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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시작이 가장 무거운 이유

김원오 변호사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우리는 종종 주춤거린다. 설렘보다는 막막함과 버거움이 앞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나도 다르지 않다. 정해진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역할이나 낯선 책임을 마주해야 할 때면, 눈앞에 놓인 과정이 까마득하게 느껴져 시작부터 지쳐버리거나 슬그머니 포기하고 싶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주로 발사하는 로켓을 떠올린다. 로켓이 지구 중력을 이기고 궤도에 오르려면 이륙 중량의 약 90%를 연료와 산화제로 채워야 한다. 구조물과 엔진, 우주로 보내려는 탑재체를 다 합쳐도 중량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짙은 대기권을 가르며 공기 저항이 극심해지는 최대 동압점의 압력을 견뎌내는 동안, 발사체는 거세게 진동하며 탑재된 연료의 대부분을 격렬하게 불태운다. 그러고 나서 궤도에 안착하면 대기 저항이 사라지고, 별다른 추력 없이도 관성에 실려 지구를 유영하게 된다.

우리 삶도 이 로켓을 닮았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유독 큰 피로를 느끼는 까닭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익숙한 일상의 중력을 이기고 새 환경이라는 짙은 대기권을 돌파하는 비행 중이라서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행위 자체가 본래 가장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소소하게는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 익숙한 업무 방식을 버리고 새 시스템에 적응하는 일, 오랜 침묵 끝에 다시 펜을 드는 일부터 크게는 새로운 진로나 창업에 도전하는 일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대기권을 뚫기 위해 치열하게 연소한다. 결국 시작 앞의 두려움은 흠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비행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수습변호사 시절, 소송 기록을 처음 마주한 날을 기억한다. 혼자 힘으로 사실관계와 법리의 실타래를 풀어야 했던 그 시기의 압박감이 참 컸다. 서면 한 줄을 쓰려고 수십 페이지를 다시 들췄고, 새벽까지 기록에 파묻혀도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로스쿨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하급심 판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한숨짓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간을 가까스로 견딘 뒤에야 사건의 흐름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음에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새 사건을 맡을 때마다 여전히 그 무게를 다시 마주한다. 다만 이제는 그것이 성장의 일부임을 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자기만의 대기권을 거듭 뚫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며칠 만에 주저앉고 싶어졌다면,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하며 자책하지 말자. 지금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두꺼운 대기를 가르며 궤도를 향해 거세게 연소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오늘도 저마다의 팍팍한 대기권을 뚫느라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이웃들을 생각한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에서, 늦은 밤 책상 앞에서, 새벽 작업장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당장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고 일상의 중력에 끌려 다시 내려앉고 싶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 어느새 각자의 궤도에 올라,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한결 가벼워질 내일을 상상하며, 벅찬 시작의 무게를 꿋꿋이 감내하는 우리 모두의 고단한 어깨에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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