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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접시 바닥 위에 생달걀을 올려놓다 소리도 잠시 섞여 둥글둥글 흔들린다 투명한 탄력이 굴절된 잡음을 털어낸다 청결한 내막 내막內膜 안에서는 탯줄 끝에 이어진 맥박이 바닥까지 숨을 참고 찍어 멈출 때 더 비틀거리고 더 깊이 깨어난다 삶의 무게를 떨어뜨리는 낙하지점 검은 눈빛 한 점 추錘가 둥긂 속 모든 흔들림, 떠도는 혼돈을 붙잡고 들끓는 붉은 고요 탄생 신화 껍질을 탁, 깨트리는 순간의 절정 나 안에 나를 찾아서 나를 흔든다 △ “흰 접시” “위에” “생달걀”을 깨뜨리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의 말을 빌려오면 묘사라는 말보다는 “해체”라고 써야 할 것이다. 시 한 편에 이렇게나 많은 것을 ‘숨겨서 보여줄 수 있다’니 참 놀라울 뿐이다. “소리도 잠시 섞여 둥글둥글 흔들린다” 이 한 행만으로도 시집 한 권이 또 태어나겠다. 모든 인생은 ‘나의 밖’이든 ‘나의 안’이든 소리가 섞여야 흔들린다. 흔들리다 깨어나는 과정이다. 또 “투명한 탄력”은 어떤가? 우리 안에 있는 이 탄력이야말로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굳이 ‘헤세’나 ‘프로이드’가 거들지 않아도 생은 깨지고 깨면서 겹겹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리라. <김제김영>
허물어지지 마라 물러서지도 마라 흔들리며 다가서는 견고한 사랑을 위하여 빈들에 적적히 서 있는 허황한 벽에도 이슬이 내리고 꽃은 핀다 허물어지지 마라 물러서지도 마라 누구도 다가서지 않는다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다 △ “벽에도/이슬이 내리고/꽃은 핀다”라는 구절에서 다시 힘을 얻는 독자들이 많을 듯하다. “빈들에 적적히 서 있”어서 늘 고단하고 외로운 것은 벽의 몫이다. “누구도 다가서지 않”고, 심지어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 “벽”이 있다. 그래도 “허물어지”거나 “물러서”지 않는 이유는 “흔들리며 다가서는/ 견고한 사랑을 위”해서다. 벽의 존재 가치가 “사랑” 때문이다. 외롭고 고단하고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 당신에게도 오늘은 “이슬”과 “꽃”이 찾아들 것이다. / 김제 김영
화려한 꽃그림자에 가려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 너를 찾아 길을 잃었을 때 푸른 산자락이나 강물을 끄을고 너는 아슬하게 손짓한다 은하의 입자들이 모여서 되었기에 너의 눈은 언제나 젖어있다. 내 사랑 부족하여 너를 가두려 해도 너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너를 부르면 달려올 것 같아도 투명한 나신이 되어 숨는다 껴안으면 스러지는 여인 한 번도 입술을 주지 않은 꽃 꽃바구니 변두리에서 나는 안개가 몰려오는 새벽을 기다린다 △「안개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의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겉으로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잊힌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의 쓸쓸함과 그리움, 그리고 그 존재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조용한 헌신과 애틋함이 가슴 깊이 스민다, 꽃은 드러나지 않지만 곁을 채우는 존재처럼 그리움도 사랑도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사랑한다는 말도 작게, 아주 작게 숨어서 고백하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껴안으면 스러지는 여인”으로 화자의 기억 속에 살고 있을 꽃그림자였을 것이다./ 시인 이소애
어머니는 밥이 무서웠다 삼시세끼 행여 새끼들 굶길까 숙이고 또 숙이시며 닦고 또 닦았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설렘과 두근거림에 거울을 만지작거리는 자식들 학교 중단시킬까 불안하여 텅 빈 통장 자꾸 열어서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셨다 그것은 오직 어머니의 몫 꽃이 피는 줄도, 꽃구경은 사치스러운 여인들의 것이라고 바닷가 해수욕도 가을 단풍 구경도 모두 남들 이야기라고 밥을 무서워하던 젊은 어머니는 어느새 팔순 노인이 되시어 늙어가는 자식들 먹을거리 투정을 보면서 말씀하신다 그렇게 밥이 무섭냐? △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밥’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의 눈물, 노동, 사랑, 그리고 세월을 다시 보게 해준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어머니의 삶과 마음이 담긴 사랑의 표현이다. 자식들 도시락에 삼시세끼 정성을 쏟으며 자신의 건강과 삶은 돌보지 못한 채 살아온 어머니였다. 희생은 밥에 녹아있다. 그렇게 자란 자식이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되고 ‘밥의 무게’,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회한의 표현이다. “그렇게 밥이 무섭냐?” 어머니의 사랑이 소리로 다가온다./ 시인 이소애
구순을 벌써 넘으신 가형을 모시고 봄마저 힘들어 하시는 꽃길을 걷는데 꽃말이듯 혼잣말을 하신다 아기들은 눈만 뜨면 이쁜짓만 느는데 늙은이는 눈만 뜨면 미운짓만 느는구나 흐드러진 철쭉꽃을 사진에 담으며, 대구가 절창이십니다, 형님 그래도,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잖아요 △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사랑과 미움이 결국은 하나의 몸이다. 하나의 존재 안에 있다는 깊고 잔잔한 깨달음을 전해주는 시다.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잖아요”는 모든 생의 순간들이 서로 이어진 하나의 존재임을 말한다. 그 말이 따뜻하면서도 먹먹하게 마음을 울린다. 꽃잎처럼 지고 피는 삶의 흐름 속에 늙음도 젊음도 결국 하나! 우리 모두 한 몸, 하나의 생이라는 깊은 위로와 공감이 스며든다. “꽃말이듯/혼잣말”처럼다가온다. /시인 이소애
오늘도 찰방(察訪)다리 강물은 말없이 증언처럼 흘러가는데 마천(馬川) 찰방터 분지엔 뿌연 먼지만 묻어 있구나 조선말 관리들의 탐학에 시달리다 못한 떼족들이 삼례벌 너른 벌판에 모여 분연히 일어선 십만여 불꽃들은 다 어디 갔을까 죽창을 들고 쓰러진 원혼(冤魂)의 더미를 넘으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던 함성들이 이제는 다 묻혀서 새로운 혼불로 돋아났는가 워어렁, 워어렁 △ “워어롱, 워어렁” 삼례에서 봉기하면서 농민군의 함성이 “찰방다리 강물”에 실려 돌아오고 있다. 들린다. 주먹 불끈 쥐고 하늘 높이 찌르며 억압에 맞서 싸웠던 그날. “찰방터 분지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을 소리, 소리, 소리를 강물은 알고 있을 터. 역사의 무게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이 새로운 혼불로 되살아난다. 백성의 항거와 그 정신을 “삼례벌 너른 벌판에 모”였던 발자국들이 살아서 그들의 치열한 외침과 희생을 현재로 불러오는 시였다. 마음이 뜨거워 진다./ 시인 이소애
까치 부부는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아마 그들 부부는 무척 외로움을 타는지, 사람 사는 마을 앞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집을 짓고 아슬아슬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까치 부부는 겨울 양식이 충분치 않은지, 혹한인 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양식을 물어 올리고 있습니다. 진눈깨비 내리는 날씨인데도 때로는 낡은 집을 고치느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인지 마른 나뭇가지 위에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들 부부의 명상은 사시사철 끝나지 않는 것 같지만, 특히 오늘 같은 겨울 날씨에는 더욱 쓸쓸한 모습으로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합니다. 아마 까치 부부는 노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깊게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집을 떠난 자식들이 이 혹한을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는지, 자못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모양 같기도 합니다. △ <까치집>은 까치 부부의 겨울나기를 통해 인간 삶의 단면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까치가 마을 근처에 집을 짓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진눈깨비 속에서도 먹이를 나르고 집을 수리하는 모습은 근면한 삶의 풍경입니다. 노후를 대비하는 나믓가지 위의 고요함은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생의 그림이었습니다. 둥지를 떠난 자식들을 걱정하는 노부부의 하루는 기도였다.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가족의 단단한 온기가 숨어 있어 슬픔이 감돈다./ 시인 이소애
세월을 주름잡아 구김살 없이 다려놓은 햇볕. 조용히 강물 따라 흘러갔는데 눈 떠보니 바다. △ 200년대 초반에 발생한 ‘민조시’는 우리 전통 시가를 발전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3, 4, 5, 6(3+3, 2+4)의 18자로 만들어진 시가문학이다. 음수율을 엄격히 지키되 내재율을 살려 쓰는 장르다. 요즘 현대시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마침표도 반드시 찍어야 한다. 민조시의 ‘노래(歌)는 얼마든지 여지가 있다. “조용히/강물 따라/흘러갔”다는 말은 세월이 주는 의무와 책임에 순응하며 살았다는 말일 것이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바다”에 도착했다는 시적 화자는 한 소식을 깨닫고 이제는 고요하고 넓은 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작품의 “바다”는 우리가 도달하고야 마는 생의 궁극이다./ 김제김영
요즘 분리수거를 하다 보니 쓰레기 배출 내용물이 별로 없다 비닐봉지는 내 피부의 나이 플라스틱은 딱딱한 내 자존심 빈병은 속을 게워 낸 것마냥 개운하다 깡통은 내 머리의 회색 그늘 숲속 연두 바람에 흔들리며 빈 소리가 요란하다 일생의 소중했던 삶의 편린들을 대충 분리수거 하고 보니 이제 남는 것은 황량한 벌판에서 밀려오는 사나운 허무함 그리고 외로움만 남을 뿐이다 △ 분리해서 수거할 것들은 물건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이나 사고도 물건과 마찬가지로 소비재로 구분되기도 한다. 푸석해 보이는 “내 피부”와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서 유연성이라고는 없는 “내 자존심”도 때로는 과감하게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그러고나면 나는 “빈 병”처럼 “개운”할 것이다. “삶의 편린들”을 다 정리하고 나면 “허무함”과 “외로움”만 남을지라도 다시 차오르는 나는 “연두 바람”처럼 상긋할 것이다./김제김영
모든 구멍엔 물氣가 있다 물기가 있기에 생氣도 있다 생기가 있는 곳에 뼈가 있다 구멍 속엔 카멜론으로 사는 물의 뼈가 숨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눈물에도 뼈가 있고 목구멍 소리에도 뼈가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구멍이 있다 구멍마다 물의 뼈가 있다 마른 총구멍, 거친 포구멍에서 녹물이 나올 때 부러진 뼈도 분단의 땅도 한 살로 푸르게 봉합될 것이다 △ 물기는 생기를 데려오고, 생기는 뼈를 키우는 구나. 눈물 속에도 뼈가 있고, 목구멍을 건너오는 모든 소리에도 뼈가 있구나. 웃던 사람은 말의 뼈에 걸려 울고, 울던 사람은 눈물 속 뼈로 삶을 곧추 세우는구나. 지구촌은 여기저기 전쟁 중이다. 마른 총(銃)과 거친 포(砲)는 언제쯤 녹물이 다 흘러 세계가 “푸르게 봉합”될 수 있을까/ 김제김영
당신마저 어디론가 떠나 세월만 가라 하신다면 그 밤들은 어디서 찾겠습니까. 먼데 계신다고 억지 부리며 마음까지 속이고 싶다면 당신을 탓하지 아니하리다. 그러나 그 밤들의 흔적들이 매일 밤 찾아와 슬피 울고 간다면 그 밤들을 어찌 하시겠습니까. △ “당신”을 “문학”으로 바꾸어 읽으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문학에 대해 더 간절해진다. 시(詩)도 더 간절하게 읽힌다. 많은 밤을 전전긍긍하면서 시를 찾아 헤매었다. 시적 화자가 찾는 문장은 “먼데 계신다고 억지 부리”는 순간이 더 많다. 많은 밤을 전전긍긍하였어도 “어디론가 떠나”버려 놓쳐버린 꿈속의 문장들이 더 많다. 헛발질하던 “그 밤들을 어찌하”겠는가? 문장을 찾아 헤매던 “그 밤들의 흔적들이/매일 밤 찾아와 슬피 울”기 때문에 시는 더욱 깊어지리라. 시인은 다시 많은 밤들을 기꺼이 헤매리라 <김제김영>.
날개도 없이 훨훨 날아 세상을 떠도는 새 날개 없이도 천 리 길 너끈히 날아가는 새 날개 달아 날려 보내면 고향도 벗어나 날아다니는 새 푸른 이끼 내려앉은 바윗돌 같은 방언 딱지 붙여 놓아도 아무렇지 않게 훨훨 날아가는 새 말이 생명이라면 이쁜 ‘아까막새’에 방언이란 딱지 떼어 내고 지역이란 장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날개 달아 날려 보내주고 싶은 새 이름만 들어도 웃음 나오는 새 아까막새 △ “아까막새”는 방언이다. 특히 전북지역의 사람들은 단번에 알아듣지만, 타지 사람들은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 방언이다. 이런 방언을 재미있게 풀어 준 작품이 “아까막새”다. 새는 새인데 “날개도 없”다. 이 새는 힘이 좋아서 “ 바윗돌 같은/방언 딱지 붙여” 놓아도 조국 산천을 “훨훨 날아” 다닌다. “이름만 들어도 웃음 나오는 새”다. 시적 화자는 힘이 세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아까막새”가 “지역이란 장벽을 넘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시기’처럼 표준어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김제김영
중심을 놓쳐버린 여자 등나무 같은 손목이 허공을 여러 번 술렁이고 나서야 젖가슴이 드러났다 아가와 엄마가 이어지는 순간이 의식을 치르듯 진지하다 수저를 잡고 있는 여러 개의 눈과 마주쳤다 조금 전 흔들리던 여자는 어디로 가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의젓한 모습으로, 너의 앞에 놓여있는 밥그릇과 내 아기가 물고 있는 젖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짝이는 눈으로 묻고 있다 고요가 말을 삼켜버린 식당 안 많은 입들은 대답을 놓쳐버렸다 아가는, 여자가 놓쳐버린 중심에 있다 - 「중심」 전문 △ “여자”는 말 그대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가 좀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봐 당황했을 것이고, 성급한 누군가가 아이나 여자에게 한마디라도 보탤까 봐 술렁였을 것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린 순간부터 여자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어서 소리 없는 질문 하나가 식당을 가득 메운다. “너의 앞에 놓여있는 밥그릇과/내 아기가 물고 있는 젖이 무엇이 다르냐고”./김제김영
희망의 성화가 타오르네. 평화의 바람이 전북을 감싸네. 백제의 찬란한 역사가 숨 쉬고 조선 건국 이성계의 기상이 넘치는 이곳에서 다시 세계를 맞으리. 풍요로운 호남벌에 파도치는 금빛 물결 올림픽 함성이 피어나리라. 성화 타오르는 K-문화 수도 전북에 울려 퍼지는 세계의 우정과 화합 평화와 번영의 불꽃을 밝히리라. 세계가 전북으로 전북에서 세계로! 2036 하계올림픽 △ 김성주 시인, 전북 특별자치도체육회 스포츠 공정위원이다. 전북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들과 경쟁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셨다. 김관영 전북자치 도지사와 전북도의회 의장, 전북자치도 교육감 등 주요 인사와 도민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올림픽 유치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전북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 올림픽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대 내외에 선포하는 뜻 시다./ 이소애 시인
저녁녘 썰물 소리 돛단배 하나 애환의 닻올리고 수평선에 걸린 파도사이를 홀로 나는 새 한 마리처럼 홀로 노 저으며 석양에 홀로 숨 가쁜 돛단배 하나 바다 저편에 마음을 담고 멀어져 가는 선창에 아쉬운 듯 눈길 보낸다. △ 생의 바다에서 “돛단배” 같은 시적 화자가 “수평선에 걸린 파도 사이를” 이리저리 흔들리며 “애환” 속에 살았어도 “선창”이 “멀어져 가는” 나이에는 “홀로 나는 새”처럼 홀가분하다. 삶이 낡아가는 시간을 시적 화자는 “저녁녘 썰물 소리”라고 표현했다. 저녁도 서글픈데 썰물까지 지고, “홀로 숨 가쁜” 인생의 “석양”이다. 게다가 마음은 이미 “바다 저편에” 두었다. “아쉬운 듯”하지만, 더는 아쉽지 않은 “눈길”은 이만하면 되었다는 자족도 한 자락 깔려 있다. 오늘은 해지는 바다를 보러 가자. 가서 삐걱거리는 삶을 다시 챙겨보자. /김제김영
놀라지마, 잎이 나오기 전 숨을 수가 없어서 확, 피어버린 거야 일찍 피어나 스러지는 일이 열매 때문만은 아니야 우두둑우두둑 뻐근한 쑥국새 기지개와 쑥쑥 돋아나는 쑥이파리 한 잎도 봄꽃이야 튀밥처럼 팡팡 피었다가 대책 없이 짧다고 말하지 마 너를 바라보는 눈동자엔 붙잡지 못한 시간들이 남아있어 깊은 물에 갇혔던 빛으로부터 유쾌한 소리와 민감함이 무작정 쏟아지는 봄 △ 고난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삶의 훈련이다. 자유로운 영혼과 열정적인 삶을 통해 시를 품어내는 영감을 준다. <쏟아지는 봄>은 “붙잡지 못한 시간” 때문에 저항적인 화자의 항변일까. “쑥국새 기지개”를 봄빛으로 느낄 때 쑥국새의 날개는 움츠린 꽃의 유혹이다. 봄바람처럼 춤을 추는 쑥이파리의 흔들림이 쏟아지는 봄 풍경이다. 서로 양팔을 벌리고, 어깨동무를 하고 봄햇살을 서로 양보하는 봄꽃이 봄이 왔노라고 “팡팡 피어”난다, 쏟아진다./시인 이소애
붉은 모란꽃 한 송이만 피어도 수천 평 꽃밭이다, 나는 자목련꽃 한 송이만 피어도 천지 사방 흩어져 자칫 나를 잃는다 거기, 분홍 노랑 빨강 채송화 피면 비로소 너를 잊는다 △ <불편한 그리움>이 그리움을 더욱 아프게 유혹한다. 꽃은 바라만 보아도 꽃의 향기처럼 은은하게 떠오르는 그리움이 있다. 아니 추억이 새록새록 솟는다. “자목련꽃” 그늘에서 손잡아주던 짜릿한 기억이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지만 잊히기도 한다. 꽃향기에 취해서 그리움이 가까이 다가오면 꽃은 온데간데없고 내 안에 그리움이 스며든다. 맹꽁이가 울면 여름이 온다. 꽃이 시들면 겨울이 가는 등짝이 보인다. 그렇듯 시인은 꽃밭에서 꽃과 어울리며 산다. 참 아름답다./ 시인 이소애
나는 이름 없는 꽃 몽글게 진흙 속에 씨앗으로 한 오백 년을 웅크리던 꿈 한 생으로는 부족하여 후생의 후생에야 떠 오른 빛깔과 향기 마침내 지상을 넘치는 사랑의 여울 번지고 물듦 △ 시인은 마음이 아름다워 꽃동네에서 산다. 등꽃 흑장미 벚꽃 개망초꽃 붓꽃 달맞이꽃과 함께 어울려서 산다. 그래서 시인을 채송화라 부른다. 온통 꽃으로만 보이는 사물들. 긍정적인 삶이 시인을 “후생의 후생에야”까지 “웅크리던 꿈”을 가슴에 품고 천만년을 이끌고 간다. 꽃으로 피어나지 않고 씨앗으로 흙에서 뒹굴며 사는 초라하게 보이는 꽃의 어미. 나는 그 씨앗의 모서리에서 연둣빛의 새싹과 꽃분홍색의 냄새를 맡는다. 상처를 보듬어 안고 깨닫는 기쁨을 본다./ 시인 이소애
너라는 거처에서 나는 행복했고 너라는 안식을 얻어 나는 더 괜찮아졌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 ‘우리’란 관계에서 내가 누구에겐가 두 사람의 한쪽인 ‘나’를 떠올린다. 한 알의 씨앗에서 둘이 보이고, 마른 가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여린 초록빛에서 둘이 피어난다. 찔레꽃 꽃봉오리에서도 서로 껴안은, 오므리고 꼭꼭 부둥켜안은 둘의 향기를 맡는다. 서로 고통과 슬픔을 쪼개어 나눌 수 있는 든든한 동행이 부럽다. 고통을 버티거나 아픔에 대한 희망이 아침 이슬방울만큼 있어도 둘은 태양으로 보인다. 둘의 힘. 절망적인 소금사막에서도 ‘우리’가 ‘행복’한 감정을 공유했다면 온 세상을 껴안은 시가 존재한다./ 이소애 시인
그녀 곁을 스칠 때 얼굴은 열을 품고 호흡은 풍랑을 일으킨다. 마음을 그녀에게 몽땅 빼앗긴 채 가슴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다가갈 수 없는 발걸음은 한숨뿐이다. 그녀 곁을 스친 후 가슴은 아픔 되어 더 큰 슬픔으로 이어지는데 눈길 한번 주지 못한 아쉬움에 발걸음 뒤로 묶고 그녀가 남기고 간 석양에 홀로 서있노라. △ 우리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산다. 짝사랑의 대상은 무한하고 다양하다. 사람, 돈, 지위, 권력, 희망 등 우리가 바라고 함께하고자 마음을 기울였던 모든 순간과 과정이 짝사랑의 대상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짝사랑의 대상이 넓어지고 짙어진다. 이성을 향한 추억 속의 짝사랑도 더 짙어지고 지나온 삶의 궤적을 따라다니면 짝사랑의 대상도 더 넓어진다.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눈길 한 번 주지 못한” 짝사랑이어도 실패한 사랑은 아니다. 내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으니까. / 김제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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