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5-05 02:31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청춘예찬

[청춘예찬]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 연애편

"청춘예찬 칼럼 주제는 자유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학보사에서 학생 기자로 생활한 지 2년이 막 넘은 지금, 자유 주제 칼럼은 쉬워 보이지만 주제가 정해진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청춘예찬’을 멋진 문장으로 정의를 내리며 시작할까 했지만, 곧 깨달았다. 멋있고 전문적인 내용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쓸 수 있다. 그런 글은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칼럼을 채워야 할까. 답은 안에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이를 통해 활력을 찾는다. 상대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칼럼을 통해 나와 동료, 선후배들과 나눴던 20대 초반 여러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고민은 연애다. 유치원생부터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성’이었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같이 놀자고 하고, 좋다고 표현하는 게 쉬웠던 그때와 다르게 초등학생 때부터는 이성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보낸 10대 시절, 친구들과의 대화 80% 이상은 연애 얘기였다. “지금 이게 호감이 맞겠지?”, “이게 나만 이해 안 가?”라는 말들은 연애 상담 속 꼭 등장하는 말이다. 연애 얘기를 하면 분노하고, 웃고, 울고 다양한 감정이 드러난다. 이런 묘미 때문인지, 친구들과 만나면 연애 얘기를 많이 했다. 드디어 성인이 되고, 주변 친구들도 연애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헤어지고, 다양한 연애 경험을 하며 단순히 감정적인 얘기뿐만 아니라 데이트 비용, 데이트 코스 등의 일상을 공유했다. 소소한 연애 상담으로 시작한 대화는 종종 논쟁이 되기도 했다. ‘기념일에는 이렇게 해야 해’, ‘데이트 비용을 네가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상대의 이런 행동을 보니 너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 같은데?’ 따위의 말들이 오가며 감정이 격해졌다. 친구들과 연애 얘기를 하며 나의 연애와 친구 연애를 비교하자 비극이 시작됐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손해 보고 있는 건가’ 따위의 걱정이 커졌다. 걱정은 비교를 극대화했고, 친구의 SNS 속 연애와 내 연애를 비교하며 상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 동안 연애를 하며 스스로가 위축된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감동을 주고, 깊은 인상을 남긴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모두 세심함을 바탕으로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와 응원 자극을 줬다. 오히려 화려한 선물, 비싼 식사 따위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연애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의 연애가 정답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사람과 내가 지나온 시간은 전혀 다르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사랑을 주는 방식도, 상처받는 부분도 다르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당신을 웃게 만들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그렇다면 연애에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지금 당신의 연애가 그 어떤 화려한 이벤트보다 수년 후 더욱 반짝이는 순간으로 기억될 테니. △송주현 부장은 전북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학생으로 전북대신문에서 사회부장을 거쳐 현재 문화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송주현 전북대신문 문화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5.07.03 19:25

[청춘예찬] 나쁜 친구, 생성형 인공지능

얼마 전에 챗지피티 등의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아무 사진이나 지브리 스타일로 바꾸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브리의 작품을 보면서 어린 시절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작품을 사랑하는 나는 이 유행이 아주 역겨웠다. 지브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창작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특히 보기 힘들었다. 그것들은 지브리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악했다. 다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좋아한 지브리의 작품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의 묘사를 어설프게 흉내 내고 누런색 필터를 씌운 그림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런 걸 만들어서 SNS에 올리는 게 도대체 뭐가 즐거운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을 위해 소모되고 있는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이 아까웠다. 유행이 지나가고 분노가 식어도 이때의 경험은 계속 생각해야 할 주제로 남았다. 저작권과 창작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조차 쉽고 빠른 소비문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또 어떤 방식이든 계속 창작을 해 나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창작의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아 슬펐다. 특히 지금 쓰고 있는 시를 계속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미 좋은 시를 써나가는 사람이 있고 아마 그들의 시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나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그렇게 좋은 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이, 자신이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샹바오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그 인터뷰에서 샹바오는 인공지능이 권위 있는 목소리의 모방을 대신해 주는 기계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인터뷰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지만, 다 읽고 나니 인공지능이 쓰는 문학은 스스로 열화되어 조악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많은 고민이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글쓰기는 권위를 가진 글을 더 세련되게 모방하고자 하는 힘과 기존의 세계를 끊임없이 거부하고 반대쪽으로 튀어 나가려는 힘의 줄다리기였다. 그런데 그 모방을 이제 누구나 아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어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그 모방을 위하여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을 흡수한 것과 그 과정들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생각에 도달하자 나를 사로잡았던 답답함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왜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을 아직 포기하면 안 될 것 같다. 불편하고 두렵더라고 만들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항상 곁에 두려고 한다. 모든 것이 과잉 생산되는 오늘날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조금이라도 의미를 가지기 위해 이 고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고 무난한 것은 이제 아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강한 적개심으로 이 글을 썼다. 그것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아주 쓸모없는 곳에 퍼붓는다. 그러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이 혼란만이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좋은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이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지 시험받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부디 괜찮은 미래가 있기를 빌어본다.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 오피니언
  • 기고
  • 2025.06.26 18:33

[청춘예찬] 신문사집 아들내미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는 익산에서 모신문사 지국장이었다. 그래서 각종 신문이 늘 집문앞에 배달이 되었고, 신문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내 기억상으로는 과묵한 아빠가 나에게 뭘 요구하거나 강요한적이 없다. 그런데 딱 한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다. 매일매일 사설, 오피니언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의 문해력으로는 너무 어려웠다. 읽어도 읽어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읽었다는 티만 내려고 열심히 어려운 글을 억지도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기장에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는 말을 자주 썼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일기를 검사하고는 반 아이들에게 내 칭찬을 자주 하셨었다. 어느새 그 초등학생이 청년이 되어 감사한 계기로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못썼던 잘썼던 6개월간 귀한 경험을 했다. 아빠는 내가 육군 상병으로 진급할 쯤 하늘나라로 떠났다. 기억이 생생하다. 간부님이 불러 가보니, 아빠가 위독하고 당장 내일 일찍 익산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침에 군대동기가 위병소 앞까지 날 배웅해줬다. 위병소를 나가는 일은 휴가나 외박으로 늘 신나야하는데, 참 무섭고 두려운 출타였다. 동기랑 포옹하며 인사하는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원도 태백이 근무지여서 가는데만 7시간이 걸렸다. 군복을 입고 바로 병원 중환자실에 갔고, 의식이 없고 병든 아빠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빠는 의식없이 날 만나고 바로 세상을 떠났다. 22살 초보 상주, 정신이 없었다. 장례식을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대학선후배, 내 중학교 친구들 연락하느라, 아빠 친구분들 맞이하느라 바빴다. 3일 내내 상복안에 육군속옷을 입고 있었다. 화장터에 갈 때는 군화를 신고 갔다. 3일 동안 한번도 울지 않았다. 정신이 없다보니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마지막 아빠의 뜨거운 뼛가루를 받을 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부대에 복귀해서도 괜찮았다. 관심병사로 등록이 되긴 했지만, 전혀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렇게 몇주가 지난뒤에 우연치 않게 부대내의 한 공중전화박스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 공중전화박스는 내가 아빠랑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곳이었다. 그 박스에 들어가니, 그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너무너무 아빠랑 통화하고 싶었다. 밥은 먹었냐, 잘지내라. 무뚝뚝하고 어색하게 통화했던... 그 전화가 너무 하고 싶었다. 감정이 다시 돌아온걸까? 그 공중전화박스를 계기로 한달동안 잠들기 전 혼자 펑펑 울면서 잠이 들었다. 칼럼을 쓰면서 생각이 났다. 우리 못난 아빠가 그렇게 억지로 읽으라고 했던 글을 내가 쓰고 있구나. 만약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얼마나 정성스럽게 내 글을 읽어줬을까? 친구들, 주변 신문사 아저씨들에게 얼마나 자랑했을까,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까. 못난 아빠, 병든 아빠였지만 아빠는 아빠더라. 나도 이제 삼십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 무너질 때 힘들 때 이상하게 아빠가 보고 싶다. 같은 남자로서 무조건적인 내 편으로서 아빠에게 기대보고 싶다. 억지로 칼럼을 읽던, 그 신문사집 초등학생 아들내미가 청년이 되어 여섯 번째 칼럼을 마무리한다. 마무리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한가지 소원이 생겼다. 아빠랑 내 칼럼을 함께 읽어보며, 싱글벙글 함께 웃으면서 소주한잔 해보고 싶다. 어디가서 못하는 것, 아빠한테 마음껏 자랑하고 싶다. 유치하기도 한데 그냥 아빠한테 칭찬한번 받아보고 싶다.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5.06.19 19:17

[청춘예찬] 난제로 남은 청년 일자리

뜨거운 더위에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 시기다. 이렇게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다는 것을 체감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간다. 또 상반기 공채 시기가 어느덧 마무리되고 누군가에게는 또다시 다가온 아쉬움과 절망의 시기일 것으로 생각한다. 청년들의 취업난과 실업률, 청년들의 삶이 어렵다는 소식은 취업을 앞둔 인물로써 품고 있던 일말의 희망마저 풀썩 주저앉게 한다. 이러한 배경 속, 전국의 많은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말할 때 거부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창업을 꿈꾸거나, 본인만의 특별한 목적의식이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준다는 제안에 모두 ‘예’를 외칠 것이다. 현실은 어떨까? 마냥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마련돼야 취업할 수 있는데, 이 스펙을 쌓는 것조차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오죽하면 금보다 인턴 기회가 더 귀하다는 의미의 ‘금턴’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올까. 이러한 배경 속, 몇 년간 청년(15세~29세) 니트족(NEET, 일정 기간 노동을 하지 않고 노동할 의지도 없는 사람)의 감소세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국고용정보원에서 공개한 2022년 기준 자료를 살펴보면 18.3%의 수치를 기록하며 소폭 하락하긴 했다. 이후 자료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3년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때 청년들이 일을 할 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그 문제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에게 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일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뿌리부터 고쳐나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젠가 본인의 문제로 번질 수 있는 부분이고 당장 내 친구, 그리고 내 가족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에 그저 ‘그렇구나’하고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현재 청년 일자리 문제에 닥친 또 하나의 난관은 서울, 그리고 대도시로만 모이는 지역 불균형이라는 고질병이 있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졸업하고 어느 지역에 취업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면 하나같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이때 대도시로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인프라에 달려있다. 퇴근 후 문화·체육·소비 등 휴식을 충분히 취할만한 공간이 청년의 관점에서 지역 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각에서는 “눈을 낮추면 취업할 곳은 많다”라며 청년들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다. 물론 몇몇 청년들이 기업의 규모나 급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누구나 좋은 위치‧복지‧대우를 보장해 주는 곳에 이끌리는 것은 순리다. 소위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고자 하는 청년들을 마냥 허례허식한 인간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을 막론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는 매번 언급되는 단골손님이다. 하지만 꾸준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마치 청년들을 위하는 듯한 그럴싸한 정책을 내놓는 탁상공론이 아니다. 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며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청년들이 살기 좋은 ‘일부 지역’, 청년들이 가고 싶은 ‘일부 기업’이 아닌 효율성 있는 자원 배분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5.06.12 18:36

[청춘예찬]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6

국립무형유산원 홍보 작업은 무척이나 새롭고 시도해본 적 없는 도전이었다. 펜드로잉이라는 그림의 장르를 종이가 아닌 영상에 담는 과정이었고, 메인 영상은 국립무형유산원의 전경을 100호 캔버스에 펜으로 그려내는 라이브 영상이었다. 큰 캔버스를 마주하고 펜 한 자루를 든 내 등 뒤로 영상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과 침묵 속에서 천천히 카메라 속에 나와 내 그림이 녹화되었다. 신중하게 선을 긋고 찍은지 두 시간 남짓 흘렀을까? 마침내 펜을 내려놓던 순간. 뻣뻣해진 허리도, 떨리는 손가락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려냈다는 성취감에 가슴 벅찼던 마지막 한 줄의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통악기로 연주된 BGM과 내가 그린 우리나라 무형유산들의 그림이 조화를 이룬 홍보 영상은 <국립무형유산원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던 라이브 드로잉의 도전은 나를 더욱 성장하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덕분일까? 스타벅스코리아, 글로벌 소셜 네트워킹 그룹 메타(META), 애플코리아, 방송사, 크고 작은 공기업의 러브 DM이 내 SNS를 두드렸다. 전주에서 서울을 오고 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작업을 하게 되면서 왜 이들이 나를, 그리고 내 그림을 좋아하고 선택한 것일까? 하고 자문한 적이 있다. 전주라는 작은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의 그림들은 도시의 삭막함과 메마름 속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했다. 편안함과 따스함이 담긴 선이라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리고 전주에서 살아가는, 전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의 그림을 사이에 두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차근차근 작은 작업실을 구상했다.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이 오가는 곳, 그 길 가운데 잠시 감성을 충전하고 쉴 수 있는 곳, 좋아하는 블렌딩 커피의 향이 가득하고 책 몇 권과 함께 세상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곳, 아담한 사이즈의 초록들과 내 소소한 전주 그림들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곳. 그렇게 직접 구상하고 디자인한 공간 <작가의 취향>이 탄생했다. 서부신시가지의 자리 잡은 ‘세상에서 가장 사적이지만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나의 바람이 가득 보태진 곳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 각지에서 맺은 인연들이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주셨고, 직접 방문해주시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취향’에서의 첫 번째 드로잉 전시회를 열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종이 봉투 한 장과 펜 한 자루, 머그잔에 담긴 아메리카노 한잔이 내 하루의 전부였던 시기의 그림들을 모아 액자에 전시하다 보니 주마등처럼 지난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미래에 대한 깊은 불안감과 불확실했던 꿈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게 된 순간과 함께 작업했던 선물과도 같은 만남, 인정받고 이뤄내고 있음에 대한 감사들. 그림으로 이루고 이루게 될 나의 꿈과 가능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순항 중인 지금이 더욱 성장해야 할 때라고 느낀다. ‘가장 한국다운 도시’ 전주의 감성을 품고 표현하는 작가로 더 깊이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 훗날 새롭고 더 많은 이야기들로 다시 만나길 바라며 여섯 편의 글을 마무리 한다. 박성민 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5.05.29 18:15

[청춘예찬] 수라갯벌에 대모잠자리 조사를 다녀와서

지난 5월 17일 수라갯벌 대모잠자리 조사를 다녀왔다. 현재 수라갯벌은 새만금 신공항의 부지로 결정되어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이다. 그 수라갯벌에 서식하는 대모잠자리는 멸종위기 2급에 해당하고 국제적으로도 보호받는 종이다.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초안에서는 수라갯벌에 10개체가 확인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500 개체 이상의 서식이 확인된 바 있다. 나는 그날 수라갯벌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먼저 개체수를 기록하는 방식 등의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갯벌에 여러 번 왔던 친구와 같이 조를 이루어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오후 1시 30분쯤에 갯벌에 들어갔다. 아침에는 날씨가 흐렸으나 갯벌에 들어갈 때쯤에는 하늘이 맑았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면 잠자리가 활동하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었다. 갯벌 아래로 내려가 무릎까지 오는 얕은 물을 건넜다. 처음 마주친 생물은 도요새들이었다. 앞장서 가며 우리를 이끌어주시던 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어 땅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작은 도요새의 발자국이 촘촘하게 찍혀있고 먹이를 먹으려 갯벌을 쪼아놓은 흔적도 볼 수 있었다. 흔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저 앞을 보니 도요새 무리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끔 바닥을 쪼기도 했다. 쌍안경으로 무리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때 느낀 감각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저들이 여기 살고 있구나. 여기가 저들의 터전이구나.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영역 한가운데 혹은 그 경계에서 보았던 동물들과는 전혀 달랐다. 이번에는 내가 이들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요새 무리를 지나 계속 갯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잠자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 앞섰다.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어쩌지 싶었다. 그러다 한두 마리씩 잠자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자리가 너무 빨라서 대모잠자리인지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잠자리들은 우리를 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떤 검은 잠자리가 우리 앞을 휙 지나 먼발치의 풀 위에 앉았다. 우리는 거의 숨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다. 대모잠자리였다. 날개에 네 개의 삼각형 무늬가 선명하게 보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좌표를 기록했다. 이후 꽤 많은 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를 하면서 점점 대모잠자리를 잘 알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잠자리 그림자만 봐도 혼비백산하며 대모잠자리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날아다니는 모습만 봐도 대모잠자리인지 아닌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모잠자리들은 다른 잠자리들보다 예민했다. 다른 잠자리들은 내 근처를 날아다니다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에 앉아 쉬기도 했지만, 대모잠자리들은 경계심이 강했다. 앉아 쉬는 곳을 아주 신중하게 정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절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3시가 넘어가자, 날이 다시 흐려졌다. 그때부터는 대모잠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갯벌은 살아있었다. 여기에 왜 공항이 들어서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새들이 날고 대모잠자리가 나는 수라갯벌의 가치는 이미 공항 따위의 가치를 아득히 초과하고 있었다. 공항이 더 필요하다는 이들에게 수라갯벌에 드는 것을 권하고 싶다.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 오피니언
  • 기고
  • 2025.05.22 18:32

[청춘예찬] 열여덟번째 지속가능발전목표

2015년 9월 25일, 제 70차 유엔 총회에서 193개국의 만장일치로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가 채택되었다.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이 포문을 담은 의제는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전세계가 함께 달성해야할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말하고 있다. 빈곤, 건강, 교육, 성평등, 물, 에너지, 기후 등 이 17개 목표들은 전 인류의 과제를 망라한다. 어쩌면 전 세계의 합의로 이러한 진보적인 약속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대학에서 국제개발협력분야를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 목표의 시작을 처음 마주하였다. 교과서에서 바라본 이 목표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 중간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암기하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국제분야로 진출하고자 마음먹었던 그 당시에는 진리처럼 보였다. 내가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를 담고 있었고, 나의 신념이 되어갔다. 그렇게 이 분야에 몸을 담아오며, 고민이 생겼다.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사실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반성도 들었다. 국제사회의 약속이라는 점, 따뜻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만 머물렀던 건 아닐까? 시민들에게 이 목표를 알리면서, 단순 지식적 전달에 그쳤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했던 내 삶을 돌아보았다. 전주에서 한때, 청년들과 휠체어 경사로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워크숍을 준비중이었다. 휠체어 관련 워크숍인만큼, 당연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을 서둘러 모집했다. 그렇게 모집하고 점검하면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는 사회구조적 불평등 사업을 진행하면서, 성평등을 놓치고 있었다. 휠체어 이용자를 모두 남성분들만 모집을 한 것이다. 부랴부랴 모집을 다시 시작했고, 그 가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17개 분야에 맞는 17개의 기관, 시민들을 모집하여 더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었다. 17개 목표로 재미있게 지역에서 활동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청년기획자들이 모여 ‘17인17색’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17개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그들의 생각과 가치를 책으로 묶었다. 지속가능발전의 가치를 아는 환경단체는 행사를 진행할 때, 이동약자를 배려하기도 하며, 장애인단체는 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부족한 나를 채워주고,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만,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진리도 아니고, 완벽하지도 않다. 이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어진 이 약속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17개의 약속에 우리를 가두지 말자. 각자 18번 목표를 마음속에 담아두는 건 어떨까? ‘우리 엄마의 행복’, ‘행복한 고양이의 삶’ 뭐든 좋다. 행복을 위한 가치인 만큼, 행복하게 상상하며 함께하자. 지속가능발전, 환경운동의 시초가 된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1962)’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제는 고전서가 된 침묵의 봄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와 우리의 관계, 우리와 환경의 관계를 지속가능하게 회복할 필요가 있다. 침묵의 봄이 아닌, 나무와 숲과 강과 어린아이와 우리 모두가 따뜻하고 시끌벅적한 봄을 느끼는 것이 지속가능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장금이가 음식에서 홍시맛이 나서 홍시가 들어있다고 말한 것처럼, 지속가능발전목표도 그랬다. 17개의 소중한 가치와 함께 살아와 보니 참 좋았다.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5.05.15 18:28

[청춘예찬]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권리를 찾아서

지난 5월 1일은 제135주년 세계 노동절이었다. 그리고 그 주 월요일이었던 4월 28일은 지난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산업 재해 근로자의 날’을 처음으로 맞이한 날이었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왠지 멀고 익숙하지 않은 존재로 느껴질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일하는 모든 사람이 바로 노동자다. 즉, 노동이라는 존재가 본인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인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우리가 생각보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행해온 것이 바로 ‘노동’이다. 따라서 한 부분의 노동이라도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 우리 사회는 절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 청소 노동자가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 사회가 깨끗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처럼 사소하다고 느끼는 노동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지원과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전북의 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의 한 제지 공장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얼마 전에도 눈부신 청춘이 저물고 또 꺾였다. 이러한 대형 사고뿐 아니라, 낙상 사고로 인한 부상과 사망 사건이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콜센터 특성화고 실습생의 사망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 역시 전주시가 그 배경이다. 한편, 이들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직업뿐 아니라, 일차원적인 관계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노동 형태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즉,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간접 고용하는 형태라든가 각종 새로운 형태가 자리 잡으며 이에 대한 법적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전자의 경우,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지만, 결코 개인 사업자라고 볼 수 없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비정규직이 대표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누구인가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하루에 수없이 보는 음식 배달 기사가 그 예시다. 더불어 골프장 캐디나 정수기 점검원 등 모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속하는 비정규직이다. 이 외에도 파고들면 복잡한 관계가 얽히고설킨 노동자들이 수십만, 수백만 명 넘게 존재한다.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경우, 명확한 법적 보호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는 법적 보호에 대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던 노동이 언제부터 위험한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 의문이다. 누구나 안심하고 일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란봉투법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사측과 노측의 대립은 여전히 팽팽하다. 양측 간의 의견을 조정해서라도, 법망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벌써 21세기의 4분의 1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매일이 색다른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노동 형태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은 여전히 부재한다. 우리 모두 평범한 국민이다. 그리고 누구나 일하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나의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라는 생각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당신의 일, 그리고 가족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5.05.08 14:43

[청춘예찬]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5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은 세상 모두에게 비극을 가져왔다. 겨울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봄은 버텨봐야지, 여름이 가기 전엔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겠지... ...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은 지난하기만 했다. 사람들의 이동, 모임, 아주 작은 공간의 공유조차도 제한되는 비극에 우리 모두가 지치고 자포하게 되었다. 경제 활동의 위축은 그림 작업에의 몰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매일 뉴스와 발병 수치, 통계를 들여다보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걱정이 쌓여갔다. 한해, 두 해 전전긍긍하며 버텨내었던 청년몰은 삽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되고 사랑받았던 가게부터 차례로 폐업을 선언했던것이다. 나 또한 수많은 갈등과 고민에 휩싸였다.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곳을 나간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혼자 인적 드문 전주의 곳곳을 거닐게 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정겹고 따스한 나의 동네는 어릴적 추억과 함께 복잡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잊게 해주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었던 거리는 고달픈 현실을 뒤로한 채 과거의 향수와 감성을 자극했다. 곧 사라질,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옛 건물들의 조악한 슬레이트 지붕마저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몇 번이고 찾아가서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과 공간, 하늘을 담기 위해, 나는 펜을 들고 그리기 시작했다. 무념무상에 푸욱 빠진 채 드로잉을 하고 있자면 현실과 분리된 채 그린다는 행위의 즐거움만이 나를 지배하곤 했다. 그리곤, 이 소소한 즐거움을 한 장 두 장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지나며 코로나19 상황은 조금씩 개선 되어 갔다. 백신을 몇 차례 맞고 마스크를 쓴 채 활동과 모임이 자유로워졌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썰렁해졌던 공간에 기웃하며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위로 드로잉들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골목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며 사람들에게 하트를 하나 둘 받더니, SNS를 통해 외주 작업 의뢰도 한 건 두건 들어오기 시작했다. 꽉 막혀있던 경제 활동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온 것이다. 전주시 연하장 드로잉 일러스트, 전주시 도정 소식지 삽화,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일러스트, 경기도 광주시 일러스트, 연화정도서관 개관 기념 엽서, 국립현대미술관 소식지 삽화, 태권도원 드로잉 캘린더 제작, 부산항만공사 홍보 일러스트 시리즈 등이 바로 가뭄에 단비같았던 작업들이다. 게다가 <드로잉으로 전주를 담는 작가-박성민>을 타이틀로 KBS전주 방송에도 얼굴을 비추는 행운도 얻었다. 위기가 기회이듯 나는 보다 열정적으로 내 그림의 콘셉트와 콘텐츠를 기획하고 연구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위로해줄 그림이 무엇일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석해서 풀어낼지를 매 순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도시의 이름 없는 그림 작가가 마음껏 진정성과 노력을 담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인 SNS에 ‘좋아요’와 팔로워가 늘어갔다. 떠오르는 기억으로 가장 벅찼던 순간은 국립무형유산원 개최 홍보 영상에 주인공으로 출연 제안을 받았던 순간이다. 우리나라 무형 문화 유산을 드로잉으로 펼쳐내는 나의 모습이 영상으로 담기게 될 거라는 담당자의 설명에, 가슴이 뻐근할 만큼 벅차올랐다. 박성민 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5.05.01 18:22

나의 비건 친구들

내 친구들은 대부분 비건을 지향한다. 육류, 생선, 우유, 달걀, 꿀 등 동물에게서 얻어지는 모든 것의 섭취를 피한다. 비건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은 즐겁다. 특히 직접 한 요리를 대접받을 때는 정말 좋다. 친구들은 채소와 버섯을 맛있게 요리하는 것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요즘은 봄나물로 만든 요리를 같이 먹는데 가뜩이나 짧아진 봄을 충분히 즐기게 도와줘서 고맙다. 나의 비건 친구들은 모두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을 지향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는 것에 자체에 윤리적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고민이 많다. 생명끼리 먹고 먹히는 것은 자연계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덮어놓고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육식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는 아주 쉽게 다른 생명을 소비할 수 있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명을 대량으로 만들고 죽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이다. 인류에게 윤리가 존재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정 종의 생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리하는 일, 그 생명들을 자원으로 쓰는 일,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이 매일 벌어지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 구역질이 난다. 비건은 이런 폭력에 저항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다. 일단 식당에 가는 것이 어렵다. 채식 식당은 거의 없고 채식 옵션을 찾아볼 수 있는 식당도 많지 않다. 거의 모든 식당은 주재료가 아니더라도, 육수나 양념 등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다. 그나마 주방에 따로 동물성 식재료를 빼달라고 할 수 있는 식당들을 알아놓고 거기서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항상 집에서 요리해야 하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것도 쉽지 않다. 비건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회에 퍼져있는 비건에 대한 편견과 혐오도 한몫한다. 일단 단체로 식사하는 것이 어렵다. 회사에서 회식한다던가 할 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혼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백안시당하기 일쑤다. 또 이런 자리에서는 비건에 대해 은근히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비건들이 자신을 고기나 먹는 야만인으로 볼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고기를 먹는 것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채식은 못 하겠다.”라고 자신을 변호하거나, “식물은 안 불쌍하냐.”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비건은 무조건 세상에 도움이 된다. 뭘 하든 세상을 나쁘게 하기 딱 좋은 시대에 이것만큼 좋은 실천도 없다. 공장식 축산을 지탱하는 육식이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책임을 각각의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학살의 체제를 만든 자본이 있고, 그 자본이 우리로부터 이 학살을 숨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명을 소비하도록 만든 탓이 크다. 하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힘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저께는 친구가 김밥을 싸 주었다 다른 것은 넣지 않고 참나물만 넣은 김밥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은 한 끼가 참 소중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육식을 자제하게 되었다. 아직 비건이라고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다. 친구들이 더 편하게 비건을 지향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 오피니언
  • 기고
  • 2025.04.24 18:39

뻔한 말, 모두를 위한 도시

전주에서 산 지 어느덧 5년이 된 것 같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익숙해지지만,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다. 승용차는 차를 살 수 있는 돈과 연령대가 되어야 탈 수 있다. 그런데 왜 점점 자동차 중심의 도시가 되어가는 걸까? 아이들, 대학생, 직장인, 어르신, 장애인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동 방법은 보행과 버스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도시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주시가 BRT(Bus Rapid Transit) 도입을 예고했다. 아직 공사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 소식만으로도 기대감을 드러내는 어르신들을 여럿 봤다. “이젠 우리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겠네”는 말 속엔, 지금까지 이동이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보여주는 세월이 담겨 있다. 짐이 많아 객사 일대로 승용차를 몰고 간 적이 있었다. 승용차가 없었을 때는 그냥 무심결에 지나쳤지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뒤를 보면서 내 차를 피해야 했다. 그리고 또 뒤에 다른 차들이 오면 계속해서 비켜주며 걸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이기도 했다. 왜 이 사람들은 그냥 편안하게 걷지 못하는 구조에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까? 어쨌든 대중교통과 보행 환경이 불편해도 이동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목적지에 도달해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인과 함께 전주 원도심에서 커피 한 잔 마시려 했다. 카페를 찾기 위해 40분 넘게 돌아다녔다. 문턱, 계단, 좁은 입구들이 계속해서 길을 막았다. 실제 어느 원도심지역 현장 조사에서도 약 1,400개의 상가 중 입구 기준으로 진입 가능한 곳은 5% 정도에 불과했다. 맛집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비로 휠체어 경사로를 설치한 식당과 카페를 알고 있다. 참 감사하다. 음식점, 카페에 들어갔다고 보자. 키오스크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종종 본다. 어르신 대상 키오스크 이용 설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설명을 해드려도 키오스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분도 있었다. 디지털 전환은 많은 사람에게 효율을 주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단절을 만들고 있다. 또, 키오스크의 높이도 누군가에겐 참 폭력적이다. 그래, 어쨌든 이번엔 여가를 보내려고 한다. 주말에 여가를 보내려다 보면 대부분의 선택지에는 비용이 따른다. 카페, 영화관, 쇼핑몰 모두 마찬가지다.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집 나가면 다 돈이더라. 그러다 문득 도서관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오래 머물 수 있고, 돈이 들지 않는 공간. 여전히 도시에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나는 AI와 앱을 통해 하루의 많은 일을 손쉽게 해결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이 편리함이 누군가에겐 진입장벽이 되고, 무심히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익숙함이 배제가 되지 않으려면, 그 익숙함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이동 수단, 가게의 구조, 디지털 기기, 여가 공간, 그리고 일상의 기술까지, 모든 요소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장벽일 수 있다. 누구나를 위한 도시는 이런 일상의 수많은 장면 속에서, ‘누구도 놓치지 않겠다’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뻔한 말처럼 들릴지라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이 도시는,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5.04.17 18:30

[청춘예찬] 만물은 이면을 봐야 한다

요즘 카카오톡 프로필을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SNS)의 게시물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그린 듯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챗지피티(ChatGPT)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삽입하고, ‘지브리풍으로 바꿔줘’와 같은 명령어를 입력하면 순식간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챗지피티는 스튜디오 지브리에 소속된 수많은 작가의 그림체를 완벽하게 흡수했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 심지어 빠르면 단 몇 분 만에 뚝딱 나온다. 몇 초의 장면을 위해 오랜 시간을 쏟아내는 작가들의 노력이 무색했다. 이는 분명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씨가 나를 주인공으로 채택하지 않는 한, 살면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만물이 그렇듯, 모든 것에는 좋은 면만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지브리풍 그림’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 기술은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다. 하루는 인터넷을 하던 중, 여러 게시물과 댓글 사이에서 지브리풍 사진 변환에 대한 논박을 목격했다. 지브리풍으로 사진을 변환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논박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한쪽 진영은 저작권 문제와 윤리의식을 꼬집으며 이야기했고, 또 다른 쪽은 어차피 다른 사람들 다 사용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입장이었다. 본인은 분명 문제가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므로 전자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와 연관된 게시물들을 더 찾다 보니, 주변인을 향한 외모 평가도 심심찮게 있었다. 평상시에는 자신 있게 본인 얼굴을 올리지도 못할 거면서 지브리풍 그림으로 바꿀 수 있으니 올린다는 주장이었다. 솔직히 후자의 주장은 이야기를 나눌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남에 대해 참 관심도 많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는 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분열이 발생하는 거 같다. 위와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해 당장 생각나는 것만 읊어도 젠더 갈등, 정치적 문제, 장애인 이동권, 수저론 등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먼 옛날부터 이어온 문제라기 보다, 비교적 최근이라 볼 수 있는 2010년대부터 들끓고 있다. 물론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배워나가는 것은 아주 좋은 자세다. 하지만 주제를 막론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은 모든 것들이 토론이라고 정의하기보다 억지스러운 부분, 그리고 비방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에는 인터넷, 그리고 이곳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익명성에 있는 거 같다. 생각해 보면 인터넷은 파급력이 크지만, 발언에 대한 책임은 비교적 약하다. 예를 들어 상대를 비방하는 발언을 대면으로 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면전에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야기가 다르다. 비방글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하루에 수십, 어쩌면 수백 건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 같은 말인데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글로 쓰는 건 참 쉽다. 인터넷이란 인간에게 정말 황금 같은 존재나 무책임의 수렁이기도 한 이중적인 존재다. 인터넷 없이 살아가기란 너무 크게 돌아왔고 그렇다고 이런 사태를 손 놓고 보는 것은 무책임한 거 같다. 겉에 보이는 측면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5.04.10 18:47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4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해가 지면 남부시장 야시장으로 몰려왔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소품과 먹거리를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곳. 남부시장 야시장은 새로운 문화가 피어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활기 넘치는 시장의 한편에서 그림엽서와 작은 그림 액자를 펼쳐보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관광 기념으로 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며 그림엽서를 골랐다. 내 작품을 사랑해준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다. 내 그림들을 흥미롭게 살펴보고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이어졌다. 어느 날은 지역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촬영까지 진행했다. 꽃이 피는 봄과 함께, 내 주말도 활짝 피어났다. 이 시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SNS를 시작했다. 꾸준히 그림을 게시하면서 그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루틴도 만들어졌다. 야시장을 오가는 나의 상황은 장밋빛이었다고 추억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안정적인 공간에 대한 꾸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계절을 넘나들면서 나의 그림에 대한 가능성이 뚜렷해질 때 즈음, 그 욕구는 더욱 확실해져갔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스한 공간이 절실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새로운 입주자 모집 공고가 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야시장에서 내 작품을 눈여겨본 담당자는 ‘작은 공간밖에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는 4평 남짓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작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충분한 공간을 얻었다. 새해가 밝고, 동장군이 매섭게 기승을 부릴 때, 나는 작업실 공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어떤 그림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일까? 나의 그림과 공간은 이곳을 찾은 모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면 좋을까? 수많은 고민과 즐거운 상상속에서 작은 공간이지만 내 첫 작업실이자 가게는 천천히 모습을 갖춰갔다. 벽과 천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전기와 바닥 공사까지 직접 했다. 설렘으로 가득 찬 마음 덕분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업실 오픈과 함께 맞이한 설 연휴 동안 찾은 사람들로 가게는 붐볐고, 나의 공간과 그림들은 드디어 빛을 보았다. 내 그림엽서가 그렇게나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었을까? 봄방학이 되자 대학생 여행객들이 찾아왔고, 봄꽃이 필때부터는 가족과 연인들이 몰려들었다. 여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졌고, 단풍으로 풍성한 가을에는 우정을 기념하는 친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반가웠고, 외주작업도 꾸준히 들어왔다.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지만, 내 그림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기업에서 일러스트 시리즈 제작을 의뢰해왔다. 몇 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작업했고, 그 결과 목돈도 손에 쥘 수 있었다. 남부시장 청년몰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기회를 잡아 나갔다. 하지만 행복한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차 청년몰의 방문객은 줄어가기 시작했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유행한 ‘리단길’ 트렌드가 청년몰에도 영향을 미쳤다. 관광객과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공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끊겨갔고, 전주 객사 인근의 깨끗하고 고급진 음식점과 샵들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객리단길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박성민 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5.04.03 18:17

지치지 않기 위한 마음가짐

시집 전문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하면 많은 사람들이 멋지고 대견하다는 반응을 보여준다. 머쓱하지만 그런 응원들은 고맙고 힘이 된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책방을 운영한다고 넘겨짚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분야의 자영업이 어려운 시기에 책방을, 그것도 잘 팔리지 않는 시집만을 팔고 있으니 그런 것 같다. 책방의 목표나 비전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는 어떤 대의가 배경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책방을 운영할 때, 사명감이나 목표 의식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사명감이라는 것은 주어진 의무를 책임 있게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다. 타인이 나에게 달성해야 할 목표를 주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사명감의 전제가 된다. 일단 이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책방을 열기 전에 지방에 시집 책방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필요에 의해 이 공간을 열었다. 거창한 목표도 없다. 얼마의 매출을 달성해야겠다거나, 큰 영향력을 바라지도 않는다. 책방을 운영하는 원동력은 아주 작은 것이다. 사명감이나 목표 의식 같은 것이 아니다. 책방을 운영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일들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좋아한다. 정해진 시간에 처음 책방을 열고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잠시 한 공간에 머무는 손님들로부터 느껴지는 느슨한 연결감. 책장과 책상에 먼지를 닦고, 바닥을 쓸고, 삐뚤어진 책들을 정돈한 후, 잠시 가만히 책방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상쾌함. 커피를 내릴 때 나는 냄새. 불을 끄고 문을 닫을 때 오늘 하루도 잘 영업했다는 뿌듯함. 이 감각과 감정을 좋아하고 있다. 이런 작은 것들이 원동력이다. 사명감과 목표 의식은 중요하지만, 행동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의 가장 작은 단위를 수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동력을 잃기 쉽다. 악기 연주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에는 연주하고 싶은 노래가 있거나 그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 때문에 그 악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 의식은 악기연주 기초에서 만나게 되는 지루한 반복 연습에 좌절될 때가 많다. 하루 종일 기초만 연습하다 보니 목표는 멀게만 느껴지고 그렇게 악기를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단한 목표가 없더라도 그저 악기를 연주할 때 느껴지는 감각을 좋아하게 된다면 어떨까? 건반을 누를 때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압감. 현을 튕길 때 몸에 전해지는 진동. 호흡이 소리가 되는 감각을 사랑하게 된다면 반복연습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연주 실력이 빠르게 늘 것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모하는 감각은 우리를 빠르게 지치게 만든다. 사명감과 목표 의식의 함정이 여기에 있다. 특히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모하는 감각은 지금의 20-30세대가 인생 전반에 걸쳐 느껴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직선적이고 단일한 인생을 살 것을 강요하고,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도태나 실패로 여기는 풍조는 한국의 청년 자살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이다. 우리는 현재를 더 감각해야한다. 생산적이지 않다면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없다.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감각과 감정 속에 있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 하나 쓰다듬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니까.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 오피니언
  • 기고
  • 2025.03.27 17:56

모나리자가 미완성이지만 명작으로 꼽히고 있듯

아프리카 카메룬에 코로나 첫 확진자가 뒤늦게 발생하였다. 그 당시 KOICA봉사단으로 약 20개월 정도 활동하던 시기였고, 20개월 동안 마을사람들과 땀 흘려 준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러 출근하는 첫날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총괄 현지인 기술자와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들떴다. 정말 힘들게 준비해왔고 그 시기가 길어지기도 했다. 카메룬 마을 사람들도 나도, 기술자도 많은 기대를 했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설레는 월요일이었다. 기술자가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 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확진자 추가로 전원 긴급대피명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고생해서 이걸 만들고 준비해왔는데, 첫날에 긴급 대피명령이라니...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본부에서는 오늘 당장 모든 짐을 싸고, 내일 수도로 올라오라고 했다. 토요일 귀국하겠다고 했다. 언제 공항이 폐쇄되고 언제 수도와 지방 이동도 통제될지 모르니, 당장 내일 오라고 했다. 살면서 가장 힘든 하루였다. 하루 종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관계자들을 만나 사과했다. 이웃들과의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밤을 새워 집을 정리했다. 아침 6시까지 물 한 모금도 못 마셨다. 정신이 나갈 것 같지만, 마무리할 일이 많았다. 제일 중요한 마을 추장님과 부인을 만나러 가야 했다. 추장님과 부인은 나의 카메룬 아버지, 어머니였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마을에 가서, 문을 두들겼다. 추장님과 부인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카메룬 어머니가 힘없이 내 팔을 때리며 오열하셨다.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평소 무뚝뚝하던 아버지 추장님도 눈물을 훔치셨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그러셨다. “네가 이후 귀국하기 전 마을에서 크게 파티를 열고, 너의 가족들에게 줄 선물도 준비하려 했다.” 너무 슬프고 괴로웠다. 두 분은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한 기도를 해주셨고, 나는 절을 올려드렸다. 그렇게 슬픈 인사를 마치고 수도로 대피했다. 공항은 바로 폐쇄되었다. 결국 수도에서 무기한 격리를 이어갔다. 격리 중 본부에 여러번 부탁을 했다. 마을 사람들과 내가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이니, 내가 없어도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본부에서는 난감했다. 결국 우물 프로젝트만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내가 없는 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결국 한국으로 귀국하고, 남은 계약기간 동안 프로젝트는 계속되었다. 지하 80m 아래에서 물을 발견하고 지상으로 첫 물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을 받았다. 또다시 펑펑 울었다. 카메룬에서 가장 유명한 방송사에 우물사업이 주말 내내 방영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 우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하지만 가슴엔 남아 있다. 약 2,000여명의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멀리까지 힘들게 물을 뜨러 가지 않아도 된다. 숲속의 샘물이 아니라, 흙먼지가 섞인 물이 아니라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주인이 되어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살면서 가장 큰 이별을 겪어 슬퍼하던 나에게 이모부가 말씀해주셨다. “가슴속에 큰 그림을 가지고 갔는데 다 못 그리고 왔다고 너무 서운해할 것 없어.” “모나리자가 미완성이지만 명작으로 꼽히고 있듯, 그들의 가슴속에 네가 심어준 희망의 불꽃으로 나머지 작품은 그들이 완성할 수 있을 거야.” “넌 너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동안 타지에서 고생 많았다.” 이제는 마음이 정리되었다. 함께 한다면, 그리고 함께 해왔다면 그걸로 되었다.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5.03.20 18:52

부족의 순기능

얼마 전 영화 <서브스턴스>를 관람했다. 오랜만에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갔기에, 향하는 길 내내가 설렜다. 그리고 이미 관람평을 간단히 들었던지라 영화 속 특정 장면에 대한 충격이라던가, 호불호에 대한 부분은 인지하고 봤다. 그러나 암전됐던 조명이 밝아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동안 작품 속 묘사와 표현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귀가하는 길에 영화가 표면적으로 제공한 부분 외, 나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곰곰이 고민했다.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포털에 검색하면 나오는 <서브스턴스> 소개의 첫 문장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현재의 본인한테 완벽히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자존감의 소유자이거나, 자신이 목표로 삼은 것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다 해내는 사람이면 예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본인 그 자체에 완벽히 만족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감히 예상하는데 0에 수렴한다고 본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잠들기 전 “오전에 내가 왜 그랬을까, 아까 이렇게 이야기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며 매일 그날의 실수를 복기하고 부족함을 파헤친다. 이처럼 인간이라면 그게 누구든 본인에게 부족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외적인 부분을 비롯해 내적인 부분까지 아주 다양한 곳에서 속속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부족에 대해 고민하며,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연히 본인 중심으로 느끼는 부족에 대해 이야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의 첫 마디는 환경적인 부분에 속하는 ‘시끌벅적함’에 대한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떠들썩하던 집을 떠나 갑자기 혼자 조용히 살게 되며 느낀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늘 방에서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노래든, 드라마든, 라디오든 소리가 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듣게 된다고 말했다. 본인도 지인과는 다른 영역이지만, 역시 부족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면 아직 깊지 않은 지식, 서투른 감정 표현, 주변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활발한 성격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하나, 둘 따지고 보면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인간 하나에도 수십 가지의 부족이 있다. 만약 지인에게도 본인에게 느끼는 부족함만 이야기해 달라고 질문했더라면,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처럼 다들 살면서 최소 세 가지 이상의 부족함은 안고 다닌다. 그리고 이것들은 생각만큼 없애는 게 쉽지 않다. 심지어 한 가지를 보완하면, 또 다른 부족이 자연스레 따라오면서 죽을 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생각해 보면 인간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 근원은 더 좋아지고 싶고 더 완벽해지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한 거 같다. 그리고 가만 보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그냥 아예 파헤쳐 보는 것도 좋은 거 같다. 인생을 아주 긴 호흡의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늙음을 두려워하기보다, 기다리고 또 기대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열망하던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초반에 언급했던 <서브스턴스> 소개 첫 문장이 다시금 떠오른다. 더 나은 본인은 단순히 남들이 원하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진정 더 나은 스스로를 만드는 방법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다. 너무 자신을 미워하지 말자. 스스로 사랑하자.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5.03.13 18:58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3

생애 첫 그림엽서를 판매하게 된 프리마켓 당일, 토요일. 날씨는 물론 습도 온도까지 완벽했다. 다양한 상품과 작품으로 무장한 셀러분들이 자리를 잡고 분주히 자신의 공간을 꾸미고 있었고 나 또한 간이 테이블을 펴고 엽서를 정성껏 진열했다. 엽서 한 장에 천원, 열두 장에 만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 엽서를 살펴보고 구매해줄 사람들을 기다렸다. 화창한 주말, 오고 가는 많은 가족, 연인, 친구들. 하지만 사람들은 내 테이블 앞에 머물지 않았다. 슬쩍 기웃거려본 다른 셀러들의 먹거리와 소품, 공예품 마켓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누가 내 엽서를 봐주려나 한참을 기다리던 중 작고 귀여운 소년이 쪼르르 다가오더니 엽서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덩달아 따라온 아이의 엄마도 한옥마을 명소가 그려진 드로잉 엽서를 신기한 듯 살펴보았고, 난 첫 판매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엽서를 한 장 사고 싶다며 엄마를 졸랐다. ‘그걸 사서 뭐하게? 차라리 먹을거 사자!’ 툭 하고 던져진 아이 엄마의 한마디는 내 가슴속 한 곳에 찌릿한 아픔을 남겼고, 그렇게 둘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흘렀을까? 종일 아무것도 팔지 못한 채 마켓을 철수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준비한 상품을 멋지게 완판시킨 셀러들은 자리를 하나둘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온종일 마켓을 지키느라 고픈 배를 달래며 사 먹은 수제 과자와 아이스커피 한잔 그리고 입점비용까지, 제대로 마이너스를 찍었다. 냉혹한 현실에 풀이 죽은 나는 눈치를 보다 정리를 시작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곤두박질치는 마음의 공허와 우울에 쉽게 고개를 들 수 없던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맞은편에서 조각 공예품을 판매하던 젊은 남자분이었다. 내 엽서를 진지하게 고르다가는 12장 세트를 집어들었다. 그게 나의 생애 첫 엽서 판매의 순간이었다. 안쓰러움과 격려와 응원이 담긴 만원. 그리고 내게 남은 건 핑크빛 꿈과 같았던 엽서 수천 장이 담긴 박스들이었다. 차가운 실패를 맛본 봄은 따스함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고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마냥 놀 수는 없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버티던 중, 우연히 모집공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주남부시장 청년몰 모집공고였다. 전주남부시장은 한옥마을 옆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들도 전주의 풍습과 문화, 음식을 경험하고 싶어 찾는 곳이다. 당시 시장 안에 조성된 청년몰은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뭉친 젊은 사업가들이 모인 공간으로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소자본으로도 대박의 꿈을 펼칠 수 있다며 소문이 자자했다. 1박 2일, 런닝맨, 슈퍼맨이 돌아왔다, 알쓸신잡 등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했고 청년몰의 흥행은 다른 시, 도 청년 사업의 롤 모델이 될 정도였다. 그만큼 청년몰 입점은 경쟁률도 높았을뿐더러 심사도 아주 까다로웠다. 난 너무나도 절실했다. 가지고 있는 자본은 바닥이었고, 내가 그린 그림으로 엽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굿즈를 선보일 공간이 필요함은 자명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사업 샘플들을 탄탄하게 준비하고 입점심사를 받았다. 관계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림에 대한 칭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낙방이었다. 엽서나 소품보다는 음식이 더 호응도가 높다는 이유였다. 역시 그림으로 꿈꾸는 미래라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 일까 낙담하고 고민하던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청년몰 담당 매니저의 전화였다. 내 한옥마을 엽서가 너무나도 아쉽고 매력적인 상품이라는 말과 함께 이어진 매니저의 새로운 제안은 전주남부시장 야시장을 빛내줄 소품 마켓이었다. 박성민 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5.03.06 19:15

그 코미디는 웃기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점심시간 교실 뒤편에서 동급생이 동급생을 때리고 있었다. 이유는 맞는 사람이 못생겨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빙 둘러앉아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모두 깔깔 웃었다. 나는 이게 왜 웃기는지 몰라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옆 사람이 정색하며 말했다. “왜 안 웃어?”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 코미디를 볼 때 이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요즘 코미디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있다.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코미디는 조롱과 폭력으로 물들어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사회적 약자이다. 그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것들을 도마 위에 올린다. 정상적이지 않은 신체와 옷차림을 비롯하여, 낮은 지능, 가난, 특정 신념에 대한 조롱은 코미디라는 이름 아래 무제한으로 허용된다. 못생겼다고 사람을 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가차 없이 이런 특성들을 공격할수록 소위 “센” 코미디가 되고, 사람들은 대범하고 솔직하다며 치켜세워준다. 이런 코미디들은 잘 팔리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에서 널리 유통되려면 조롱은 거의 필수 요소가 된 것만 같다. 이런 코미디는 은연중에 시청자를 협박하고 있다. 만약 이게 웃기지 않는다면 너는 정상성에 편입될 수 없고, 웃지 않는다면 너도 때리고 조롱할 것이라고 노골적 암시한다. 동급생이 주먹으로 맞는 것을 보며 왜 너는 웃지 않냐고 했던 사람처럼, 공범이 되지 않으면 너도 때릴 거라는 말이다. 이런 협박에 많은 시청자가 즉각 반응한다. 문제점을 비판하며 웃지 않는 사람을 색출하고, 예민하다거나 고상한 척한다는 꼬리표를 붙여서 조롱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길들고 기존 체제를 견고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태를 풍자라고 한다. 단언컨대 그것은 풍자가 아니다. 풍자는 권력을 향해야 한다. 약자를 웃게 하고 강자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코미디는 때려도 되는 만만한 상대를 찾아다닌다. 권력의 수호자이다.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하는 페미니즘, 비거니즘, 퀴어가 좋은 먹잇감이다. 코미디는 그들의 행동을 곡해하고 때로는 날조해서라도 조롱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다. 그 방식들은 아주 낡았는데, 페미니스트는 못생겼고, 비건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퀴어는 징그럽다는 식이다. 권력의 수호자 노릇을 빼면 코미디는 어린아이들이 똥이나 방귀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지러지는 것 수준으로 떨어진다. 주요 소비자가 어린아이들은 아니니까, 여기서 똥과 방귀는 성적인 것들로 대체된다. 끔찍하게 재미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주로 광고주 때문이다. 미디어 플랫폼의 고객은 시청자가 아니라 광고주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이미 눈치채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은 미디어 시청자를 광고주에게 가져다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콘텐츠들은 광고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돈 많은 광고주에게 반기를 드는 콘텐츠는 즉각 제거 대상이 되고, 광고주가 좋아하는 영상은 많이 노출되어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을 문제 제기하지 않고 놔두면 다음 조롱의 대상은 당신이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항상 검증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보고 웃고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도 웃기지 않다면 댓글 하나 적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나도 안 웃겨요.”라고.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 오피니언
  • 기고
  • 2025.02.27 18:04

[청춘예찬] 나의 이웃은 적이다?

나는 공동체를 경험해 보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공동체라는 말이 참 어렵고 어색하다. 왠지 내 사생활이 침해당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렇게 어색하고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사는 빌라 이웃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 지나가다 얼굴을 마주치지만 인사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이웃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냥 불편하다. 대학가 50개의 원룸이 있는 대형빌라에 거주하면서도 이웃은 적이었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그냥 괜히 불편했다. 이러니까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집에서 날카로운 뚜껑에 발이 크게 베였다. 피가 생각지 못하게 많이 나와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집에 응급치료물품이 없었다. 누구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이웃은 모두 적이었다. 결국은 수건으로 한참 동안 피를 막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발바닥을 다쳐 신발을 신고 치료용품을 사러 갈 수도 없었다. 또, 지금 사는 빌라에 많은 문제들이 있다. 빌라 앞에는 늘 분리되지 않고 막 버려진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는 배달용기와 비닐이 늘 함께 있다. 심지어 빌라가 경매에 올랐다. 그 결과 관리비로 사용하던 인터넷과 TV가 끊어졌다. 하지만 이 빌라에 사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함께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공동체를 처음이자 어색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KOICA봉사단을 할 때였다. 작은 마을에서 거주할 때, 수도로 말없이 출장을 갔었다. 며칠 출장을 다녀와서 보니, 이웃들이 많이 서운해했다. 왜 출장을 가는데 아무 말도 없이 갔냐고, 인사도 없이 가면 어떡하냐고 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어색했다. 공동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그렇게 2년 가까이 살았다.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결론적으론 참 좋았다. 집에 먹을 밥이 없어 저녁에 이웃집에 가서 현지식을 얻어먹었다. 다음날 입을 행사복이 찢어져 밤에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찾아가 옷 수선을 부탁했다. 수도로 출장을 가기 전에는 모든 이웃들과 포옹을 하고 갔다. 돌아올 때면 수도에서만 살 수 있는 과일과 초콜릿을 사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줬다. 현지인들에게 시달려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저녁에 이웃집 군인 아저씨에게 찾아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털어놓기도 했다. 이제는 전주라는 도시에 살게되면서 새로운 공동체 개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해라고 생각지 않으면서, 내 이웃들과 소통하고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살아가 보고 싶다. 급하게 약이 없으면 빌리고 싶고, 때론 음식이 많이 남으면 서로 나누고 싶다. 1인 가구가 사기에 매번 부담스러운 야채 뭉치들도 함께 사서 나누고 싶다. 어느 명절연휴 시작 날이었다. 나에게 이웃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내가 사는 빌라의 이웃들은 이웃이 아니었다. 늘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집앞 편의점 사장님과 미용실 원장님이 진짜 이웃이었다. 인사드려야 할 높은 어른들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작은 과일선물세트를 사서, 편의점 사장님과 미용실 원장님께 드렸다. 편의점 사장님은 자리를 옮기셨지만, 그 동네에 갈 때면 늘 들린다. 아직도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미용실 원장님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라고 하신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따뜻한 이웃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 보고 싶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만 같다.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5.02.20 18:44

[청춘예찬] MZ세대를 거부합니다

오늘(14일) 진행하는 전북대학교 입학식 취재를 준비하다 보니, 체감하지 못했던 ‘2025년’이라는 존재가 드디어 피부에 와닿는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신년이 다가옴을 1월도, 학기가 시작하는 3월도 아닌 2월에 느낀다. 매년 2월 중순이 되면 입학식을 비롯한 신입생 환영 행사들이 연이어 시작하기 때문이다. 신입생들 역시, 1월은 드디어 성인이 됐다는 오묘한 감정으로 보내고, 굵직한 교내 행사가 진행되는 2월이 돼서야 진정으로 성인이 됐다는 것을 체감할 것이다. 어느새 익숙해진 이 공간에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다 보니, 문득 ‘나’라는 존재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다 보니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학생’이라는 역할과, 책임을 중시하는 ‘기자’라는 역할을 입학과 동시에 얻게 되면서 생성된 이중적인 자아에 대해서다. 그렇기에 최근 나이에 맞지 않게 떠오르는 생각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예를 들면 “조직 생활하려면 본인을 조금 굽히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거 아닌가?”, “요즘 애들은 고생하는 걸 너무 싫어하네” 따위의 생각들이다. 물론 개인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잃으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맡은 일이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응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면서 학보사에서 일하다 보니 여기저기 돌아다닐 기회가 많았다. 이런 조건 덕분에 나이에 비해 다양한 인간상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 못 했으면서 일단 큰소리부터 치는 사람, 거만한 사람 등 주변을 살피기보다 본인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적잖게 만났다. 하지만 그중 가장 불편하고 불쾌한 인간들은 무언가를 실행하려고 노력조차 안 하는 부류와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부류였다. 흔히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MZ세대의 모습이자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역시 MZ세대 특징’이라며 지적한다. 즉 일부로 인해 전체가 평가받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디어에서나 볼 법한 MZ세대의 모습을 실제로 보니 생각의 전환이 시작됐다. 일상 속 예시를 들면 친분이 있는 누군가가 무거운 짐을 들며 끙끙대더라도 빤히 쳐다보고 있다거나, 조금만 일이 어렵고 힘들면 더 해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의를 강조하고, 근성을 중시하는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특이하게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잘 듣지 않던 자녀들이 “거짓말하면 안 돼”라는 부모님의 말씀만은 너무 잘 듣는 거 같다. 이에 따라 ‘선의의 거짓’이라는 말 역시 사라지는 거 같다. 돕기 싫으면 안 돕고, 하기 싫으면 “그래도 해볼게요”라는 말 대신 “안 할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때론 자신의 본성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려면 본성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랑 안 맞는 거 같아도 한 번쯤은 가면을 쓸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사회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어떠한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이다. 본인 개성을 먼저 강조하기 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건 어떠한가? 이예령 전북대신문 편집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5.02.13 18:28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