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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오래된 다정함, 남문사잇길

요즘 우리 동네 골목 어귀에는 낯선 발걸음이 잦아졌다. 우리끼리만 부르던 이름이 이제는 밖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곳은 ‘남문사잇길’이라 불린다. 한옥마을이라 부르기엔 너무 일상적이고, 웨딩의 거리나 남부시장이라고 하기엔 살짝 비껴난 곳. 말 그대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정체성이 모호했던 동네에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고 있다. 2025년 5월, 특별할 것 없던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건 남부시장 곁 오래된 구도심에서의 시간이었다. 낡은 공간을 쓸고 닦고 고치며 지내온 날들이 우리를 느슨히 이어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가꾸고, 지향하는 바 역시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같았다. 남들이 ‘오래된 구도심’이라 부르며 떠날 때, 우리는 그 시간의 결이 좋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 내 가게의 안녕만큼이나 옆 가게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쌓이며 구도심의 낙낙한 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네의 젊은 상인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의 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어느 날, 문득, 마음속에 잠겨 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이 동네를 어디에 속한 곳이라 불러야 할까.’ 누군가 이름을 붙여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직접 정의해보기로 했다. 상인들끼리 이름을 공모했고,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바로 ‘남문사잇길’이다. 우리 가게들이 자리한 도로명 주소 ‘풍남문n길’에서 출발해 ‘남문’이라는 상징과 여러 동네와 길 ‘사이’에 위치한 이곳의 성격을 담아 붙인 이름이다. 누군가 불러주기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만든 이름을 스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해 동네의 분위기를 담은 종이 지도를 만들었다. 가게마다 지도를 나누고, 사람들은 종이 지도와 핸드폰 속 지도를 손에 쥔 채 골목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골목과 오랜 세월의 흔적이 짙게 묻어있는 동네의 정취를 사람들이 직접 걷고 머물며 느낄 수 있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렇게 ‘남문사잇길’이 만들어지고 1주년을 앞둔 봄. 요즘은 이곳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외진 골목과 구도심을 향한 발걸음들이다. 소문이 어디까지 닿은 걸까. 취재와 촬영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늘었다. 관공서를 찾았을 때, 남문사잇길 이야기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비로소 실감이 난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로컬 브랜딩’이라 불리고 있었다.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 동네에 대한 애정과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출근길에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부재를 챙기는 일. 새 메뉴를 만들면 이웃 가게들과 함께 나누고 의견을 묻는 일.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서로의 수고와 안녕으로 건네는 일. 우리 가게뿐 아니라 이 골목의 다른 가게들도 꼭 들러보라며 기꺼이 소개하는 일. 그렇게 우리는 이 동네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곁에 누가 살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스쳐가는 시대에 우리는 참 다정한 동네에 머물고 있다. 이 골목에 빠지게 된 마음을 나누고자 다가오는 계절에도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오래된 동네를 지금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게 한다. 오래된 것을 소중히 간직한 채 그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겹쳐가고 있다. 구도심의 시간을 째깍째깍 이어간다는 즐거운 사명감을 받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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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9 16:46

[청춘예찬] 예방은 왜 늘 나중이 되는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형 사건이 터진 뒤에야 “미리 막을 수는 없었을까”라는 허망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 말 속에는 아쉬움과 분노, 그리고 어딘가 모를 체념이 섞여 있다. 마치 예방은 원래 어려운 일이고, 사고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전북 지역은 더 이상 마약 청정 지역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하수처리장 실태 분석 결과, 전북의 암페타민과 코카인 검출 농도는 전국 상위권을 기록했다. 위험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필자가 처음 마약 수사관이 되었을 때, 전주지방검찰청에는 마약수사과조차 없어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야 했다. 그 사이 전북 마약 사범 검거 수는 2021년 144명에서 해마다 늘어 250명에 육박했으나, 일선 경찰서에는 전담반이 한 곳도 없었다. 신호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지만, 그 신호를 받아낼 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청년 세대의 위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마약 중독 진료 환자는 2020년 557명에서 2024년 828명으로 49%가 늘었으며, 그중 20대는 같은 기간 139.1% 폭증했다. 특히 첫 마약류 사용 계기의 75.9%가 ‘주변인의 권유’이며, 사용자의 75%가 10~20대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마약이 특정 계층의 일탈이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망을 타고 번지는 사회적 전염의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마한다. “아직 젊으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는 식의 안일한 대응은 신호를 무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시스템 부재의 대가는 혹독하다. 개입이 늦어질수록 사후 비용은 커지고 선택지는 줄어든다. 과거 버닝썬 사태나 N번방 사건 역시 사전에 수많은 신호가 있었으나, 이를 무시한 결과 수천억 원의 형사사법 비용을 쏟아붓고도 재범을 막지 못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예방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전북의 마약 중독 재활 전문인력은 단 6명, 치료 보호 기관은 3곳에 불과하다.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마약 관련 형사사법 비용에 비해 예방과 재활 예산은 극히 미미하다. 사고가 터진 뒤 투입되는 수사비와 재판비, 교정 시설 운영비 등은 즉각 숫자로 남지만, 예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기에 그 가치를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방이야말로 가장 영리한 경제적 투자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언제 알아차릴 수 있었는가’로 말이다. 약학에서 복약지도가 부작용이 생기기 전 신호를 포착하는 예방의 언어인 것처럼, 마약 대응 역시 예방적 상담 체계를 최우선으로 갖추어야 한다. 중독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어 감옥으로 보내는 방식은 오히려 교도소 내 마약 커뮤니티 형성을 돕는 부작용을 낳는다. 전북과 같은 지역 공동체일수록 신호는 더 빨리 포착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아직 문제가 아니다’라며 외면하기도 쉽다. 지역 중심의 전문 치료 및 재활 인프라를 확충하고, 시·군 단위 경찰서의 마약 전담 인력을 현실화하는 구조적 결단이 시급하다. 예방은 보이지 않는 성과를 만들지만, 그 보이지 않음이야말로 공동체가 거둘 수 있는 가장 값진 결실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지 않는 사회에 안전한 내일은 없다. 사고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예고를 지나쳐 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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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2 19:52

[청춘예찬] 대치동이 아니어도 괜찮은 전북을 바란다

얼마 전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서 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 전만 해도 자녀들을 학업 스트레스 없이 키우겠다던 대학원 동기들이, 막상 자녀가 학교 갈 때가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수도권 학군지 입성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친구는 전북이 좋다면서 전북에서 자녀를 키우겠다고 했지만, 내년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본인도 장담하지 못했다. 아이의 미래가 걸린 문제 앞에서 소신은 쉽게 흔들린다. 학군지는 도대체 어떤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학군지의 힘은 유명 학원의 밀집에만 있지는 않아 보인다. 입시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재생산되는 거점이라는 데 본질이 있다. 또한 그 안에서 형성되는 면학 분위기와 학업 습관, 비슷한 목표를 가진 또래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는 쉽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자산이다. 아무리 역량 있고 뛰어난 학업 성취 경험이 있는 부모라 하더라도, 주요 학군지의 촘촘한 교육 인프라를 상대하기란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인재전형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같은 실력을 갖추고도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면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지역의 인재가 전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꿈의 크기를 제한받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균형추가 필요하다. 다만 입학의 문턱을 낮추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지역 안에서 정보와 지혜가 선순환하는 교육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먼저, 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인적 자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에는 은퇴 후 정착한 다양한 직종의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학습 습관을 잡아주고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멘토들이다. 이들의 경륜을 지역 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면, 학군지의 속성 교육이 결코 줄 수 없는 깊이 있는 배움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입시 기술을 단기간에 주입하는 학군지의 방식과는 결이 다른,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입시정보를 지역에서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야 한다. 학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매일 마주하는 일선 교원들이 입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연수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 수도권 입시 전문가 초청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학부모들이 굳이 대치동으로 향하지 않아도 입시 제도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각 학교가 졸업생 네트워크를 체계화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선배들의 멘토링은 대개 명문대 합격생이라는 상징성에 치우친 일회성 강연에 그친다. 학생 개개인의 꿈과 목표 대학이 다름에도 천편일률적인 성공담만 들려주는 식이다. 이제는 학생이 목표로 하는 진로를 선택한 다양한 선배들이 전북에서 어떤 정보와 자원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가감 없이 나누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교육은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이자 지역 사회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다. 우리가 구축해야 할 교육 생태계는 환경의 격차가 개인의 가능성을 가리거나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든든한 보루가 되어야 한다. 지역인재전형이라는 제도적 토대 위에, 시니어들의 지혜와 전문가의 정보, 선후배 간 유대가 결합한 연대가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른바 ‘대치동’이 아니어도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우며 머무는 전북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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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05 18:44

[청춘예찬] 들어가 보면, 어떤 쓸모가 있는 곳과 낯설 ‘것’

공간은 수많은 목적들로 설계되어 있다. 편의점은 일상의 작은 결핍들을 즉각적으로 메워주고, 카페는 마시는 연료와 일시적인 부동산을 공유한다. 미용실과 옷 가게는 겉모습을 제안하고, 시청은 행정과 서류로 교류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무엇을 제공하는 걸까? 손에 잡히는 수확물도, 즉각적인 기능이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오늘날, 미술 전시장에 방문하고 나면 꼭 ‘모르는 것’ 들이 있다. 명화나 전통적 조각 등 교과서에서 보았다고 할 수 있는 익숙함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원재료를 그대로 노출한 아카이빙 작업, 영화보다 길고 더 어렵기도 한 영상 작업, 혹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설치 미술 등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동시대는 개인이 감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에 살아서- 있을 뿐이지, 이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고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로. 바깥의 시대는커녕 내 몸 안의 노화조차 인지하기 어렵고 당황스럽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당연함 속에 산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하루들. 아침엔 해가 뜨고 차는 도로에서 달리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전기와 물이 매일 나오는. 어쩌면 지루한 클리셰일 수도 있지만 열심히 유지하는 고정된 ‘아는 맛’ 인 일상을 보완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단단한 일상들 내에서 미술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너머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reveal), 기존의 고정된 관념들을 들어낸다(remove). 러시아의 비평가 빅토르 쉬클로프스키(V.Chklovski)는 이를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 명명했다. 사물을 아는 대로 인식하는 ‘자동화된 지각’을 방해하여, 관람자가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지각과 인식을 곤란하고 길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관에 간다면, ‘일상’의 너머에 있는 삶들을 기대하자. 거기에는 꼭 ‘모르는 것’ 들이 있다. 공부가 부족하거나 교양이 없어서 ‘모르는’ 것이 아닌, 예술가가 열심히 공부해서 계속 ‘낯선 것’ 들을 찾아내고 있다. 조금 주관적인 기준에서, 작가는 ‘자기 연구’ 등으로 표현되는, 고유한 ‘시각 언어’ 등으로 불리는 ‘시선’ 이 있다. 무엇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 사회 보편과는 조금 빗겨져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정의하는 기준들이 있다. 그러한 기준들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견고히 뒤덮인 사회의 표면을 벗겨내는 작가도 있고,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해,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게 살고 싶다는 개인적 태도를 관철하며 기존의 관습들을 덧씌우는 작가들도 있다. 작가들은 그렇게 변화하는 세계를 관찰하고, ‘어떠한’ 관점으로 ‘무엇’ 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입장과 주장 사이에서, 연구하고 관찰한 기록들 사이에서 우리는 세계를 읽어낼 낯선 예시들을 받아볼 수 있다. 만약 모르는 것을 만난다면 전시장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갤러리에서 쭈뼛거리며 당신을 힐끔힐끔 쳐다본다면 그 사람은 대개 작가 본인이다. 그곳에 있는 ‘모르는’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그와 함께 시대를 쫓고 곤란한 시간을 들어-내 보기를 바란다. 어떤 쓸모가 될지는 모르는 낯설어야 하는 것 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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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26 19:43

[청춘예찬]일상에 오래 남는 축제를 꿈꾸며

얼마 전, 리허설에 찾아온 이들과 대화가 길어졌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획이란 일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냐고 물어보는 이들에게 잠시 버퍼링이 걸린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선뜻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작고 큰 모임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그들이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난 뒤, 약 12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이크 대신 숟가락을 들었던 순간. 흐릿했던 장면이 점점 또렷해졌다. 어설프게 만들었던 첫 포스터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선선했던 어느 초여름 밤의 기억도 이어졌다. 신이 나서 방방 뛰며 누비던 한옥마을의 밤. 매일 산책하듯 오가던 경기전 일대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낯설게 느껴졌던 날이다. 지금의 ‘전주국가유산야행’이 열린 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살아본 적 없는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벅찬 감정을 느꼈다. 담벼락 아래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야기꾼들, 경기전 내에서 들려오던 풍악 소리. 익숙한 공간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주가 지나온 오랜 시간들이 그 밤에 다시 깨어난 것 같았다. 도시의 역사가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아날 수 있다니.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크게 웃고 있던 사람은 아마 나였던 것 같다. 자정까지 이어진 퍼레이드까지 즐기고 난 뒤, 끈적한 땀을 몸에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고도 쉽게 잠은 오지 않고, 여전히 그 밤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이야기로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때는 기획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분명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기획자의 삶을 살고 있다. 모임과 프로그램, 행사와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이제는 지역에서 1만 명이 모이는 굵직한 축제들도 몇 가지 맡고 있다. 돌이켜보면,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있다. 처음부터 의식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나온 축제들을 되짚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일상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기획.’ 개인의 삶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일상과 일터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축제에서 보고, 듣고, 느낀 무언가를 각자의 삶에 가져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기획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장 아끼는 축제는 결국 내가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축제들이다.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그리고 쓰레기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 ‘불모지장’. ‘전주책쾌’를 통해서는 창작이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정답 없는 독립출판의 세계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불모지장’을 통해서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이 결코 멀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임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하고 싶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어느 하루, 혹은 이틀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 서너 달을 함께 머리를 맞댄다. 그 짧은 순간이 누군가의 일상에 오래 남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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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19 19:04

[청춘예찬] 처벌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엄벌을 외친다. 분노는 책임을 묻고 질서를 회복하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깝다. 다만 마약 수사의 최전선에서 돌아온 나는 묻고 싶다. 그 처벌은 과연 누구를 보호하는가. 처벌은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필수 장치다. 하지만 처벌이 유일한 해법이 될 때 문제는 시작된다. 우리는 엄벌이 내려지면 사회가 더 안전해질 것이라 믿지만 현실은 반대다. 수사관 시절 내가 목격한 것은 처벌 이후 더 깊은 주변부로 밀려나 결국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악순환이었다. 2021년 기준 국내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35.0%로 절도(22%)나 강도(20%)보다 높다. 더 주목할 점은 교육 프로그램 이수 여부에 따른 격차다. 남경애 박사의 논문 ‘마약류 중독자 전환 프로그램의 경제성 평가’에 따르면, 프로그램을 이수한 경우 재범률은 11.2%에 불과하지만 미이수자는 43.0%에 달한다. 31.8%포인트의 차이는 처벌 방식의 선택이 그 사람의 미래를, 나아가 사회의 안전을 결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비용의 차이는 더 극명하다. 초범에게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를 적용하면 1인당 약 316만 원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된다. 반면 재범자는 76만 원으로 급감한다. 이 240만 원의 격차는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 사회가 치러야 할 실패비용이다. 2019년 교육 명령 의무화 이후 4년간 평균 재범률이 37.0%에서 34.3%로 감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국의 마약 공급책 뿌리를 뽑겠다는 사명감으로 주말 밤낮없이 수사에 몰두해 당시 거물급 마약왕 ‘전세계’의 국내 최대 공급망을 최초로 검거해 우수 수사관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공급망 하나를 쳐내도 새로운 조직은 곧바로 생겨나고 투약자는 줄지 않았다. 처벌은 결과를 정리하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위험의 총량을 낮추는 데는 무력했다.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야 작동하는 처벌은 늘 끝에 서 있다. 조사실에서 만난 한 투약자는 처벌보다 다시 약에 손을 대게 될 상황을 더 두려워했다. 처벌은 범죄자라는 결론만 기록할 뿐, 그가 왜 그 길로 들어섰고 어떻게 돌아올지는 지워버린다. 특히 청년들에게 전과 기록은 취업과 주거 등 사회적 재진입을 가로막는 배제로 기능한다.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가두고 지우는 것에 머문다면, 사회가 무언가를 했다는 안도감만 남기는 비효율적인 행정일 뿐이다. 진정한 보호는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전주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이 질문과 더 밀접하다. 한 번의 실패가 낙인이 되어 재기 불능으로 이어지는 사회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진정한 안전은 실패 이후에도 다시 설 수 있는 통로가 준비된 이전의 단계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엄벌이라는 감정적 만족 뒤에 숨겨진 막대한 실패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초범 316만 원 대 재범 76만 원, 이수자 11.2% 대 미이수자 43.0%. 우리가 사회의 어느 지점에 자원을 투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이 내가 수사관 직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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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12 18:25

[청춘예찬]“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스무 살 무렵, 사람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전북에서 나고 자랐다고 말하면 꼭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다. 전라도인데 왜 사투리를 많이 안 쓰냐는 물음이었다. 특히 서울에서 온 친구들일수록 더 신기해했다. 꽤 많은 사람이 미디어 속의 강렬한 억양을 가진 전남 사투리를 호남 전체의 공통분모인 양 인식하곤 했다. 전북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정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시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전북은 광주와 전남과는 많이 다르다고,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을 하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남이라는 이름표는 전북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지워버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부터가 그렇다. 공연을 보러 가고, 전시를 찾고, 취향이 맞는 모임에 나가는 활동조차 정보의 흐름은 자연스레 광주와 전남 쪽으로 기운다. 호남권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대규모 문화 행사나 정부 지원 사업의 중심추도 광주와 전남에 쏠린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전북의 청년들은 자신이 주변부에서 삶을 설계하고 있다는 무력감을 체감한다. 호남 속 전북 소외는 국가 정책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 호남권역을 관할하는 행정청이나 공공기관 본부가 광주와 전남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은 이제 낯설지조차 않다. 최근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논의에서도 전북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개혁추진단에 따르면 전국 6개소에 지방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라는데, 호남권은 광주고등검찰청 소재지인 광주에 설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이대로 확정된다면 전북 사람들은 권리를 행사하거나 수사받기 위해 광주까지 원정을 떠나야 할 우려가 있다. 전북이 호남이라는 큰 보따리에 묶여 있다는 관성이, 사법 및 행정 서비스에서도 불편과 격차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어디에 살고 어떤 관계망 안에서 성장할지는 지역에 박힌 막연한 이미지에 의해 먼저 결정되기 쉽다. 그런데 전북에 남아있으면 밖에서는 호남으로 묶여 선입견을 마주하고, 안에서는 기회의 중심과 주요 인프라에서 한 번 더 밀려나는 이중의 소외를 겪는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 전북에서 삶을 꾸리는 데 회의감이 들게 된다. 전북을 떠나는 청년들의 등 뒤에는 차곡차곡 쌓인 박탈감이 존재한다. 요즘 곳곳에서 지역 통합과 메가시티 같은 큰 판이 다시 짜이고 있고, 광주·전남 통합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럴수록 전북이 가진 결을 정체성으로 적극 내세워야 한다. 농생명 기반, 새만금이라는 국가사업, 제조업과 생활문화가 만나는 구조는 전북만의 강점이다. 이를 이용해 과감한 정책 의제를 만들고, 그에 필요한 재원과 기관을 요구하면서 전북의 몫을 찾아야 한다. 정체성이 분명해야 전북에 청년이 남을 이유도 생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호남(湖南)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호남은 종종 광주와 전남을 먼저 가리키고, 전북은 뒤에 따라온다. 이제는 같은 권역이라는 이유로 전북이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 전북의 몫과 전북의 정체성을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이 갖춰질 때 전북은 청년들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온전한 터전이 된다.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말이 항변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자기소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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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5 18:15

[청춘예찬] 어제서야 만날 수 있을 나중에 있는 사람

올해 초, 한 번의 말썽도 부리지 않았던 노트북이 갑자기 무한 부팅 상태에 들어갔다. 2년간의 작업물들이 날아갈 뻔한 아찔한 상황 속에서 3일 밤낮을 매달려 가까스로 자료의 손실 없이 노트북을 살려냈다. 진정할 새도 없이 바로 해야 할 밀린 일들을 다 마치고 나서 느낀 감정은 오묘한 허무감이었다. 그동안 작업한 서류, 증빙용 자료 사진, 글 등 모든 자료는 데이터 형태로 웹에만 있었고, 자주 확인하는 공고 사이트나 언론사들의 리스트는 기기에만 저장되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이는 매일 만나는 지인의 번호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음악, 쇼핑 등 많은 어플들은 구독제로 전환되며 단 하나도 ‘내 것’ 인 것이 없었다. 그동안 나와 연결되어져 있던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 내에서 소환될 때만 잠시 존재할 뿐, 실제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령들과 같았다. 돌아보면 나는 꽤 많이 ‘유령’의 상태로 있었다. 빠르게 잠에 드는 법으로 미 공군에서 사용한다는 ‘해파리 수면법’을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얼굴 근육부터 발끝까지 이완하라는 지시를 읽고 “얼굴에도 근육이 있나?” 라고 생각했다. 숨을 쉰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비로소 호흡이 느껴지듯, 그동안은 그것이 지금 있는지, 긴장한 상태인지도 모르고 당연스레 내 몸에 붙어있는 근육을 이완시키는 감각을, 여섯 번째 손가락이나 꼬리를 찾듯 낯선 감각처럼 탐색했다. 온몸에 긴장을 풀고 나서야, “내가 이렇게 몸에 힘을 많이 주고 있었나?” 싶었다. 나는 ‘내 몸’ 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나는 꽤 자주 ‘지금’에 있지 못한다. 미루고 있는 논문, 올해에는 꼭 해야지 하는 작가 페이지 만들기나, 언젠가 쓰겠지 하고 모으는 메모들, 나중에 읽으면 좋겠지 싶어 미리 사두는 책들. 이미 다 지나갔지만 괜히 이불을 발로 차며, 놓쳐버린 어제들의 실수 되새기기나,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걱정에 지레 겁먹어두기 같이, 끝나지 않은 과거들과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들을 쌓아가며 ‘현재’를 납작하게 짓누른다. 그 어디에도 자리하고 있지 않은 경험들을 되새기다 보면 ‘사람’으로 연속된다는 것이 힘에 부친다. ‘살아’진다는 것은 결코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희끄무리한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를 붙잡아 판단하고 행동해 낼 때에만 비로소 현상으로서 세계에 확정되는 것이다. 잠시 한눈을 팔면 의무감이나 책임감에 현재를 축내거나, 타자들의 관성에 휩쓸려가거나, 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확정한다는 것은 늘 무겁다. 무언가 일을 미루며 주저하는 이유는, 이 선택들이 삶에 가져올 무게감을 감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난 뒤, 혹은 너무 부담을 갖다 보면, 역으로 아주 개인적이고 모난, 어긋난 감각들만이 남게 된다. 의무나 책임, 보편, 승인이나 허가의 여부가 아닌 설명되지 않는 판단일 때만이, 휘발되는 유령들을 세계라는 좌표에 박아 넣는 작은 못으로 남았다. 또다시 무겁고 모날 선택들을 찾아가며, 스쳐가다가-, [👉 이 순간의 나를 확정하기] 👉이 부분을 직접 손으로 눌러 나를 고정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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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9 18:53

[청춘예찬] 실수가 쌓이면 용기가 된다

처음 이 문장을 본 사람들은 대개 가던 길을 멈춘다. ‘실수가 쌓이면 용기가 되지!’ 맞는 말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이 문장 앞에서 누군가는 킥킥거리며 흘려넘기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긴다. 문장에 붙잡힌 시선을 돌리면 실수가 곧 용기가 된다고 말을 거는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한 뼘의 잡화점과 세 뼘의 작업실이 나란히 운영되고 있는 공간 리허설이다. 리허설이라 하면 본무대에 오르기 전 연습 무대를 떠올리듯, 틀려도 괜찮은 공간으로 시작해 지금의 ‘실수가 용기가 되는 곳’이라는 슬로건이 탄생했다. 실수와 실패는 피하고 싶다 한들 피해지지 않고, 노련해진다 한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마주하게 되는,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경험들이다. 자꾸만 실수 앞에서 주눅 들었던 여러 날들을 통과하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안학교 졸업 후 홈스쿨링을 거쳐, 대학 진학 대신 준비 없이 뛰어든 게스트하우스 창업. 어린 날의 선택 이후로 끝없이 펼쳐진 시행착오의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눈앞에 놓인 똥을 찍어 먹어보고서야 실수인 줄 알 수 있었다. 실수 앞에서 펑펑 울고, 퍽퍽 화를 내던 날들, 가끔은 폭삭 주저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기어 나와 보니 실수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하나쯤의 힌트가 남겨져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지양해야 할지에 대한 단서들. 그 단서들을 쥐고 목표하는 방향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시행착오는 양분이 되고, 실수의 개수가 곧 비법의 개수와 비례한다는 사실에도 눈을 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자꾸만 걸려 넘어지는 장애물들이 늘어났다. 경험이 쌓일수록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잃기 싫은 것들이 늘어나면서 조심스러워졌다. 실수할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날도 많아졌다. 실수에 당연지사처럼 따라붙는 못나 보이는 나, 뒤처진 것 같은 자책,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두려워서였다. 자칫 삶의 경로를 잃어버릴 때마다 이정표가 되어줄 말이 필요했고, 그때마다 랩하듯 되뇌던 문장이 있었다. ‘실수는 경험이 되지, 경험은 곧 용기가 되지.’ 공간 리허설에서는 예를 들어 이런 실수와, 어설픈 용기를 감행한다. 화질이 떨어진 사진 엽서, 어설프게 만들어진 티셔츠, 먼지 쌓인 스티커. 실수들이 쌓여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본다. 양말을 좋아해 한 켤레당 제작 단가가 1만 원이 넘는 양말을 만든다. 좋아하는 문구를 곁들여서. ‘Make mistakes every day. Every mistakes makes me stronger.’ 실수하는 매일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말.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용기를 적립해 주는 양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가끔 손님들로부터 답장을 받을 때도 있다. 실수가 용기가 된다는 말을 만난 이후로 전보다 실수가 덜 미워졌다고. 내 실수도, 타인의 실수도. 공간 리허설이 자리한 이 좁은 골목부터 시작해 실수를 째려보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 조곤조곤 말을 걸고 싶다. 다들 그런 적 있지 않느냐고. 누구에게나 처음과 어리숙한 시절이 분명히 있고, 오늘의 실수는 내일의 용기가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거라고. 그러니 누군가의 실수를 언젠가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기를. △유설 대표는 지역을 기반으로 일상에 작고 큰 변화를 만드는 문화 기획을 이어가며, ‘실수가 용기가 되는 곳’ 리허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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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2 18:30

[청춘예찬] 투약자는 언제부터 위험해지는가

사건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보도된다. 뉴스는 ‘적발, 검거, 처벌’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대중은 누군가 책임을 졌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한다. 그러나 수사 현장에서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곤 했다. 사건은 정말 그 뉴스 속 순간에 시작된 것일까. 대부분은 처음부터 파멸을 예상하고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냥 잠이 안 와서요. 친구가 괜찮다고 하기에 딱 한 알만 먹었어요.” 집중력을 높이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서, 혹은 “이 정도는 괜찮다”는 가벼운 위로에 기대어 넘긴 선택들. 그 순간에 당사자들은 자신이 벼랑 끝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주변과 사회 역시 그 신호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단 한 번의 선택이 일상이 되고, 투약의 빈도가 늘며 약을 찾는 이유가 변질될 때 위험은 몸집을 불린다. 이 위태로운 과정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기록도 남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 어떤 경고음도 듣지 못한 채,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는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낸다. 나는 오랫동안 사건의 가장 끝자리에 서 있었다. 마약 수사관으로서 이미 모든 선택이 지나간 뒤, 되돌릴 수 없는 결과 앞에 선 사람들을 만났다. 분명 꼭 필요한 역할이었지만, 마음 한편엔 늘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부채감이 남았다. 현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두더지잡기 게임 같았다. 한 명을 검거해 조사실에 앉혀두면, 그 빈자리를 채울 또 다른 누군가가 어디선가 곧바로 튀어나온다. 단속의 그물망은 언제나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다크웹수사팀에서 마약 거래를 추적하고 가상화폐 지갑 주소를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무력하게 만든 건 범죄의 정교함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 방치된 거대한 공백이었다. 누군가 처음 다크웹에 접속하고, 가상화폐로 약값을 송금하던 그 결정적인 찰나를 사회는 포착하지 못한다. 사건이 터진 뒤에야 비로소 모든 경로가 선명해질 뿐이다.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 위험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우리 사회가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을 수사관과 피의자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만날 방법은 없었을까.’ 비극의 시작점은 사건이 터진 순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문제라고 부르지 않는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학생이 되기로 했다.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경험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기 위해서다. 두더지를 잡으려 망치를 휘두르는 역할에서, 두더지가 구멍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는 환경을 설계하는 역할로 삶의 방향을 틀고 싶었다. 약학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약품 전문가로서 중독과 회복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치유와 예방의 길을 만들고 싶다.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답보다 질문이 더 많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회는 늘 사건 이후에 가장 많은 자원을 쏟아붓지만 안전한 사회는 사후 대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험을 얼마나 일찍 알아차리는지, 그 위기를 얼마나 일상 가까운 곳에서 다루는지에 따라 사회의 온도는 달라진다. 이번 연재를 통해 나는 독자들과 하나의 질문을 계속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왜 늘 끝에서야 움직이는가.” 이 뒤늦은 질문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선택지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윤서원 전직 마약수사관·약학도는 검찰청 마약수사관으로 5년 8개월간 근무했으며, 현재 우석대학교 약학과에 재학 중이다. 또한 전주시 청년희망도시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역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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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15 18:41

[청춘예찬] 전북의 느린 속도는 새로운 경쟁력이다

수도권의 시계는 늘 빠르게 돌아간다. 출퇴근길 지옥철 인파와 무한 경쟁은 청년들을 소진시킨다. 모든 것이 효율과 속도가 삶의 기준이 되는 시대에 전북의 느린 속도는 그동안 낙후의 상징처럼 취급됐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해보자. 남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일과 삶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곳으로 전북의 가치를 다시 정의해 보면 어떨까. 청년들이 전북을 떠나는 이유는 느린 속도 때문은 아니다. 고요함이 자칫 도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의 삶이 반드시 성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에서는 출퇴근에만 하루 3시간을 길 위에서 버리지만, 전북의 청년은 그만큼의 시간을 손에 쥔다. 이 시간을 각자의 전문성 심화에 몰입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 기술이 발달할수록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깊이에서 난다. 누구나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결과물과, 오랜 시간 축적한 깊이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물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데 시간적인 여유가 무슨 소용이냐는 반문도 있다. 출퇴근 시간을 아껴 경쟁력으로 만들려면 그 시간을 채우는 밀도가 달라져야 한다. 대기업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직접 양질의 상품이 되어 전국을 향해서 수출하면 된다. 디지털 기술로 시공간의 제약도 많이 사라졌다. 전북은 느린 곳이 아니라 깊게 파고들기 좋은 곳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정책의 초점도 몰입을 위한 인프라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 우선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집중 업무 거점 조성이다. 전북특별법상의 특례를 활용해 구도심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청년들이 일정 기간 체류하며 성과를 내는 연구소형 업무 단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주거와 업무가 결합한 공간에서 청년들은 업무, 연구와 개발에 전념할 수 있다. 전북 소재 기업들과 연계하여 직장인 청년도 출장 형태로 이 공간을 쓰게 하면 지역 내부의 수요도 생긴다. 둘째로, 청년들의 시간을 뒷받침할 커리어 배당 제도가 필요하다. 지금의 청년수당이 생활비 보조에 머무른다면, 커리어 배당은 역량 투자다. 각자의 과제에 몰입하는 청년에게 일정 기간 생활 안정 자금을 지원하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지역과 공유하는 방식이다. 어떤 분야이든지 모두 전북의 소중한 자본이 될 것이므로, 심사 과정에서 직군별 특수성을 반영한 다각적인 지표도 필요할 것이다. 청년이 전북을 떠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려면, 지역에서 성장하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느림이 고립으로 변질되지 않게 할 연결망이 필요하다. 전북에 머무는 각 분야의 청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경험을 나누는 네트워킹 문화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외부 인재가 전북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정착하고, 지역의 청년이 더 큰 무대와 접속하도록 돕는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다. 고립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청년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전북의 깊이 속에 침잠할 수 있다. 전북이 청년에게 약속해야 할 것은 위로가 아니라 성장의 조건이다. 속도 대신 깊이를 선택한 청년이 독보적 가치를 만들도록 지원하는 것, 시간이 곧 실력으로 환산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전북의 느린 속도를 경쟁력으로 바꾸는 담대한 실험을 전북이 먼저 시작하길 바란다. 속도에 지친 청춘이 전북에서 자기만의 단단한 깊이를 만들고, 그 깊이로 밖을 향해 경쟁하는 풍경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김원오 변호사는 현재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입법·법률고문,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전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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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8 18:08

[청춘예찬]두려움이 지루해질 때까지 숨을 불어 넣기

매일 모르는 일들이 생긴다. 나름 작가와 독립큐레이터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많은 작품들을 제작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다양한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면 당연한 것들은 없고 매번 새롭고 낯선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조금 익숙하고 뭔가 아는 것들이 많아질 법도 한데 아직도 매번 막막하다. 이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을 만도 하지 않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모르는 것들을 유독 꺼려 했다. 게임도 매일 똑같은 과제를 해야 하는 게임, 친구도 매일 같은 친구를 만나 노는 걸 좋아했고, 여행도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학년이 올라 반이 바뀌게 될 때마다 초조해지고, 학교를 넘어갈 때마다 두려웠다. 어릴 때 쓱 지나가는 여드름같이, 다들 나이가 들면 무뎌지면서 해결이 된다고 했지만, 해결은 되지 않았고 아직도 낯선 것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저씨로 지내고 있다. 왠지 내가 모르는 일들은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아 영원히 도망 다녀봤지만, 막상 내가 알아야 할 순간에 모르는 것만큼 속이 터지는 일도 없었다. 이제는 낯섦을 마주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 이 불안들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지금은 깜짝깜짝 놀라는 낯선 일들이 당연스럽고 쉬운, 지루한 일이 되어 있을까? 이제는 매일 모르는 일이 계속 생겨나는 시대가 됐다. 시대가 변화하는 속도가 사람이 적응하는 속도를 초월해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청년이라고 하면 동시대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시대를 이끄는 것처럼 기대되지만, 기성세대들이 기존에 쌓아 놓았던 지난 삶들과 너무나 다른 새로운 시대에 낯설어한다면, 청년들은 지난 삶이라고 할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매일 모르는 시대에 실시간으로 적응해야 한다. 모두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려 나온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막상 대책 없이 무작정 달려들 수는 없다. 언제나 내가 모르는 것들이 있고, 섣불리 결정했다가 수습되지 않는 큰 사고를 칠 것 같기도 하고, 조금만 더 고민하고 깊게 생각했을 때에 훨씬 더 좋은 답안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 어떻게 알 수 있고, 모르는 것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퓌론주의(Pyrrhonism)의 판단 유보는 아직은 내가 어떤 것도 알기 어렵다는 것을 갖고 정신적 평정을 유지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고, 현상학적인 에포케(epoché)는 당장 그 현상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만을 대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이해가 아닐 수도 있다)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하고 모르는 둘 다, 정말로 무언가를 ‘알 수 있다’ 라는 입장은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것도 알기 힘들거나 선입견에 싸여있다고 해도 ‘알 수 있다’ 라는 것, 알고자 하는 의지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스럽게 따라붙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낯선 것들을 더 잘 하고 싶은 마음, 모르는 것들을 명료히 알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그동안 ‘모르는 것’을 두렵게 느끼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명쾌하게 알 수 있을까? 시작이 두렵지 않은 날이 다가올 수 있을까? 모르는 일에 놀라지 않아도 되는, 지루할 수 있는 나날이 오기를 바란다. △한준 작가·독립큐레이터는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기획, 도슨트, 예술교육, 프로젝트 등 전시 컨텐츠 전반을 다루는 독립큐레이터로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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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17:11

[청춘예찬] 네 운명을 사랑하라!

벌써 한 해의 끝자리에 서 있습니다. 한 해의 끝자리에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며, 제 마음을 스쳐 가는 생각들을 바라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일까요? 저 자신을 그리고 더 나아가 제 이웃과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저 자신은 물론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어느 새해에 외친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떠올려봅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니체의 말대로, 아모르 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겁니다. 비록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힘들더라도요. 우리는 흔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며 절망하기 일쑤인데, 니체는 무엇도 탓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운명을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다면서요.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를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자 예술가였던 추사 김정희입니다. 절망스러운 운명을 아름다운 삶으로 바꿔놓은 사람이지요. 그는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 없이 잘 나가다가 늙은 나이인 55세에 제주도로 귀양 가선 9년을 살게 됩니다. 집안, 지위, 실력 어느 하나 남 부러울 게 없다며 떵떵거리다가 한순간에 제주도로 쫓겨난 것이지요. 저 높은 곳에 있다가 저 밑바닥으로 수직 낙하하는 아픔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하지만 추사는 제주 유배 생활이 고통스럽다며 남은 삶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를 남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문득 생각해 봅니다. 만약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가지 않았더라면, 세한도라는 명작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세한도라는 명작은 출세의 길이 끊긴 혹독한 시련과 깊은 고독 속에서 각고의 노력과 인내로 완성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추사에게 제주도 유배는 절망스러운 운명만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오히려 학문과 예술의 혼을 활짝 피울 수 있게 한 기회였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요? 아무튼 절망스럽다고 생각한 운명을 아름다운 삶으로 바꿔놓은 추사는 저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운명의 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요. 니체가 왜 자신의 운명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니체의 말대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마지못해 견디지 않습니다. 무조건 나쁘다고 배척하지도 않고요. 오히려 그 운명을 아름답게 바라보려고 애써 노력합니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못 되면 못 되는 대로, 모두 자기 삶을 살찌우게 만드는 힘을 키워준다면서요. 니체와 추사를 본받아, 저도 제 운명을 더욱 사랑하고 긍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 절망하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하면서요. 새해에는 저 자신과 이웃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구나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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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25 17:42

[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⑥다시, 쓰는 마음으로

문구점의 겨울은 유난히 조용하다. 날이 추워질수록 골목도 한층 느려지고,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의 걸음에도 차분함이 묻어난다. 손님이 찾아오는 날보다 한적한 시간이 길어지며, 우리도 자연스럽게 올해를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기운을 감지한다. 이맘때 문구는 단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의 도구가 된다. 펜을 쥐는 손끝에 결심이 담기고, 종이를 펼치는 행위 안에 되돌아봄이 있다.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때로는 털어놓기 위해, 종종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기록한다. 짧은 메모 한 줄에도 우리의 일 년이 고스란히 내려 앉아 있기에, 아무렇게나 휘갈긴 흔적에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힘이 느껴진다. 쓰는 일은 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청춘예찬’에서 문구점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골목의 역사, 이웃 어르신들, 우리가 만든 물건 이야기까지 매달 한 편씩 써내려가며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정리하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늘 긴장과 망설임으로 가득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동안에는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져 있었다. 우리 문구점도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 허락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준비하는 공간. 천천히 앉아 펜을 드는 마음, 종이를 마주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처럼, 모두가 조금씩 더 선명하게 나아가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는 곳.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잘 흘려보내고 다가올 날들을 맞을 마음의 힘을 기르는 곳으로. 문구는 결국 우리의 하루와 함께 하는 도구이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고 싶은 바람이 종이 위에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렇게 적힌 문장들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모양을 비추어주고, 어느 날엔 소리 없는 응원처럼 조용히 우리의 곁을 지킨다. 지나온 날들을 천천히 되짚으며, 다가올 계절의 문 앞에서 우리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기록은 언제나 작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었고, 문구는 그 곁을 지켜주는 도구였음을 알아차리며.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다음 해의 첫 장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래서 다시, 자세를 바로 앉으며 펜을 든다. 쓰는 일은 언제나 시작으로 이어지니까. 다시 나아가기 위한 용기를 안겨주니까. 고심하며 눌러 쓴 문장 위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느끼며. 김채람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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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8 17:57

[청춘예찬] 만화로, 전북으로 돌아오는 길

“여기에도 풍년제과가 있어요?” 타지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어느 날 기숙사에서 간식으로 치즈케이크를 하나씩 받았다. 치즈케이크 위의 초콜릿 장식에 ‘PB’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룸메이트에게 ‘풍년제과’가 여기에도 있냐고 물었다. 그는 풍년제과가 무엇이냐고 되물으며 ‘파리바게뜨’라는 브랜드라고 알려주었다. 전주를 프랜차이즈 빵집도 없는 시골이라고 생각했겠다 싶어 얼굴이 홧홧했다. 전주에서 10년을 떠나있었고, 돌아온 지는 7년이 되어간다. 타향에서 나는 주변인이었다. 귀향해서도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간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전주를 사랑할 수 없었다. 꿈꿔오던 일을 접고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귀향했으니, 내 안에서 귀향은 곧 실패라는 그릇된 공식이 세워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꿈의 흔적은 대부분 처분하거나 서랍 깊이 밀어 넣었다. 몇 년간은 만화를 읽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애정은 어쩔 수 없어, 결국 만화에 대한 글을 왕왕 쓰게 되었다. 만화를 보면 행복하다가도 가슴 한편이 시큰시큰 아팠다. 어디서고 나는 주변인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청춘예찬 필진으로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전북을 배경으로 한 만화를 소개하고자 작품을 찾았다. 만화에서 친숙한 지명과 장소를 만나는 것은 생경한 느낌이었다. 혹여 칼럼을 읽고 작품을 찾아보고자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 독자가 접근하기 쉽도록 2020년 이후 발표작으로 선별했다. 정보력이 부족한 탓인지 작품을 찾는 일이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드라마로 제작 중인 유명 웹툰부터 독립만화까지 빛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청춘예찬을 통해 많은 분께 만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올해 가장 큰 행운이었다. 금산사에 가면, 미륵전에서 기도를 드리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해송을 생각했다. 군산 앞 바다에서는 <고래별>의 수아가 의현을 구하던 모습을 상상했다. 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동학혁명기념관에서는 <향아설위>의 향아가 떠올랐다. 정읍 천변을 거닐면서는 <내가 살던 고향은>에서 작가가 가족과 함께 컵라면이며 아이스크림을 팔던 장면을 풍경에 겹쳐보았다. 내가 좋아한 만화의 인물들이 이곳에서 울고 웃고 숨 쉬었다고 생각하면 장소의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누군가 마음을 담아 이 장소를 그리고, 그 작품을 읽은 또 다른 누군가가 이곳을 애정으로 기억하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어쩌면 만화가 전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자긍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글에 바람을 담았다. 가을이 가장 깊어진 날, 한옥마을에 갔다. 오목대로 올라가는 길 곳곳이 노란 은행잎으로 덮였다. 한참을 오목대에 앉아 한옥마을을 내려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중심가를 벗어나 교동 골목골목을 걸었다. 전주에서 태어나 20년이 넘게 살았음에도 풍경이 낯설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달이 떴다. 쌍샘광장 맞은편의 휴식 공간에는 초승달 조형물이 놓여있었다. 달이 둘이나 보이니 운치가 참 좋았다. 문득 전북에, 전주에 대해 더 많은 만화가 그려지면 참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길 기다리며 만화를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첫 연재 글에서 <외계인 투어>를 소개하며 내가 썼던 문장은 일종의 예언이었다. “전주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다시 사랑하는 일로 이어지는 셈이다.” 마침내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박근형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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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1 19:09

[청춘예찬] 그땐 그게 전부였다 –이별편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별의 계절이다. 이별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건 졸업식이다. 졸업식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래 ‘이젠 안녕’. 네 번의 졸업을 거쳤음에도 친구들과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느라 바빠 노래 가사에 집중한 적이 없었다. 우연히 가사를 볼 기회가 있어 곱씹어 보니 노래는 담담한 어조로 이별을 전하고 있었다. 서로 갈 길을 위해 멀어지는 안녕은 ‘다시 만날 거라는 약속’을 남긴다. 그러나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약속 한 번 잡기가 참 어렵다. 대학생이 되고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한 달 전부터 달력을 펴서 함께 날을 정해야 한다. 학교 끝나고, 학원 끝나고 잠깐 떠들던 그 시절의 우리가 아니었다. 현실을 경험해서일까. 이별은 ‘쉽게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느 때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같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별도 다가올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는 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마음의 한 부분이 뚝 떨어져 나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별이 두려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책에는 여러 이별이 등장한다. 친구와 이별, 첫사랑과 이별, 애완동물과 이별, 가족과 이별 등이다. 이별은 피할 수 없으니 견뎌야 한다는 사실. 이 사실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새파란 청춘이 가면 성숙한 어른 삶이 오듯이’라는 책 구절처럼 우린 이별과 함께 살아간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간이고,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친구와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함께했던 사람과 볼 수 없는 일. 이런 크고 작은 이별 중 누군가는 감당하기 힘든 이별을 경험했을 수 있다. 오늘은 전북대신문 퇴임날이다. 신문사에서 활동하며 매번 기사 마감에 쫓겼다. “해뜨기 전에 집 들어가면 다행”이라고 말하며 마감날은 그날 남은 마지막 에너지까지 쏟고 기진맥진 상태로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문사와 이별을 하게 된 이 순간. 그때 그 전부가 얼마나 소중하고 재밌던 순간인지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이별은 늘 나에게 아쉬움만 준 것은 아니다.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연인과의 이별에서 사랑을 배웠고, 함께 웃으며 놀던 친구와의 이별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그때 그게 전부인 줄 알았던 관계의 이별 속에서 또 다른 소중함을 배웠다. 이렇게 이별을 통해 성장하고, 한 걸음 나아가는 내가 되기도 했다. 나는 오늘 또 한 번의 안녕을 준비한다. 바로 ‘청춘예찬’과의 이별이다. 이번 6편의 글을 쓰는 일이 늘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퇴고에 허덕인 날도 있었고, 마감과 시험, 발표 일정이 한꺼번에 몰려 글을 붙잡고 있는 것조차 버거운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글을 쓸수록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소설책과 시집을 읽으며 공부했다. 내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했고, 점차 내 글에 애정이 생겼다. 그렇게 쓰고 고치고 다시 읽으며 어제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글을 끝으로 연재는 마무리되지만, 필요한 순간이 오면 또 다른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나는 그동안의 여러 이별에서 그랬듯, 이번 이별 또한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리라 믿는다. 6번째 글을 마무리하며 ‘그땐 그게 전부였다’ 연재에 안녕을 고한다. 송주현 전북대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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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4 19:07

[청춘예찬] 매우 어렵고 힘든 일

공부 모임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일러주는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인 평정심(平靜心)에 대해 배웠습니다. 평온한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거지요. 어떻게 해야 이런 평정심에 이를 수 있을까요? 에피쿠로스는 먼저 마음의 평정을 방해하는 게 무엇인지 밝힙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것들을 없애서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무엇이 우리를 괴롭게 만들까요? 에피쿠로스는 두 가지가 우리 마음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하나는 욕망의 좌절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욕망의 좌절은 무언가 내 뜻대로 안 돼서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겁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거고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제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에서 몇몇 회원이 갑자기 못 온다는 겁니다. ‘다른 약속이 생겼다, 깜박했다’라는 이유를 대면서요. 처음에는 그런 회원들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에 기분이 나빴던 건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갑자기 못 온다는 회원들의 말과 행동이 공동체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했던 겁니다. 행여나 애써 가꿔온 독서 모임이 깨질까 봐 두렵고 불안했던 거지요. 그야말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욕망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겪은 겁니다. 이런 욕망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왜 생길까요? 에피쿠로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가 괴로워하는 건 독서 모임 회원들이 모두 저처럼 성실하게 꼬박꼬박 나와야만 한다고 바라기 때문이지요. 애써 가꿔온 독서 모임이 깨지면 안 된다면서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헛된 착각을 깨부술 수 있을까요? 어두컴컴한 방에 환한 불을 켜듯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보는 지혜를 기르면 됩니다. 모든 게 환하게 보이면 더 이상 부딪힐 일이 없게 되지요. 지혜를 길러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으면 그만큼 괴로운 일들도 줄어들고, 마음의 평정에도 더 가까워질 겁니다. 이런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 공부 모임에서 배운 가르침 두 가지를 떠올려봅니다. 하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본래 이 세상에 내 힘으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쓸데없이 헛된 욕심과 기대를 부지리 말라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잖아요. 공수래 공수거 시인생(空手來 空手去 是人生),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라고요.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모두 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잠시 맡아서 가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내 밖에 있는 외부 세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요컨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평정심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욕망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때 내면이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의 평정에 이를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기 뜻대로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곧 모든 게 내 마음과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헛된 욕심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렇게 늘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헛된 착각과 욕심에서 벗어나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하겠지요.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요. 구나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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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27 17:57

[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⑤문구 너머의 풍경

문구점을 시작하며, 우리는 전주의 일상과 골목의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만든 물건이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써 내려갈 수 있는 도구이길 바랐다.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제품이 단지 소비의 대상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기록의 틈새에 즐거움을 더하는 스티커, 페이지 위로 번지며 소중한 순간을 환하게 비춰주는 펜과 색연필, 책을 읽다가도 마음에 드는 문장으로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세워두는 작은 이정표 같은 인덱스까지. 아주 작고 가벼운 물건이지만, 읽고 쓰고 기록하는 행위는 결국 나를 돌보는 일과 닮아 있다. 우리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제품들도 그러한 감정의 궤적 위에 있다. 단순히 예쁜 문구를 넘어, 지역의 일상과 장소, 정서를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그 마음을 담은 첫 시도는 ‘클립 마이 시티(Clip my city)’였다. 덕진공원의 오리, 전주천의 버드나무, 팔복동의 이팝나무 철길 등 우리가 사랑하는 풍경들을 일러스트로 표현해 엽서로 제작했다. 계절이 지나 풍경이 바뀌어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오래 머물며 기억을 환기시키는 물건이길 바랐다. 요즘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특히 좋아하는 제품은 ‘링 마이 시티(Ring my city)’다. 여행자의 기억을 모아 하나의 고리에 완성하는 열쇠고리다. 전주천의 물결, 향교의 은행나무, 완산동 꽃동산의 겹벚꽃과 같은 아름다운 장면과 전주 초코파이, 콩나물국밥의 콩나물까지. 모두가 같은 도시를 여행하지만 저마다의 기억은 다르다. 이 조각들은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의 ‘나만의 전주’를 완성해주는 작은 조각들이다. 곧 문을 여는 전시 「백지: 물과 바람의 시간」은 그동안 관찰하고 수집한 전주 한지를 소재로 한 작은 아카이브이다. 백 번의 손길을 거쳐 백지라고도 불리는 한지의 여정을 쫓으며, 우리의 삶과 닮아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대표적인 전주의 특산품을 우리 식대로 재해석하고, 그 이야기를 엽서와 노트에 담으며 우리가 경험한 조각들이 누군가의 손에서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문구는 도구이자 기억이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손에 쥐어지는 물건을 통해 마음속에 남는 장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문구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오래 간직하게 하는 무언가에 가까워지고 싶다. 아무 말 없이 엽서를 고르던 손님, 진지한 표정으로 연필과 펜을 써보며 고민하는 사람들, ‘여기가 진짜 전주 같아요’라고 말해주던 여행자. 그 순간들마다 우리는 문구를 통해 도시의 결을 느끼고 마음이 닿는 지점을 발견한다. 이따금 상상한다. 누군가의 가방에, 책상 위에, 서랍 한 켠에 오래 남아 있는 우리의 물건이 언젠가 전주의 계절 한 장면을, 골목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종이 위에 내려앉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기를. 그저 물건을 만들고 파는 일을 넘어, 이 도시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하는 방식이 되기를. 그러니까, 문구 너머의 풍경까지도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김채람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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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20 19:00

[청춘예찬]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개벽의 불씨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의 전시장 입구에는 박홍규 화가의 <후천개벽도>를 조형으로 옮긴 작품이 볕을 쬐고 있다. 그 시대의 장삼이사들이다. 늠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년에, 돼지를 지게로 지고 있는 어르신도 있고, 아이를 업은 아낙도 있다. <후천개벽도>의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혹은 그런 희망을 마음에 품은 듯 웃고 있다. 그 앞에서 나는 <향아설위>를 떠올렸다. 지난 2023년, 동학농민운동 13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웹툰 공모전에서 이지현 작가의 <향아설위>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향아설위>는 사람이 곧 하늘이며 그러므로 내 삶의 주인은 ‘나’임을 깨닫는, 인내천(人乃天)·양천주(養天主)의 과정을 만화로 풀어냈다. 동학의 교리인 ‘향아설위’는 벽(조상)을 향해 제사를 지내지 말고 조상의 후손인 나를 위해 제사 지낼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을 향해 밥그릇과 위패를 놓고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는 향아설위의 뿌리에는 동학의 민본주의 정신이 있다. <향아설위>는 1889년 군산에서 시작하여 정읍으로 이야기의 터를 옮기고 고부 봉기, 황토현 전투, 우금치 전투를 겪으며 역사의 흐름을 쫓아간다. 부패한 조정의 압정에 시달렸던 백성들은 동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나 총을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 앞에서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등장인물 정시심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인 전라도를, 일제가 “지레 겁먹은 개처럼 대대손손 반역의 땅이라 능멸하며 짖어대”리라고 예견한다. 대사의 글씨 크기를 키우고 굵게 처리하여 강조한 것은 이것이 예언을 넘어 장래 확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남은 동학교도들은 목숨을 부지하기도 급급한 처지가 되어 후천개벽은 후일을 기약해야 할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개벽은 동학의 사상이 사람의 마음에 당긴 불씨였다. 동학은 사람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며,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가르쳤다. 이는 존재를 대하는 관점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온다. 그럼으로써 개벽은 공명정대한 새로운 세상을 뜻할 뿐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으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 그렇다면 향아의 마지막 대사 “희망을 품은 자가 희망의 씨앗”이라는 말대로, 후천개벽은 어디엔가 있는 것도, 약속된 미래도 아닌, 마음이 개벽한 자가 열어갈 수 있는 것이 된다. 동학농민혁명과 독립운동에 이어 군부독재 시기의 민주화운동, 2017년 이후의 광장에서의 촛불집회까지 민중으로부터 위로 일어난 운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인간의 존엄과 민주적 삶, 그리고 부조리의 변혁에 대한 열망에 닿아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 연대를 이룩하고 사회적 실천을 통해 현실을 바꾸어왔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 힘이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불꽃에 적든 많든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오늘의 우리는 그 불꽃을 소중히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학의 사상은 좁게는 평등에 기반한 민주주의에서 넓게는 경물(敬物)에 입각한 생태주의를 일러주고 있다. 그러니 오늘 <향아설위>와 함께 동학의 가르침에 잠시나마 귀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와 네가 모두 하늘의 씨앗을 품었으니, “꽃에도 천지가 들어 무겁습니다.”라는 경인의 말에는 응당 거짓이 없다. 박근형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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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13 18:30

[청춘예찬] 그땐 그게 전부였다 – 정신건강편

한 가지 일에 집중이 안 된다, 집중이 흐트러져 실수가 잦다,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산만해진다, 중요한 일정이나 약속을 자주 잊는다. 이 중 3개 이상 공감된다면 당신은 성인 ADHD일 수 있다. 성인 ADHD는 주의력 부족과 충동 조절 어려움이 성인기까지 지속되는 정신장애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20대가 자신의 상태를 병으로 여기지 못한 채, 그저 “내가 게으른가 보다”라고 자책하며 넘기고 만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고 어김없이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신입생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과에서 1등까지 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학점을 잘 받았다. 처음 받아본 ‘1등’은 성취였고, 동시에 앞으로도 해야 하는 기준선이 돼버렸다. 성적에 대한 욕심이 커지자, 시험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시험 기간에 스터디 카페 100시간을 끊으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수업 끝나면 바로 공부하러 가서 오후 11시 40분이 지나야만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공부는 지식을 늘리기 위한 일이라기보다 나의 노력을 증명하는 일이 돼 있었다. 헬스, 러닝 같은 운동은 시험 기간 때 사치였다. 한 번 가서 운동하고 씻으면 기본 2시간이나 뺏긴다는 생각에 ‘아 시험 끝나고 가면 돼’라며 미루게 됐다. 수업, 스터디 카페를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몸과 마음의 피로는 더욱 쌓였다. 스트레스로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졌지만, 그것을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부담감을 안고 공부했다. 시험을 준비하던 중 ‘정신장애’를 공부하게 됐다. 정신장애는 생각, 감정, 인지, 행동 등에 어려움을 겪어 일상생활에 현저한 제약이 생기는 상태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불안장애, 기분장애, 충동조절장애, 물질남용장애가 있다. 주로 청소년기나 성인 초기 발병된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복지부 조사를 따르면 ‘성인 정신질환 발병의 50% 이상이 14~24세에 시작됐다’라고 밝혔다. 그중 ‘불안장애는 정신장애의 일환으로 명백하지 않은 위험이 존재할 때 공포, 위협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임을 알게 됐다. 많은 양의 시험 범위를 다 외울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과 싸우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뻐근한 어깨를 펴고 스터디 카페를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3km를 뛰었다. 숨이 차고 땀이 났지만, 머리는 개운해졌다. 학창 시절부터 ‘힘들어도 묵묵하게 버티는 것’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사는 것이라고 배웠다. 고등학교 때에도 “참고 공부하면, 대학 가서 원하는 것을 다 하면서 살 수 있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정신장애는 누구나 언제든 걸릴 수 있다. 발병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불안정한 미래, 관계의 변화,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쉬지 않고 버티면 생길 수 있다. 어쩌면 버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회복 루틴을 찾는 것일지 모른다. 20대 초반은 가장 불안정하고,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시기이다. 어떤 일이든 미래를 위해 좋은 성과를 내고자 했다. 이번 시험 기간을 지나며 버티기만 하는 삶이 꼭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점을 잘 받고 싶다는 욕심에 지쳤던 나에게 러닝이라는 작고 소박한 회복 루틴이 생겼다. 앞으로는 ‘잘 버티는 청춘’이 아닌 ‘잘 회복하는 청춘’이 되고 싶다. 송주현 전북대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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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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