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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우리 쌀

작년에도 무더운 날씨와 대형 태풍이 있었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 풍년이 되었다. 따라서 알알이 익어 고개 숙인 치렁치렁한 추수를 한 농민들의 마음도 풍족하다. 금색으로 물든 가을 들판은 언제나 농부들의 보람이었고 한해 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었다. 알알이 튼실한 벼 이삭을 만져도 보고 세어도 보며 봄부터 흘린 땀을 잊고 꽃송이처럼 희망에 부풀었다. 이처럼 풍년이 들면 넉넉한 양식을 얻으니 큰 보람 속에 참 좋다. 온 가족이 배불리 먹고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예로부터 우리 농촌에서는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지 않았던가? 흉년이면 한 톨의 알곡을 지키려고 종일 새를 쫓있고 곡간에 드나드는 쥐를 잡으려 온 마을이 '쥐 잡는 날'을 두었던 추억이 머리에 스친다. 세상 누구나 밥은 희망이고 생명이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니던가? 그런데 농민들은 잘된 농사가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쌀값이 폭락하여 피땀으로 지은 금쪽같은 쌀인데 농비도 안나온다며 수확하려던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물가는 치솟는데 쌀값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 농민의 시름은 커질 수밖에…. 더욱이 공산품 수출에 따른 쌀 수입량이 매년 약 40만 톤이 넘고 농민들이 한 해 생산하는 쌀도 약 350만 톤이라 한다. 여기다가 5년간 정부 수매 비축미도 약 350만 톤 정도가 되어 정부의 곡간도 가득 차 있어 수매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냥 농민들의 생계를 방치할 수는 없다. 또한 시대 조류에 따라 국민의 식생활 문화도 많이 변했다. 밥만 먹던 옛날과는 달리 육류와 빵, 국수, 라면 등 간편한 식품의 소비가 늘다보니 90년대에 1인당 1년에 122kg을 먹던 쌀을 이제는 61kg 정도 소비하니 하루에 500g도 못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원가로 따지면 하루 쌀값이 700원으로 생수 한 병값보다 더 싸다. 그리고 1년간 밀 알곡 약 240만톤과 밀가루 6만 톤을 수입하고 있다하니 1인당 1년 소비량도 34.2kg으로 쌀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처럼 식품 기호가 달라짐에 따라 우리도 밀 재배를 늘려야 하고 가루 쌀 육종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일인데, 문화적, 지리적, 교통의 취약지로 내몰린 우리 농촌을 그냥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래된 비축미는 가축사료로 쓰도록 하고 사료용 곡물 수입은 줄이는 한편, 농촌에서 어렵게 농사짓는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농촌 인구는 차츰 감소하고 있고 거기다가 농업인구의 24%이상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니, 앞으로 우리 농촌을 누가 지켜나가야 할 것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노동력이 없는 농촌, 희망을 잃어가는 농촌으로 변하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다.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만일 곡물 유통이 막히고 세계가 점점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식량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인간의 기본이 의식주인데 식량문제만큼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할 일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의 귀농 귀촌 환경을 만들고 소출 소득작목을 개발하고, 농촌을 살리고 농민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농촌경제를 재생시킬 특단의 대책이 절대 필요한 때다. 지난날 우리를 지켜온 생명의 쌀이 오늘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음식문화에 밀려 다양한 농작물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므로 수요공급도 개선되어야 할 시기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신팔복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은빛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진안문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의 메아리>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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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2 15:58

[금요수필]달밤에

자정을 갓 넘긴 포근한 밤, 언덕길에서 바라보는 달이 유난히 밝다. 늦여름의 잔영이 남아 있던 얼마 전만 해도 달빛에 몸을 적시면 서늘해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밤 달은 불에 달군 듯 붉은 기운을 품고 있다. 달은 가끔 지나는 구름에 몸을 숨겼다가 나와 나를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럴때면 한가롭게 달과 눈이 마주치며 생각 주머니가 열린다. 달을 바라보다 기억의 소실점에 이르면 그곳에는 언제나 고운 달빛을 맞으며 언덕길을 걸어가는 소녀가 보인다. 머리는 양갈래로 따고 군데군데 때가 낀 분홍 원피스를 입은 소녀다. 한 손에는 동냥 통, 나머지 손은 보따리를 들고 절뚝거리며 언덕을 걸어 간다. 소녀 뒤로 고만고만한 또래의 아이들 대여섯이 따른다. 이윽고 냇가에 이르면 소녀는 동냥 통을 내려놓는다. 달빛이 투영되어 반짝거리는 냇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신다. 뒤따르던 아이들이 까치발을 하고 살금살금 다가가 소녀를 밀어 냇가에 빠뜨린다. 물에 빠진 소녀가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을 치자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겁먹은 소녀는 급히 물가로 나와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 소녀는 절름발이였었다. 나이는 우리들 보다 몇 살 위였지만 몸이 부실하여 넘어지면 자주 울었다. 그 소녀는 마을 외딴곳의 허름한 토담집에 동생과 함께 살았다. 소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세 살 때 도시로 돈 벌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돌았다. 소녀는 매일 마을로 동냥을 하러 다녔다. 나는 친구들과 그녀를 자주 놀렸다. 이사를 한 뒤 몇 년 뒤 가보니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녀가 섬유공장에 취직했다느니,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한다느니 하는 근거 없는 소문만 전했다.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귀몽(歸夢)에서 깨어나면 그 끝자락에서 그녀가 울며 서 있었고, 달빛에 젖은 대나무를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널찍한 이파리 매단 칡덩굴이 여린 대나무의 몸을 감고 있다. 소녀는 대나무처럼 여렸고 코흘리개 우리는 칡덩굴처럼 그녀를 감고 오르며 괴롭혔다. 엉엉 소리 내어 울던 소녀의 얼굴이 가슴에 와 박힌다. 그 아이도 이제는 지천명을 훌쩍 넘겨 눈매가 부드러워졌는지…. 커다란 벽시계의 오후 시침처럼 달은 서편으로 기운다. 내 삶의 시침도 저 정도쯤 지나고 있을까? 돌아보면 언제부터였는지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인간관계가 뻑뻑해진 느낌이 들곤 한다. 세월 따라 걷다 보니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비록 소크라테스나 공자가 아니어도 삶의 연륜이 쌓이면 나름 철학자나 사상가가 되나 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말에는 공감하면서도 때로는 사람에게 등돌려 멀어지는 자신들을 합리화하곤 한다. 이제 인생의 나이테가 자화상을 그릴 만큼 겹겹이 쌓여 삶의 기둥이 굵어졌는데도 삶의 깊이와 넓이는 자꾸만 작아지는 듯하다.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리움을 잊어버렸다는 말을 듣는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한때 가슴 깊이 간직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희미해지긴 마찬가지다. 육체가 쇠잔해지면 정신도 기력을 잃어가는 걸까? 오늘따라 달을 품은 호수가 거울을 방불케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잔잔한 호수처럼 보여도 ​호수와 하늘의 심연 너머로 달빛은 하얗게 빛이 나고, 별빛을 뿌리친 나무와 풀 이파리들이 덩그러니 무심하다. △박경숙은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 회원이며 현재 전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집 <미용실에 가는 여자> 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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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9 15:35

<금요수필> 행복의 기준

계묘(癸卯)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하느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바라며 또한 소원성취를 기원한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새로운 소원을 갖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또 새로운 각오와 목표를 세우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것들과 아쉬움으로 남은 것들을 성취하려는 마음을 다짐하며, 다시 희망을 걸어 본다. 이렇게 새해를 맞아 비는 소원과 꿈들은 거의 '복 많이 받고, 건강 장수하고, 돈 많이 벌기' 등 막연한 것들로 채워진다. 더 구체적인 것으로는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관리와 다이어트를 통한 체중조절과 향후 질병 없이 활기찬 생활을 소망하기도 한다. 또한 읽지 못했던 독서로 부족한 지혜와 지식을 보충하고, 부단한 노력과 교양을 통해서 자기계발을 다짐하든지, 또는 여러곳의 여행, 시간과 약속을 잘 지키기, 담배 끊기, 술자리 덜 가기. 심지어 간식 안 먹기 등 크고, 작은 각오들을 소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개 그동안 실패한 확률이 높은 것들이어서 다시 다짐하는 각오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좀 색 다른 소원을 빌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소망이다.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오마르 하이얌>은 '일을 즐기자. 그것만이 영원한 생명, 인생의 유일한 보람이다'고 했다. 모두가 생존을 위해, 일에 묻혀 살지만 일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 미국 경제학자의 통계를 보면 1년 8,670시간 중에 일을 하는 시간은 고작 2,000시간 정도로 전체의 20~30%에 불과하며 나머지 70%는 먹고 자고 놀고 육아하는 시간이라 했다. 일의 가치는 이 정도뿐인데 고작 30%에 불과한 일이 언제부턴가 인생의 행복을 재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인생을 즐기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 직장 상사의 눈치 보느라 지치고, 원하는 직위에 오르지 못해 실망하고, 또래보다 수입이 적어 위축되고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불과한 만큼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반려자고 가족이고 허물없는 친구들이다. 남들처럼 밥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침실에서 잘 수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고 뭐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반려자와 친구가 있으면 인생은 그걸로 충분하다. 이런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면 30%의 일에 휘둘리거나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인지 곧 알 것이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혼자선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모여서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 사회에는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 규칙을 잘 지키고 해야 할 일에 즐겁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다. 만약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100%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수밖에 없다. 물질이 풍요롭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행복은 건강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몸도 마음도 편안한 삶을 사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진 행복은 결국 영원한 행복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기준은 한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한 삶이란 분수에 맞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행복은 각자의 눈높이에 맞는 기준에서 비롯된다. 안도는 국제펜클럽 전북위원장, 전북문인협회장, 전북문학관 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시, 수필을 강의하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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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5 17:03

<금요수필> 아직도 둘의 불행

넘나들 그림자도 없었다. 굵은 황색선 밖엔 사람은커녕 그림자 한 뼘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 4위 높이 160m인 북한 인공기가 100m 높이에서 펄럭이는 우리나라 태극기와 게양대에서 춤을 춘다. 팔을 벌리면 곧 닿을 듯 지척인 거리에서 한나라이면서 둘이 된 국기가 빗물에 젖어 울고 있었다. 아, 북한! 한 발짝 폴짝 뛰면 내 발끝이 닿을 것만 같다. 저곳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의 가슴이 얼마나 새까만 재가 되었을까? 저 북녘 하늘에 뿌렸을 회한, 누구를 위한 분단이었던가. 내 나라를 내 맘대로 할 수 없었던 약소국가의 설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하루속히 우린 하나가 되어 우리 산하를 마음껏 누벼야 하지 않은가. 우리는 규정대로 셔틀버스를 타고 판문점에 도착했다. 판문점이란 이름은 개성 쪽 1Km 떨어진 '널문리'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단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군사 정전위원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UN측과 공산측 간의 공동경비구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그 규모는 동서 800m, 남북 400m에 달한다. 남측 지역에 '자유의 집'과 회담 시설 '평화의 집'이 있고 북측은 '판문각'과 '통일각'이 있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냉정의 상징에서 이제는 대화와 평화의 장으로 바뀌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자유의 집에 들어갔다. 남북한 직통전화가 개설된 곳이다. 숨통이 좀 트이는 듯 했다. 남북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었던 '도보다리'일부와 테이블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보다리 보수공사 덕분에 이곳으로 옮겨와 편하게 실내에서 그날을 상상했다. 그날 그대로 회담이 무르익어 통일까지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담 장소를 조금 지나자 위풍당당하게 아름다운 반송이 서있다. 1953년 남북 정상이 함께 심은 소나무란다. 한라산 흙과 백두산의 흙으로 덮고 한강 물과 대동강 물을 함께 부었으니 무럭무럭 자라서 통일을 맞이해줬으면 참 좋겠다. 잘려진 38선의 허리엔 사람 발길이 드물어 천연기념물이 잘 보존되고 있었다. 민통선 안에도 군사시설 사이사이로 60여 세대 180여 명이 살고 있다. 이곳 농지는 경작권만 있고 소유권은 없으며 8개월을 의무적으로 살아야 한다. 고등학생 이상은 학교가 없는 관계로 8개월 주거의무는 면제다. 병원도 마트도 없어서 살기가 무척 불편하나 반면 납세의무와 병역 의무가 면제되는 특혜도 받는다. 하지만 철책선이 없어 대성동 주민 납치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더욱이 아직도 미확인 지뢰가 남아있어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통금시간이고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민정병대가 파견되어있다. 휴전 협정 후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포로 송환이 이루어졌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미군 도끼 만행 사건 이후로 북한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72시간 내로 다리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그 다리 이름이 '72시간 다리'이다. 미류나무를 대신하여 검은 표지석이 그 날의 비극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맑은 날에는 북측 30Km 까지 볼 수 있다는 기회를 끈질기게 내리는 비가 막아버렸다. 가녀린 손가락이 차디찬 방아쇠를 당기는 연습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 "황색 선을 넘지 마세요. 오른 쪽 흰색 실선 안에서만 촬영하세요." 돌아오는 차창에서 그 장병의 목소리가 내내 맴돌며 그 모습이 오늘도 눈에 선하다. 양영아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표현문학> 시로 등단했으며 전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행촌수필문학회장을 맞고 있다. 수필집 <슴베>, <불춤>이 있으며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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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9 16:10

<금요수필> 남원도공 심수관

2022년 여름 남원 춘향테마파크에 있는 심수관 도예 전시관을 찾아갔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아 좀 아쉬웠다. 자그마한 도자관에 들어가니 심수관의 멋진 작품들이 우리의 역사와 함께 자리하고 있어 반가웠다. 2019년 향년 92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일본까지 가는 일은 쉽지 않아 그와 인연이 깊은 남원 도예전시관을 찾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죄스러움 때문인지 마음이 숙연해졌다. 심수관은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왜군에게 붙잡혀 가고시마로 끌려온 도공 심당길의 15세손이다.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에 높이 2m의 큰 화병을 출품해 이름을 떨친 후부터, 후손들은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2004년 가고시마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후 노무현 대통령이 그 집을 방문하고 각료회담 간담회를 그 집에서 열어 더욱 유명해졌다. 나와의 첫 만남은 한일 지역교류 우정의 밤 행사였다. 그 당시 한일 양국은 지역들과 자매결연을 하여 양국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나는 전북과 결연도시 가고시마현에서 우정의 밤 행사 취재진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를 처음 보며 아직도 일본에서 심수관이라는 한국이름을 쓰고 있음에 놀랐다. 60대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분명 일본인이었다. 그동안 재일동포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일본식 이름으로 바꿔 쓰고 있는 현실에서 아직도 우리나라 이름을 쓴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으며 경외심이 흘렀다. 더 놀라운 것은 막사발로 보이는 그릇부터 대형 도자기까지 고가 가격표가 붙은 작품 가격이었다. 도예의 문외한이었던 젊은 방송인 눈에는 그저 놀라움뿐이었다. 그 후 그를 꼭 한 번 더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몇 년 후 일본 '도자기'취재 기회를 얻어 스텝들과 같이 가고시마로 달려갔다. 그는 마치 오래전 고향 사람처럼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고향 남원에서 붙잡혀 온 도공 후예로 그동안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당시 남원을 지척에 두고 근무하던 나로서는 호기심이 더해졌다. 400여 년간, 한국 성을 고집하며 일본에서 가업을 계승해 온 심수관 가! 예술성이 탁월했던 12대 심수관이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대형 작품을 출품해 예술성을 인정받았고, 일본 도자기를 국제적 반열에 올려놓게 되었다. 차 문화는 발달했으나 다기가 조잡했던 일본에서 당시 이렇게 양산된 도자기는 지역 재정에 엄청난 보물단지가 되었다. 심수관 선생님을 보며 일본에서 발달한 도자 문화의 근본도 모두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움과 안타까움이 오갔다. 그를 만난 모든 시간들은 내게 선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화사한 연분홍 매화 그림이 그려진 조그마한 찻잔을 선물로 받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찾아온 방송인에게 고향 사람이라 생각하며 따뜻하게 대해준 그의 마음이 오늘 남원 '심수관도예관'으로 나를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추석 성묘를 다녀왔다. 고향을 애타게 그리면서 가지 못하던 심수관의 선조와 같은,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400년이나 한국인으로 살길 바라던 그 뜨거운 자긍심, 그의 고향 남원에서만큼은 심수관과 그의 도자에 대한 혼(魂)이 활활 타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태희 수필가는 전주 MBC에 근무했으며 <한국수필>에서 등단했다. 현재 한국수필가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가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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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모
  • 2022.12.22 17:13

<금요수필> 작은 풀꽃

작은 풀꽃에는 우주가 있다. 햇빛, 달빛, 눈비, 바람이 모두 담겨있다. 우리는 작은 풀꽃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지구에는 큰 나무에서 피는 꽃, 나무는 아니지만 큰 식물에서 피는 꽃들이 있다. 큰 풀꽃들이 있고, 작은 풀꽃들이 무리 지어 피는 꽃들이 있다. 나는 가끔 뒷산 산책길에서 혼자 사는 작은 풀꽃을 만난다. 혼자서 소박하게 피는 작은 풀꽃, 너무 작아서 존재감이 없다. 그 작은 풀꽃은 큰 나무 아래 비탈진 언덕에서 혼자 산다. 그런 작은 풀꽃을 보면서 혼자서 참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작은 풀꽃은 아침이면 저녁 내 이슬에 젖었던 몸을 햇볕에 말린다. 작은 풀꽃은 짐승이 밟고 지나가면 그대로 죽을 수 있다. 아예 뿌리까지 갉아 먹으면 그냥 죽을 수 있다. 억센 비가 내리면 물속에 잠겨버릴 수 있다. 다행히 짐승들은 혼자 있는 풀꽃보다는 무리 지어 있는 풀꽃들을 뜯어 먹고, 비탈진 언덕은 물 빠짐이 좋아서 물에 잠기지 않는다. 큰 나무 밑에서 사는 것은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지만, 겨울에는 큰 나뭇가지에서 쏟아지는 눈덩이에 혼비백산한다. 작은 풀꽃은 은은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꿀은 없다. 나비와 벌이 오지 않는다.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 큰 나무는 키가 커서 작은 풀꽃이 말을 걸어도 그의 귀에 닿지 않는다. 다른 풀꽃들과 무리 지어 있으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혼자 있으니 외롭다. 나도 혼자 산책 나와서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작은 풀꽃에게 말을 건다. "너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 작은 풀꽃은 밤에 별을 본다. 별을 보면서 꿈을 꾼다.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별에 가는 꿈을 꾼다.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작기 때문에 작은 풀꽃도 존재감이 있을 것이다. 어떤 때는 꿈속에서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별을 향해 훨훨 날아간다. 작은 풀꽃에는 우주가 있다. 햇빛과 달빛, 눈비, 바람이 다 담겨있다. 사람들은 이 우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작은 풀꽃이라고 무시한다. 심성이 좋은 사람들은 작은 풀꽃을 아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잡초라고 무시한다. 특히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밭이나 밭이 아니라도 근처에 있으면 그냥 뽑아버린다.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뽑아 버린다. 작은 풀꽃 하나쯤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작은 풀꽃 하나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만나는 작은 풀꽃은 봄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여름까지 가다가 가을에는 꽃도 시들고 줄기와 잎도 말라서 뿌리만 남아 겨울을 준비한다. 눈 속에서 남은 뿌리로 생명을 유지해서 다음 해 봄이 오면 다시 꽃을 피운다. 이런 끈기의 작은 풀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더 자연성 있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작은 풀꽃같이 고단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이 작은 풀꽃처럼 끈기 있게 살 수 있도록 아껴 주어야 한다. 박동수 수필가는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전주대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전북수필문학상, 전주시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선집 ‘햇살에 기대어 바람에 기대어’등을 상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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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2.12.15 17:39

<금요수필> 눈먼 욕심

"따 먹지 마세요 약 줬어요." 빨갛게 익은 앵두가 반가워, 얼른 하나 따서 입에 넣었는데, 뒤에서 소리가 난다. 그래도 탱글탱글한 것 몇 개를 더 따서 챙긴다. 가져가서 예쁜 그릇에 담아두고 봐야지. 약간은 시고 조금은 달콤한, 그닥 별맛이 아닌 싱거운 열매지만, 그 안에 어린 내가 들어있다. 앵두나무를 다시 길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몇 해 전에는 묘목을 사다가 심은 적도 있는데, 잔디 깎는 아저씨가 모르고, 싹둑 베어버렸다. 앵두나무 잎은 거치가 있고 잎살이 우둘투둘해 쉽게 구별되는데, 더 이상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나? 그래도 주말마다 오는 이곳에 한 그루 있어, 자주 그 곁에서 얼쩡거리곤 한다. 열린 것을 본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새 빨갛게 익었구나. 어린 시절, 우리 집 앞마당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가지마다 작고 하얀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빨갛고 반들반들한 열매를 주었지. 하지만 참 이상하지.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한주먹 따서 볼이 미어지게 몰아넣고 씨를 뱉어내며 먹던 재미도 있었는데, 그 왜소한 몸치의 추레했던 모습이, 먼저 생각나는 걸까. 해묵은 가지는 껍질이 벗겨져 버짐 난 아이처럼 지저분하고, 털북숭이 쐐기벌레가 붙어있어 무서웠지. 둥치는 굵어지지 않고 비실거렸어. 그래도 어김없이 디리 디리 앵두를 맺어줬는데. 왜일까. 그래, 바로 그 참새 녀석 때문이야. 시골집 넓은 앞마당에는 늘 곡식을 널고 털어서 그랬는지, 새들이 종종 놀러 왔어. 콩닥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다고, 함께 놀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우르르 날아가 버리는 거야. 저걸 어째, 번번이 약이 올랐지. 그래서 삼태기에 부지깽이를 괴고, 쌀을 뿌려놓고, 기다렸지 뭐야. 덜컥 걸려들었지. 앵두나무는 가지가 땅에서 많이 나와. 뿌리 옆으로 나온 그 곁가지들을 짱짱하게 엮어서, 잡은 녀석들을 가둬뒀지. 훨훨 날아가 버리지 못하게 말이야. 종지에 물을 담아주고, 파리도 잡아다 넣어 줬지. 밥도 한 숟갈 남겨 나눠 먹었고, 자다가도 나가서 귀를 대보곤 했어. 도망가버리면 어쩌나 마음 졸이면서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녀석들이 즐거워 보이지 않는 거야. 기운을 잃고 시들시들하더니, 결국 죽고 말았어. 눈먼 욕심을 내려다 잃어버렸으면서, 그랬으면서, 왜 그리 끈질기게 내 것으로 하고 싶었을까. 쓰라린 기억은 참 오래갔어. 나무 밑동을 바라볼 때마다 그만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지. 산에서 캐온 할미꽃도, 몇 번이나 앵두나무 곁에 심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잖아. 어쩌자고 기어이 울안에 갖고 싶었을꼬.그런데 있잖아.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어. 꺼벙이를 잡아다가 앵두나무 둥치에 발을 묶어둔 것을, 오빠 몰래 실을 끊어줘 도망가게 했거든,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으니까. 그 무엇도 진짜 내 것이 아니라는 허망을, 그런데도 어른이 되면서 너무 많은 것을 갖게 됐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더욱 타자를 억압하고 자기화했어. 왜 이리 무거운가 붙잡힌 영혼이여!. 그러다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주 잃어버렸던가. 모든 숨 탄 것들은 그저 나그네일 뿐이지. 삶은 흘러가는 거니까. 이 지상에는 영원한 거처란 없어. 하물며 자식도 내 것이 아닌 것을. 그저 마주친 그 순간에 최선을 바치는 게야.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가도 얽매이지 않는 거지. 그런데 왜, 앵두나무에 발이 묶인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걸까. 소선녀 수필가는 시와 산문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김제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봄이면 밑둥에서 새순을 낸다.'등을 펴냈고 지평선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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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모
  • 2022.12.08 17:23

<금요수필> 약육강식

새 소리가 조금 달리 들렸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가 교대로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내 승용차 부근이라서 시동을 걸고 뒷 트렁크를 여닫고 해도 내 행동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 자리를 뜨지 못하며 오락가락 울어 댄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계단으로 올라가 그 부근을 살펴보았더니 내 인기척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그 순간 두 마리의 새가 동시에 고양이를 공격했다. 나뭇가지 속에 있을 땐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고양이가 지상 공간으로 나오자 위에서 내리꽂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새의 둥지를 노리던 고양이도 그 공격에 쏜살같이 도망갔다. 어쨌든 상황이 종료된 것 같아 뒤돌아 나오는 순간 다른 승용차 밑에 숨어있던 검은 고양이가 나를 쏘아보는데 그 눈빛이 써늘해서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일부러 방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궁금해서 보았을 뿐이라고', '너희들 세계의 생존경쟁에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었노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느 다큐에서 보았는데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생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강자가 약자를 취하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약자를 도와준다고 강자의 섭취를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짐승들은 아무리 넘쳐나도 욕심부려 넘보지 않고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고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저 생명 보존을 위한 한도 내에서의 욕망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선을 넘는 것이 문제다. 숲을 불태우고 강을 막고 바다를 메운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이익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 가지를 얻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는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얻는 것만 생각하며 잃는 것엔 관심이 없다.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던가? 요즘 들어서는 제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건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소소한 바이러스에 굴복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인간이 자연에 먹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치료할 백신을 만들어 내기도 전에 그 바이러스들은 끝없이 새로운 변종으로 우리 인간의 몸에 침투할 것이라는 예견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인간이 '약(弱)'이 되고 자연이 '강(强)'이 되는 찰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미미한, 그러면서도 전 세계의 인류를 휩쓸며 휘젓고 있는 저 바이러스들, 무서운 핵이나 전쟁 무기는 아니어도 얼마든지 온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음을 알깨워 주고 있다. 이는 어쩌면,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겁 없이 날뛰는 우리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고 경종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가 힘들 것 같다. 어쩌면 이대로 도태되어 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뒤 바꿈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 그렇게 되면 먼 훗날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잠깐 존재했다가 사리지고 마는 생물의 한 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거대한 공룡들처럼…. 지금부터라도 인간이 이 지구를 살리면서 강자(强者)남아 영원히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을 지속할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아니, 인류의 일원인 나 자신부터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깊이 새겨볼 일이다. 김재희 수필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작가로서 행촌수필문학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 '꽃가지를 아우르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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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4 17:25

<금요수필> 금계국의 파노라마

요즘 산하(山河)는 금계국의 잔치다. 산에도 들에도 고속도로변에도 전국 어느 곳엘 가도 금계국의 화려함을 쉽게 볼 수 있다. 설한(雪寒)에 정(情)을 품은 매화가 지나가면서 벚꽃이 산천을 뒤덮더니 행여 덤벼들 꽃들에 앞서 금계국은 5월의 녹음과 연인 삼아 노랗게 하얗게 파노라마의 진수를 보인다. 금계국은 식용이 가능한 국화과에 속하며 크기는 30~60cm 정도다. 개체에 따라서는 90cm까지도 자란다. ‘금계국(金鷄菊)’이라는 이름은 꽃이 황금색 계란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졌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꽃은 화사한 노란색이며, 잎은 길쭉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흔히 '들국화'라고 부른다. 금계국꽃은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에 노랗고 하얀 향연의 연출은 마치 자연을 대변하는 5월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나는 요즘 바깥에 나가 금계국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어쩐지 잃어버린 연인을 마주하는 느낌마저 든다. 옆을 멀리하고 떠나버린 얄미운 정의 흔적을 보는 마음은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가 자칫 우울할 까 봐 내심 마음을 가다듬기도 한다. 내 고향 새만금의 섬 야미도 고향 죽마고우요 뜻을 함께해온 오직 하나였던 진정한 친구 고 김정웅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내 마음을 찌빽거리는 금계국의 정확한 이름을 잘 몰라 확인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떠들어 보기도 했다. 근년에 접어들면서 군산 월명공원 설립산의 남쪽엔 금계국이 활짝 피어 붐비는 인파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런가 하면 군데군데 노랗고 하얀색의 꽃' 하면 금계국이라고 할 만큼 인기 절정이다. 보고 또 보고 싶은 금계국꽃이다. 또한 금계국 꽃에 대해 노란 꽃잎 속에 짙은 밤색 무늬의 꽃이 들어있어 화사한 치장이라 하여 기생초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화사함을 지닌 꽃이라는 데서 더욱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술렁대게 한다. 마음에 새겨둔 연인을 보는 마음이라면 어떠할까? 금강물 따라 서해바다로 가면서 정만 뿌릴라나 상념을 스친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가 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전국의 산하는 물론, 시골길 가로에도 모습을 드러낼 만큼 널리 퍼져있어 국민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공헌(?)을 하는 새로운 각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주말 모처럼 만에 승용차편으로 친구와 함께 남해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남해와 서해안의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심지어 마을 길을 다니면서 금계국 꽃이 자태를 보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다정한 도로의 친구로만 여겨졌다. 나만의 감정인지는 몰라도 금년 들어 처음 느껴보는 마음으로 마치 다정한 친구 하나가 생겨난 마음 같아 더욱 금계국에 대한 친밀감이 돋았다. 그러나 일행들도 대체적으로 다감한 느낌들을 주며 "언젠가는 우리나라 꽃이 되겠다"고 까지 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금계국은 1년에 한 번씩 보게 될 친구가 될 것 같다. 시각의 아름다움은 마음의 아름다움이니까. 금계국 피우기 위해 쉬지 않고 걸어도 짧은 가을, 바람의 날개를 달고 노란 향주머니 열기에 바빠 하루해 짧다지만 스산한 가슴으로 지고(至高)의 푸름 아래 홀로 삶이 힘들까 봐 마지막 들꽃 되어 찬 바람 불기 전 가을의 노랑향기 온몸으로 담아내는 금계국(金鷄菊)의 하루가 예스럽기만하다. 김철규 수필가는 전북일보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전북도의회 의장과 군산신문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인연 외 10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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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7 17:13

<금요수필> 가을을 보내며

아침, 저녁으로 온도 차가 많이 나는 것을 보니 겨울이 가깝게 와 있다는 신호다. 언제나 이맘 때 쯤 되면 지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가슴을 파고 든다. 학교에서 집까지 십리 길인 4km를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앞마당에는 엄마가 자신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콩 다발을 머리에 이고 와서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그리고 땅거미가 짙은 방문 앞은 아직도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채 나를 맞이했다. 아마도 엄마는 지금 뒷산 너머에 있는 다랑이 밭에서 고추를 따거나 고구마를 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얼른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단숨에 뒷동산에 올라 엄마를 소리쳐 불러본다. 그러면 어디선가 내 소리를 듣고 구부린 허리를 펴며 손짓한다. 오전에는 고구마를 캐고 오후에는 고춧대를 뽑는 중이란다. 배고프고 춥다고 투정 부리려다가도 엄마의 곱은 손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기억들이 새록인다. 일 년을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인데 서리 내리기 전 수확을 해야 한다고 엄마의 굽은 허리의 뒷모습에 투정은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걸려 있는 호박이 나의 시선을 끈다.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호박은 어머니에게 아주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호박이 얼마나 영양가가 높은지를 이제는 알았다. 그러나 그 때는 참으로 지겨웠었다. 날이면 날마다 올라오는 호박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때는 모두가 가난했었다. 부식이 따로 있지 않았으며 주식인 곡식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던 시기다. 그러니 반찬은 어머니 손수 마련하여야 하였다. 자투리땅에는 빠짐없이 심어진 호박은 어머니의 땀이 밴 반찬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손은 마법의 손이었다. 어머니의 손이 닿는 것은 다 보물로 바뀌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만능인이었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다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 것이 모두 다 어머니의 땀과 노력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호박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어머니에게 있어선 호박마저도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무엇 하나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먹을 식구는 많고 먹을거리는 부족하니 난감 했다. 이런때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지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어린 마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내가 부모가 되니, 어머니의 절박하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6남매를 혼자서 키우신 어머니. 호박도 그러하지 않은가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식물. 지금은 늙은 호박을 거두어들일 때다. 여린 호박은 부치고 나물하고, 중간호박은 된장찌개용, 어디 그뿐인가 호박잎으로 쌈 싸서 먹고 가을철에는 쌀뜬물 받아 으깨 국 끓이면 찬 바람 불어오는 늦가을엔 그 맛이 일품이었지. 인생의 황혼기처럼 늙은 호박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다 주고 있다. 호박즙, 떡, 엿, 식혜, 무궁무진한 게 호박인 것 같다. 주고 또 주어도 아깝지 않은… 우리 어머니도 이 호박과 같은 삶이 아니었을런지? 나도 이제는 두 자녀의 어머니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지금도 하늘에서 응원해 주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호박으로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허경옥 수필가는 교직에서 정년을 하고 지금은 전북 노인일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북문학관 아카데미에서 문예창작을 수강하고 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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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0 17:31

<금요수필>구두병원 아저씨

몇 년 전 아내가 편안하게 신으라며 캐주얼 화 한 켤레를 사 왔다. 평생 처음 신어 본 신발이었다. 퇴직 후 자유롭게 신을 수 있어서 계절도 날씨도 상관없이 줄곧 신고 다니다 보니 구두 밑창이 닳아 버렸다. 발바닥의 균형이 어긋나 팔자걸음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백화점 신발가게에 가서 밑창을 보수하려니 5만 원을 내라 했다. 수선비가 비싸서 포기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니 동네 은행 앞에 구두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창문에 <구두병원, 광택, 수선, 굽갈이> 등을 써 붙여 놓았는데 한 평도 안 되는 컨테이너 부스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60대 후반의 아저씨가 오래된 구두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다. 구두 굽을 갈아주는 데 얼마냐고 물으니 만 오천 원이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니까 사오십 분은 기다리라고 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구두를 맡기니 헌 구두로 만든 슬리퍼를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구두병원 안 쪼끄마한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나이가 몇이며, 어느 곳에 사는지 물으며 시간을 메우고 있었다. 간간이 아가씨들과 중년 부인들이 샌들이나 구두 굽갈이를 맡기고 한두 시간 뒤 찾아가곤 하였다. 나도 다른 신발을 가지고 와서 맡기고 일을 본 뒤 찾아갈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뒤 굽을 칼로 잘라내고 있는 걸 어쩌랴. 그래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기료장수는 건강이며 세상 살아가는 방법들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위장에는 부추(전라도에서는 솔, 타지방에서는 정구지)를 삶아 먹어야 하고, 호박이나 가지를 많이 먹어야 좋다는 등 단방약에 관한 처방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구두 손질은 멈추지 않았다. 얼핏 들었던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돈을 벌어서 불우이웃을 돕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땐, 뭐 그런 것을 다 묻느냐며 얼버무렸다. 이 신기료장수는 독신으로 살면서 가난한 이를 돕고, 손수 도시락을 싸서 가지고 온다고 들었다. 이야기 중에도 신발을 칼로 자르고 페이퍼로 닦고 문지르며 손끝으로 곱게 다듬다가 밖에 나가 숫돌에 문지르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 뒤 강력 접착제로 붙이며, 송곳으로 꿰매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그런데도 새로 오는 손님의 일감을 주문받으랴, 수선한 신발을 내주랴 바삐 움직였다. 나는 대충 되었으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멀었단다. 신발을 신다가 잘못되어 창이 떨어지면 안 된다며 깔창을 뜯어내더니 다시 송곳으로 밑창을 꿰매는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무릎 위에 널따랗고 두꺼운 보자기를 올려놓고 한 번도 하늘을 향해 본 적이 없는 구두 밑바닥을 뒤집어놓고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단단히 끈을 조이고 정성을 다하는 게 아닌가. 고무신이나 운동화는 빨아서 말릴 때 뒤집어 밑창이 하늘을 볼 수 있게 하건만, 가죽구두는 어디 그렇던가. 구두를 닦고 약칠을 하면서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택도 내며, 입김을 불어 살살 문지르고, 깔창은 씻어 말리지만, 밑창은 항상 땅에 엎드려 그 음침한 곳에 붙어있다. 그리고 늘 젖은 곳이나 더러운 곳만 밟는다. 깨끗하고 번들번들한 구두 밑창을 이 구두병원장(?)은 가장 가까이에서 소중하고 튼튼하게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만지면서 일을 한다. 그 구두병원 아저씨를 보니 윤오영 님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이 문득 생각났다. 맡겨진 일에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세가 믿음직했다. 우리 모두가 이 아저씨처럼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맑고 밝아지지 않을까 싶다. 나인구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시, 수필로 등단해쓰며 전북문협, 전북수필, 영호남수필. 대한문학회원이며 은빛수필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간주곡의 서정》 수필집《그런 돌이 되고 싶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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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3 16:23

<금요수필> 뒷짐을 지다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뒷짐을 지게 된다. 뒷짐자세를 의식을 하는 순간 얼른 손을 풀고 걷기자세로 바로잡는다. 뒷짐 지고 걷는 자세가 어느새 편한 자세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면 늙었다는 증거다. 나의뒷짐 때문에 거리의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노라니 남자나 여자나 성별불문하고 뒷짐을 지고 간다.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 지고 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노인이 많다는 얘기다. 사실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어서 남의 모습을 보고 나를 살피고 얼른 뒷짐을 푼다. 뒷짐이라! 무얼 뜻 하는가 뒷짐을 지는 것은 어떤 일을 방관한다는 의미이고 일선에서 물러나 앉는 일이다. 일을 할 때는 손을 앞쪽에서 열심히 무언가 만지고 부지런을 떨게 되어있다. 현역의 자리에 있을 땐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손이 할 일이 많았다. 언제 손이 뒤로 갈 틈이 없다. 아직 건강하고 할 일이 많아 동분서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어느새 뒤로 가서 마주잡고 뒷짐을 지고 가고 있다. 일손을 놓으라는 암시인가. 뒤짐 지고 손을 맺고 가는 저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면 일손을 놓았다는 걸 말해주리라. 뒷짐을 진다는 것은 어쩌면 은퇴의 다른 표현이다. 중년이 뒷짐 지는 자세는 좀 다르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배를 내밀고 자못 거만스럽다. 중년이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 모습도 비슷한 인상을 준다. 일을 하지 않은 동작으로 주시 관망하는 모습이다. 감독자의 태도로 시선엔 힘이 들어가 있어 하수인들을 주눅 들게 하는 뒷짐이다.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라면 일단 비호감이고 비생산적이다. 수년 전에 동네 고샅을 나가다가 목격한 일이다. 윗 골목에 사시는 박스를 줍는 할아버지가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가고 있었다. 그 뒤를 네 댓살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따라가는 모습이라니! 할아버지 걸음의 복사판이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는 말을 증명해준다. 할아버지의 뒷짐 습관을 손자는 그냥 할아버지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니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어휘 말투 행동 하나하나를 아이들 보는 앞에서 조심해야할 이유다 요즘엔 뒷짐자세를 운동 동작에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해보니까 운동으로서의 뒷짐 자세는 스트레칭 효과가 크다. 반듯한 자세로 허리를 펴고 뒷짐을 질 때 깍지 낀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등 뒤에서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 신축과 이완운동을 반복적으로 한다. 거북목이나 오십 견 척추협착 등에 효과가 크다고 하니 수시로 실행해서 허리를 펴야겠다. 아침으로 천변을 산책하는 데도 뒷짐 지고 가는 사람이 많다. 건강하게 살자고 조깅하러 나와서도 구부정한 자세에 전형적인 노인성 걸음들을 보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씁쓸하다. 초등학교로 통하는 우리골목에 등교시간인데도 한 두 명이 띄엄띄엄 조용히 지나간다. 적막하고 쓸쓸한 등하교 시간이다. 출산율 최하위인 대한민국의 시골학교나 도서지방 폐교는 20년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최근엔 중 소 도시 주택가 학교도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학령인구 감소가 심각하다. 아침이면 골목 가득 아이들의 발걸음이 왁자지껄하던 옛날이 그립다. 주택가라서 그런지 뒷짐 지고 가는 노인들의 모습만 보인다. 백세 시대가 노인 공화국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노인들이 뒷짐을 지고 간다. 동네 앞 네거리에 어깨를 펴고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보무당당한 모습이 보고 싶다. 박순희 수필가는 <한국문인> 으로 등단했다. 현 행촌수필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 <대체로 맑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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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7 17:56

<금요수필>시간은 지우개

벼가 치자 빛으로 물들어 간다. 들녘의 메밀꽃은 하얗게 솜사탕을 풀어내고 소슬한 바람이 차창 가로 스친다. 긴 세월 얽매인 직장의 매듭이 풀리자마자 남편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그 말에 “이왕이면 홀로 계신 시이모님 두 분도 같이 모시고 가요.” 하는 내 말에 그 사람은 “어머니가 더 좋아하겠네.” 하며 소년처럼 들떠서 완도 여행길에 올랐다. 나이 들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어머니는 이모들과 전화만 할 뿐 만나지 못해 답답하다고 넌지시 푸념을 했다. 폐를 갉아먹는 병마에 지쳐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가랑잎 같은 시어머니. 잠시나마 파리한 그 얼굴에 웃음 띠게 할 수 있다면 맘의 부담쯤이야…. 앞에 앉은 세 여인은 소풍이라도 나온 듯 끝없이 말 꾸러미를 풀어낸다. 시간이 세 자매의 고운 모습은 가져갔으나 기억 속에선 지나간 일을 그림처럼 그려낸다. 어린 시절 친정집 옛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비 내리는 날 익산 미륵사지 근처 저수지에 가면, 물고기들이 새 물 내를 맡고 상류인 도내 골 냇가로 거슬러 온단다. 몰려오는 고기들을 대나무로 엮은 용수를 물속에 넣고 건져 올리면 바가지로 퍼 담을 정도로 많이 잡혔다. 보리새우, 쏘가리, 붕어 등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들고 그네들은 신바람이 나서 집으로 갔다. 어느 보름날 밤에는 친구들과 귀신 잡기 놀이를 하다가 동네 어귀 느티나무 아래 당집 근처에 갔는데, 하얀 수염에 흰옷을 입은 장대처럼 큰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다. 호들갑스러운 여자애들은 귀신이 정말 나타났다고 혼비백산하여 친구 집으로 몰려가는 소동을 벌였다. 아마도 당집 무속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를 떠올리면 그네들은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단다. 세 자매는 번갈아 가며 세월의 그물에서 추억을 건져 올렸다. 완도 수목원에 도착하여 호숫가를 걸었다. 큰이모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고 작은이모는 관절염으로 오리걸음으로 쩔뚝이며 다녔다. 시어머니는 제일 허약하지만 그나마 걸음은 비틀거리지 않았다. 기우뚱한 그들의 뒤에 걸린 그림자도 시름에 겨운 생의 무게인 듯 절룩이며 따라갔다. 육신은 서걱거려도 마음만은 소녀라 얼굴에 동심이 흘렀다. 해 질 녘에 전망대에 오르니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져 수려했다. 서산 너머로 해가 숨어들고 있다. 세 자매의 백발 위로 노을이 내려앉아 붉게 물들어 간다. 남남으로 만나 시어머니와 인연을 맺은 지 어언 삼십여 년. 색색의 사연이 층층으로 쌓여 무지개가 뜨기도 하고 먹구름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이제 세월의 더께만큼 마음자리도 헐렁해져 야위어 가는 어머니를 감싸 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시어머니와 완도에 오는 길에 이모님도 겸사 모시고 왔는데……. 머지않아 누구나 기우뚱거리며 걸어가야 할 그 길 위에서 손잡아 줄 사람 있다면 외로움에 휘청거리지 않으련만. 해수탕의 열기로 얼굴에 복사꽃을 피운 세 여인과 땅끝 마을을 찾았다. 땅끝 표지석 앞에서 그녀들은 사진을 찍었다. 흰머리 날리며 배시시 천진하게 웃는 세 자매. 언제 다시 손잡고 여행할까. 그네들의 얼굴에 서글픈 빛이 언 듯 스쳐 간다. 흘러가는 세월은 그네들의 젊음을 데리고 갔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라는 지우개는 우리의 기억을 지워가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네들에게 특별한 순간은 잊을 수 없는 카이로스*가 되어 문득문득 생각날 것이다. 웃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이번 여행이 우울할 때, 세 자매에게 한 모금 청량제가 되었으면. 박일천은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로 등단하여 <토지문학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문협 회원, 샘문학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수필집 <바다에 물든 태양> , <달궁에 빠지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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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6 17:12

<금요수필>눈으로도 들어보시오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시는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 흥미 있는 얘기를 들었다. “강론을 할 때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나서 더 열성적이고 풍성한 내용을 전하려고 노력하지만 벽에다 대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얘기하고 그만 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녀원의 수도자들은 귀로만 듣지 않고 눈으로 듣는 반면 신부님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얘기였다. 수녀님들의 경우 얘기는 귀로 듣지만 눈을 맞추며 어서 다음 얘기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아 즐겁다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신부님들은 몸은 안에 있지만 마음은 밖에 있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그렇지만 설마 동풍취마이東風吹馬耳(말의 귀에 동풍이 분다는 뜻으로 아무런 감각이나 반응이 없음)나 마이동풍 馬耳東風 우이독경 牛耳讀經 같은 뜻은 아니리라 믿었다. ‘귀 소문 말고 눈 소문내라’ ‘귀 장사 하지 말고 눈 장사 하라’ 는 우리 속담의 뜻은 귀로 듣는 사실과 눈으로 보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 하라는 타이름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생활 가운데 이러한 타이름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각종 불상사는 헤아리기조차 부끄럽다. 요즘 귀로만 듣는 ‘카더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격의 손상을 입고 피해를 당하고 있는가.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귀가 싫어한다.’ 호가창창불락 (好歌唱唱不樂)인 것처럼 국정을 논의해야 될 선량들마저 허구한 날 ‘카더라’에 매달려 세월을 좀먹고 있다. ‘아니면 말고’가 독버섯처럼 존재하고 있는 사회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 코로나 19로 집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인 TV조차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힘없는 국민은 무엇을 낙으로 삼고 살아야 할까 답답하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天地不仁)는 말을 새겨 볼 때가 아닐까 싶다. 천지는 천지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가 천지의 이치를 깨닫고 순종할 때 까지는 인자하지 않다는 뜻이며 거기까지 가기 위하여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들으라고 신부님은 권고는 절절히 공감을 주었다. 오감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텐데 어찌 보면 가장 줏대가 없는 청각에만 의지하여 사물을 판단하려는 우리들의 의지를 지적해 준 듯하다. 밖에 있는 국외자가 아니라 항상 안에 있는 주관자의 의식을 버리지 않을 때 하늘은 비로소 우리에게 인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도 그런 뜻에서 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믿음의 사회,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 그리하여 드디어는 일등국가로 가는 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는 다른 애들처럼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의사 표현을 못 하니 난폭한 활동을 하기 일쑤였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고,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하나하나 경험하고 반복 또 반복하며 알아갔다. 모든 것을 만져보고,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익혀 단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헬렌 켈러가 처음 ‘water(물)’이라는 단어를 배우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안홍엽 수필가는 전주 MBC 편성국장을 역임했고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협, 전북문협회원으로 전북문화상, 방송작품상을 5회 수상했고 산문집 <사랑이 꽃비 되어>, <별과 사랑과 그리움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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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2 16:43

[금요수필] 도심 산책

낮은 산자락의 오솔길도 아니고 동심을 부르는 언덕도 없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없고, 언니와 같이 빨래하러가며 부르며 건너던 징검다리도 없다. 종달새 우짖던 보리밭과 메뚜기 뛰놀던 언덕은 오래전 번듯한 도로가 되었다. 하지만 도심 길에도 아름다운 자연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시선을 붙잡았다. 어제 오후부터 안개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더니, 밤새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맑고 청명한 아침이 밝았다. 오후 한 시에 꽃밭정이노인복지관 부관인 상산복지관으로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오전에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를 걸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출근할 남편의 밥상을 차려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어젯밤 스쳐간 바람과 비의 합작품이 지면에 가득해서 자꾸 시선이 바닥으로 갔다. 막 속잎의 티를 벗고 햇살 좋은 이른 여름을 즐기려던 잎들을 수다스러운 바람이 억지로 따다가 온 지면에 녹색 추상화를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씻긴 회색 블록에 수많은 그림은 갖가지 모양으로 뇌에 상상력을 깨웠다. 조금 구부러진 담장 밑에는 녹색 잎들을 모아 방석인 듯 깔아놓고, 두 다리 쭉 펴고 앉아 무릎 토닥이며 쉬어가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팝나무 밑엔 은하수별처럼 예쁜 꽃잎들이 시집갈 아가씨가 밤새워 수를 놓은 듯 내 걷는 몸짓 따라 살랑거렸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침엽수 잎이 많이 내렸다. 가지 떠난 침엽수는 노란색에 가까웠다. 여기저기 고르지 못한 틈에도 끼고 갈라진 곳에도 쌓여 낮은 산자락도 되고, 금잔디가 바람에 날리는 언덕도 되었다. 빗물이 흐르는 대로 따르다 멈춘 곳에 속잎들은 잔잔한 파도가 넘실대듯 밀려와 있었다. 그러고도 아직 여백을 채우려는지 바람은 나뭇가지를 자꾸 흔들었다. 신호등을 건너니 벽돌담은 다 지나고, 여러 가지 색으로 옷을 입은 예쁜 모양들로 구부려진 철제 아파트 울타리가 시작되었다. 내일 아침엔 좀 일찍 나와 천변으로 내려가 걸어야겠다. 양 옆으로 이름 모를 잡초들과 갈대가 어우러져 녹색 비단처럼 펄럭이고, 가끔 쑥부쟁이 노란 꽃이 나를 반길 것이다. 바닥엔 클로버 하얀 꽃이 내 발등을 더듬어보려 애쓰며 꽃반지에게 추억을 잊었느냐고 물어도, 번듯한 길 따라 내 발길은 멀어지고 말 것이다. 이토록 계절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즐거움을 주는 도심 길에 또 한 가지 보너스가 있다. 천변뿐 아니라 도로변 곳곳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있어서 간단한 준비운동을 할 수 있다. 나는 두 팔로 중심을 잡고, 허리 돌리기, 파도타기, 공중 걷기를 각각 300번씩 한다. 하고 나면 적절한 온도와 습도로 온몸의 세포가 잠을 깨는 듯 상쾌하다. 이런 즐거움 때문에 나의 도심산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산책(散策)'의 사전적 의미는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닐다'는 뜻이다. 도심의 산책은 그런 의미에서 참 좋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근심 걱정도 바람과 함께 날아가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요즈음은 산책을 즐기시는 분들이 꽤 있다. 산책은 여러가지로 바쁜 현대인들에겐 더없이 소중하며 몸과 마음 건강에 모두 좋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앞으로도 천천히 산책을 즐기며 도시의 일상도 둘러보며 마음의 여유도 찾고 싶다. 박유선 수필가는 양지노인복지관 노인·성 상담사, 중·고등학교 성폭력교육 강사, 문화회관·사회복지회관·노인대학의 민요·가요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가시꽃’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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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모
  • 2022.09.15 18:28

<금요수필>시끄러운 세상 살아가기

사람은 저마다 말을 하고 살기 때문에 때로는 시끄럽다. 아무렇지 않게 입들끼리 넘나드는 말들은 잡음이 되지만 때로는 화음이 되어 변덕이다. 사실 화자의 즐거움과 청자의 괴로움이 서로 다르다. 며칠 전, 우리 동네 식당이 문을 닫았다. 전주에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콩나물국밥집이었는데 식재료가 깔끔하고 간이 입에 맞아 시나브로 정이 들어가던 중이었는데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입간판을 세우고 있는 주인인 듯한 아저씨에게 여기 식당 어디 갔냐고 묻자 뚱한 눈길만 보탤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간 우리 마을에서 가뭇없이 사라진 가게만 해도 벌써 열 곳이 넘는다. 그에 반해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는 우후죽순처럼 번창하고 있다. 향긋한 국화차의 전통찻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피자집이 들어와 동네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재래시장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와 순대와 옥수수까지 팔고 있다. 신문이나 미디어에서는 매일 같이 대기업의 횡포가 도를 넘었다고 성토하지만, 친구의 세탁소도 언제 문을 닫을지 걱정이 앞선다. 걱정스런 것은 TV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고 신조를 쏟아내야 예능 프로 시청률 1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나무는 고목일 때 불 때기가 좋고, 책은 옛날 것이 좋은 것이니 많이 읽어야 하며 친구도 죽마고우가 정답고 좋으며 술도 묵혀둔 술이 맛이 있다 했는데 이러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덕목으로 살다가 빠르게 변하는 세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현재의 삶은 얼마나 새로움을 체험하려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이제 공자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단순히 머리로만 익히는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따뜻한 지식(知識)과 체험(體驗) 그리고 인간애(人間愛)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말은 소통과 화합의 수단이다. 말은 진흙 속에 연꽃처럼 신중함을 품고 느림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살아가며‘입만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고는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화려한 말은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말실수한다. 신이 아닌 이상 내 마음과 다르게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말 실수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나라에 위정자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가는 정제된 언어 구사와 신의가 있어야 한다. 그네들이 말만 앞세우고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계속 뒷걸음질만 칠 것이다. 장마가 지나간 황방산은 더없이 푸르고 청신하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숲을 이루고 있는 꽃과 나무들이 제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는 다툼이 없고 장미꽃은 족두리 꽃을 깔보지 않는다. 함께 하지 않으면 그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가니 큰 숲을 이루고 푸른 산이 된다. 나는 오늘 무슨 말을 했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나. 택시기사님의 말뜻은? 친구의 하소연은…. 또 나는 그네들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었는가. 제일 가까운 남편과 아이들의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걸까. 언제 어디서든 누구는 말을 하고, 누군가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가 말만 늘어놓고 서로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말은 점점 말이 아닌 다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거리를 구르는 낙엽이거나 휴지통 속에 담긴 쓰레기거나…. 박경숙 수필가는 <계간수필>에서 수필 천료로 등단하였으며 전북 수필문학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전북수필문학상, 산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미용실에 가는 여자>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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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01 15:34

지금이 행복한 때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가느라 차를 가지고 미장원에 갔다. 코로나와 상관 없이 여전히 손님이 많았다. 잠시 기다리니 차례가 돌아와 어머니 머리를 잘랐다. 그런데 내 머릿결은 어머니와 달리 모발이 가늘고 숱이 적어서 아무리 공을 들여도 머리가 살아나질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드리고 미장원에 다시 갔다. 내 앞에서 파마를 마친 손님은 나이가 꽤 들어 보였지만 뒤통수가 참 예뻤다. 나는 머리가 참 예쁘게 나왔다며 칭찬을 했더니 한 수 더 떠서 피부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머리가 예쁘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단다. 허참! 칭찬해주고 본전도 못 찾은 것 같아 조금 섭섭했지만, 피부까지 좋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만 부럽다는 소리가 연거푸 나왔다. 그러자 그 손님은 내가 차를 가지고 온 것을 알고는 나이 들어 운전하는 걸 보니 참 멋지게 사는 것 같다며 치켜세웠다. 그러자 원장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제야 나는 처진 어깨가 펴지면서 힘이 좀 생겼다. 나는 왜 가진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남의 것만 보면 다 좋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비우며 살자'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아직도 채우고 싶은 갈증에 허덕이고 있으니 얼마나 더 채워야 할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언제던가, 서울 강남의 아주 큰 평수 큰 타워플래스 아파트에 사는 분이 투신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유는 딱 한가지 '답답해서'라고 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고 소중한 목숨을 답답해서 버리다니 참 어이가 없다. 그런가 하면 어느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는 부모들이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늘 집에 혼자 남아 점심 굶기가 일쑤라는 이유로 자살을 했다. 그의 유서를 보니 어느 날 집 아래에 사는 복지관 관장이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돈가스 가게에 데려갔더란다. 그 어린이는 일기장에 처음 먹어본 돈가스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썼다고 했다. 이 글을 읽는 내 마음도 이리 짠한데 그 부모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전주 남부시장 새벽시장을 자주 간다. 운동기구에 몸을 풀며 이것저것 물건 사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잘 하면 싸고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은 만큼 사 올 수도 있다. 어제도 머위와 맵지 않은 꽈리고추, 표고버섯, 비트 등을 사 가지고오면서 소고기도 조금 사 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보며 만드는 법을 익힌 뒤 만드느라 오후 2시에야 식사를 했다. 치아가 없는 어머니와 함께 먹기 위해 잘게 부수고 갈면서도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요 며칠 일어나질 못해서 엉덩이를 밀어 달라고 하시던 어머니도 소고기를 갈아서 끓여드렸더니 혼자서도 잘 일어나시니 세상에 이런 특효약이 어디 또 있을까? 하늘나라로 가실 때까지 이 상태만 유지되어도 좋을 텐데…. 행복이란 결코 멀리 있거나 숨어있는 게 아니라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싱싱하고 좋은 야채를 사다 만드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가족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지금이 최고로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다. 더욱이 무서운 전파력을 가진 코로나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와 이태리, 페루, 이라크, 레바논 등 지구촌 곳곳에서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열흘째 10명 선으로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곧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행복한 꿈과 희망을 안고 오늘도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한일신 수필가는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후 수필에 입문해 <대한문학> 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내 삶의 여정에서> 가 있다. /한일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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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30 14:37

<금요수필>빨간 머리 병아리

해마다 3월이면 마당에는 햇병아리가 그득했다.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는 가용비 마련이나 식구들 보양식 감으로는 닭만 한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네집 할 것 없이 병아리를 길렀지만 사료를 사서 기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주로 방목이었다. 아버지는 덕가리에서 병아리를 한 마리씩 꺼내 머리에 빨간색 물감을 발라 마당에다 훅 던지며 "잘 주워 먹고, 잘 찾아오너라." 하시던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난다. 한 배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스무 마리 정도였는데 아버지는 허실 없이 키워야 한다며 암컷을 더 챙기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요놈들을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딸내미가 사달라는 별표 운동화랑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지.'하셨다. 검정 고무신만 신었던 나는 운동화를 사준다는 말씀에 병아리를 정성껏 돌보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며 반기는 강아지는 뒷전이고 병아리부터 찾았다. 만약 병아리가 보이지 않으면 입술을 쭉 빼고 '구- 구-구'를 외치며 집 안팎을 샅샅이 뒤졌다. 입술이 얼얼해져 헛바람이 나오도록 한참 찾다보면 엉뚱하게도 뒷집 대밭 속에서 어미 닭과 함께 삐약거리며 따라오는 병아리를 보면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대숲은 족제비나 들고양이들이 득실대는 곳이라 행여 잡아먹힌 병아리는 없는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곤 했었다. 이렇게 돌보아도 병아리 수는 차츰 줄어 열서너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알에서 깬 지 3~4개월쯤 자라면 중병아리라 했고 대략 6개월이 지나면 암탉은 알을 낳았으며 어미 닭도 이 무렵이면 젖떼기라도 하듯이 새끼들을 아프지 않을 만큼 쪼아댔다. 3~4개월이 지나면 암수 자웅을 구별할 수 있었는데 수컷은 암탉과 달리 다리가 길고 꺼벙했지만, 벼슬이 돋고 혈기가 넘쳐 눈도 불그스레 번쩍거리며 가끔 하늘로 목을 쳐들고 '나는 왕이다'고 외치듯 '꼬끼오' 소리도 제법 질렀다. 수컷들은 암컷과 부하들을 거느리고 싶은 자리다툼 싸움이 갈수록 치열했다. 피가 나도록 상대방을 마구 쪼아대며 싸우다가 한 쪽이 날개를 서서히 접으며 눈꺼풀을 내리깔면 한바탕 싸움은 끝났다. 그뿐만 아니라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파헤쳤다. 사춘기 시절의 반항아들이라더니, 우리집도 남동생 넷이 모이면 수탉처럼 형과 아우가 따로 없이 서로 욕지거리며 힘겨루기를 하며 자랐다. 사실 나도 병아리가 아니던가.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 때쯤이면 대추 볼때기가 발그스름했다. 아침 일찍부터 대추나무 밑을 서성였던 일이며, 벌집이 달린 줄도 모르고 나뭇가지를 흔들다가 주인집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놀라 신발짝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날 밤, 벗겨진 신발짝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날이 밝았다. 날이 밝자, ‘최 생원 계신가?’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때는 무서워 떨었건만, 지금은 토방에 놓인 신발짝 하나마저 왜 이리도 그리움으로 밀려오는지!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운동화와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은 내 어린 시절 병아리와 함께 자라면서 머릿속에 도장 찍힌 희망이었다. 병아리는 자라서 어김없이 알을 낳았는데 딸 결혼식도 보지 못할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 선반에 올려놓고 저고리 동정을 달아 벽에 걸어 놓았건만, 입어보지도 못하신 아버지였다. 지금도 달걀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별표 운동화가 머릿속에 떠 오른다. 최정순 수필가는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대한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속 빈 여자‘외 4권의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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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4

<금요수필>그립다는 것

초등학교 2학년 싱그러운 어느 봄날이었다. 엄마는 나를 두고 세상을 떠나시어 엄머에 대한 동경은 끝이 없다. 엄마의 체온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잠이 들곤 했었다. 엄마가 병석에 누워계실 때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다. 철없는 나는 보랏빛 자운영 꽃이 활짝 핀 논바닥에서 친구 설자와 뒹굴며 놀았다. 그러다가 앓아누워 계신 어머니 곁에서 책을 펴놓고 글자를 물어보곤 했다. 엄마는 아프면서도 글을 가르쳐 주시곤 했었는데 며칠 뒤 엄마가 돌아가셨다. 오남매를 두고 생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엄마는 익산군 용안면 임씨 가문에서 만석군 집의 딸로 태어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호열자로 온가족이 생명을 잃었다. 그 후 어머니는 양반이라는 이유로 우리집으로 시집을 오게 된 것이다. 엄마니는 부엌일을 잘못하시어 옆집 사는 할머니가 일을 돌봐주셨다. 나는 그 할머니만 보면 좋아했다.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세세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한테 가면 그리운 엄마이야기를 실컷 들을 수 있었다.그래서 자주 놀러갔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화려한 함속에 보물들이 들어있었다. 빨강색 공단에 수놓은 수저집도 있고, 여러 가지 물건들도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요즘도 한옥마을에 가면 고풍스런 물건들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끌린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같이 느껴진다. 친구네 집에 갔을 때 친구엄마가 칭찬해 주며, 반겨주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부러웠다. 그러면서 속으로 무던히도 슬펐다. 내 유년시절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나날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낮부터 떠있는 낮달도보고 상현달, 하현달과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도 보았다. 시골 밤하늘의 별들은 검은빛 우단에 보석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나는 별과 달을 보며 혼자서 달노래를 가만가만 불러보기도 했다. 산새소리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치는 밤바람소리, 봄이 되면 뻐꾸기 소리, 논에서 들려오는 뜸부기 소리, 5월이면 노란빛 옷을 입은 꾀꼬리가 깨죽나무에서 우리 집을 보며 노래했다. 참 듣기 좋은 소리였다. 나는 수다스럽게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세월이 흘러 소녀가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잘 나가지 않았다. 내가 자라는 동안 언니들은 한 명씩 시집을 갔다. 나는 마음이 더욱 외롭고 허전했다. 나를 두고 결혼한 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에야 짐작해본다. 세월이 흘러 형부가 회갑이 될 무렵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형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내 마음이 몹시 슬펐다. 의지했던 형부께서 떠나신 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약국을 하던 언니네 딸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줄초상을 겪었던 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소종숙 수필가는 전북 익산 출생으로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한국 가곡사랑회 창작가요제 ‘박꽃’ 작사, ‘삶의 자리를 보다’ 들을 공동 출간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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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9 16:46

살아 있기에 - 양희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마음이 심란하고 착잡하다. 바깥바람을 쏘이려고 문밖으로 나오니 이파리들이 파랗게 너울거리며 나를 반긴다. 양지바른 처마 끝에 옹기종기 심어놓은 꽃과 채소들도 싱그럽게 다가온다. 시도 때도 없이 방긋 웃던 핑크빛 제라늄은 그지없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향기만 풍기고 금세 시드는 장미꽃에 비할까? 미색 박명이 무슨 소용이랴. 오래도록 호사한 그 열정을 즐기면 그만인 것을.... 화분에 덩치 큰 수국이 탐스럽다. 아기자기한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풍성한 맵시로 가지가지마다 피어났다. 여름 내내 매혹적인 생기를 잃지 않는 꽃, 풍만하고 고결한 그 자태가 요염하다. 들뜬 내 마음도 꽃 따라 예쁘게 가라앉는다. 스티로폼 박스에서 자란 고추와 가지가 주렁주렁 열렸다. 매달린 열매가 갓난아기처럼 여리고 귀엽다. 채소들의 숨결과 내 숨소리가 서로 교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살아 숨 쉬는 게 온 몸으로 느껴진다. 살아 있기에 정이 가고 애착이 간다. 그래, 살아있다는 사실이 소중한 거지! 코로나는 인종차별, 국경차별, 빈부차별, 남녀노소차별, 권력의 차별도 하지 않는다. 분별없는 코로나의 침투력은 전쟁의 살상무기보다 두려운 존재다. 소리 없는 투쟁, 마스크로 입을 막고, 사람과 거리를 두면서, 밥도 같이 먹지 말란다. 살다보니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마음만 뒤숭숭하다. 코로나가 제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우리는 꼭 이겨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못할 게 없지 않은가? 생의 존엄성이 하찮은 바이러스에 무너질 순 없다. 적을 공격하려면 먼저 적을 알고, 제압해야만 이길 수가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 중이니 코로나는 곧 사라지리라 믿는다. 계절은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돌아오는 법. 지난 겨울부터 법석을 떨었던 코로나19는 지구촌을 샅샅이 누비면서 어느새 한여름이 되었다. 인간의 능력이 하늘만큼 높다 해도 자연법칙을 거역할 순 없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한다면 예기치 못한 재앙은 없을 게 아닌가? 평화로운 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르고 장대비로 쏟아진다. 큰 피해 없이 지나가야 할 텐데…. 나른한 오후, 움직이는 것이 싫어질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갑작스러운 스마트폰의 진동소리에 잠을 깬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연다. 무심코 쳐다본 창문 밖 저 멀리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움직인다는 것은 것은 살아다는 증거구나" 이런 생각은 하나의 상상으로 이어졌다. 창문이라는 틀 안에 보이는 세상에는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가득하다. 지저귀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 사이에 솟아있는 전봇대는 생명체들과 달리, 항상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멈추어져 있다. 양희선 수필가는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길 따라 꿈길>을 출간했으며 자연보호활동 수기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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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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