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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이해를 통한 주민참여가 마을의 변화를 만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마을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마을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주민일 것이다. 또한 생활 속에서 불편하고 필요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도 마을의 주민일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사업 대상지 주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렇기에 지역, 마을의 모습과 현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민들과 회의, 워크숍, 인터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소통·공유하며 사업을 진행한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의 관심과 참여는 중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이 마을의 주체로서 참여할 때 잘못된 이해로 인해 공동,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닌 개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의견은 자칫 잘못된 관습이나 이해관계로 사업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어려움을 줄일 수 있을까?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는 주민의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을 통해 그들의 의견과 참여가 가벼운 것이 아닌 우리 마을이 변화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그린신복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서는 주민교육사업으로 도시재생대학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고령인구가 많은 우리 마을의 특성상 정형화된 이론학습형 교육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 마을은 단계별 프로그램(기본교육-우리동네디자인-주민공모사업)을 통해 기본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학습과 더불어 문제점을 도출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실행해 볼 수 있는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작년 도시재생대학은 기본과정 '도시재생 사례 들여다보기', 워크숍 '우리동네 현황 파악하기', 우리동네디자이너 '마을문제 인식과 주민의식 조사', 주민공모사업 '주민참여 여가교실'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워크숍 '우리동네 현황 파악하기'에서는 우리 마을의 문제점 등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이야기하였다. 그 중 골목길 환경개선, 쓰레기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먼저 우리 마을 쓰레기 정거장을 직접 청소해 보았다. 또한 진행하는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이후 결과공유회 때 주민들과 함께 영상을 시청하며 소감과 평소 생각했던 지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직접 실천해 보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통해 평소에 자칫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이 함께 가꾸어 나갈 때 변화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으로는 '주민참여 여가교실'을 진행하였다. 주민들이 모여 평소 일과시간 중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 보자! 라는 니즈로 시작하게 되었다. 마을 내 단순한 여가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우리 다음에 볼 때까지 잘 지내고, 다시 만나자”라며 무료한 생활 속에 안부를 물으며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소통·만남의 장이 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교육들은 주민들에게 올바른 이해와 의식을 싹트게 해 점진적으로 마을에 좋은 영향력과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도시재생은 주민의 관심과 책임감, 성숙한 참여가 있을 때 우리 지역, 마을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동행할 것이다. /박주연 팔복도시재생지원센터 선임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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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3 15:19

청년농촌활동가들이 뭉치면 생기는 일!

“내난마을로 내가 시집와서 50년 만에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고, ⋯⋯ 앞으로도 모든 마을 사람들이 더욱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마칩니다.” 잔잔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마이크를 잡은 할머니의 멘트가 나오고 잠시 후 마을 주민분들의 흥겨운 노랫소리로 가득 찬다. 지난해 익산시의 성당면에 소재한 내난마을이라는 곳에서 열린 작은 마을 축제 “주민 재능잔치 노래자랑” 기록영상의 한 장면이다.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 사회적 경제공급기반 조성을 위한 공모사업에 선정된 익산시는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 9명을 선발하여 청년농촌활동가로 위촉하고 역할을 부여하였다. 사회적경제 관련 서비스의 혜택을 받기에는 도심지와의 떨어진 거리와 비례하듯 농촌의 주민분들, 특히 어르신들에게는 그 수혜 가능성이 꽤 희박하다. 마을공동체 사업이나 체험‧휴양마을과 같은 사업을 운영하는 특출한 이장님이나 위원장님이 있거나 그 마을에 유능한 청년농업인, 혹은 오지랖이 넓은 지역주민이 있지 않고서야 일반적인 마을에는 사회적 서비스나 문화 혜택을 받기에 참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농촌 마을의 현장을 찾아가 주민들의 소리를 직접 듣고 도움이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제공하거나 지역자원 연계가 필요한 곳에는 관련 기관 및 단체와 연계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바로 농촌청년활동가들의 역할이다. 내난마을의 행사 또한 그러한 차원에서 활동가들이 지원하러 갔었고 행사 준비과정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 유튜브에 업로드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는데 할머니가 신나게 노래한 뒤 마이크를 놓지 않으시고 하신 그 말씀의 여운이 아직도 내 안에 진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농촌모니터링, 농외소득, 청년인큐베이팅분야로 활동가들을 나누어 각 영역에 특화된 서비스를 지난해 7월부터 공급하고 있는데 농촌모니터링 활동은 농촌의 가장 중심소득원인 농산물 생산 농가들을 위한 서비스로 익산시의 마을전자상거래지원사업과 연계하여 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홍보마케팅 지원이 가장 큰 임무이다. 또한 농외소득 활동은 농촌의 농산물 이외에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 농경문화자원, 자연생태자원, 전통문화자원 등 공동체의 가치와 역사적 흐름이 담겨있는 자원들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농외소득 창출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체험‧휴양마을의 활동을 돕고 있다. 현장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체험프로그램 업그레이드 및 신규개발을 위한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작업을 하거나 고객 서비스 개선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청년인큐베이팅활동은 먼저 농촌 현장에 절실히 필요한 청년 인적자원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활성화를 위한 활동과 관련 거버넌스 구축을 바탕으로 관계기관들의 협조체계를 마련하여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농촌에 필요한 인적, 물적자원을 공급하는 일이다. 단순하게는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돕기 위한 상담 활동부터 지원사업 신청을 위한 사업기획 컨설팅은 물론 단독으로 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해 관련 기관들을 연계해주는 매칭 서비스까지, 생각보다 농촌 현장에 필요한 요청들이 많아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겉으로 보기에 농촌에 청년들이 꼭 도움만 주는 건 절대 아니다. 할머니의 고백이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것처럼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되고 우리는 그만큼 더 자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게 아닐까? /박넝쿨 농촌기업브랜드 신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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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6 15:04

‘기부’ 말고 ‘공유’할까요?

누구나 한두 개 정도의 취미나 관심사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 각자의 관심사를 풀어갈 것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 정보를 찾거나 인터넷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학원이나 공방에 등록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개인의 취미, 관심사인 만큼 이를 해소하는 방법 역시 개인적인 범위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완주군은 여건 상 개인이 적극적으로 취미활동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완주군 읍면마다 가진 문화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완주라도 어떤 지역은 도시 중심가이고, 어떤 지역은 대한민국 8대 오지 중 한곳이라 불린다. 그래서 일부 지역의 주민들은 취미활동을 위해 전주, 대전 등 완주군 이외의 지역까지 움직이는 수고를 겪어야만 한다. 필자가 2018년 처음 완주로 출근해 주민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도 바로 이와 같은 하소연이었다.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지역의 문제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허투루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이지 효과적인 대응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나온 대안은 ‘재능’을 ‘공유’할 수 있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누구나 관심사를 가지고 있듯이, 누구나 하나쯤 잘하는 부분이 있다. 개중에는 나만의 노하우라고 할 만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개인이 지닌 노하우를 원데이 클래스로 꾸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면 자연스럽게 주민 주체 문화 향유기반이 조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이 사업의 내용은 간단했다. 내가 가진 재능(취미, 관심사, 노하우)를 원데이 클래스로 기획하고, 내가 클래스의 강사가 되어 이웃에게 재능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때 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것은 약간의 재료비와 수강생 모집에 필요한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이 사업은 원데이 클래스 지원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핵심은 강좌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만남과 교류 과정에 있다. 하지만 초반에는 주민들의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기부가 아니라 ‘공유’라고 안내를 해도 무엇이 다르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필자가 다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활동을 베풀기 위해 하시는 건가요?’ 그럼 백이면 백 ‘아니, 내가 즐거워서 한다’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어진다. ‘기부’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나의 희생과 헌신을 전제로 한다. 희생과 헌신을 담보로 한 기부는 널리 확산되거나 지속되기 어렵다. 하지만 대등한 관계 안에서 서로가 필요로 하는 재능이라고 하는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즐겁다. 즐거운 일은 널리 퍼지고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내가 재능공유의 수혜자이지만 내일은 내가 재능을 나눠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일종의 순환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올해로 5년차를 맞는 이 사업을 통해 많은 변화를 느낀다. 많은 주민들이 더 이상 취미활동을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완주는 일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다고 자부심에 차 말을 한다. 재능공유를 통해 완주군민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문화향유기반이 조성된 것이다. 지속, 자립 가능한 힘. 공유가 가진 가능성을 믿는다. /장보람 완주 문화도시지원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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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9 16:27

용산역 기차선로에 앉아있던 남자

오래전 일이다. 필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그 날도 교육을 마치고 익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용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며 의자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멀지 않은 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도와달라는 말에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현장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고, 기차선로에 어느 남성이 앉아 있었다. 필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차선로에 내려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몸에서 술 냄새와 땀 냄새가 났었고 흙먼지가 잔뜩 뒤덮여있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현장일을 방금 마친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선생님, 여기에 왜 이러고 계세요?” “어. 여기서 죽을려고.” “오늘 무슨 힘든 일이 있으셨어요?” “어 힘든 일이 있었지” 그의 목소리에서 깊은 인생의 고뇌가 느껴졌다. 조용히 앉아서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던 찰라 저 멀리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야기를 멈추고 재빨리 그의 뒤에서 허리를 붙잡고 플랫폼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삶의 의지를 포기한 그의 몸은 물먹은 스펀지 마냥 축 늘어져 쉽게 플랫폼 위로 올리지를 못했다. “도와주세요. 누가 좀 같이 도와주세요!” 필자의 소리를 듣고 두 명의 시민이 달려왔다. “저기 선생님은 역무원을 빨리 찾아서 여기로 와주시라고 해주세요. 여기 선생님은 저랑 같이 이분을 끌어올려주세요.” 다행히 기차는 우리가 있던 선로로 오지 않고 다른 선로를 이용하는 기차였고, 그 남성도 무사히 플랫폼 위로 끌어올려졌다. 잠시 후에 역무원이 도착을 했다. “선생님 여기서 뭐하세요. 저 따라오세요”라며 그 남성을 데려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터벅터벅 역무원 뒤를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남성 또한 분명 한때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꿈과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 선로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남성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과연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이 마무리 된 후에 극도의 긴장감으로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남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필자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도우러 온 사람이 두 명 밖에 없구나’ 생각하며 이해는 했지만 씁쓸함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최근 언론을 통해 2030대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과 고독사하는 청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지자체에서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청년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또는 정서적 어려움 때문에 상담을 받고 싶지만 기관에 방문하기까지가 문턱이 참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마음 편히 상담을 받고 위로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과 원스톱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역할도 중요하다. 용산역 선로에 앉아있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달려왔던 것처럼, 우리 주변의 청년들을 살펴보며 청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어른이 되어주자. /최준호 원광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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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2 16:16

고유한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지역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지역과 마을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고, 사람들은 그 문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질서를 지키며 살아간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도시가 부상하고 반대로 쇠퇴하는 지역도 늘어간다. 인구감소, 주거환경 노후화 등으로 낙후된 지역이 생성되며 그 마을의 문화 또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지역이 도시재생의 대상이 된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물리적인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경제적 측면까지 고려하여 지역이 지속가능성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부분의 도시재생 지역은 문화재생 지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 지역들은 낙후된 건물이나 시설들을 더 나은 환경으로 정비·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적 향유 프로그램 운영과 마을,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문화기반 조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외부의 잘된 사례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도시재생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문화로 도시재생의 활력을 더하다. 도시재생이라는 방대한 범주에는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화의 힘이 존재한다. 문화적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마음을 열고 함께 활동하면서 마을과 지역에 활력을 더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이 처음 필자가 도시재생에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 이유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장소 기반의 문화를 생성하고, 문화적 활성화를 통해 그 장소의 가치를 바탕으로 마을, 지역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가꾸어 나가는 전주의 원도심 하나의 사례로 2016년~2021년까지 진행된 전주시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이 있다. 전북도청 이전과 함께 다양한 이유로 쇠퇴하고 있는 지역을 활성화 시키고자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진행한 도시재생사업이었다. 물리적, 문화적 재생의 종합적인 관점을 가지고 시민 활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활성화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는 주체 발굴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각 분야별 주체들이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도시를 가꾸어 나가는 재생을 위한 것이었다. 원도심 도시재생 대상 구역에는 상권의 중심지가 이동하며 쇠퇴하게 된 고물자골목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며 그들의 가치와 문화가 잊혀져가고 있는 골목이었다. 이 지역에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둥근숲이라는 거점시설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이 공간을 활용하여 청년들이 과거의 문화를 통해 골목의 활력을 되찾고자 주민들과 함께 <둥근숲 숲이 될 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문화콘텐츠를 통해 고물자골목과 둥근숲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현재도 그들은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쇠퇴지역에 공공의 이용이 가능한 장소를 구축하고, 문화적 활성화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물리적 재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지역과 주민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도시재생이다. 문화로 잇는 도시재생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이 있다. 그 마을, 지역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통한 재생이 있을 때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이 있는 문화적 도시재생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박주연 팔복도시재생지원센터 선임코디 △박주연 선임코디는 전북대학교를 졸업한 뒤 전북청년정책포럼단 전주지역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전북청년정책포럼단 위원∙야호학교추진위원단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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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26 14:07

어떤 농사를 짓고 계십니까?

요즘 농촌에서의 새로운 꿈을 찾아 귀농·귀촌을 알아보는 분들이 많이 있다. 특히 청년층에서도 귀농에 관한 관심이 그야말로 “핫”하다. 2023년부터 대폭 확대된 “청년창업형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 기존보다 파격적인 지원확대, 예를 들면 정책자금의 대출한도를 최대 5억까지 늘렸으며 상환조건 또한 대출금리 연 1.5%(고정금리) 기준으로 5년 거치 20년 원금 균등 분할 상환! 거기에 영농초기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영농정착지원금 월 110만 원까지. (물론 2년 차와 3년 차에는 100만 원, 90만 원으로 차등지급) 그만큼 농업·농촌 분야에 청년의 역할론이 강조되고 있으며 정부의 지원 속에서 많은 청년 농부들이 육성되고 정착해 나가고 있다. 필자 또한 2018년도 청년창업형 후계농 1기로 선정되어 귀농한 경우로 농촌에 정착한 지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께서 꿀 농사를 지으셨고 아버지 또한 젊었을 때 그 밑에서 양봉을 하셨던 걸 알았기에 품목을 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실 상담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10여 년 동안 상담만 해왔던 내게 농업과의 연관성이라고는 단 1도 없었다. 농업이라 하면 그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흘려들었던 앨빈 토플러 할아버지의 제3 물결 중 가장 첫 번째 물결이 농경시대였음을 일컬었던 정도? 하지만 청소년법인기관에서 사직하고 귀농을 결심하며 품목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끊겼던 가업을 잇는 청년 농부”, “3대째 꿀벌 농사를 짓는 청년꿀벌농부”라는 마케팅 활용에 아주 탁월한 타이틀이 그저 달콤하기만 했기에 호기롭게 양봉을 선택했고 벌통 30군으로 꿀벌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에 이상기후로 아카시아꿀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꿀의 75%를 차지하는 아카시아꿀을 한 방울도 수확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냥 그해 꿀 농사가 망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해는 꿀벌의 최대 숙적인 진드기 방제를 위해 처리한 약품처리를 너무 적게 해서 꿀벌이 많이 죽어 나왔고 2021년에는 양봉장 인근의 과수원에서 살포한 농약으로 인해 꿀 수확 직전에 가장 왕성한 세력의 벌통들이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대망의 다섯 번째 해였던 작년 봄, 전국적인 꿀벌 연쇄 실종사건으로 78억 마리가 일제히 사라졌을 때 필자의 꿀벌들 또한 피해를 보았다. 그 짧은 기간에 참, 기구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먹고 살기만을 위함이 아니다. 꿀벌을 지켜야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신념과 더불어, 농촌에 청년들이 있어야 우리의 농촌 또한 지켜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농업은 1차 농산물 생산을 통해 우리의 먹거리, 즉 식량자원을 책임지는 아주 막중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농촌의 생태환경자원과 농경문화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가치와 공동체의 기능, 그 안에 숨겨있는 공익적 가치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역할이 절실하다. 필자를 향해 어떤 농사를 짓고 있냐는 질문을 한다면 꿀벌 농사를 짓는 것과 함께 청년농촌활동가로 활동하며 사람이 농촌에 머물고 정취를 누리며 언제든 다시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을 남기는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본 기고를 통해 농촌에 정착하는 지역 청년들의 좌충우돌 농촌 생활과 더불어 다양한 농촌 활동들을 포장도 가감도 없이 전해드릴 예정이니 기대하시길! /박넝쿨 농촌기업브랜드 신비 대표 △박넝쿨 대표는 현재 익산시희망농정위원회 심의위원, 익산시농촌활력지원센터 청년농촌활동가 대표, 익산시문화도시지원센터 이리랑익산(유튜브채널) CP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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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9 16:17

농한기에 ‘문화’합니다!

최근 들어 ‘옛드(옛날 드라마)’가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다시 공개되고 소비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는 방송평론과 언론의 분석기사 등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필자 또한 직장 동료들과 ‘옛드’ 이야기를 하자면, <전원일기>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드라마가 주는 ‘무공해’와 ‘힐링’ 감성이 있는데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배우들이 낯설지 않고, 특히 완주에 일터를 잡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원일기>는 ‘옛날 드라마’ 이상의 감상을 주고 있다. 필자의 눈으로 본 농촌의 ‘문화현장’은 50년 전 그 당시와 현재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주체적인 문화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지역 문화환경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는 문화도시 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초등학교 때 TV에 나오던 그 시골, 농촌과 지금의 현실이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마을회관의 모습도, 동네 작은 가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드는 주민들의 모습도, 혼자 사는 노인, 농촌 노총각 등 지금으로 말하면 1인 가구의 문제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유독 초점이 맞춰지는 장면은 <전원일기>의 겨울이었다. 바로 농촌의 농한기. 많이 다양화됐지만, 대개 농촌은 추수가 끝나는 11월부터 이듬해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까지 농한기를 맞는다. 농한기가 되면 주민들은 여유가 생겨나지만 이 여유를 채워줄 여가와 문화는 턱 없이 부족하다. 아니 전무한 수준이다. 문제는 바로 현실과 맞지 않는 지원시기. 특히 완주 같은 도농복합도시는 더욱 그렇다. 정작 주민들이 문화활동을 필요로 하는 이 시기에는 모든 지원사업들이 올스톱, 그야말로 ‘한기’를 맞고 있는 것이었다. 지자체부터 여러 기관, 단체들까지 주민들을 지원하는 공모사업, 참여사업 모두가 봄, 가을에 집중돼 있다. 공적 영역 사업의 회계연도 문제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또한 사정은 똑같지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문화도시 정책이고, 완주문화도시조성사업이기에 ‘꼼수’라도 부려봐야 할 판이었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마을 문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주민들, 이장님들, 부녀회장님들, 촌장님들과 함께 고민을 시작했다.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남아도니 이때야 말로 ‘문화’하기 좋은 때라 한다. 또한 농한기는 종종 마을의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했다. 잦은 음주와 내기 화투 등으로 일어난 다툼은 공들인 마을 관계를 해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와 건강상 문제는 여전히 품앗이 문화가 이어지는 마을 농사일에도 피해를 주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어르신들이 외출을 꺼리시니 소통과 교류도 단절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완주에서는 지원방식의 다양화와 행정기관 협의,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안과 참여로 크고 작은 농한기 문화 프로그램이 지금 완주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사실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이다. 1년 365일 문화로 풍요로운 도시, 생각만으로도 기쁘고 희망적인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것은 완주군, 한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보조금법이 그래서, 다들 그렇게 지원하니까, 현장을 우리는 끊임없이 외치지만, ‘본래’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장이 달라졌다면, 우리의 욕구와 수요가 달라졌다면 제도도, 관습적인 방식도 다 변화해야 하고 그런 노력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문화활동가도, 중간지원조직도, 시민도, 이 도시에서 행복할 수 있다. 지역과 시민의식의 변화를 모른 척 하지 말자. 우리는 20년 전 드라마를 보며 ‘어머!’ 해야 맞다! /장보람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유문화팀장 △장보람 팀장은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과 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기획팀 등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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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2 17:37

청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 한 해가 지나가고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위험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그리고 한참 꽃 피울 나이의 청년들이 희생 된 10.29 참사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리고 청년들의 소비 트렌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인생은 오직 한번 뿐”이라는 욜로(YOLO) 문화와 “플렉스 해 버렸지 뭐야”라는 유행어와 함께 플렉스(Flex) 문화가 크게 유행하며 현재를 중요시하고 지금의 “나”를 위해서 과감하게 소비하는 것이 청년들의 소비 문화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생활하는 무지출 챌린지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활용 해 먹는 냉파(냉장고 파먹기)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필자도 SNS에 올라온 챌린지를 보고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해보기도 했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아 결국 며칠 가지 못하고 포기를 한 경험이 있다. 투자에 관해서도 주식과 코인 투자에 몰렸던 청년들이 점점 저축을 하며 “짠테크”를 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처럼 짧은 사이에 청년들의 문화 트렌드가 정반대의 경향으로 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말처럼 떨어질지 모르고 계속 올라만 가는 물가와 금리 그리고 찾기 힘든 일자리 문제로 인해 청년들이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정부와 많은 지자체에서 이런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청년 정책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은 눈에 띄게 효과를 나타내는 지역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필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말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었다. 주변의 알고 지내는 청년들만 봐도 많은 수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전망하는 기사들을 보면 올해보다 작년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 보다는 불안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필자 또한 청년이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와 같은 무책임하고 어설픈 위로의 말을 청년들에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런 현실 앞에서 청년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많이 회자 되었던 이 문구는 필자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단은 끈질긴 노력으로 강호 포르투갈을 이기고 우루과이와의 골득실에서 앞서 16강이라는 기적을 일궜다. 필자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포르투갈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6강 진출을 보며 미리 짐작해서 포기를 했던 지난 내 과거의 모습을 반성을 하게 됐다. 올 한해도 우리는 현실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좌절하고 쓰러지고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미리 포기하지는 말자.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 扮)의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처럼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고, 세상이 우리의 형편과 모습을 보고 비웃을지라도 우리 함께 서로 응원하며 그 뜨거운 마음만은 꺾이지 말자! /최준호 원광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원 △최준호 연구원은 (사)새벽이슬 정책실장을 겸하고 있으며, 익산시 일자리정책과 청년정책계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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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5 14:20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2016년도 바둑판 위에 ‘인간과 AI의 대결’이라는 주제가 던져졌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최정상급 프로기사인 이세돌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총 5번이 이루어졌다. 3월 13일 5번기 4국에서 이세돌은 묘수를 통해 승승장구하던 인공지능을 꺾었고, 알파고가 스크린에 띄운 ‘기권’의 메시지는 기계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뻔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도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라는 안도감까지 주었다.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의 엄청난 성장 속도를 봤기 때문일까? 그해에는 유독 ‘2030년이면 30% 직업 인공지능이 대체해…’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과 같은 타이틀의 기사가 유독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예술가의 직군은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끝난 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인공지능 대체 불가 직무에서 화가, 조각가, 작가, 연주자 등 대부분이 예술가로 나타났다. 고도의 창의력이 필요하며 인간의 감성에 기초한 직업들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대국이 끝난 후 벌써 6년. 이세돌은 19년도 은퇴 사유 중 하나를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인공지능에 느낀 허무와 좌절감으로 밝혔다. 실제로 알파고는 벌써 3년 전에 ‘알파고 제로’라는 이름으로 발전했다. 스스로 바둑을 학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72시간 만에 기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00전 100승을 거두고, 새로운 바둑의 정석을 만들어냈다. 절대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졌던 문화예술계는 어떨까? 실제로 지난 9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한 작품이 사실은 텍스트를 이미지화해주는 AI 프로그램 ‘미드저니’ 의 생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미술뿐만이 아니다. 카카오브레인과 미디어 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개발한 인공지능 시인 ‘시아(SIA)는 지난 8월 첫 시집을 출간했고, 아직은 학습 능력에 따라 미약한 부분이 있지만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스킬이라고 생각되었던 감수성을 전달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화가, 작가, 작곡가까지 단순히 창작물을 모방하던 인공지능들이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스스로 사고하고 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AI 작가’들의 등장으로 이제 문화예술은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창작물로 봐야 할 것인가 생산품으로 봐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아직 인공지능을 작동시키고 이를 평가하는 주체가 결국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창작의 주체보다는 도구로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예술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 이후 짧은 몇 년 간 많은 예술가들이 장르적 도약을 이루어 낸 것만 보아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을 통해서 예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등 예술을 정의했던 수많은 이론은 새로운 형식의 예술가와 작품에 의해 뒤집히고 또 다른 이론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공지능 예술가의 등장은 너무나 인간 같은 모습에 섬찟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기술과 예술의 융합 과정에서 문화와 삶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과거를 송두리째 뒤집을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갈 것이고, 그것이 예술이니까.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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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5 13:51

지구력

금세 겨울이 오더니 2022년도 막바지다. 봄에는 춥다가도 따뜻해지더니만, 여름엔 무진장 더웠다. 또 가을은 덥다가도 추워지더니 겨울은 무진장 춥다. 날씨는 시기가 되면 변화무쌍하게 휙휙 변하는데,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12월 다가오는 생일에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다 여전히 제자리인 내 모습에 조금 서글퍼졌다. 2022년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한 해를 돌이켜보니 도전하면 실패했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었던 것 같다. 가장 크게 얻은 건 깨달음이다. ‘두 마리 토끼는 숙련된 사냥꾼만이 잡을 수 있구나’ 이러한 깨달음은 내 자신을 토끼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무능력한 사냥꾼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가장 크게 잃은 건 지구력이다. ‘욕심은 앞서는데 행동은 망설이니 토끼가 도망가기 딱 좋겠지. 아 나는 무능한 사냥꾼. ‘이러한 자책을 반복적으로 계속 일삼다 보니 무능도 모자라 무기력한 사냥꾼으로까지 전락시켰다. 생일 전날. 무기력으로 밋밋한 일상은 생일이 코앞에 다가와도 아무런 기대가 되지 않았다. 졸업한 같은 과 친구들의 등쌀에 저녁 약속이 잡혔다. 우리는 겨울에 모이기만 하면 눈이 왔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눈이 펑펑 내렸다. 다들 퇴근 후라 지친 몸을 이끌고 거친 눈바람을 해치며 삼례에서 전주, 익산까지 갔다. 애들이 준비해온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으로 만든 케이크를 보고 한참을 웃다가 거창하게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느라 누구 한 명의 눈이 반쯤 감긴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삼례로 돌아오니 11시였다. 친구가 같이 있다가 자정이 지나면 초를 불자는 제안했다. 그렇게 친구의 집에서 자정을 기다리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미간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빌었다. 노력 없이 이루고 싶은 게 많아 구구절절 빌다 보니 좋아하는 연예인 얼굴에 빨간 촛농이 떨어져 있었다. 섬뜩했지만 이 섬뜩함도 즐거웠다. 아침에는 멀리 떨어진 친구들의 연락에, 학과 친구들의 정성 어린 축하에 즐거운 생일날을 보냈다. 그날은 자기 전 침대에서 한참을 혼자 피식거리다 잠이 들었다. 참나 기념일이라는게 뭐라고 이렇게나 사람을 들뜨게 하나. 이상하게도 들뜬 마음은 밋밋하던 일상을 조금씩 채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보단 나를 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계산기가 나오기도 전에 베풀었다. 아무래도 실패에 집중하다 보니 고독에 빠졌던 것 같다. 그래서 반복된 일상에 지루하고 지쳐도 다시 지속 할 수 있게 도와준 것들을 잊고 있던 게 아니었나. 나는 올해 번듯한 성공은 없었지만, 과정 중에 사소한 즐거움과 변화가 있었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고 싶은 욕심과 의지까지 버리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포기하긴 이른 사냥꾼. 거창한 생일을 보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올해 지구력이 되어준 모든 것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주말에 보는 영화, 계속 들어도 좋은 노래, 친구들, 학교 사람들, 가족들, 오래된 인형들 전부 여전히 제자리에 있어 줘서 고맙다. 이 마음을 올해가 가기 전 깨달은 사실이 이번 생일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 하며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싶다. 새해가 다가온다. 항상 연말은 끝이라서 아쉽고, 연초는 시작이라서 두렵다. 실패하면 말고, 성공하면 좋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숙련된 사냥꾼.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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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8 14:19

영화 다시 보기, 되풀이하며 새롭게 바라보기

몇 년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면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어떤 장면은 볼 때마다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이렇듯 같은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그 영화가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겪은 경험과 감정들로 인해 시각이 달라지고 초점이 바뀌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 다르게 본 영화 2016년 나의 대학생 4학년 시절,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는 ‘페미니즘’이었다. 어느덧 졸업반이 된 나는 그제서야 학과 수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던 터였다. 당시 전북대학교 교수이자 여성학자인 김혜경 교수의 ‘젠더와 역사’, ‘여성과 일’ 등의 여성학 수업을 들었다. 또 우연한 기회로 전주여성의전화에서 주관하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수료하게 되었다. 여러 회차의 교육 중 한번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과 함께 영화의 몇 장면들을 다시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본 영화는 이미 봤던 영화인 ‘건축학개론’이었다. 이 영화는 대학생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로 각인되어있었는데 이를 젠더 관점(성인지적 관점)으로 다시 보니 이야기의 전개가 달리 보였다. 이전에는 승민 역할을 맡은 이제훈이 그저 짝사랑에 실패한 어수룩한 청년으로 보였지만 이날은 찌질하고 이기적인 남자로 보였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승민이 짝사랑하던 서연의 등을 돌리는 순간은 다름 아닌 본인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속에서 승민은 밤늦게 학과 선배인 재욱이 술에 취한 서연을 집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다음 날 “이제 좀 꺼져줄래”라며 차갑게 돌아선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서연을 방관한 그는 이를 배신으로 정당화시키고 서연을 ‘쌍년’이라고 기억한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의 상대가 ‘쌍년’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남성(승민)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영화를 볼 때면 금세 몰입하는 편이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최소 세 번 이상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이 발견됐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198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둔 청량하고 아름다운 영화 속 분위기와 영상미에 빠져들었고, 두 번째 봤을 때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여름날과도 같은 첫사랑 이야기와 퀴어 로맨스에 집중했다. 영화를 세 번째 봤을 땐 다름 아닌 주인공 엘리오의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성소수자의 부모로서,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태도로 엘리오를 대한다. 그는 엘리오가 사랑한 ‘여름 손님’ 올리버가 떠나고 상심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와 나누고 싶지 않은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네가 가졌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 보통 부모들이면 없던 일로 하고 아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빌겠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간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 (중략)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그렇게 영화를 세 번 보고 나서 곧바로 원작인 책을 주문했고 이 대목을 노트에 필사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매력을 제대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요즘엔 다른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를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 『혼자서 본 영화』,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범죄심리학자 박지선이 영화를 리뷰하는 ‘지선씨네마인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B tv 파이아키아’를 시간내어 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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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1 14:01

연결된 세상, 단절된 우리

‘멕시칸치킨 금암점’. 초등학생 시절 단골이었던 동네 치킨집이다. 당시 내가 혼자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한 마리주세요! 주소는... 아, 아니다. 주소 먼저 말해야 되나.. 여기 전주시 덕진구...” 그렇게 두세 차례 전화 주문 연습을 끝낸 뒤에야 가까스로 수화기를 들 수 있었다. 떨리는 맘으로 주문을 마치고 나면, 아주 가끔은 가게에서 메뉴나 주소를 다시 불러달라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2~30분 후 대문 앞에 도착한 사장님께 현금을 건네면, 사장님은 맛있게 먹으라며 치킨 봉투를 쥐어주셨다. ‘굽네치킨 녹번점’. 현재 한 달에 한 번꼴로 돈을 쓰는 동네 치킨집이다. 내가 혼자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고, 배달앱을 켠 뒤, ‘주문내역’ 창에서 ‘재주문’ 버튼을 누르기. 그렇게 서너 차례 손가락을 놀리고 나면 치킨 주문은 끝이 난다. 주문 정보가 상세히 기록된 앱 덕분에 가게에서 내게 메뉴나 주소를 다시 물을 일은 없다. 3~40분 후 핸드폰에 ‘배달 완료’ 알람이 뜨면, 뛰쳐나가 현관 밖에 덩그러니 놓인 치킨 봉투를 가져온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표상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오늘날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무제한적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든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쥐면 이메일, SNS, 유튜브, 블로그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주문하고, 옷을 사며, 미용실을 예약하고, 강의를 듣는다. 또 길을 찾고, 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택배를 부치고, 영화를 본다. 즉,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이 ‘스마트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매듭지어 지고 있다. 그저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잽싸고 힘세며 야무지기까지 한 스마트폰은 그렇게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소가 되었다. 하루 종일 입 밖으로 꺼내는 말보다 카카오톡 채팅창에 입력하는 단어 수가 더 많다. 친구들에게 맛집을 수소문하기보다 네이버의 리뷰와 별점을 신뢰한다.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보다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이를 대변할 이모티콘을 골라내는 데 열을 올린다. 지금껏 우리는 스마트폰으로부터 편리성, 안전성, 정확성, 효율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인간성을 잃었다. 서로 간 눈과 눈이 마주치고, 손과 손이 맞닿으며, 말과 말이 교차했던 숱한 순간들이 이제는 ‘데이터화’, ‘디지털화’라는 미명 하에 점차 흐려지고 있다. 맺고 끊음이 쉽고 빨라진 인간관계는 그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우리 일상을 채웠던 미지근한 온기와 색채가 그렇게 한 줌씩 사그라지고 있다. 가끔은 내 삶이 손바닥 위의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네모반듯하고, 뭉툭하고, 새까맣고, 차갑고, 딱딱하고, 피로한. 그토록 못나고 재미없는 모양이 과연 내 인생의 생김새인가-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처량해진다. ‘등잔’과 바로 그 밑의 ‘그림자’처럼, 오늘날 온 세상에 만연한 ‘연결’의 뒤편에는 그보다 몸집이 큰 ‘단절’이 도사리고 있다. 2022년 현재는 과연 ‘연결의 시대’인가, ‘단절의 시대’인가?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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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4 17:51

그럴싸한 취미를 만드는 법

대학교 입학 직후 교수님 연구실에서 면담했을 당시“자네는 취미가 뭔가?”라는 질문에 나는 전공과 순발력을 살려 최대한 그럴싸한 취미인 ‘독서’를 만들어냈다. 전공이었기 때문에 책은 오히려 과제처럼 느껴져 더 담을 쌓고 살았는데도 말이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이력서에 무난한 한 줄을 위해 만들어져 무려 9년간 이어졌던 거짓 취미는 최근 진짜로 즐거운 일을 찾고 나서야 끝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나와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곧 취미생활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원데이 클래스가 유행하고, 하비슈머(hobby+consumer의 합성어로 취미생활을 위해 소비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취미 부자 등 취미에 대한 다양한 신조어만큼 내 삶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취미생활이 등장했다. 등산, 골프, 테니스와 같은 운동부터 수초로 어항을 꾸미고 물고기를 키우는 아쿠아 스케이핑, 작은 어항 속에 나만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비바리움(Vivarium)까지 매일같이 이색적이고 새로운 배움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도 취미를 검색하면 자동 완성으로 가장 먼저 뜨는 단어는 ‘취미생활추천’, ‘취미생활 순위’이다. 이제 막 나의 취향을 고민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단어들은 취미가 어쩐지 성공해야 할 것 같은 또 다른 사회적 과제처럼 느껴져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온다. 분명 취미와 성공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성공은 그저 즐거운 취미생활의 부산물 중 하나일 뿐이다. 마에자와 유사쿠는 친구들과 밴드부를 했었고, 미국으로 가서 공연까지 보러 갈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었다. 일본으로 돌아와 밴드를 계속하며 미국에서 가져온 앨범을 판매하다 사업가가 되었고, 판매 상품은 앨범에서 의류가 되었다. 그 회사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온라인 의류 쇼핑몰인 조조타운이 되었다. 김성완 작가는 카이스트를 졸업해 삼성전자를 입사했다. 동호회 운영진 활동을 했을 정도로 즐겁게 했었던 레고와 야근의 길에서 레고를 선택해 세계에서 21명밖에 없는 레고 공인작가이자, 하비앤토이 대표가 되었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음반 수집 취미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앨범 재킷이 멋있거나 가격이 싸다는 둥 다양한 이유로 사 모았다. 따라서 중구난방이고 결과적으로 모여버린 레코드.’라고 말한다. 슬기롭게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성공한 사례,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 남들과는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 취미 모델을 밤새 추천받아 검증해보는 것은 결국 9년간 내가 취미는 독서라고 대답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취미라는 단어에는‘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라는 또 다른 정의가 있다. 취미는 개발해야 하는 새로운 스펙이 아니다. 유행하는, 성공한 취미를 쫓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려놓고 인생에서 마주칠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하여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정말 그럴싸한 취미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수진 (재)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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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7 18:41

디지털 다이어트

한 달 전 카카오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 트위터에서 본 500여 개의 하트를 받은 트윗의 내용은 “기왕이면 평일 회사에 있을 때 불나지”라는 뉘앙스로 쓰인 글이었다. 나도 평일이 되면 일자리에 나가는 직장인이라 하트로 슬쩍 공감을 실었다. 내용은 근무 시간에 카카오톡이 중단되면 업무도 마비가 된다는 뜻으로 생활 전반에 디지털이 많이 관여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일상에 결제 연락, 예약 등 디지털이 깊게 관여하고 있었고 카카오 중단 사태는 많은 사람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디지털에 과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디지털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종일 컴퓨터 앞에 눈을 두고 어딜 가든 손에 핸드폰을 쥐고 다니다 보니 집에 있어도 오는 연락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집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핸드폰과 컴퓨터를 안 만지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손에 놓은 지 5분 만에 핸드폰을 찾았다.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핸드폰만 있으면 모든 것이 쉬웠다. 이미 맛본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자율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면 강제성을 부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방법을 찾기 위해 애플리케이션도 깔아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제일 무식하고도 돈이 많이 드는 해결법을 택해야 했다. ‘핸드폰 감옥’ 편리하지만 복잡한 디지털과는 정반대의 조치였다. 핸드폰 감옥이 무엇이냐면 감옥이라 칭하는 상자 안에 핸드폰을 넣고 시간을 지정하면 지정 시간이 다소요 될 때까지 상자가 열리지 않아 핸드폰을 하고 싶어도 강제로 하지 못하게 하는 단순한 조치였다. 그래서 핸드폰 몸통만 멀리 두고 계속 할지 말지 고민을 하는 것보단 상자에 넣어버리면 갈등의 여지 없이 핸드폰을 할 수 없다. 그렇게 이주를 보내니 어느 순간 핸드폰이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일과가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다른 활동으로 시간을 채웠다. 디지털을 대체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은 꽤 만족스러웠다. 책도 읽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효율적이게 시간을 보내는 날이 늘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핸드폰을 감옥에 보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시간을 높게 잡았다. 그래서 자기 직전에야 핸드폰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핸드폰이 필요 할 때 쓸 수 없어 곤란한 일도 많았다. 언제 한번은 새벽에 책을 읽다 속이 허해져 간식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타이머를 보니 감옥이 열리려면 두 시간이 지나야 했다. 당시엔 핸드폰 없이 야심한 밤에 혼자 편의점을 다녀오기가 나로서는 쉽지 않았기에 사람 일은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핸드폰 감옥을 통째로 들고 편의점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냥 깨부술까 하는 마음도 수백 번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핸드폰을 감옥에 가두기가 쉬워졌다. 어느 날은 핸드폰이 직접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 날도 있었다. 매일 핸드폰을 감옥에 가두다 보니 적절하게 시간도 설정할 수 있게 되었고 할 일이 없으면 당연하게 핸드폰을 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때울 방법을 자연스레 찾게 되었다. 온전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되찾은 것 같아 어느 정도는 디지털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디지털이 만연한 시대다.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누군가는 휴식이라 할 수 있지만 자기 직전까지 타인과 교류한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휴식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주말내내 집에 있어도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다면 디지털 다이어트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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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0 13:56

너는 나다

올해 3월 28일부터 5월 19일까지 53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목소리를 낸 노동자가 있었다. 체중이 20㎏ 줄어들고 혈압·혈당도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던 그는 “살아서 끝까지 싸우겠다”며 입장문을 내놓으며 투쟁을 중단했다. 이를 지켜본 일부 시민들은 해당 기업 제품 불매운동과 1인 시위 등으로 연대했지만 한편에선 그 기업에서 만든 ‘포켓몬 빵’의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거대 기업 앞에서 개개인의 연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후 10월 15일 새벽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배합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사고 이틀 뒤인 10월 17일 40대 노동자의 오른손 검지가 절단되었다. 올해 초부터 바로 며칠 전까지 같은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 노동현장에서 배운 연대 나는 연대를 노동운동 현장에서 배웠다. 당시 ‘연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세대학교가 먼저 떠올랐던 고등학교 3학년 때(2012년)였다. 그때 우연히 읽은 기사에서 외국인노동자가 기본적인 권리를 너무도 허무하게, 합법적으로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약자의 약점을 악용하는 악덕 기업과 고용주들의 존재를 이때 처음 발견했던 것 같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올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일단 더 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전북 대안언론 ‘참소리’를 발견했고 타 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북권 노동운동 사태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약자들의 처절한 절규와 연대, 저항과 투쟁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전북권에서는 ‘전북고속 총파업’이 가장 큰 이슈였고 기사를 읽고 나니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설치되었던 천막을 찾았다. 교복을 입고 쭈뼛쭈뼛 천막 안으로 들어가 방명록에 응원글과 이름을 적는 것으로 나의 연대는 시작되었다. 이후로도 몇 차례 찾아가서 버스노동자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은 하루 15~16시간 이상의 장시간의 운전 노동과 월 120~160만 원의 저임금에 오랜 기간 시달려왔었다. 휴식, 식사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위장병을 달고 살고 방광염에 걸린 노동자가 대다수였다. 이들이 사측에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에 맞게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식사시간, 안전운행시간 보장 등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였다.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연대뿐이었다. 이후 거리 피켓시위, 삼보일배 시위 등을 함께 했는데 다행히 교복을 입은 내가 아저씨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몇 친구들도 시위에 동참했고 버스노동자 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뜻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연대를 배웠다. 연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 또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너는 나다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젊은 육신은 함께 불탔다. 2020년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하고도 2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쌍용자동차 노동자 복직투쟁(2009~2019),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투쟁(2007~2022)처럼 길고 험난했던 투쟁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외침은 지금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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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3 13:56

‘그럴 수도 있지’

2018년 봄. 갓 대학에 입학해 정신없이 노닐던 새내기 때였다. 몇 주 동안 제집처럼 드나들던 과방 출입문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짤막한 글귀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문 앞에 떡하니 걸려있는 것이다. 누렇게 변색된 에이포 용지 위에 붓펜으로 어설프게 써 내려간 ‘그럴 수도 있지’. 오른쪽 귀퉁이엔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연분홍 꽃이 두세 송이 그려져 있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눈에 띈 적 없었지만, 모양새를 보아하니 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듯했다. 알고 보니 역사가 일 년도 더 된 그 캘리그래피는 당시 꽤 친했던 한 학년 위 선배의 작품이었다. 선배는 뿌듯함과 민망함이 반씩 섞인 표정으로 “이게 바로 내 삶의 신조이자 우리 과의 급훈”이라 설명했다. 냉정히 말해 글씨도 그림도 하나같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공중화장실 칸막이에서 뜻밖에 명언을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럴 수도 있지’의 영어 번역문은 ‘I understand’다. 목적어는 없다. 이해의 대상이 남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과 나의 숱한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포용하는 ‘관용’의 자세가 모진 고행도 경건한 기도도 아닌, 그저 그 간결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됨을 그때 깨달았다. 이에 그 소박한 글귀가 내 맘속 깊이 뿌리 내리도록 몇 번이고 곱씹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2학년이 되었다. 새내기들의 전유물이었던 과방은 더 이상 찾을 일이 없었고, 하루에 한두 번씩 주문처럼 되새겼던 여섯 글자는 자연스레 차츰 흐려져 갔다. 이후 뿌리 얕은 나무가 쉽사리 흔들리듯 살랑이는 바람에도 난 한없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늦을 때면 한껏 짜증이 났다. 주문한 음식의 조리 시간이 길어질 때면 곧잘 불쾌감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흡연자를 마주칠 때면 마구 화가 솟구쳤다. 그렇게 별거 아닌 일에도 나는 쉽게 분노했다. 다이어트 도중에 떡볶이를 시킬 때면 나 자신을 혐오했다. 시험에서 아는 문제를 틀릴 때면 몇 날 며칠을 후회했다. 아침잠을 못 이겨 오전 수업에 지각할 때면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렇게 사소한 실수에도 나는 크게 자책했다. 가게 점원의 말투가 불친절할 때면 속이 상했다. 대학 동기가 짓궂은 농담을 건넬 때면 혹여 진심일까 마음졸였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면 날 향한 애정의 진위를 의심했다. 그렇게 하찮은 비난에도 나는 깊게 상처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얘기를 나누던 친구의 입에서 한참 동안 잊고 살았던 내 빛바랜 주문이 무심코 흘러나왔다.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내 나도 모르는 새 줄곧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자각했다. 내겐 남을 이해할 의지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금세 달아오르고 금세 식어버리는 가벼운 양은 냄비처럼, 텅 빈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싹 메마른 삭막한 마음은 고작 그 여섯 글자에 다시금 슬며시 촉촉해졌다. 그날 이후 사소한 일로 습관처럼 분노가 치솟거나 마음을 다칠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4년 전 봄날을 떠올린다. 여닫을 때마다 희미한 쇳소리를 내던 육중한 진회색 철문을 떠올린다. 스카치테이프 한 장에 매달려 힘없이 달싹이던 누런 에이포 용지를 떠올린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서른 번쯤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앳된 나를 떠올린다. 그렇게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조금씩 하자 있는 서로를 너그러이 감싸 안으며 살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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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6 13:45

완생 만드는 매개자들을 위하여

2014년도 tvN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드라마 <미생>에서 수많은 사람은 살짝은 모자란 신입사원인 주인공 장그래를 보며 감정이입을 했었다. 나 역시 입사 초 드라마 속 사고뭉치 신입사원에게서 내 모습을 찾으며 매일 눈물 콧물을 뽑았었던 기억이 있다. 주말에 우연히 OTT 서비스를 뒤지다가 다시 찾아본 드라마에서 새로운 인물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성공보다는 일에 매진하는 상사와 천둥벌거숭이 인턴 사이에서 은근한 균형을 유지하며 보이지 않는 교각의 역할을 하는 영업 3팀 김대리다. 크지 않은 분량과 실제로 회사에서 마주쳐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외모.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생의 김대리가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방 국립대 출신이지만 공모전 입상과 대외활동을 통해 입사한 성실함. 실적을 안겨주지 못하는 상사지만 끝까지 믿고 따르는 우직함. 낙하산이라고 손가락질받는 팀원의 성장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인간성. 그리고 이처럼 완벽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소통을 통해 더 끈끈한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에서도 기관과 예술가, 예술가와 향유자 사이에서 따뜻한 김대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문화매개자’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문화 매개의 개념은 1980년대의 프랑스 문화부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문화정책 담론 중 하나로 다루어졌던 이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이런 매개 활동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문화매개자’가 전국에서 양성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문화예술계의 김대리들은 단순히 떨어진 둘을 이어 나가기보다는 새로운 실천과 발전이 지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계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한다. 국내에서는 2007년도에 확대 개편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인력 양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국의 문화재단에서도 하나의 과업처럼 문화매개자 양성과정이 근 몇 년 사이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후원 매개 전문가 양성사업>과 같이 다양한 분야에 매개자의 개념을 입혀 생산-소비의 관점에서 제공-향유라는 더 넓은 문화예술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활동은 예술계에서 지속된 움직임이며, 이를 문화 매개와 아닌 개념으로 구분 짓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며, 문화예술이 좀 더 깊고 영향력 있게 향유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더 전문적이고 많은 문화매개자가 양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최근 들어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과 SNS 네트워크의 확대로 향유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구조적 변화를 겪었고, 변화된 문화예술 구조 속에서 연계된 장르를 분명하게 이해며 네트워킹을 구축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개자만이 전반적인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문화매개자들은 여러 방면에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알리고 향유자가 스스로 예술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매개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성공이 아니라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을 열어가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성공은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는 김대리의 대사를 옮기며, 다가오는 문을 힘차게 열어젖힐 모든 매개자들에게 글을 통해 짧은 응원을 보낸다.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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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30 18:12

밥 먹었어?

추석 연휴가 지나니 삼례의 저녁 공기는 선선해졌다. 여름엔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해는 지친 기색 없이 밝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가을이 왔는지 한껏 붉다. 어떤 날은 오늘도 무사히 서로의 몫을 다 했다는 메시지 같아 잠시 멈춰서 바라보는 날도 있다. 이번 9월은 조금 특별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학교 승인이 떨어져 학과 MT에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3년 만의 학과 MT에 대절 버스 기다리는 도중에도 학년 별로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의 들뜬 에너지가 내게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에너지에 압도된 나는 괜히 혼자 어설퍼졌다. 신나게 숙소를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 있어도 어설픈 마음은 가시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있다가 모두 별 탈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돕자는 결론을 끝으로 생각을 끝낼 수밖에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도착 후 각각 학년별로 조를 짜고, 너나 할 거 없이 재밌어 하는 학생들을 보며 ‘젊어서 좋겠다.’ 싶은 마음을 안고 숙소에 올라와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잠시 숙소에 들어온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 순간 내가 대학생이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쯤 되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편했다. 여전히 들떠 있는 표정으로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하는 저학년생들, MT의 기억을 좋게 남겨주고 싶어 분주히 움직이던 고학년생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고 인물이 변해도 큰 상황은 똑같구나 싶은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났다. 학년을 불문하고 좋은 건 배우고 아닌 건 고쳐가며, 모든 학년이 다같이 MT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계획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전체 인원 모두 무탈하게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으로 학교 간판이 보였다. 간판을 보니 안도감과 함께 학생이었던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생각났다. 한때는 같은 환경에서 공부했지만, 현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도전하는 친구들. 아직도 나는 주말이 지나면 여전히 학교로 걸음을 재촉하고 전공 수업을 듣던 강의실 복도를 지나온다. 매일 같이 강의실에 앉아 떠들고,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다 하루를 꼬박 보내던 우리가 있던 비워진 공간에 우리와 같은 친구들이 채운 모습을 볼 때면 한 번씩 신기할 때도 있다. 현재 전부 각자의 위치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뜸해진 만남은 달라진 환경 때문인지 어느 한 명이 털어 놓는 고민의 깊이가 깊어질 때마다 대화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현재는 각자 놓인 처지를 전부 알 수 없으므로 저울이 다시 수평을 찾을 때까지 우리 사이엔 적막이 흘렀다. 그럴 때마다 이제는 고민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어 거리감을 느끼지만 모든 고민에 지고 싶지 않았던 시절을 같이 지나온 우리는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도 있고, 고민은 계속 생긴다는 것을 이젠 알기에 그저 서로가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대한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적막은 시절을 같이 보낸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 같다. 달라진 해를 마주할 때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생각에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의 냉정함을 몸소 느낀다. 더불어 우리가 같은 시절을 보냈던 순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조금 더 낯설고 아련해 진다 . 결국 아련함은 남겨진 나만 느끼는 미련 같아서 그리움으로 바꾸고, 이마저도 청승 같아서 우리에게 침묵이 될까 봐. 끝내 밥 먹었어? 라는 말로 포장해 무심하게 전한다.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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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3 18:44

불안의 시대와 불안 세대

어느 날, 불안장애 환자가 의사에게 물었다. 언제쯤 다시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의사는 “불안장애는 무조건 낫는 병이에요. 지금의 불안과 증상들이 앞으로 더 나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환자는 불치병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무조건’ 나아질 수 있다는 완고한 그의 말에 적어도 이 불안에는 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나의 불안 어느 날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장에 무심코 한 문장을 끄적였다. ‘불안한 내일이 없는 오늘을 살고 싶다’라는 말이었다. 다음 날 그 종잇장을 다시 보니 왠지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곧 자신이 측은해졌다. 그 글자를 적을 때는 낮이었다. 흔히 말하는 감성이 충만해지는 새벽 시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을 육성으로 말을 내뱉는 것보다 텍스트로 떠올리거나 필기하는 게 더 익숙한 나는 누구에게 말 못 할 속마음을 메모장에 적어내는 습관이 있다. 이때 내 안에 불안이 존재하다는 걸 느꼈다. 한번 시작된 불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거대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안에 의해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나의 일상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나의 세계를 지배했다.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곧 공황발작(panic attack) 증상이 나타났고 병원을 찾았다. 이를테면 비행기를 타는 것도, 단 10분 거리의 운전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것도, 치과 진료도 불가능해졌다. 9월에 예정되었던 비행기 표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공포로 다가오고 결국 해낼 수 없게 된 순간 회복에 대한 갈망이 높아졌다. 어느덧 두 달째 약을 처방받으면서 “무조건 지금보다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처럼 서서히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고 나만의 속도로 회복 중이다. △ 사회적 불안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전체 자살사망률이 감소한 것에 비해 청년들의 자살률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21년 기준 5년간 정신질환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청년들이 15.2%가량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불안과 우울은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는 곧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물론 단순한 ‘불안감정’과 공황발작 증상을 동반하는 ‘불안장애’는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한 여유와 성찰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바쁘게 살아가는 청년들. 불안한 미래이지만 누구보다 더 빨리 달려가야만 인정받는 상황 속에서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현재 청년들은 무엇에 가장 불안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이에 흥미로운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찾았다. 2002년 20대 초반 청년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당시 외모와 건강이 31.9%, 공부가 30.8%를 차지했다. 10여 년이 흐른 2020년도에는 직업이 40.3%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2년에는 8.6%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청년 불안의 현주소를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 세대의 불안을 단순화시키고 단편적으로 결론짓고 싶진 않다. 그저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불안한 상황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싶을 뿐이다. 덴마크의 심리학자 피아 칼리슨의 저서 『생각이 많아 우울한 걸까, 우울해서 생각이 많은 걸까?』에서는 “생각의 방향이 나를 향할수록 통제력을 잃는다. 우리들의 생각은 기차가 아니라 기차역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분, 우울감과 불안으로 인해 본인에게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글귀를 전하고 싶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 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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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6 17:18

당신이 잊어버린 것과 내가 잃어버린 것

네 살 무렵인가. 그쯤이 아마 외할머니가 내 기억 속에 처음 자리 잡은 시기일 것이다. 부모 님이 맞벌이를 했던 터라, 어릴 적 나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늦은 아침 눈을 뜨면 할머니 무릎에 앉아 애니메이션 ‘파워레인저’를 보고, 점심시간이 되면 전자레 인지에 갓 돌려 봉긋하게 부푼 계란찜에 밥을 비벼 먹었다. 간식은 주로 얇게 썰어 갈색 설탕을 친 토마토였고, 서너 시쯤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십오 분 정도 떨어진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다녀와서는 저녁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눈을 피해 화분이 널린 베란다를 넘어 다니다, 자칫 선인장 가시가 손에 박혀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시절 외할머니는 내게 엄마이자 아빠, 친구이자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보물이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부모님의 직장 문제로 할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후 내 삶에서 할머니의 비중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매일 보던 할머니를 주말에만, 그러다 한 달에 한두 번, 나중에는 명절에나 겨우 찾아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파워레인저 대신 드라마를, 계란찜 대신 라면을, 토마토 대신 과자를 찾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게 할머니는 그 전만큼 애틋하거나 소중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건 초등학교 삼 학년 때였다. 어느 가을날 저녁,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급히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어린 내게 치매라는 병은 무척이나 생소하고 아득했다. 단지 할머니가 나를 잊을까 문득 겁이 날 뿐이었다. “엄마, 그럼 이제 할머니가 나 못 알아보는 거야?” 적막이 깃든 택시 안에서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그럴 리가. 그냥 조금 더 자주 깜박하실 뿐이야.”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히 대답하며 내 머리칼을 쓸어주었지만, 두 눈엔 미세한 불안과 절망이 서려 있었다. 그날 밤 마주한 할머니는 내 걱정과 달리 평소처럼 인자하고 따듯했다. 이후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지만, 삼촌 댁으로 이사한 할머니는 한동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담당 의사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다른 치매 환자들보다 비교적 질병의 경과 속도가 더디고 상태도 양호했다. 날이 갈수록 같은 말, 같은 행동을 더 많이 반복하곤 했지만 그게 다였다. 때문에 내 마음 한편에는 ‘할머니의 병이 기적처럼 흔적도 없이 낫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기대가 일기도 했다. 그로부터 칠팔 년 뒤, 이런 내 철없는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할머니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날짜를 잊고, 계절을 잊고, 집에 가는 길을 잊고, 젓가락질하는 법을 잊었다. 말을 잊고, 감정을 잊고, 나의 이름과 얼굴을 잊고, 끝내는 당신마저 새하얗게 잊어버렸다. 공허한 두 눈동자에는 더 이상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담겨 있지 않다. 엊그제 꿈에 외할머니가 나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종종 있는 일이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항상 정신이 온전한 예전 모습을 하고 있다. 나를 ‘우리 강아지’라 부르는 애정 어린 목소리, 푸근하고 개구진 미소, 주름진 손의 온기까지 하나하나 선명하게 느껴진다. 꿈에서 깨면 한동안 죄책감에 젖는다. 치매는 외로워서 앓는 병이라던데, 그때 나는 왜 그리도 쉽게 할머니를 등한시했을까. 오래전 멈춰버린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할머니는 혼자 얼마나 고독하고 두려울까. 한때 나의 엄마이자 아빠,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던 보물은, 이제 까마득한 심해에 가라앉아 더는 닿을 수 없다.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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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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