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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욕심만 줄이면

이태 전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돈을 버는 시간을 빼고는 모두 글을 읽고 쓰고 나누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겠냐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왠지 잘해 나갈 것 같습니다. 이런 걸 ‘근자감’이라고 하나요? 돈은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지나친 욕심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세 가지 욕망을 말합니다. 첫째는 먹고, 마시고, 입고, 거주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욕망입니다. 둘째는 고급스러운 음식이나 명품 옷, 넓은 집이나 값비싼 차처럼 자연스러우나 꼭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입니다. 셋째는 권력과 명예, 비교를 통한 우월감처럼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고요. 이들 세 가지 욕망 가운데 첫 번째는 생존을 위한 욕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생존을 넘어선 욕망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없어도 되는 지나친 욕심인데, 사람들은 지나치게 집착한다고 에피쿠로스는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이제까지 비싸고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해진다고 세뇌됐기 때문 아닐까요? 문득, 공부 모임에서 배운 ‘행복 방정식’이 생각납니다. ‘행복 = 능력/욕심’이라는 공식이지요. 분모인 욕심은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고, 분자인 능력은 가지고 싶은 것을 갖는 힘으로,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해진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A는 300만 원을 버는데 600만 원을 쓰고 싶어 합니다. B는 150만 원을 버는데 100만 원만 쓰고 싶어 하고요. 이럴 때 누가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버는 돈만 가지고 보면, A가 B보다 2배 더 행복할 겁니다. 그런데 욕심까지 넣어서 계산하면 어떨까요? B가 A보다 더 행복하겠지요. A보다 버는 돈은 적지만, 자기가 바라는 걸 다 가질 수 있으니까요. 자기 능력으로 살 수 있는 것만 바라니 부족함을 모릅니다.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욕망만 가지니, 욕심부리는 것을 얻고도 돈이 남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런 게 지나친 욕심을 버리는 거라고 에피쿠로스는 가르칩니다. A는 어떨까요? A는 B보다 돈을 더 많이 벌지만, 자기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바랍니다. 꼭 필요하지는 않으나, 가지면 기분 좋아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들한테 으스댈 수 있어서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겁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보면 시나브로 빚을 져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요. 게다가 빚을 갚겠다고 없던 일까지 하느라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집니다.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도 못하고 보내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요? 행복 방정식에 따르면, 돈이 많은 사람도 불행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은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요. 능력도 능력이지만, 욕심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욕심을 줄이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고 싶습니다. “행복의 열쇠는 / 금고를 여는 구멍과 맞지 않고 / 마음을 여는 구멍과 맞는다.”라고 한 정채봉 시인의 ‘행복’을 노래하면서요. 구나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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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8 17:52

[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②고물자골목이라는 세계

문구점을 어디에 열지 고민했을 때 우리가 생각했던 몇 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번잡한 도로나 상권보다는 사람들이 걷다가 자연스레 방문할 수 있는 길 안쪽.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 편안한 공간. 또 기왕이면 전라감영과 도보로 멀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조건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구도심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임대’가 붙은 건물들, 오래된 상가들, 빈집들을 보러 다녔다. 몇 개월간 이어졌지만 딱 여기다 싶은 곳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오랜만에 ‘고물자골목’에 들렀을 때, 오래전부터 눈여겨보던 공간이 비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물 코너에 자리 잡아 입체적이고 특이한 공간 구조, 내실이 딸려 있어 쓰임에 따라 분위기를 달리 할 가능성, 무엇보다 오래된 골목이 주는 편안함. 우연처럼, 아니 운명처럼 우리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고물자골목’.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가늠조차 어려운 이 골목은 오랜 시간을 품고 있다. 풍남문에서 전주보건소로 이어지는 이 지름길은 조선시대 고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전라감영이 있었던 시절에는 ‘은방거리’로,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구호물자가 활발히 유통되며 ‘구호물자골목’이 되었고 빠르게 발음하며 줄이다 보니 ‘고물자골목’이 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구호물자와 함께 흘러온 청바지를 수선하고 판매하는 가게들이 자연스레 생겨나 한때는 ‘청바지골목’, ‘양키골목’이라고도 불렸다. 강정을 만드는 ‘오꼬시’가게들이 여럿 생기며 ‘오꼬시골목’이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또 1970년대에는 남부공동배차장이 골목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배차장골목’이라고 불렸다. 남부시장에서 배차장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칠만큼 번잡한 골목이었다. 한복을 만들던 크고 작은 집들이 많이 있었을 때는 ‘한복골목’, 1980년대 초반 교복 자율화 정책 전까지는 교복을 짓고 수선하던 집들도 많아 ‘교복골목’, ‘수선골목’이라고도 불렸다. 골목은 그때그때 이름을 덧입으며 변해왔다. 2000년대 이후 이 골목은 거의 멈춰있는 듯했다. 남은 건 오래된 한복집, 몇 채의 주택들. 그러다 ‘바늘소녀공작소’가 먼저 골목에 자리를 잡았고,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며 ‘공유공간 둥근숲’이 문을 열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세와 구도심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에 이끌린 젊은 사장님들이 인근에 카페와 소품 가게, 작업실을 하나둘 내면서 골목 밖에도 변화가 생겼다. 문구점을 고물자골목에 내고 나니, 우리가 상상했던 가게의 분위기와 골목이 똑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묵묵하게 자신들만의 속도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신도시나 상권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낡았지만 따뜻한 분위기까지. 시대에 따라 매번 조금씩 달라진 얼굴을 하며 이어져 온 곳. 시대의 풍경과 함께 자신만의 리듬으로 조용히 살아온 거리. 우리는 그 사이에 들어와 있다. 오래된 흔적들이 걷히지 않은 채 남아, 모든 것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다정한 분위기를 만드는 곳. 골목의 시간을 너무 빠르게 바꾸지 않으면서 이곳의 결을 따라 조심스레 살아가고 싶다. 낡았지만 견고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온전한 공간 속에서. 그렇게 우리는 지금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일상이 겹쳐지는 이 세계에 스며들고 있다. 그 이름은 ‘고물자골목’이다. 김채람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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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1 19:04

[청춘예찬] 만화로 나와 고향을 다시 쓰기

우리 집 다락방 구석에는 사진 앨범이 여럿 있다. 80년대 사진부터 최근의 사진까지 있으니까, 추억을 나쁘지 않게 모아둔 편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사진을 보게 될 때면 꼭 사진 속의 나와 현재의 내가 여기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사진에서는 감정의 파도가 일어날 때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 느꼈던 감정이 현재의 내가 느끼는 감정을 넘어서는 일은 거의 없는걸 보면,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기는 했나 보다. 선우훈 작가의 <나의 살던 고향은>은 도트 그래픽을 이용하여 쿼터뷰의 고정된 각도로 그려졌다. 이러한 연출은 고전 게임이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연상케 함으로써 독자에게 레트로의 향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인물이 만화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동일한 크기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만화에서는 인물의 크기가 원근에 구애받지 않고 등장인물이 감각하는 자의식의 크기와 비례하게 그려지는 연출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렇다면 인물이 만화 내내 같은 크기로 그려진다는 것은 등장 인물에게 거리를 두고, 필요 이상의 동일시와 감정이입을 유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칸과 말풍선으로는 과거를 구현하고, ‘말배너’라고 불리는 별도의 요소를 이용해 현재 관점에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이처럼 의도적으로 과거와 현재에 거리를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누군가가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기 쉬운 자기 연민, 감정 과잉과 같은 함정을 피한다. 그렇다. <나의 살던 고향은>은 선우훈 작가의 자전적인 만화다. 자전적인 만화로서,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 대학교, 군대, 그리고 그 이후까지 삶의 궤적을 1인칭 시점에서 충실히 따라간다. 그는 어머니의 재혼을 계기로 초등학생 때 서울에서 정읍으로 이사를 온다. 외갓집이 정읍이었기에 그에게 정읍이 아주 낯선 곳은 아니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시절이 시작된다. 재혼가정이기에 그와 새로운 가족 구성원과는 성씨가 다르지만 모두 그를 반기며 예뻐한다. 또한 성장 과정에 따라 그는 서울에서 정읍으로 그리고 정읍에서 다시 서울로, 지역을 오간다. 이에 작가는 1화 말미에 이야기한다. “가족이 누구인지는 성씨 같은 걸로 정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이 장면은 마지막 화의 결혼식에서, “우리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겪는 하루하루가 내가 살던 고향이 되어가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라는 단언과 함께 결합한다, 그럼으로써 이 만화는 가족과 고향이라는 단어가 가진, 보수적이고 관습적인 성격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정상성의 규범’을 온건한 방식으로 흔들어놓는다. <나의 살던 고향은> 이후 선우훈 작가는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의 정읍 편인 <샘골 이야기>를 발표했다. <샘골 이야기>에서 그가 ‘내가 정읍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깨달아서’라고 이야기한 것은 내게는 어쩐지 기쁜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살던 고향은>을 통해 가족과 고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용기 있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행복하기만 한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지레짐작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읍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니 독자로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선우훈 작가의 또 다른 정읍 이야기를 기다려봐도 되지 않을까? 괜히 기대를 해본다. 박근형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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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07 18:21

[청춘예찬]그땐 그게 전부였다- 진로 선택편

대학교 3학년, 많은 대학생이 시작도 끝도 아닌 애매한 학년이라고 부르는 시기이다. 3학년 1학기가 막 지난 지금, 친구들과 대화 주제는 주로 ‘진로에 대한 막막함’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결국 대화의 끝은 “나한테 이 길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잘 모르겠어”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속내를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중·고등 학생 때의 고민은 성적, 연애, 친구 등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 ‘어떤 대학에 우선으로 지원할지’, ‘어느 과를 가는 게 좋을지’ 등 1지망 대학교에 대한 선택이 전부였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 대다수는 원하는 대학교 입학이라는 같은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다. 일부 친구들은 진로를 확정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런 친구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복잡해졌다. 사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가는 길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고,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특수목적고등학교 입학 등 선택해야 할 것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진학’이라는 틀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라 고민도 비슷했다. 대학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진로를 넘어 취업과 관련된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선택이 다음의 길에 영향을 줬다. 내게 유리한 선택을 한 것인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곱씹게 됐고 자주 부담을 느꼈다. ‘그때 그것을 선택해야 했는데’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오면 오래 후회됐고 다음 선택의 시점에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다. 재학 중인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역시 졸업 이후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하다. 기자, 마케터, 방송 PD, 영상 제작자 등이다. 뚜렷하지 않은 길 속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내 적성에 잘 맞을지 고민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이 길이 나에게 정말 맞을까?’, ‘혹시 나만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이 커졌다. 그래서 오히려 제일 좋은 선택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이러한 현상을 ‘선택의 과부하이론’으로 정리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만족도는 내려가고 후회와 불안은 커진다는 것이다. 잘 선택하고 싶다는 욕심과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함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무엇을 할까가 아닌, 무엇이든 하자로. 길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말이 있다. 기자를 하다가 창업할 수도 있고, 회사에 다니다가 방송국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일을 하든 분명 그전의 경험은 다음 일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애매한 대학교 3학년이다.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3학년이기도 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오늘도 불안을 이기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것이 끝끝내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송주현 전북대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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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31 18:11

[청춘예찬] 외로움을 마주하면서

저만 그럴까요? 아니면 남들도 다 그럴까요? 가끔 가파른 벼랑 끝에 서서 홀로 살아가는 듯한 외로움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 생각과 제 삶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과 점점 달라진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서로의 다름에서 비롯된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외로움도 깊어지는 듯합니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가 쓴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이 그랬던 것처럼요. 조나단은 평범한 갈매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평범한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해변을 떠돌아다니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배불리 먹고 편하게 사는 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조나단은 하늘 높이 날기 위해 온갖 기술을 익힙니다. 다른 갈매기들이 잘 먹으려고 살았다면, 조나단은 멋지게 날기 위해 산 것이지요. 중요한 건 맛있는 먹이가 아니라 멋지게 날기라면서요. 이런 조나단에게 다른 갈매기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조나단, 비행하는 연습도 좋지만, 먹이를 어떻게 얻는지를 고민해야 해. 네가 하늘을 나는 이유는 다 먹기 위해서니까.” 다른 갈매기들은 조나단에게 훌륭한 비행도 좋다만, 멋진 비행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며 걱정하는 척 조롱합니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도 좋지만, 꿈이 먹여 살리는 게 아니니, 현실에 맞춰 살라는 겁니다. 높이 날면 멀리 볼 수 있으나, 그만큼 먹잇감과 멀어진다면서요. 동료 갈매기들한테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조나단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어쩐지 저의 외로움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집니다. 왜 우리는 남들과 다름에서 비롯되는 외로움을 느낄까요? 어째서 우리는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비웃거나 경멸할까요? 배불리 먹기 위해 나는 갈매기들이 멋지게 비행하기 위해 나는 조나단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처럼요. 그런 갈매기들을 보고, 그리고 그런 갈매기들에게 조롱당하는 조나단의 처지가 된 듯한 저를 돌아보다가, ‘소대지변(小大之辯)’이라는 말을 만났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장자(莊子, 서기전 369 ~ 289)가 한 말이지요. 소대지변(小大之辯)은 ‘작음(小)과 큼(大)의 분별(辯)’이라는 뜻인데, 장자는 작음과 큼의 ‘차이’나 ‘차별’인 ‘차(差)’가 아니라 ‘다름’이나 ‘구분’인 ‘변(辯)’을 강조합니다. 서로 다른 건 수준이 낮거나 못나서가 아니라, 서로 추구하는 삶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손가락질하며 무시하거나 비웃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쭐하며 경멸해서도 안 되고요. 장자가 강조하는 소대지변(小大之辯)이라는 말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남들과 멀어지는 거리감은 잘남과 못남의 차이(差)가 아니라 서로가 추구하는 삶의 다름(辯)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외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인데, 괜히 힘들어했다고 웃어봅니다. 게다가 혼자일수록 외로울 수는 있으나, 외로워지는 만큼 더 자유로워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두 갈망하는 자유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타고났으니, 저마다 타고난 대로 제 갈 길을 가면 됩니다.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을 남한테 끌려다니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습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내 삶을 만들면 그만입니다. 남들한테 행복하게 보이는 삶이 아닌 내가 행복한 삶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입니다. 더 잘났거나 못난 건 없습니다. △구나연 작가는 청년들과 외국인을 위한 독서 치유 모임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 『서른에 마주하는 서른 가지 질문』을 출간했다. ‘여연작가의 책방’이라는 블로그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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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24 17:31

[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①전라감영 지소(紙所)에서 문구점까지

남편과 함께 전라감영 앞을 걷던 어느 날이었다. 입춘을 맞아 내리던 이른 봄비가 감영의 담장 위로 경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차에, 남편이 말했다. “만약 지소(紙所)가 남아 있었다면, 오늘날의 문구점 같은 공간이었을까?” 2024년 2월, 그가 던진 말에서 우리의 문구점은 시작되었다. 지소(紙所)는 전라감영 안에 있던 공간으로, 한지를 만들고 관리하던 곳이다. 전주는 오래전부터 한지의 고장이었고,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품질이 우수했다. 지소(紙所)는 종이를 생산할 뿐 아니라, 종이를 통해 지역을 움직이던 중요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종이로 부채를 만들고, 서적을 펴냈으며, 완판본이 탄생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친 전주의 장면 하나에서 시작된 말들이 어느새 공간이 되고, 프로젝트가 되고, 가끔은 진짜 일이 되기도 했다. 전주 특산물을 활용한 잼과 페스토, 요리책을 함께 파는 작고 귀여운 상점, 우리가 좋아하는 오래된 식당과 장소를 소개하는 로컬 매거진, 집에 묵혀둔 책을 들고나와 전주천이나 남천교에서 함께 읽는 모임처럼. 지소(紙所)도 그런 줄 알았다. 찰나의 상상에서 시작된 단편적인 기획들, 순간엔 활활 타올랐다가 휘발되는 우리만의 놀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일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짧은 대화로 시작된 생각은 몇 날 며칠, 몇 개월 동안의 시간을 지나며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지소’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그 안에 어떤 풍경이 담기면 좋을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지소(紙所)를 재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왜 문구점을 떠올렸을까?’, ‘전주의 한지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공간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밥을 먹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 전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잊지 않고 머리를 맞대며 빠짐없이 생각을 나누었다. 즐겁고 때론 진지했던 우리의 놀이는 마침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과 맞물리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반쯤은 의심에 덧댄 계획서였고, 반쯤은 진심이었다. 1차 서류 심사에 통과하고 2차 심사를 위한 발표문을 작성할 때도 ‘설마 진짜 되겠어?’ 하는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최종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들었던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이제 정말 시작해야 한다는 실감이, 생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이야기들이 실재하는 공간이 되고 우리의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든다는 일. 그건 설레는 동시에 조금은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우리의 문구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소(紙所)가 종이를 다루며 지역과 관계를 맺었다면, 우리는 그 위에 남겨질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문구점은 단지 물건을 파는 가게가 아니었다.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나의 ‘취향’으로 ‘선택’을 해보는 곳, 방과 후 친구들과 몰려가 시간을 보내거나, 때론 경건한 마음으로 물건 하나하나를 깊게 탐구하던 곳. 누군가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지를 고르고, 무언가 꼭 사지 않고 그저 머물다 가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작은 활력이 되던 곳. 지소(紙所)가 종이를 통해 지역과 사람을 잇던 것처럼, 우리는 문구점에서 그 마음을 다시 엮어가기로 했다. 김채람 기획자는 지역이 가진 자원과 이야기에 주목하며 기획과 아카이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수집가를 위한 기록상점 ‘클립어데이’를 구도심에 오픈했다. △김채람 기획자는 지역이 가진 자원과 이야기에 주목하며 기획과 아카이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수집가를 위한 기록상점 ‘클립어데이’를 구도심에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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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7 18:37

[청춘예찬] 전주를 사랑하기 위한 ‘가이드’ 만화

10년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전주에 돌아온 건 2019년이다. 그간 전주에 자주 다녀가지 않았다. 주변에는 나와 비슷하게 이런저런 연유로 전주를 떠났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청년들이 있었다. 우리는 전주에 대해 ‘잘 모른다’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잘 모르게 되었다’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직 기억하는 것들뿐인데, 기억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 알거나 사랑하는 것은 아니므로 고향에 대한 나의 감정은 상당히 애매하고 복잡했다. 나는 <외계인 투어>에 실린 정세원 작가의 소개말에 포스트잇을 꼭꼭 붙여두었다. “가끔 전주를 미워한다. 하지만 그것도 전주에서 20년을 지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군산에 근거지를 둔, 독립만화 전문 출판사 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는 만화 프로젝트다. 전북은 군산·전주·정읍 편이 나왔다. 그중 <외계인 투어>는 전주 편의 제목이다. <외계인 투어>의 주인공에게 전주란 전 연인과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다. 전주가 고향이라고 해도 거의 집돌이로 살았기에 아는 곳이 별로 없다. 심지어 이제는 타지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주인공은 ‘외계인’으로 상징되는 외지인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갑자기 외계인들의 전주 투어에 가이드로 동행해야 한다니, 당혹스럽다. 사실, 그에게는 외계인의 가이드가 되는 것보다 전주를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 더 곤란한 일이다. 애써 외계인들을 데리고 전주의 명소와 맛집을 돌아다녀 보지만, 어딜 가도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줄곧 ‘이제 여기 안 산다(그래서 모른다)’, ‘기억 안 난다’, ‘전주가 싫다’라고 주장한다. “나 사실 걔가 아니라 이곳을 사랑했었나?”라고 관계와 장소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면서까지 전 연인에 대한 감정을 부정해 보지만, 그의 이런저런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기억은 공간·사람·시간과 딱 달라붙어 있어, 하나를 만나면 다른 것들이 마음속에서 줄줄이 재생되기 마련 아닌가. <외계인 투어>는 지역과 ‘나’의 관계를 서사화할 수 있는 실마리에 대해 말한다. 전주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다른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사람이나 나처럼 오랜만에 귀향한 사람에게 <외계인 투어>는 전주를 ‘옛 연인’ 같은 존재로 서사화하도록 돕는다. 다사다난했던 성장기를 보낸 고향과 미우면서도 행복한 순간도 많이 공유했던 전 연인은 어렵지 않게 동일시된다. 서사화와 명명이 가능해지면 우리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거리를 바탕으로 기억과 경험을 해석할 수 있게 되면, 무언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전주를 서사화한다는 것은 나의 지난 시간을 해석하고 보듬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주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다시 사랑하는 일로 이어지는 셈이다. 요컨대, 나는 <외계인 투어>로 뒤늦게 전주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전주를 욕할지라도 외지인이 욕하는 소리는 싫은 것을 보면 제법 잘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전주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주를 버리지 못하겠거든, 이 만화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순간, 전주가 말을 걸어올 것이다. △박근형 평론가는 2017 디지털만화규장각 신인만화평론 공모전, 2024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만화에 대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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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0 18:52

[청춘예찬]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 연애편

"청춘예찬 칼럼 주제는 자유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학보사에서 학생 기자로 생활한 지 2년이 막 넘은 지금, 자유 주제 칼럼은 쉬워 보이지만 주제가 정해진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청춘예찬’을 멋진 문장으로 정의를 내리며 시작할까 했지만, 곧 깨달았다. 멋있고 전문적인 내용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쓸 수 있다. 그런 글은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칼럼을 채워야 할까. 답은 안에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이를 통해 활력을 찾는다. 상대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칼럼을 통해 나와 동료, 선후배들과 나눴던 20대 초반 여러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고민은 연애다. 유치원생부터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성’이었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같이 놀자고 하고, 좋다고 표현하는 게 쉬웠던 그때와 다르게 초등학생 때부터는 이성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보낸 10대 시절, 친구들과의 대화 80% 이상은 연애 얘기였다. “지금 이게 호감이 맞겠지?”, “이게 나만 이해 안 가?”라는 말들은 연애 상담 속 꼭 등장하는 말이다. 연애 얘기를 하면 분노하고, 웃고, 울고 다양한 감정이 드러난다. 이런 묘미 때문인지, 친구들과 만나면 연애 얘기를 많이 했다. 드디어 성인이 되고, 주변 친구들도 연애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헤어지고, 다양한 연애 경험을 하며 단순히 감정적인 얘기뿐만 아니라 데이트 비용, 데이트 코스 등의 일상을 공유했다. 소소한 연애 상담으로 시작한 대화는 종종 논쟁이 되기도 했다. ‘기념일에는 이렇게 해야 해’, ‘데이트 비용을 네가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상대의 이런 행동을 보니 너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 같은데?’ 따위의 말들이 오가며 감정이 격해졌다. 친구들과 연애 얘기를 하며 나의 연애와 친구 연애를 비교하자 비극이 시작됐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손해 보고 있는 건가’ 따위의 걱정이 커졌다. 걱정은 비교를 극대화했고, 친구의 SNS 속 연애와 내 연애를 비교하며 상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 동안 연애를 하며 스스로가 위축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감동을 주고, 깊은 인상을 남긴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모두 세심함을 바탕으로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와 응원 자극을 줬다. 오히려 화려한 선물, 비싼 식사 따위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연애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의 연애가 정답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사람과 내가 지나온 시간은 전혀 다르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사랑을 주는 방식도, 상처받는 부분도 다르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당신을 웃게 만들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그렇다면 연애에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지금 당신의 연애가 그 어떤 화려한 이벤트보다 수년 후 더욱 반짝이는 순간으로 기억될 테니. △송주현 부장은 전북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학생으로 전북대신문에서 사회부장을 거쳐 현재 문화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송주현 전북대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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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03 19:25

[청춘예찬] 나쁜 친구, 생성형 인공지능

얼마 전에 챗지피티 등의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아무 사진이나 지브리 스타일로 바꾸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브리의 작품을 보면서 어린 시절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작품을 사랑하는 나는 이 유행이 아주 역겨웠다. 지브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창작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특히 보기 힘들었다. 그것들은 지브리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악했다. 다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좋아한 지브리의 작품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의 묘사를 어설프게 흉내 내고 누런색 필터를 씌운 그림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런 걸 만들어서 SNS에 올리는 게 도대체 뭐가 즐거운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을 위해 소모되고 있는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이 아까웠다. 유행이 지나가고 분노가 식어도 이때의 경험은 계속 생각해야 할 주제로 남았다. 저작권과 창작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조차 쉽고 빠른 소비문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또 어떤 방식이든 계속 창작을 해 나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창작의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아 슬펐다. 특히 지금 쓰고 있는 시를 계속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미 좋은 시를 써나가는 사람이 있고 아마 그들의 시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나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그렇게 좋은 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이, 자신이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샹바오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그 인터뷰에서 샹바오는 인공지능이 권위 있는 목소리의 모방을 대신해 주는 기계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인터뷰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지만, 다 읽고 나니 인공지능이 쓰는 문학은 스스로 열화되어 조악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많은 고민이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글쓰기는 권위를 가진 글을 더 세련되게 모방하고자 하는 힘과 기존의 세계를 끊임없이 거부하고 반대쪽으로 튀어 나가려는 힘의 줄다리기였다. 그런데 그 모방을 이제 누구나 아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어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그 모방을 위하여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을 흡수한 것과 그 과정들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생각에 도달하자 나를 사로잡았던 답답함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왜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을 아직 포기하면 안 될 것 같다. 불편하고 두렵더라고 만들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항상 곁에 두려고 한다. 모든 것이 과잉 생산되는 오늘날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조금이라도 의미를 가지기 위해 이 고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고 무난한 것은 이제 아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강한 적개심으로 이 글을 썼다. 그것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아주 쓸모없는 곳에 퍼붓는다. 그러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이 혼란만이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좋은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이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지 시험받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부디 괜찮은 미래가 있기를 빌어본다.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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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26 18:33

[청춘예찬] 신문사집 아들내미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는 익산에서 모신문사 지국장이었다. 그래서 각종 신문이 늘 집문앞에 배달이 되었고, 신문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내 기억상으로는 과묵한 아빠가 나에게 뭘 요구하거나 강요한적이 없다. 그런데 딱 한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다. 매일매일 사설, 오피니언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의 문해력으로는 너무 어려웠다. 읽어도 읽어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읽었다는 티만 내려고 열심히 어려운 글을 억지도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기장에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는 말을 자주 썼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일기를 검사하고는 반 아이들에게 내 칭찬을 자주 하셨었다. 어느새 그 초등학생이 청년이 되어 감사한 계기로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못썼던 잘썼던 6개월간 귀한 경험을 했다. 아빠는 내가 육군 상병으로 진급할 쯤 하늘나라로 떠났다. 기억이 생생하다. 간부님이 불러 가보니, 아빠가 위독하고 당장 내일 일찍 익산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침에 군대동기가 위병소 앞까지 날 배웅해줬다. 위병소를 나가는 일은 휴가나 외박으로 늘 신나야하는데, 참 무섭고 두려운 출타였다. 동기랑 포옹하며 인사하는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원도 태백이 근무지여서 가는데만 7시간이 걸렸다. 군복을 입고 바로 병원 중환자실에 갔고, 의식이 없고 병든 아빠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빠는 의식없이 날 만나고 바로 세상을 떠났다. 22살 초보 상주, 정신이 없었다. 장례식을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대학선후배, 내 중학교 친구들 연락하느라, 아빠 친구분들 맞이하느라 바빴다. 3일 내내 상복안에 육군속옷을 입고 있었다. 화장터에 갈 때는 군화를 신고 갔다. 3일 동안 한번도 울지 않았다. 정신이 없다보니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마지막 아빠의 뜨거운 뼛가루를 받을 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부대에 복귀해서도 괜찮았다. 관심병사로 등록이 되긴 했지만, 전혀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렇게 몇주가 지난뒤에 우연치 않게 부대내의 한 공중전화박스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 공중전화박스는 내가 아빠랑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곳이었다. 그 박스에 들어가니, 그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너무너무 아빠랑 통화하고 싶었다. 밥은 먹었냐, 잘지내라. 무뚝뚝하고 어색하게 통화했던... 그 전화가 너무 하고 싶었다. 감정이 다시 돌아온걸까? 그 공중전화박스를 계기로 한달동안 잠들기 전 혼자 펑펑 울면서 잠이 들었다. 칼럼을 쓰면서 생각이 났다. 우리 못난 아빠가 그렇게 억지로 읽으라고 했던 글을 내가 쓰고 있구나. 만약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얼마나 정성스럽게 내 글을 읽어줬을까? 친구들, 주변 신문사 아저씨들에게 얼마나 자랑했을까,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까. 못난 아빠, 병든 아빠였지만 아빠는 아빠더라. 나도 이제 삼십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 무너질 때 힘들 때 이상하게 아빠가 보고 싶다. 같은 남자로서 무조건적인 내 편으로서 아빠에게 기대보고 싶다. 억지로 칼럼을 읽던, 그 신문사집 초등학생 아들내미가 청년이 되어 여섯 번째 칼럼을 마무리한다. 마무리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한가지 소원이 생겼다. 아빠랑 내 칼럼을 함께 읽어보며, 싱글벙글 함께 웃으면서 소주한잔 해보고 싶다. 어디가서 못하는 것, 아빠한테 마음껏 자랑하고 싶다. 유치하기도 한데 그냥 아빠한테 칭찬한번 받아보고 싶다.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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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9 19:17

[청춘예찬] 난제로 남은 청년 일자리

뜨거운 더위에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 시기다. 이렇게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다는 것을 체감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간다. 또 상반기 공채 시기가 어느덧 마무리되고 누군가에게는 또다시 다가온 아쉬움과 절망의 시기일 것으로 생각한다. 청년들의 취업난과 실업률, 청년들의 삶이 어렵다는 소식은 취업을 앞둔 인물로써 품고 있던 일말의 희망마저 풀썩 주저앉게 한다. 이러한 배경 속, 전국의 많은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말할 때 거부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창업을 꿈꾸거나, 본인만의 특별한 목적의식이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준다는 제안에 모두 ‘예’를 외칠 것이다. 현실은 어떨까? 마냥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마련돼야 취업할 수 있는데, 이 스펙을 쌓는 것조차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오죽하면 금보다 인턴 기회가 더 귀하다는 의미의 ‘금턴’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올까. 이러한 배경 속, 몇 년간 청년(15세~29세) 니트족(NEET, 일정 기간 노동을 하지 않고 노동할 의지도 없는 사람)의 감소세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국고용정보원에서 공개한 2022년 기준 자료를 살펴보면 18.3%의 수치를 기록하며 소폭 하락하긴 했다. 이후 자료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3년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때 청년들이 일을 할 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그 문제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에게 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일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뿌리부터 고쳐나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젠가 본인의 문제로 번질 수 있는 부분이고 당장 내 친구, 그리고 내 가족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에 그저 ‘그렇구나’하고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현재 청년 일자리 문제에 닥친 또 하나의 난관은 서울, 그리고 대도시로만 모이는 지역 불균형이라는 고질병이 있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졸업하고 어느 지역에 취업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면 하나같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이때 대도시로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인프라에 달려있다. 퇴근 후 문화·체육·소비 등 휴식을 충분히 취할만한 공간이 청년의 관점에서 지역 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각에서는 “눈을 낮추면 취업할 곳은 많다”라며 청년들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다. 물론 몇몇 청년들이 기업의 규모나 급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누구나 좋은 위치‧복지‧대우를 보장해 주는 곳에 이끌리는 것은 순리다. 소위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고자 하는 청년들을 마냥 허례허식한 인간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을 막론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는 매번 언급되는 단골손님이다. 하지만 꾸준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마치 청년들을 위하는 듯한 그럴싸한 정책을 내놓는 탁상공론이 아니다. 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며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청년들이 살기 좋은 ‘일부 지역’, 청년들이 가고 싶은 ‘일부 기업’이 아닌 효율성 있는 자원 배분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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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2 18:36

[청춘예찬]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6

국립무형유산원 홍보 작업은 무척이나 새롭고 시도해본 적 없는 도전이었다. 펜드로잉이라는 그림의 장르를 종이가 아닌 영상에 담는 과정이었고, 메인 영상은 국립무형유산원의 전경을 100호 캔버스에 펜으로 그려내는 라이브 영상이었다. 큰 캔버스를 마주하고 펜 한 자루를 든 내 등 뒤로 영상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과 침묵 속에서 천천히 카메라 속에 나와 내 그림이 녹화되었다. 신중하게 선을 긋고 찍은지 두 시간 남짓 흘렀을까? 마침내 펜을 내려놓던 순간. 뻣뻣해진 허리도, 떨리는 손가락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려냈다는 성취감에 가슴 벅찼던 마지막 한 줄의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통악기로 연주된 BGM과 내가 그린 우리나라 무형유산들의 그림이 조화를 이룬 홍보 영상은 <국립무형유산원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던 라이브 드로잉의 도전은 나를 더욱 성장하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덕분일까? 스타벅스코리아, 글로벌 소셜 네트워킹 그룹 메타(META), 애플코리아, 방송사, 크고 작은 공기업의 러브 DM이 내 SNS를 두드렸다. 전주에서 서울을 오고 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작업을 하게 되면서 왜 이들이 나를, 그리고 내 그림을 좋아하고 선택한 것일까? 하고 자문한 적이 있다. 전주라는 작은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의 그림들은 도시의 삭막함과 메마름 속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했다. 편안함과 따스함이 담긴 선이라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리고 전주에서 살아가는, 전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의 그림을 사이에 두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차근차근 작은 작업실을 구상했다.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이 오가는 곳, 그 길 가운데 잠시 감성을 충전하고 쉴 수 있는 곳, 좋아하는 블렌딩 커피의 향이 가득하고 책 몇 권과 함께 세상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곳, 아담한 사이즈의 초록들과 내 소소한 전주 그림들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곳. 그렇게 직접 구상하고 디자인한 공간 <작가의 취향>이 탄생했다. 서부신시가지의 자리 잡은 ‘세상에서 가장 사적이지만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나의 바람이 가득 보태진 곳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 각지에서 맺은 인연들이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주셨고, 직접 방문해주시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취향’에서의 첫 번째 드로잉 전시회를 열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종이 봉투 한 장과 펜 한 자루, 머그잔에 담긴 아메리카노 한잔이 내 하루의 전부였던 시기의 그림들을 모아 액자에 전시하다 보니 주마등처럼 지난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미래에 대한 깊은 불안감과 불확실했던 꿈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게 된 순간과 함께 작업했던 선물과도 같은 만남, 인정받고 이뤄내고 있음에 대한 감사들. 그림으로 이루고 이루게 될 나의 꿈과 가능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순항 중인 지금이 더욱 성장해야 할 때라고 느낀다. ‘가장 한국다운 도시’ 전주의 감성을 품고 표현하는 작가로 더 깊이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 훗날 새롭고 더 많은 이야기들로 다시 만나길 바라며 여섯 편의 글을 마무리 한다. 박성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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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9 18:15

[청춘예찬] 수라갯벌에 대모잠자리 조사를 다녀와서

지난 5월 17일 수라갯벌 대모잠자리 조사를 다녀왔다. 현재 수라갯벌은 새만금 신공항의 부지로 결정되어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이다. 그 수라갯벌에 서식하는 대모잠자리는 멸종위기 2급에 해당하고 국제적으로도 보호받는 종이다.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초안에서는 수라갯벌에 10개체가 확인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500 개체 이상의 서식이 확인된 바 있다. 나는 그날 수라갯벌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먼저 개체수를 기록하는 방식 등의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갯벌에 여러 번 왔던 친구와 같이 조를 이루어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오후 1시 30분쯤에 갯벌에 들어갔다. 아침에는 날씨가 흐렸으나 갯벌에 들어갈 때쯤에는 하늘이 맑았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면 잠자리가 활동하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었다. 갯벌 아래로 내려가 무릎까지 오는 얕은 물을 건넜다. 처음 마주친 생물은 도요새들이었다. 앞장서 가며 우리를 이끌어주시던 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어 땅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작은 도요새의 발자국이 촘촘하게 찍혀있고 먹이를 먹으려 갯벌을 쪼아놓은 흔적도 볼 수 있었다. 흔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저 앞을 보니 도요새 무리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끔 바닥을 쪼기도 했다. 쌍안경으로 무리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때 느낀 감각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저들이 여기 살고 있구나. 여기가 저들의 터전이구나.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영역 한가운데 혹은 그 경계에서 보았던 동물들과는 전혀 달랐다. 이번에는 내가 이들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요새 무리를 지나 계속 갯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잠자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 앞섰다.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어쩌지 싶었다. 그러다 한두 마리씩 잠자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자리가 너무 빨라서 대모잠자리인지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잠자리들은 우리를 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떤 검은 잠자리가 우리 앞을 휙 지나 먼발치의 풀 위에 앉았다. 우리는 거의 숨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다. 대모잠자리였다. 날개에 네 개의 삼각형 무늬가 선명하게 보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좌표를 기록했다. 이후 꽤 많은 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를 하면서 점점 대모잠자리를 잘 알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잠자리 그림자만 봐도 혼비백산하며 대모잠자리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날아다니는 모습만 봐도 대모잠자리인지 아닌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모잠자리들은 다른 잠자리들보다 예민했다. 다른 잠자리들은 내 근처를 날아다니다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에 앉아 쉬기도 했지만, 대모잠자리들은 경계심이 강했다. 앉아 쉬는 곳을 아주 신중하게 정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절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3시가 넘어가자, 날이 다시 흐려졌다. 그때부터는 대모잠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갯벌은 살아있었다. 여기에 왜 공항이 들어서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새들이 날고 대모잠자리가 나는 수라갯벌의 가치는 이미 공항 따위의 가치를 아득히 초과하고 있었다. 공항이 더 필요하다는 이들에게 수라갯벌에 드는 것을 권하고 싶다.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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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2 18:32

[청춘예찬] 열여덟번째 지속가능발전목표

2015년 9월 25일, 제 70차 유엔 총회에서 193개국의 만장일치로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가 채택되었다.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이 포문을 담은 의제는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전세계가 함께 달성해야할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말하고 있다. 빈곤, 건강, 교육, 성평등, 물, 에너지, 기후 등 이 17개 목표들은 전 인류의 과제를 망라한다. 어쩌면 전 세계의 합의로 이러한 진보적인 약속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대학에서 국제개발협력분야를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 목표의 시작을 처음 마주하였다. 교과서에서 바라본 이 목표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 중간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암기하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국제분야로 진출하고자 마음먹었던 그 당시에는 진리처럼 보였다. 내가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를 담고 있었고, 나의 신념이 되어갔다. 그렇게 이 분야에 몸을 담아오며, 고민이 생겼다.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사실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반성도 들었다. 국제사회의 약속이라는 점, 따뜻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만 머물렀던 건 아닐까? 시민들에게 이 목표를 알리면서, 단순 지식적 전달에 그쳤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했던 내 삶을 돌아보았다. 전주에서 한때, 청년들과 휠체어 경사로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워크숍을 준비중이었다. 휠체어 관련 워크숍인만큼, 당연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을 서둘러 모집했다. 그렇게 모집하고 점검하면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는 사회구조적 불평등 사업을 진행하면서, 성평등을 놓치고 있었다. 휠체어 이용자를 모두 남성분들만 모집을 한 것이다. 부랴부랴 모집을 다시 시작했고, 그 가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17개 분야에 맞는 17개의 기관, 시민들을 모집하여 더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었다. 17개 목표로 재미있게 지역에서 활동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청년기획자들이 모여 ‘17인17색’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17개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그들의 생각과 가치를 책으로 묶었다. 지속가능발전의 가치를 아는 환경단체는 행사를 진행할 때, 이동약자를 배려하기도 하며, 장애인단체는 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부족한 나를 채워주고,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만,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진리도 아니고, 완벽하지도 않다. 이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어진 이 약속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17개의 약속에 우리를 가두지 말자. 각자 18번 목표를 마음속에 담아두는 건 어떨까? ‘우리 엄마의 행복’, ‘행복한 고양이의 삶’ 뭐든 좋다. 행복을 위한 가치인 만큼, 행복하게 상상하며 함께하자. 지속가능발전, 환경운동의 시초가 된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1962)’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제는 고전서가 된 침묵의 봄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와 우리의 관계, 우리와 환경의 관계를 지속가능하게 회복할 필요가 있다. 침묵의 봄이 아닌, 나무와 숲과 강과 어린아이와 우리 모두가 따뜻하고 시끌벅적한 봄을 느끼는 것이 지속가능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장금이가 음식에서 홍시맛이 나서 홍시가 들어있다고 말한 것처럼, 지속가능발전목표도 그랬다. 17개의 소중한 가치와 함께 살아와 보니 참 좋았다.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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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15 18:28

[청춘예찬]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권리를 찾아서

지난 5월 1일은 제135주년 세계 노동절이었다. 그리고 그 주 월요일이었던 4월 28일은 지난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산업 재해 근로자의 날’을 처음으로 맞이한 날이었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왠지 멀고 익숙하지 않은 존재로 느껴질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일하는 모든 사람이 바로 노동자다. 즉, 노동이라는 존재가 본인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인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우리가 생각보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행해온 것이 바로 ‘노동’이다. 따라서 한 부분의 노동이라도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 우리 사회는 절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 청소 노동자가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 사회가 깨끗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처럼 사소하다고 느끼는 노동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지원과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전북의 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의 한 제지 공장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얼마 전에도 눈부신 청춘이 저물고 또 꺾였다. 이러한 대형 사고뿐 아니라, 낙상 사고로 인한 부상과 사망 사건이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콜센터 특성화고 실습생의 사망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 역시 전주시가 그 배경이다. 한편, 이들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직업뿐 아니라, 일차원적인 관계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노동 형태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즉,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간접 고용하는 형태라든가 각종 새로운 형태가 자리 잡으며 이에 대한 법적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전자의 경우,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지만, 결코 개인 사업자라고 볼 수 없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비정규직이 대표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누구인가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하루에 수없이 보는 음식 배달 기사가 그 예시다. 더불어 골프장 캐디나 정수기 점검원 등 모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속하는 비정규직이다. 이 외에도 파고들면 복잡한 관계가 얽히고설킨 노동자들이 수십만, 수백만 명 넘게 존재한다.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경우, 명확한 법적 보호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는 법적 보호에 대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던 노동이 언제부터 위험한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 의문이다. 누구나 안심하고 일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란봉투법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사측과 노측의 대립은 여전히 팽팽하다. 양측 간의 의견을 조정해서라도, 법망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벌써 21세기의 4분의 1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매일이 색다른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노동 형태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은 여전히 부재한다. 우리 모두 평범한 국민이다. 그리고 누구나 일하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나의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라는 생각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당신의 일, 그리고 가족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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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08 14:43

[청춘예찬]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5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은 세상 모두에게 비극을 가져왔다. 겨울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봄은 버텨봐야지, 여름이 가기 전엔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겠지... ...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은 지난하기만 했다. 사람들의 이동, 모임, 아주 작은 공간의 공유조차도 제한되는 비극에 우리 모두가 지치고 자포하게 되었다. 경제 활동의 위축은 그림 작업에의 몰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매일 뉴스와 발병 수치, 통계를 들여다보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걱정이 쌓여갔다. 한해, 두 해 전전긍긍하며 버텨내었던 청년몰은 삽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되고 사랑받았던 가게부터 차례로 폐업을 선언했던것이다. 나 또한 수많은 갈등과 고민에 휩싸였다.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곳을 나간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혼자 인적 드문 전주의 곳곳을 거닐게 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정겹고 따스한 나의 동네는 어릴적 추억과 함께 복잡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잊게 해주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었던 거리는 고달픈 현실을 뒤로한 채 과거의 향수와 감성을 자극했다. 곧 사라질,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옛 건물들의 조악한 슬레이트 지붕마저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몇 번이고 찾아가서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과 공간, 하늘을 담기 위해, 나는 펜을 들고 그리기 시작했다. 무념무상에 푸욱 빠진 채 드로잉을 하고 있자면 현실과 분리된 채 그린다는 행위의 즐거움만이 나를 지배하곤 했다. 그리곤, 이 소소한 즐거움을 한 장 두 장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지나며 코로나19 상황은 조금씩 개선 되어 갔다. 백신을 몇 차례 맞고 마스크를 쓴 채 활동과 모임이 자유로워졌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썰렁해졌던 공간에 기웃하며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위로 드로잉들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골목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며 사람들에게 하트를 하나 둘 받더니, SNS를 통해 외주 작업 의뢰도 한 건 두건 들어오기 시작했다. 꽉 막혀있던 경제 활동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온 것이다. 전주시 연하장 드로잉 일러스트, 전주시 도정 소식지 삽화,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일러스트, 경기도 광주시 일러스트, 연화정도서관 개관 기념 엽서, 국립현대미술관 소식지 삽화, 태권도원 드로잉 캘린더 제작, 부산항만공사 홍보 일러스트 시리즈 등이 바로 가뭄에 단비같았던 작업들이다. 게다가 <드로잉으로 전주를 담는 작가-박성민>을 타이틀로 KBS전주 방송에도 얼굴을 비추는 행운도 얻었다. 위기가 기회이듯 나는 보다 열정적으로 내 그림의 콘셉트와 콘텐츠를 기획하고 연구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위로해줄 그림이 무엇일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석해서 풀어낼지를 매 순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도시의 이름 없는 그림 작가가 마음껏 진정성과 노력을 담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인 SNS에 ‘좋아요’와 팔로워가 늘어갔다. 떠오르는 기억으로 가장 벅찼던 순간은 국립무형유산원 개최 홍보 영상에 주인공으로 출연 제안을 받았던 순간이다. 우리나라 무형 문화 유산을 드로잉으로 펼쳐내는 나의 모습이 영상으로 담기게 될 거라는 담당자의 설명에, 가슴이 뻐근할 만큼 벅차올랐다. 박성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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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01 18:22

나의 비건 친구들

내 친구들은 대부분 비건을 지향한다. 육류, 생선, 우유, 달걀, 꿀 등 동물에게서 얻어지는 모든 것의 섭취를 피한다. 비건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은 즐겁다. 특히 직접 한 요리를 대접받을 때는 정말 좋다. 친구들은 채소와 버섯을 맛있게 요리하는 것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요즘은 봄나물로 만든 요리를 같이 먹는데 가뜩이나 짧아진 봄을 충분히 즐기게 도와줘서 고맙다. 나의 비건 친구들은 모두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을 지향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는 것에 자체에 윤리적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고민이 많다. 생명끼리 먹고 먹히는 것은 자연계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덮어놓고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육식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는 아주 쉽게 다른 생명을 소비할 수 있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명을 대량으로 만들고 죽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이다. 인류에게 윤리가 존재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정 종의 생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리하는 일, 그 생명들을 자원으로 쓰는 일,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이 매일 벌어지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 구역질이 난다. 비건은 이런 폭력에 저항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다. 일단 식당에 가는 것이 어렵다. 채식 식당은 거의 없고 채식 옵션을 찾아볼 수 있는 식당도 많지 않다. 거의 모든 식당은 주재료가 아니더라도, 육수나 양념 등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다. 그나마 주방에 따로 동물성 식재료를 빼달라고 할 수 있는 식당들을 알아놓고 거기서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항상 집에서 요리해야 하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것도 쉽지 않다. 비건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회에 퍼져있는 비건에 대한 편견과 혐오도 한몫한다. 일단 단체로 식사하는 것이 어렵다. 회사에서 회식한다던가 할 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혼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백안시당하기 일쑤다. 또 이런 자리에서는 비건에 대해 은근히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비건들이 자신을 고기나 먹는 야만인으로 볼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고기를 먹는 것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채식은 못 하겠다.”라고 자신을 변호하거나, “식물은 안 불쌍하냐.”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비건은 무조건 세상에 도움이 된다. 뭘 하든 세상을 나쁘게 하기 딱 좋은 시대에 이것만큼 좋은 실천도 없다. 공장식 축산을 지탱하는 육식이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책임을 각각의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학살의 체제를 만든 자본이 있고, 그 자본이 우리로부터 이 학살을 숨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명을 소비하도록 만든 탓이 크다. 하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힘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저께는 친구가 김밥을 싸 주었다 다른 것은 넣지 않고 참나물만 넣은 김밥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은 한 끼가 참 소중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육식을 자제하게 되었다. 아직 비건이라고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다. 친구들이 더 편하게 비건을 지향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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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24 18:39

뻔한 말, 모두를 위한 도시

전주에서 산 지 어느덧 5년이 된 것 같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익숙해지지만,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다. 승용차는 차를 살 수 있는 돈과 연령대가 되어야 탈 수 있다. 그런데 왜 점점 자동차 중심의 도시가 되어가는 걸까? 아이들, 대학생, 직장인, 어르신, 장애인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동 방법은 보행과 버스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도시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주시가 BRT(Bus Rapid Transit) 도입을 예고했다. 아직 공사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 소식만으로도 기대감을 드러내는 어르신들을 여럿 봤다. “이젠 우리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겠네”는 말 속엔, 지금까지 이동이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보여주는 세월이 담겨 있다. 짐이 많아 객사 일대로 승용차를 몰고 간 적이 있었다. 승용차가 없었을 때는 그냥 무심결에 지나쳤지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뒤를 보면서 내 차를 피해야 했다. 그리고 또 뒤에 다른 차들이 오면 계속해서 비켜주며 걸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이기도 했다. 왜 이 사람들은 그냥 편안하게 걷지 못하는 구조에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까? 어쨌든 대중교통과 보행 환경이 불편해도 이동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목적지에 도달해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인과 함께 전주 원도심에서 커피 한 잔 마시려 했다. 카페를 찾기 위해 40분 넘게 돌아다녔다. 문턱, 계단, 좁은 입구들이 계속해서 길을 막았다. 실제 어느 원도심지역 현장 조사에서도 약 1,400개의 상가 중 입구 기준으로 진입 가능한 곳은 5% 정도에 불과했다. 맛집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비로 휠체어 경사로를 설치한 식당과 카페를 알고 있다. 참 감사하다. 음식점, 카페에 들어갔다고 보자. 키오스크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종종 본다. 어르신 대상 키오스크 이용 설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설명을 해드려도 키오스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분도 있었다. 디지털 전환은 많은 사람에게 효율을 주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단절을 만들고 있다. 또, 키오스크의 높이도 누군가에겐 참 폭력적이다. 그래, 어쨌든 이번엔 여가를 보내려고 한다. 주말에 여가를 보내려다 보면 대부분의 선택지에는 비용이 따른다. 카페, 영화관, 쇼핑몰 모두 마찬가지다.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집 나가면 다 돈이더라. 그러다 문득 도서관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오래 머물 수 있고, 돈이 들지 않는 공간. 여전히 도시에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나는 AI와 앱을 통해 하루의 많은 일을 손쉽게 해결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이 편리함이 누군가에겐 진입장벽이 되고, 무심히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익숙함이 배제가 되지 않으려면, 그 익숙함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이동 수단, 가게의 구조, 디지털 기기, 여가 공간, 그리고 일상의 기술까지, 모든 요소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장벽일 수 있다. 누구나를 위한 도시는 이런 일상의 수많은 장면 속에서, ‘누구도 놓치지 않겠다’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뻔한 말처럼 들릴지라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이 도시는,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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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17 18:30

[청춘예찬] 만물은 이면을 봐야 한다

요즘 카카오톡 프로필을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SNS)의 게시물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그린 듯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챗지피티(ChatGPT)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삽입하고, ‘지브리풍으로 바꿔줘’와 같은 명령어를 입력하면 순식간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챗지피티는 스튜디오 지브리에 소속된 수많은 작가의 그림체를 완벽하게 흡수했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 심지어 빠르면 단 몇 분 만에 뚝딱 나온다. 몇 초의 장면을 위해 오랜 시간을 쏟아내는 작가들의 노력이 무색했다. 이는 분명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씨가 나를 주인공으로 채택하지 않는 한, 살면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만물이 그렇듯, 모든 것에는 좋은 면만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지브리풍 그림’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 기술은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다. 하루는 인터넷을 하던 중, 여러 게시물과 댓글 사이에서 지브리풍 사진 변환에 대한 논박을 목격했다. 지브리풍으로 사진을 변환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논박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한쪽 진영은 저작권 문제와 윤리의식을 꼬집으며 이야기했고, 또 다른 쪽은 어차피 다른 사람들 다 사용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입장이었다. 본인은 분명 문제가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므로 전자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와 연관된 게시물들을 더 찾다 보니, 주변인을 향한 외모 평가도 심심찮게 있었다. 평상시에는 자신 있게 본인 얼굴을 올리지도 못할 거면서 지브리풍 그림으로 바꿀 수 있으니 올린다는 주장이었다. 솔직히 후자의 주장은 이야기를 나눌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남에 대해 참 관심도 많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는 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분열이 발생하는 거 같다. 위와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해 당장 생각나는 것만 읊어도 젠더 갈등, 정치적 문제, 장애인 이동권, 수저론 등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먼 옛날부터 이어온 문제라기 보다, 비교적 최근이라 볼 수 있는 2010년대부터 들끓고 있다. 물론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배워나가는 것은 아주 좋은 자세다. 하지만 주제를 막론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은 모든 것들이 토론이라고 정의하기보다 억지스러운 부분, 그리고 비방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에는 인터넷, 그리고 이곳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익명성에 있는 거 같다. 생각해 보면 인터넷은 파급력이 크지만, 발언에 대한 책임은 비교적 약하다. 예를 들어 상대를 비방하는 발언을 대면으로 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면전에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야기가 다르다. 비방글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하루에 수십, 어쩌면 수백 건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 같은 말인데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글로 쓰는 건 참 쉽다. 인터넷이란 인간에게 정말 황금 같은 존재나 무책임의 수렁이기도 한 이중적인 존재다. 인터넷 없이 살아가기란 너무 크게 돌아왔고 그렇다고 이런 사태를 손 놓고 보는 것은 무책임한 거 같다. 겉에 보이는 측면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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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10 18:47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4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해가 지면 남부시장 야시장으로 몰려왔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소품과 먹거리를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곳. 남부시장 야시장은 새로운 문화가 피어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활기 넘치는 시장의 한편에서 그림엽서와 작은 그림 액자를 펼쳐보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관광 기념으로 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며 그림엽서를 골랐다. 내 작품을 사랑해준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다. 내 그림들을 흥미롭게 살펴보고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이어졌다. 어느 날은 지역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촬영까지 진행했다. 꽃이 피는 봄과 함께, 내 주말도 활짝 피어났다. 이 시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SNS를 시작했다. 꾸준히 그림을 게시하면서 그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루틴도 만들어졌다. 야시장을 오가는 나의 상황은 장밋빛이었다고 추억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안정적인 공간에 대한 꾸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계절을 넘나들면서 나의 그림에 대한 가능성이 뚜렷해질 때 즈음, 그 욕구는 더욱 확실해져갔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스한 공간이 절실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새로운 입주자 모집 공고가 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야시장에서 내 작품을 눈여겨본 담당자는 ‘작은 공간밖에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는 4평 남짓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작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충분한 공간을 얻었다. 새해가 밝고, 동장군이 매섭게 기승을 부릴 때, 나는 작업실 공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어떤 그림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일까? 나의 그림과 공간은 이곳을 찾은 모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면 좋을까? 수많은 고민과 즐거운 상상속에서 작은 공간이지만 내 첫 작업실이자 가게는 천천히 모습을 갖춰갔다. 벽과 천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전기와 바닥 공사까지 직접 했다. 설렘으로 가득 찬 마음 덕분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업실 오픈과 함께 맞이한 설 연휴 동안 찾은 사람들로 가게는 붐볐고, 나의 공간과 그림들은 드디어 빛을 보았다. 내 그림엽서가 그렇게나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었을까? 봄방학이 되자 대학생 여행객들이 찾아왔고, 봄꽃이 필때부터는 가족과 연인들이 몰려들었다. 여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졌고, 단풍으로 풍성한 가을에는 우정을 기념하는 친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반가웠고, 외주작업도 꾸준히 들어왔다.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지만, 내 그림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기업에서 일러스트 시리즈 제작을 의뢰해왔다. 몇 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작업했고, 그 결과 목돈도 손에 쥘 수 있었다. 남부시장 청년몰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기회를 잡아 나갔다. 하지만 행복한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차 청년몰의 방문객은 줄어가기 시작했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유행한 ‘리단길’ 트렌드가 청년몰에도 영향을 미쳤다. 관광객과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공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끊겨갔고, 전주 객사 인근의 깨끗하고 고급진 음식점과 샵들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객리단길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박성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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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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