산책은 조금 더 길어도 좋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 머물 때, 비로소 도시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하여 당신만의 전주가 다시금 태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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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16 18:10

[청춘예찬] 우리는 언제부터 혼자가 되었을까

청년을 둘러싼 담론은 오랫동안 개인의 노력과 선택을 중심에 놓아왔다. 스스로 길을 찾고, 경쟁력을 갖추고, 실패를 감당하라는 요구는 이제 너무 익숙하다. 그런데 이 구조 안에서 청년은 언제부터인가 혼자 버텨야 하는 존재로 설정되기 시작하였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이 되고, 고립은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언제부터 혼자가 되었을까. 청년들은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 경우보다,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훨씬 많다. 관계는 느슨해졌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구조는 줄어들었다. 가족, 학교, 지역사회가 담당하던 역할은 점점 개인에게 이전되었고, 그 빈자리는 자기관리라는 것으로 채워졌다. 한국청소년연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년 10명 중 1명 이상(12.4%)이 고립감을 경험하고 있으며, 한국 청소년들의 사회적 고립 수준은 OECD 평균을 크게 웃돈다.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청년 인구의 약 5%, 54만 명이 고립·은둔 상태에 있다. 이들 4명 중 1명은 10대 시절부터 고립을 경험하기 시작해 성인이 되어서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더 주목할 만한 수치는 은둔에서 벗어나려 했던 청년 중 58.8%가 재은둔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검찰청에서 조사 업무를 지원하며 목격했던 한 20대 초반 청년의 사례가 지금도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연결될 수 있는 통로는 익명 앱뿐이었다. 그 앱을 통해 만난 남성으로부터 마약을 접했고, 중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결국 그는 검찰청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그에게 없었던 것은 의지가 아니었다. 중독 이전에 먼저 닿을 수 있는 공동체, 정체성의 숨기지 않아도 되는 연결의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마약이 유일한 연결이었던 사람에게 그 연결을 끊으라고만 하는 것은 문을 막으면서 다른 문을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다. 많은 청년들이 그렇게 혼자 마약을 하다가 죽는다. 수사 기관을 반복해서 드나들다가, 어느 날 과다복용으로 끝나는 것이다. 청년 혼자 감당하는 대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두 가지 방향을 생각한다. 하나는 법적 테두리 밖에서 작동하는 청년 자조모임이다. 마약 문제를 가진 청년에게 기존 제도는 처벌로 먼저 다가온다. 치료와 회복을 원하더라도 신분 노출의 두려움이 앞선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판단 없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또래 공동체는 제도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연결을 만들 수 있다. 이미 알코올·도박 영역에서 자조모임의 효과는 충분히 검증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치료제(DTx, Digital Therapeutics)다. 전통적인 치료 모델은 상담소에 직접 찾아가고, 이름을 밝히고, 시간을 정해 예약해야 한다. 고립된 청년에게 이 과정은 너무 높은 문턱이다.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익명으로 각자의 속도로 접근할 수 있다. 공감형 AI를 활용한 심리 상담 모델은 이미 은둔 청년 지원 분야에서 실험되고 있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연결 통로가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마약으로 고립된 청년에게 실패했을 때 필요한 것은 처벌 이전에 돌아올 것이다. 판단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전 마약수사관·우석대 약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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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09 18:34

[청춘예찬] 걷고 싶은 전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연이어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하루는 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로터리를 빠져나온 차량이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달려왔다. 또 다른 날은 법원 앞 횡단보도에서였다. 다가오던 차량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그대로 질주하며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보행자가 가장 안전해야 할 횡단보도 위에서조차 운전자의 눈치를 보며 쫓기듯 걸음을 옮겨야 했다. 전북의 도시는 신도시든 구도심이든 자동차가 중심이다. 전주만 봐도 그렇다. 신도시의 넓은 도로는 차량의 흐름을 원활히 해주지만, 보행자가 안심하고 걸을 환경은 부족하다. 구도심이라고 다르지 않다. 전주시가 184억 원을 들여 보행환경특화거리로 조성한 충경로마저 최근 넓힌 인도 위에 다시 노상 주차장을 만들려다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어디서든 자동차의 편의가 먼저인 셈이다. 농어촌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인도조차 없어 갓길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사람들 곁으로 대형 트럭과 농기계가 수시로 지나간다. 고령자 통행이 잦은 시골에서는 위험이 더 크다. 보행 속도가 느린 어르신들은 뒤에서 다가오는 차량과 충돌 위험에 놓이기 쉽다. 또한 사고가 나면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농어촌의 열악한 보행 환경은 일상을 위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것을 양보가 아닌 의무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운전 문화가 필요하다. 다만 인식 전환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과속방지턱 확대나 속도 제한구역 같은 정책들은 이미 시행 중이지만, 큰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 물리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문화도 정착된다. 스페인 소도시 폰테베드라(Pontevedra)는 1999년 도심의 차량 접근을 제한하고 보행 공간을 넓히는 방식으로 도시 구조를 과감하게 바꾸었다. 초기에는 반발이 거셌지만, 교통사고 사망자는 현저하게 감소했고 오히려 인구가 유입되며 상권이 되살아났다. 이탈리아는 유적 보호 목적으로 도입했던 교통제한구역(ZTL, Zona Traffico Limitato)을 일반 주거지와 상업지구까지 확대하며 보행자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전북의 사정이 해외와는 다르니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도심의 특정 구역부터 차량 통행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보행자 중심으로 공간을 재편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농어촌은 기존 도로 환경을 일부 손보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시골 마을 진입 지점의 도로 폭을 좁히고 노면 재질을 바꾸어서 중상 사고를 크게 줄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왕복 2차선 시골길의 중앙선을 지우고 가장자리에 점선 구역을 그려, 마주 오는 차가 있을 때만 그쪽으로 비켜 교행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감속을 유도한다. 당장 모든 시골길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고령자 통행이 잦은 마을 진입로만이라도 구조를 바꾸는 시도는 실천해 볼 만하다. 어떤 정책이든 그 중심에는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어디에 살든 횡단보도 앞에서 불안하지 않고, 동네 한 바퀴를 마음 편히 산책할 수 있는 일상, 걷기 좋은 곳이 결국 살기 좋은 곳이다.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길을 걷고, 청년들이 안심하고 활기차게 머물 수 있는 전북. 도내 모든 길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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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02 18:26

[청춘예찬] INFP 어떤가요? 갑목(甲木)에 사수자리인데, 쿨톤이에요

MBTI, 사주, 별자리, 에니어그램. 예전에는 혈액형이었고, 요즈음에는 점성술까지. 미지에 대한 파악일 수도, 재미일 수도 있는 다양한 기호(記號)에 대한 열풍들은, 단순 가십이나 오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일시적일 줄 알았던 이러한 관심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러한 관심이 자신을 설명해 줄 명확한 언어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규정이나,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의무가 아닌, 직접 선택한 언어로 실존을 서술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보인다. 이미 자신 안에 있는 감각이지만,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어떠한 ‘것’을 명료한 근거와 함께해 꺼내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러나 명료하게 서술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2024년, 개인전 ‘태세:‘그것’이 [이:름]이 되-려면,’을 준비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순간의 두려움을 작업한 적이 있다.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구조적·문화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불명확한 잔여들에 구체적 형상과, 고정적 명칭인 [이:름]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국 제작된 이미지들은 파악하기 어려운 기형적인 형상들이었고, 타인과 상호할 수 있는 기호가 아니었다. 이러한 정의되지 않는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선, 개인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장(場)’을 구성하는 일이 필요했다. 다가오는 4월 4일에는 기획의 글 등으로 참여한 ‘어반스트라이커즈 전주’의 ‘BOLD vol 5:GOOD’이 준비되고 있다. ‘없다’라고도 불리는 지역 내 전자음악 ‘씬(Scene)’을 신(神)을 부르는 ‘굿(巫祭)’과 연계해 씬을 ‘드러내고자’하는 자리이다. 이들은 모두 각각의 [이:름]이 있지만 상호할 수 있는 장(場), 같은 언어와 정의를 사용하고, 함께 발화할 수 있는 맥락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11월에는 상호하지만, 맥락의 변화를 목적하는 장모리 개인전 ‘퀴어실존(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정의될 당시엔 유효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맥락의 변경을 필요로 하는 ‘퀴어함’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며, 누구나 약간의 ‘이상함’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로 나아가려 한다. 그렇게 [이:름]은 불리워야 한다. 상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불려만 지는 피동적인 대상이 되어선 안되고, 아예 다른 대상들로부터 잊혀지는 유령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이 [이:름]은 완결되지도 않는다. 삶이 고정될 수 없듯, 영원히 계속 수정되어야 한다. MBTI 등의 열풍이 식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 모른다. 삶의 변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세밀하고 명료한 언어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완전히 지시하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불완전하기에 편리한 기호들. 예술가들은 이 과정을 ‘신병(神病)’처럼 앓는다고 한다. 풀어내지 않으면 병이 나는, ‘이름 없는 상태’를 ‘작업’을 통해 해소한다. ‘이것’이 상호할 수 있도록 이름을 함께 불러주기를 청한다. 언어를 구축하고, 사회의 언어로 확장시키고, 정의된 것들의 맥락을 다시 확인하고, 해체한다. 그리고 또다시 이름 짓는 ‘내림’의 연쇄들이다. 이러한 ‘내림’의 과정에선 어떤 [이:름]을 받게 될까? 막연하지만, 조금 낙천적인 기대를 가져본다. 나는 다재다능한 AB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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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26 19:01

[청춘예찬] 오래된 다정함, 남문사잇길

요즘 우리 동네 골목 어귀에는 낯선 발걸음이 잦아졌다. 우리끼리만 부르던 이름이 이제는 밖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곳은 ‘남문사잇길’이라 불린다. 한옥마을이라 부르기엔 너무 일상적이고, 웨딩의 거리나 남부시장이라고 하기엔 살짝 비껴난 곳. 말 그대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정체성이 모호했던 동네에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고 있다. 2025년 5월, 특별할 것 없던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건 남부시장 곁 오래된 구도심에서의 시간이었다. 낡은 공간을 쓸고 닦고 고치며 지내온 날들이 우리를 느슨히 이어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가꾸고, 지향하는 바 역시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같았다. 남들이 ‘오래된 구도심’이라 부르며 떠날 때, 우리는 그 시간의 결이 좋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 내 가게의 안녕만큼이나 옆 가게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쌓이며 구도심의 낙낙한 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네의 젊은 상인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의 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어느 날, 문득, 마음속에 잠겨 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이 동네를 어디에 속한 곳이라 불러야 할까.’ 누군가 이름을 붙여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직접 정의해보기로 했다. 상인들끼리 이름을 공모했고,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바로 ‘남문사잇길’이다. 우리 가게들이 자리한 도로명 주소 ‘풍남문n길’에서 출발해 ‘남문’이라는 상징과 여러 동네와 길 ‘사이’에 위치한 이곳의 성격을 담아 붙인 이름이다. 누군가 불러주기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만든 이름을 스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해 동네의 분위기를 담은 종이 지도를 만들었다. 가게마다 지도를 나누고, 사람들은 종이 지도와 핸드폰 속 지도를 손에 쥔 채 골목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골목과 오랜 세월의 흔적이 짙게 묻어있는 동네의 정취를 사람들이 직접 걷고 머물며 느낄 수 있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렇게 ‘남문사잇길’이 만들어지고 1주년을 앞둔 봄. 요즘은 이곳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외진 골목과 구도심을 향한 발걸음들이다. 소문이 어디까지 닿은 걸까. 취재와 촬영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늘었다. 관공서를 찾았을 때, 남문사잇길 이야기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비로소 실감이 난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로컬 브랜딩’이라 불리고 있었다.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 동네에 대한 애정과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출근길에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부재를 챙기는 일. 새 메뉴를 만들면 이웃 가게들과 함께 나누고 의견을 묻는 일.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서로의 수고와 안녕으로 건네는 일. 우리 가게뿐 아니라 이 골목의 다른 가게들도 꼭 들러보라며 기꺼이 소개하는 일. 그렇게 우리는 이 동네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곁에 누가 살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스쳐가는 시대에 우리는 참 다정한 동네에 머물고 있다. 이 골목에 빠지게 된 마음을 나누고자 다가오는 계절에도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오래된 동네를 지금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게 한다. 오래된 것을 소중히 간직한 채 그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겹쳐가고 있다. 구도심의 시간을 째깍째깍 이어간다는 즐거운 사명감을 받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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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9 16:46

[청춘예찬] 예방은 왜 늘 나중이 되는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형 사건이 터진 뒤에야 “미리 막을 수는 없었을까”라는 허망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 말 속에는 아쉬움과 분노, 그리고 어딘가 모를 체념이 섞여 있다. 마치 예방은 원래 어려운 일이고, 사고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전북 지역은 더 이상 마약 청정 지역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하수처리장 실태 분석 결과, 전북의 암페타민과 코카인 검출 농도는 전국 상위권을 기록했다. 위험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필자가 처음 마약 수사관이 되었을 때, 전주지방검찰청에는 마약수사과조차 없어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야 했다. 그 사이 전북 마약 사범 검거 수는 2021년 144명에서 해마다 늘어 250명에 육박했으나, 일선 경찰서에는 전담반이 한 곳도 없었다. 신호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지만, 그 신호를 받아낼 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청년 세대의 위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마약 중독 진료 환자는 2020년 557명에서 2024년 828명으로 49%가 늘었으며, 그중 20대는 같은 기간 139.1% 폭증했다. 특히 첫 마약류 사용 계기의 75.9%가 ‘주변인의 권유’이며, 사용자의 75%가 10~20대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마약이 특정 계층의 일탈이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망을 타고 번지는 사회적 전염의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마한다. “아직 젊으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는 식의 안일한 대응은 신호를 무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시스템 부재의 대가는 혹독하다. 개입이 늦어질수록 사후 비용은 커지고 선택지는 줄어든다. 과거 버닝썬 사태나 N번방 사건 역시 사전에 수많은 신호가 있었으나, 이를 무시한 결과 수천억 원의 형사사법 비용을 쏟아붓고도 재범을 막지 못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예방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전북의 마약 중독 재활 전문인력은 단 6명, 치료 보호 기관은 3곳에 불과하다.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마약 관련 형사사법 비용에 비해 예방과 재활 예산은 극히 미미하다. 사고가 터진 뒤 투입되는 수사비와 재판비, 교정 시설 운영비 등은 즉각 숫자로 남지만, 예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기에 그 가치를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방이야말로 가장 영리한 경제적 투자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언제 알아차릴 수 있었는가’로 말이다. 약학에서 복약지도가 부작용이 생기기 전 신호를 포착하는 예방의 언어인 것처럼, 마약 대응 역시 예방적 상담 체계를 최우선으로 갖추어야 한다. 중독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어 감옥으로 보내는 방식은 오히려 교도소 내 마약 커뮤니티 형성을 돕는 부작용을 낳는다. 전북과 같은 지역 공동체일수록 신호는 더 빨리 포착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아직 문제가 아니다’라며 외면하기도 쉽다. 지역 중심의 전문 치료 및 재활 인프라를 확충하고, 시·군 단위 경찰서의 마약 전담 인력을 현실화하는 구조적 결단이 시급하다. 예방은 보이지 않는 성과를 만들지만, 그 보이지 않음이야말로 공동체가 거둘 수 있는 가장 값진 결실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지 않는 사회에 안전한 내일은 없다. 사고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예고를 지나쳐 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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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2 19:52

[청춘예찬] 대치동이 아니어도 괜찮은 전북을 바란다

얼마 전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서 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 전만 해도 자녀들을 학업 스트레스 없이 키우겠다던 대학원 동기들이, 막상 자녀가 학교 갈 때가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수도권 학군지 입성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친구는 전북이 좋다면서 전북에서 자녀를 키우겠다고 했지만, 내년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본인도 장담하지 못했다. 아이의 미래가 걸린 문제 앞에서 소신은 쉽게 흔들린다. 학군지는 도대체 어떤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학군지의 힘은 유명 학원의 밀집에만 있지는 않아 보인다. 입시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재생산되는 거점이라는 데 본질이 있다. 또한 그 안에서 형성되는 면학 분위기와 학업 습관, 비슷한 목표를 가진 또래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는 쉽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자산이다. 아무리 역량 있고 뛰어난 학업 성취 경험이 있는 부모라 하더라도, 주요 학군지의 촘촘한 교육 인프라를 상대하기란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인재전형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같은 실력을 갖추고도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면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지역의 인재가 전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꿈의 크기를 제한받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균형추가 필요하다. 다만 입학의 문턱을 낮추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지역 안에서 정보와 지혜가 선순환하는 교육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먼저, 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인적 자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에는 은퇴 후 정착한 다양한 직종의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학습 습관을 잡아주고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멘토들이다. 이들의 경륜을 지역 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면, 학군지의 속성 교육이 결코 줄 수 없는 깊이 있는 배움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입시 기술을 단기간에 주입하는 학군지의 방식과는 결이 다른,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입시정보를 지역에서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야 한다. 학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매일 마주하는 일선 교원들이 입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연수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 수도권 입시 전문가 초청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학부모들이 굳이 대치동으로 향하지 않아도 입시 제도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각 학교가 졸업생 네트워크를 체계화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선배들의 멘토링은 대개 명문대 합격생이라는 상징성에 치우친 일회성 강연에 그친다. 학생 개개인의 꿈과 목표 대학이 다름에도 천편일률적인 성공담만 들려주는 식이다. 이제는 학생이 목표로 하는 진로를 선택한 다양한 선배들이 전북에서 어떤 정보와 자원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가감 없이 나누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교육은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이자 지역 사회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다. 우리가 구축해야 할 교육 생태계는 환경의 격차가 개인의 가능성을 가리거나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든든한 보루가 되어야 한다. 지역인재전형이라는 제도적 토대 위에, 시니어들의 지혜와 전문가의 정보, 선후배 간 유대가 결합한 연대가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른바 ‘대치동’이 아니어도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우며 머무는 전북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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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05 18:44

[청춘예찬] 들어가 보면, 어떤 쓸모가 있는 곳과 낯설 ‘것’

공간은 수많은 목적들로 설계되어 있다. 편의점은 일상의 작은 결핍들을 즉각적으로 메워주고, 카페는 마시는 연료와 일시적인 부동산을 공유한다. 미용실과 옷 가게는 겉모습을 제안하고, 시청은 행정과 서류로 교류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무엇을 제공하는 걸까? 손에 잡히는 수확물도, 즉각적인 기능이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오늘날, 미술 전시장에 방문하고 나면 꼭 ‘모르는 것’ 들이 있다. 명화나 전통적 조각 등 교과서에서 보았다고 할 수 있는 익숙함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원재료를 그대로 노출한 아카이빙 작업, 영화보다 길고 더 어렵기도 한 영상 작업, 혹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설치 미술 등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동시대는 개인이 감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에 살아서- 있을 뿐이지, 이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고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로. 바깥의 시대는커녕 내 몸 안의 노화조차 인지하기 어렵고 당황스럽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당연함 속에 산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하루들. 아침엔 해가 뜨고 차는 도로에서 달리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전기와 물이 매일 나오는. 어쩌면 지루한 클리셰일 수도 있지만 열심히 유지하는 고정된 ‘아는 맛’ 인 일상을 보완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단단한 일상들 내에서 미술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너머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reveal), 기존의 고정된 관념들을 들어낸다(remove). 러시아의 비평가 빅토르 쉬클로프스키(V.Chklovski)는 이를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 명명했다. 사물을 아는 대로 인식하는 ‘자동화된 지각’을 방해하여, 관람자가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지각과 인식을 곤란하고 길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관에 간다면, ‘일상’의 너머에 있는 삶들을 기대하자. 거기에는 꼭 ‘모르는 것’ 들이 있다. 공부가 부족하거나 교양이 없어서 ‘모르는’ 것이 아닌, 예술가가 열심히 공부해서 계속 ‘낯선 것’ 들을 찾아내고 있다. 조금 주관적인 기준에서, 작가는 ‘자기 연구’ 등으로 표현되는, 고유한 ‘시각 언어’ 등으로 불리는 ‘시선’ 이 있다. 무엇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 사회 보편과는 조금 빗겨져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정의하는 기준들이 있다. 그러한 기준들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견고히 뒤덮인 사회의 표면을 벗겨내는 작가도 있고,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해,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게 살고 싶다는 개인적 태도를 관철하며 기존의 관습들을 덧씌우는 작가들도 있다. 작가들은 그렇게 변화하는 세계를 관찰하고, ‘어떠한’ 관점으로 ‘무엇’ 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입장과 주장 사이에서, 연구하고 관찰한 기록들 사이에서 우리는 세계를 읽어낼 낯선 예시들을 받아볼 수 있다. 만약 모르는 것을 만난다면 전시장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갤러리에서 쭈뼛거리며 당신을 힐끔힐끔 쳐다본다면 그 사람은 대개 작가 본인이다. 그곳에 있는 ‘모르는’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그와 함께 시대를 쫓고 곤란한 시간을 들어-내 보기를 바란다. 어떤 쓸모가 될지는 모르는 낯설어야 하는 것 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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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26 19:43

[청춘예찬]일상에 오래 남는 축제를 꿈꾸며

얼마 전, 리허설에 찾아온 이들과 대화가 길어졌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획이란 일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냐고 물어보는 이들에게 잠시 버퍼링이 걸린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선뜻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작고 큰 모임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그들이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난 뒤, 약 12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이크 대신 숟가락을 들었던 순간. 흐릿했던 장면이 점점 또렷해졌다. 어설프게 만들었던 첫 포스터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선선했던 어느 초여름 밤의 기억도 이어졌다. 신이 나서 방방 뛰며 누비던 한옥마을의 밤. 매일 산책하듯 오가던 경기전 일대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낯설게 느껴졌던 날이다. 지금의 ‘전주국가유산야행’이 열린 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살아본 적 없는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벅찬 감정을 느꼈다. 담벼락 아래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야기꾼들, 경기전 내에서 들려오던 풍악 소리. 익숙한 공간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주가 지나온 오랜 시간들이 그 밤에 다시 깨어난 것 같았다. 도시의 역사가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아날 수 있다니.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크게 웃고 있던 사람은 아마 나였던 것 같다. 자정까지 이어진 퍼레이드까지 즐기고 난 뒤, 끈적한 땀을 몸에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고도 쉽게 잠은 오지 않고, 여전히 그 밤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이야기로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때는 기획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분명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기획자의 삶을 살고 있다. 모임과 프로그램, 행사와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이제는 지역에서 1만 명이 모이는 굵직한 축제들도 몇 가지 맡고 있다. 돌이켜보면,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있다. 처음부터 의식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나온 축제들을 되짚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일상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기획.’ 개인의 삶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일상과 일터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축제에서 보고, 듣고, 느낀 무언가를 각자의 삶에 가져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기획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장 아끼는 축제는 결국 내가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축제들이다.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그리고 쓰레기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 ‘불모지장’. ‘전주책쾌’를 통해서는 창작이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정답 없는 독립출판의 세계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불모지장’을 통해서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이 결코 멀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임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하고 싶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어느 하루, 혹은 이틀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 서너 달을 함께 머리를 맞댄다. 그 짧은 순간이 누군가의 일상에 오래 남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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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19 19:04

[청춘예찬] 처벌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엄벌을 외친다. 분노는 책임을 묻고 질서를 회복하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깝다. 다만 마약 수사의 최전선에서 돌아온 나는 묻고 싶다. 그 처벌은 과연 누구를 보호하는가. 처벌은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필수 장치다. 하지만 처벌이 유일한 해법이 될 때 문제는 시작된다. 우리는 엄벌이 내려지면 사회가 더 안전해질 것이라 믿지만 현실은 반대다. 수사관 시절 내가 목격한 것은 처벌 이후 더 깊은 주변부로 밀려나 결국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악순환이었다. 2021년 기준 국내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35.0%로 절도(22%)나 강도(20%)보다 높다. 더 주목할 점은 교육 프로그램 이수 여부에 따른 격차다. 남경애 박사의 논문 ‘마약류 중독자 전환 프로그램의 경제성 평가’에 따르면, 프로그램을 이수한 경우 재범률은 11.2%에 불과하지만 미이수자는 43.0%에 달한다. 31.8%포인트의 차이는 처벌 방식의 선택이 그 사람의 미래를, 나아가 사회의 안전을 결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비용의 차이는 더 극명하다. 초범에게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를 적용하면 1인당 약 316만 원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된다. 반면 재범자는 76만 원으로 급감한다. 이 240만 원의 격차는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 사회가 치러야 할 실패비용이다. 2019년 교육 명령 의무화 이후 4년간 평균 재범률이 37.0%에서 34.3%로 감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국의 마약 공급책 뿌리를 뽑겠다는 사명감으로 주말 밤낮없이 수사에 몰두해 당시 거물급 마약왕 ‘전세계’의 국내 최대 공급망을 최초로 검거해 우수 수사관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공급망 하나를 쳐내도 새로운 조직은 곧바로 생겨나고 투약자는 줄지 않았다. 처벌은 결과를 정리하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위험의 총량을 낮추는 데는 무력했다.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야 작동하는 처벌은 늘 끝에 서 있다. 조사실에서 만난 한 투약자는 처벌보다 다시 약에 손을 대게 될 상황을 더 두려워했다. 처벌은 범죄자라는 결론만 기록할 뿐, 그가 왜 그 길로 들어섰고 어떻게 돌아올지는 지워버린다. 특히 청년들에게 전과 기록은 취업과 주거 등 사회적 재진입을 가로막는 배제로 기능한다.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가두고 지우는 것에 머문다면, 사회가 무언가를 했다는 안도감만 남기는 비효율적인 행정일 뿐이다. 진정한 보호는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전주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이 질문과 더 밀접하다. 한 번의 실패가 낙인이 되어 재기 불능으로 이어지는 사회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진정한 안전은 실패 이후에도 다시 설 수 있는 통로가 준비된 이전의 단계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엄벌이라는 감정적 만족 뒤에 숨겨진 막대한 실패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초범 316만 원 대 재범 76만 원, 이수자 11.2% 대 미이수자 43.0%. 우리가 사회의 어느 지점에 자원을 투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이 내가 수사관 직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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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12 18:25

[청춘예찬]“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스무 살 무렵, 사람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전북에서 나고 자랐다고 말하면 꼭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다. 전라도인데 왜 사투리를 많이 안 쓰냐는 물음이었다. 특히 서울에서 온 친구들일수록 더 신기해했다. 꽤 많은 사람이 미디어 속의 강렬한 억양을 가진 전남 사투리를 호남 전체의 공통분모인 양 인식하곤 했다. 전북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정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시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전북은 광주와 전남과는 많이 다르다고,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을 하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남이라는 이름표는 전북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지워버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부터가 그렇다. 공연을 보러 가고, 전시를 찾고, 취향이 맞는 모임에 나가는 활동조차 정보의 흐름은 자연스레 광주와 전남 쪽으로 기운다. 호남권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대규모 문화 행사나 정부 지원 사업의 중심추도 광주와 전남에 쏠린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전북의 청년들은 자신이 주변부에서 삶을 설계하고 있다는 무력감을 체감한다. 호남 속 전북 소외는 국가 정책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 호남권역을 관할하는 행정청이나 공공기관 본부가 광주와 전남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은 이제 낯설지조차 않다. 최근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논의에서도 전북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개혁추진단에 따르면 전국 6개소에 지방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라는데, 호남권은 광주고등검찰청 소재지인 광주에 설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이대로 확정된다면 전북 사람들은 권리를 행사하거나 수사받기 위해 광주까지 원정을 떠나야 할 우려가 있다. 전북이 호남이라는 큰 보따리에 묶여 있다는 관성이, 사법 및 행정 서비스에서도 불편과 격차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어디에 살고 어떤 관계망 안에서 성장할지는 지역에 박힌 막연한 이미지에 의해 먼저 결정되기 쉽다. 그런데 전북에 남아있으면 밖에서는 호남으로 묶여 선입견을 마주하고, 안에서는 기회의 중심과 주요 인프라에서 한 번 더 밀려나는 이중의 소외를 겪는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 전북에서 삶을 꾸리는 데 회의감이 들게 된다. 전북을 떠나는 청년들의 등 뒤에는 차곡차곡 쌓인 박탈감이 존재한다. 요즘 곳곳에서 지역 통합과 메가시티 같은 큰 판이 다시 짜이고 있고, 광주·전남 통합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럴수록 전북이 가진 결을 정체성으로 적극 내세워야 한다. 농생명 기반, 새만금이라는 국가사업, 제조업과 생활문화가 만나는 구조는 전북만의 강점이다. 이를 이용해 과감한 정책 의제를 만들고, 그에 필요한 재원과 기관을 요구하면서 전북의 몫을 찾아야 한다. 정체성이 분명해야 전북에 청년이 남을 이유도 생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호남(湖南)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호남은 종종 광주와 전남을 먼저 가리키고, 전북은 뒤에 따라온다. 이제는 같은 권역이라는 이유로 전북이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 전북의 몫과 전북의 정체성을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이 갖춰질 때 전북은 청년들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온전한 터전이 된다.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말이 항변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자기소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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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5 18:15

[청춘예찬] 어제서야 만날 수 있을 나중에 있는 사람

올해 초, 한 번의 말썽도 부리지 않았던 노트북이 갑자기 무한 부팅 상태에 들어갔다. 2년간의 작업물들이 날아갈 뻔한 아찔한 상황 속에서 3일 밤낮을 매달려 가까스로 자료의 손실 없이 노트북을 살려냈다. 진정할 새도 없이 바로 해야 할 밀린 일들을 다 마치고 나서 느낀 감정은 오묘한 허무감이었다. 그동안 작업한 서류, 증빙용 자료 사진, 글 등 모든 자료는 데이터 형태로 웹에만 있었고, 자주 확인하는 공고 사이트나 언론사들의 리스트는 기기에만 저장되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이는 매일 만나는 지인의 번호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음악, 쇼핑 등 많은 어플들은 구독제로 전환되며 단 하나도 ‘내 것’ 인 것이 없었다. 그동안 나와 연결되어져 있던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 내에서 소환될 때만 잠시 존재할 뿐, 실제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령들과 같았다. 돌아보면 나는 꽤 많이 ‘유령’의 상태로 있었다. 빠르게 잠에 드는 법으로 미 공군에서 사용한다는 ‘해파리 수면법’을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얼굴 근육부터 발끝까지 이완하라는 지시를 읽고 “얼굴에도 근육이 있나?” 라고 생각했다. 숨을 쉰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비로소 호흡이 느껴지듯, 그동안은 그것이 지금 있는지, 긴장한 상태인지도 모르고 당연스레 내 몸에 붙어있는 근육을 이완시키는 감각을, 여섯 번째 손가락이나 꼬리를 찾듯 낯선 감각처럼 탐색했다. 온몸에 긴장을 풀고 나서야, “내가 이렇게 몸에 힘을 많이 주고 있었나?” 싶었다. 나는 ‘내 몸’ 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나는 꽤 자주 ‘지금’에 있지 못한다. 미루고 있는 논문, 올해에는 꼭 해야지 하는 작가 페이지 만들기나, 언젠가 쓰겠지 하고 모으는 메모들, 나중에 읽으면 좋겠지 싶어 미리 사두는 책들. 이미 다 지나갔지만 괜히 이불을 발로 차며, 놓쳐버린 어제들의 실수 되새기기나,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걱정에 지레 겁먹어두기 같이, 끝나지 않은 과거들과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들을 쌓아가며 ‘현재’를 납작하게 짓누른다. 그 어디에도 자리하고 있지 않은 경험들을 되새기다 보면 ‘사람’으로 연속된다는 것이 힘에 부친다. ‘살아’진다는 것은 결코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희끄무리한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를 붙잡아 판단하고 행동해 낼 때에만 비로소 현상으로서 세계에 확정되는 것이다. 잠시 한눈을 팔면 의무감이나 책임감에 현재를 축내거나, 타자들의 관성에 휩쓸려가거나, 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확정한다는 것은 늘 무겁다. 무언가 일을 미루며 주저하는 이유는, 이 선택들이 삶에 가져올 무게감을 감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난 뒤, 혹은 너무 부담을 갖다 보면, 역으로 아주 개인적이고 모난, 어긋난 감각들만이 남게 된다. 의무나 책임, 보편, 승인이나 허가의 여부가 아닌 설명되지 않는 판단일 때만이, 휘발되는 유령들을 세계라는 좌표에 박아 넣는 작은 못으로 남았다. 또다시 무겁고 모날 선택들을 찾아가며, 스쳐가다가-, [👉 이 순간의 나를 확정하기] 👉이 부분을 직접 손으로 눌러 나를 고정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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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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