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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금에 바람이 불고 한 모금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 모금에 생각은 꼬리를 물고 한 모금에 비가를 부르고 한 모금에 뼛속까지 두렵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쓰다 여기에 숨결이 다 들어 있었다 우주가 들어 있었다 한 모금 심연의 떨림으로 그렇게 내게 왔다 △ 커피 한 잔은 이별을 품고 피어난 늦가을 구절초의 애절한 숨결이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쓰디쓸 때가 있다. 얼마 만인가. 커피 한 잔의 잔잔한 그리움에 마음이 요동치다니. 한 모금 전율. 작은 폭풍 안에 보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흔들릴 때 커피 향이 눈물이다, ‘떨림으로’ 다가오면 꽃은 울음을 삼킨 듯 고요하다. “심연의 떨림으로” 찻잔이 흔들린다./ 이소애 시인
산사 가는 길 바람의 속삭임으로 감이 익어간다 가슴 속에 불의 중심을 지녔던 사람들 시간에 기대어 너랑나랑도 함께 익어간다 익는다는 것은 몸을 태우는 일이다 불꽃을 피우는 일이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빛이 빚어낸 길 즈믄 밤 등블 하나 걸어 놓는 일이다 △ “감이 익어간다‘ 가을 중심부에서 가을을 보내는 일은 “바람의 속삭임으로” 이별한다. 마치 “즈믄 밤 등불”처럼 내 “몸을 태우는” 슬픔을 등에 짊어지고 가을의 뒷모습이 멀찌감치 가고 있다. 시간이 나의 삶에 기대어 감이 익어가듯 붉어지면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인다. 이별의 슬픔이 늦가을을 온통 스산한 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가 두고 떠나야 것들이 정겨울 때도 감이 익어간다. “너랑나랑도 함께 익어”가는 감은 외롭지 않겠다. 이별을 연습하기 위해 가을이 간다./ 이소애 시인
난 모든 너를 들고 자랑한다 이것은 종종 나였으며,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앞으로네 방 모퉁이의 Marshall 스피커 엘피판은 무언가를 몸에 품고 아주 변칙적인 자국을 보여준다 대단한 너, 레코드판에 욱여넣은 모든 너 누군가 신성한 LP에 둥근 손톱자국을 둘러 묻혔네 저것도 돌아오며 아픈 시작과 끝점을 가졌겠어 한 바퀴로 맺어지는 손을 보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시계 놀이 툭 떨어지는 레코드 바늘, 반복됨, 판을 깊게 긁다 안쪽에 묻는 △세상의 모든 흔적은 “아픈 시작과 끝점을 가졌”을까? 그래서 평범한 손톱조차 “아주 변칙적인 자국”을 남기는 것일까? “종종 나였으며,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앞”을 담은 “엘피판” 음반에는 노래조차 골이 져 기록되는데, 이 “신성한” 기록에 묻어있는 “둥근 손톱자국”은 얼마나 많은 “아픈 시작과 끝점”이 골이 져야 비로소 곡조를 이룰 수 있을까? “레코드판에 욱여넣은 모든 너”는 마침내 “모든 앞”을 걸어볼 수 있을까?/ 김제김영
곰보딱지 낯짝 땜에 평생을 놀림감 가엾고 짠한 마음 생각수록 안 됐네 젊어선 사흘거리로 별명 땜에 싸움질 곰보딱지 별명땜에 울고불던 지난 세월 그나마도 이젠 옛말 곰보딱지 아줌니 귀먹고 눈 어두어져 뉘 뭐래도 괜찮소 △ 옛날에는 마마를 앓아 얼굴에 흉이 있는 사람들을 얕잡아 부르는 단어도 있었다. 지금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다. 이름 대신 “곰보딱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아줌니”는 평생을 두고 얼마나 원망스럽고 분통이 터지는 세월을 살았을까? “사흘거리로” “싸움질”하는 것으로도 한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 귀가 어두워졌다. 눈도 어두워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는 세상에게 휘둘리지 않을 중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는 남의 의견 말고 내 신념으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요해지게 되는 것이다./김제 김영
직박구리와 박새가 앨토 소프라노 참새는 소프라노 까치가 테너 하니 까마귀가 바리톤으로 응답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경덕재에 터를 잡은 새들은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웃으며 꿈나라를 청한다 그들이 웃음잔치 하는 가운데 인간들은 자신처럼 운다고 우긴다 매일 웃는 새들을 닮고 싶다 △ 세상을 내 잣대로 보는 일을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내 안의 모순을 돌아보는 일도 드물어졌다. 바람을 어떤 사람은 ‘분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휘몰아친다’라고 한다. 붉은 꽃을 어떤 사람은 ‘곱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요염하다’라고 한다. 새소리를 시인은 “웃음잔치”한다고 느끼는데 “인간들은 자신처럼 운다”라고 “우긴다” 그러니 내 마음이 하는 일이여 늘 맑고 환하고 곱기를!/ 김제김영
흰 접시 바닥 위에 생달걀을 올려놓다 소리도 잠시 섞여 둥글둥글 흔들린다 투명한 탄력이 굴절된 잡음을 털어낸다 청결한 내막 내막內膜 안에서는 탯줄 끝에 이어진 맥박이 바닥까지 숨을 참고 찍어 멈출 때 더 비틀거리고 더 깊이 깨어난다 삶의 무게를 떨어뜨리는 낙하지점 검은 눈빛 한 점 추錘가 둥긂 속 모든 흔들림, 떠도는 혼돈을 붙잡고 들끓는 붉은 고요 탄생 신화 껍질을 탁, 깨트리는 순간의 절정 나 안에 나를 찾아서 나를 흔든다 △ “흰 접시” “위에” “생달걀”을 깨뜨리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의 말을 빌려오면 묘사라는 말보다는 “해체”라고 써야 할 것이다. 시 한 편에 이렇게나 많은 것을 ‘숨겨서 보여줄 수 있다’니 참 놀라울 뿐이다. “소리도 잠시 섞여 둥글둥글 흔들린다” 이 한 행만으로도 시집 한 권이 또 태어나겠다. 모든 인생은 ‘나의 밖’이든 ‘나의 안’이든 소리가 섞여야 흔들린다. 흔들리다 깨어나는 과정이다. 또 “투명한 탄력”은 어떤가? 우리 안에 있는 이 탄력이야말로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굳이 ‘헤세’나 ‘프로이드’가 거들지 않아도 생은 깨지고 깨면서 겹겹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리라. <김제김영>
허물어지지 마라 물러서지도 마라 흔들리며 다가서는 견고한 사랑을 위하여 빈들에 적적히 서 있는 허황한 벽에도 이슬이 내리고 꽃은 핀다 허물어지지 마라 물러서지도 마라 누구도 다가서지 않는다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다 △ “벽에도/이슬이 내리고/꽃은 핀다”라는 구절에서 다시 힘을 얻는 독자들이 많을 듯하다. “빈들에 적적히 서 있”어서 늘 고단하고 외로운 것은 벽의 몫이다. “누구도 다가서지 않”고, 심지어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 “벽”이 있다. 그래도 “허물어지”거나 “물러서”지 않는 이유는 “흔들리며 다가서는/ 견고한 사랑을 위”해서다. 벽의 존재 가치가 “사랑” 때문이다. 외롭고 고단하고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 당신에게도 오늘은 “이슬”과 “꽃”이 찾아들 것이다. / 김제 김영
화려한 꽃그림자에 가려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 너를 찾아 길을 잃었을 때 푸른 산자락이나 강물을 끄을고 너는 아슬하게 손짓한다 은하의 입자들이 모여서 되었기에 너의 눈은 언제나 젖어있다. 내 사랑 부족하여 너를 가두려 해도 너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너를 부르면 달려올 것 같아도 투명한 나신이 되어 숨는다 껴안으면 스러지는 여인 한 번도 입술을 주지 않은 꽃 꽃바구니 변두리에서 나는 안개가 몰려오는 새벽을 기다린다 △「안개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의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겉으로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잊힌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의 쓸쓸함과 그리움, 그리고 그 존재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조용한 헌신과 애틋함이 가슴 깊이 스민다, 꽃은 드러나지 않지만 곁을 채우는 존재처럼 그리움도 사랑도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사랑한다는 말도 작게, 아주 작게 숨어서 고백하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껴안으면 스러지는 여인”으로 화자의 기억 속에 살고 있을 꽃그림자였을 것이다./ 시인 이소애
어머니는 밥이 무서웠다 삼시세끼 행여 새끼들 굶길까 숙이고 또 숙이시며 닦고 또 닦았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설렘과 두근거림에 거울을 만지작거리는 자식들 학교 중단시킬까 불안하여 텅 빈 통장 자꾸 열어서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셨다 그것은 오직 어머니의 몫 꽃이 피는 줄도, 꽃구경은 사치스러운 여인들의 것이라고 바닷가 해수욕도 가을 단풍 구경도 모두 남들 이야기라고 밥을 무서워하던 젊은 어머니는 어느새 팔순 노인이 되시어 늙어가는 자식들 먹을거리 투정을 보면서 말씀하신다 그렇게 밥이 무섭냐? △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밥’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의 눈물, 노동, 사랑, 그리고 세월을 다시 보게 해준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어머니의 삶과 마음이 담긴 사랑의 표현이다. 자식들 도시락에 삼시세끼 정성을 쏟으며 자신의 건강과 삶은 돌보지 못한 채 살아온 어머니였다. 희생은 밥에 녹아있다. 그렇게 자란 자식이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되고 ‘밥의 무게’,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회한의 표현이다. “그렇게 밥이 무섭냐?” 어머니의 사랑이 소리로 다가온다./ 시인 이소애
구순을 벌써 넘으신 가형을 모시고 봄마저 힘들어 하시는 꽃길을 걷는데 꽃말이듯 혼잣말을 하신다 아기들은 눈만 뜨면 이쁜짓만 느는데 늙은이는 눈만 뜨면 미운짓만 느는구나 흐드러진 철쭉꽃을 사진에 담으며, 대구가 절창이십니다, 형님 그래도,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잖아요 △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사랑과 미움이 결국은 하나의 몸이다. 하나의 존재 안에 있다는 깊고 잔잔한 깨달음을 전해주는 시다.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잖아요”는 모든 생의 순간들이 서로 이어진 하나의 존재임을 말한다. 그 말이 따뜻하면서도 먹먹하게 마음을 울린다. 꽃잎처럼 지고 피는 삶의 흐름 속에 늙음도 젊음도 결국 하나! 우리 모두 한 몸, 하나의 생이라는 깊은 위로와 공감이 스며든다. “꽃말이듯/혼잣말”처럼다가온다. /시인 이소애
오늘도 찰방(察訪)다리 강물은 말없이 증언처럼 흘러가는데 마천(馬川) 찰방터 분지엔 뿌연 먼지만 묻어 있구나 조선말 관리들의 탐학에 시달리다 못한 떼족들이 삼례벌 너른 벌판에 모여 분연히 일어선 십만여 불꽃들은 다 어디 갔을까 죽창을 들고 쓰러진 원혼(冤魂)의 더미를 넘으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던 함성들이 이제는 다 묻혀서 새로운 혼불로 돋아났는가 워어렁, 워어렁 △ “워어롱, 워어렁” 삼례에서 봉기하면서 농민군의 함성이 “찰방다리 강물”에 실려 돌아오고 있다. 들린다. 주먹 불끈 쥐고 하늘 높이 찌르며 억압에 맞서 싸웠던 그날. “찰방터 분지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을 소리, 소리, 소리를 강물은 알고 있을 터. 역사의 무게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이 새로운 혼불로 되살아난다. 백성의 항거와 그 정신을 “삼례벌 너른 벌판에 모”였던 발자국들이 살아서 그들의 치열한 외침과 희생을 현재로 불러오는 시였다. 마음이 뜨거워 진다./ 시인 이소애
까치 부부는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아마 그들 부부는 무척 외로움을 타는지, 사람 사는 마을 앞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집을 짓고 아슬아슬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까치 부부는 겨울 양식이 충분치 않은지, 혹한인 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양식을 물어 올리고 있습니다. 진눈깨비 내리는 날씨인데도 때로는 낡은 집을 고치느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인지 마른 나뭇가지 위에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들 부부의 명상은 사시사철 끝나지 않는 것 같지만, 특히 오늘 같은 겨울 날씨에는 더욱 쓸쓸한 모습으로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합니다. 아마 까치 부부는 노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깊게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집을 떠난 자식들이 이 혹한을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는지, 자못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모양 같기도 합니다. △ <까치집>은 까치 부부의 겨울나기를 통해 인간 삶의 단면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까치가 마을 근처에 집을 짓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진눈깨비 속에서도 먹이를 나르고 집을 수리하는 모습은 근면한 삶의 풍경입니다. 노후를 대비하는 나믓가지 위의 고요함은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생의 그림이었습니다. 둥지를 떠난 자식들을 걱정하는 노부부의 하루는 기도였다.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가족의 단단한 온기가 숨어 있어 슬픔이 감돈다./ 시인 이소애
세월을 주름잡아 구김살 없이 다려놓은 햇볕. 조용히 강물 따라 흘러갔는데 눈 떠보니 바다. △ 200년대 초반에 발생한 ‘민조시’는 우리 전통 시가를 발전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3, 4, 5, 6(3+3, 2+4)의 18자로 만들어진 시가문학이다. 음수율을 엄격히 지키되 내재율을 살려 쓰는 장르다. 요즘 현대시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마침표도 반드시 찍어야 한다. 민조시의 ‘노래(歌)는 얼마든지 여지가 있다. “조용히/강물 따라/흘러갔”다는 말은 세월이 주는 의무와 책임에 순응하며 살았다는 말일 것이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바다”에 도착했다는 시적 화자는 한 소식을 깨닫고 이제는 고요하고 넓은 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작품의 “바다”는 우리가 도달하고야 마는 생의 궁극이다./ 김제김영
요즘 분리수거를 하다 보니 쓰레기 배출 내용물이 별로 없다 비닐봉지는 내 피부의 나이 플라스틱은 딱딱한 내 자존심 빈병은 속을 게워 낸 것마냥 개운하다 깡통은 내 머리의 회색 그늘 숲속 연두 바람에 흔들리며 빈 소리가 요란하다 일생의 소중했던 삶의 편린들을 대충 분리수거 하고 보니 이제 남는 것은 황량한 벌판에서 밀려오는 사나운 허무함 그리고 외로움만 남을 뿐이다 △ 분리해서 수거할 것들은 물건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이나 사고도 물건과 마찬가지로 소비재로 구분되기도 한다. 푸석해 보이는 “내 피부”와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서 유연성이라고는 없는 “내 자존심”도 때로는 과감하게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그러고나면 나는 “빈 병”처럼 “개운”할 것이다. “삶의 편린들”을 다 정리하고 나면 “허무함”과 “외로움”만 남을지라도 다시 차오르는 나는 “연두 바람”처럼 상긋할 것이다./김제김영
모든 구멍엔 물氣가 있다 물기가 있기에 생氣도 있다 생기가 있는 곳에 뼈가 있다 구멍 속엔 카멜론으로 사는 물의 뼈가 숨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눈물에도 뼈가 있고 목구멍 소리에도 뼈가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구멍이 있다 구멍마다 물의 뼈가 있다 마른 총구멍, 거친 포구멍에서 녹물이 나올 때 부러진 뼈도 분단의 땅도 한 살로 푸르게 봉합될 것이다 △ 물기는 생기를 데려오고, 생기는 뼈를 키우는 구나. 눈물 속에도 뼈가 있고, 목구멍을 건너오는 모든 소리에도 뼈가 있구나. 웃던 사람은 말의 뼈에 걸려 울고, 울던 사람은 눈물 속 뼈로 삶을 곧추 세우는구나. 지구촌은 여기저기 전쟁 중이다. 마른 총(銃)과 거친 포(砲)는 언제쯤 녹물이 다 흘러 세계가 “푸르게 봉합”될 수 있을까/ 김제김영
당신마저 어디론가 떠나 세월만 가라 하신다면 그 밤들은 어디서 찾겠습니까. 먼데 계신다고 억지 부리며 마음까지 속이고 싶다면 당신을 탓하지 아니하리다. 그러나 그 밤들의 흔적들이 매일 밤 찾아와 슬피 울고 간다면 그 밤들을 어찌 하시겠습니까. △ “당신”을 “문학”으로 바꾸어 읽으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문학에 대해 더 간절해진다. 시(詩)도 더 간절하게 읽힌다. 많은 밤을 전전긍긍하면서 시를 찾아 헤매었다. 시적 화자가 찾는 문장은 “먼데 계신다고 억지 부리”는 순간이 더 많다. 많은 밤을 전전긍긍하였어도 “어디론가 떠나”버려 놓쳐버린 꿈속의 문장들이 더 많다. 헛발질하던 “그 밤들을 어찌하”겠는가? 문장을 찾아 헤매던 “그 밤들의 흔적들이/매일 밤 찾아와 슬피 울”기 때문에 시는 더욱 깊어지리라. 시인은 다시 많은 밤들을 기꺼이 헤매리라 <김제김영>.
날개도 없이 훨훨 날아 세상을 떠도는 새 날개 없이도 천 리 길 너끈히 날아가는 새 날개 달아 날려 보내면 고향도 벗어나 날아다니는 새 푸른 이끼 내려앉은 바윗돌 같은 방언 딱지 붙여 놓아도 아무렇지 않게 훨훨 날아가는 새 말이 생명이라면 이쁜 ‘아까막새’에 방언이란 딱지 떼어 내고 지역이란 장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날개 달아 날려 보내주고 싶은 새 이름만 들어도 웃음 나오는 새 아까막새 △ “아까막새”는 방언이다. 특히 전북지역의 사람들은 단번에 알아듣지만, 타지 사람들은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 방언이다. 이런 방언을 재미있게 풀어 준 작품이 “아까막새”다. 새는 새인데 “날개도 없”다. 이 새는 힘이 좋아서 “ 바윗돌 같은/방언 딱지 붙여” 놓아도 조국 산천을 “훨훨 날아” 다닌다. “이름만 들어도 웃음 나오는 새”다. 시적 화자는 힘이 세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아까막새”가 “지역이란 장벽을 넘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시기’처럼 표준어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김제김영
중심을 놓쳐버린 여자 등나무 같은 손목이 허공을 여러 번 술렁이고 나서야 젖가슴이 드러났다 아가와 엄마가 이어지는 순간이 의식을 치르듯 진지하다 수저를 잡고 있는 여러 개의 눈과 마주쳤다 조금 전 흔들리던 여자는 어디로 가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의젓한 모습으로, 너의 앞에 놓여있는 밥그릇과 내 아기가 물고 있는 젖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짝이는 눈으로 묻고 있다 고요가 말을 삼켜버린 식당 안 많은 입들은 대답을 놓쳐버렸다 아가는, 여자가 놓쳐버린 중심에 있다 - 「중심」 전문 △ “여자”는 말 그대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가 좀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봐 당황했을 것이고, 성급한 누군가가 아이나 여자에게 한마디라도 보탤까 봐 술렁였을 것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린 순간부터 여자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어서 소리 없는 질문 하나가 식당을 가득 메운다. “너의 앞에 놓여있는 밥그릇과/내 아기가 물고 있는 젖이 무엇이 다르냐고”./김제김영
희망의 성화가 타오르네. 평화의 바람이 전북을 감싸네. 백제의 찬란한 역사가 숨 쉬고 조선 건국 이성계의 기상이 넘치는 이곳에서 다시 세계를 맞으리. 풍요로운 호남벌에 파도치는 금빛 물결 올림픽 함성이 피어나리라. 성화 타오르는 K-문화 수도 전북에 울려 퍼지는 세계의 우정과 화합 평화와 번영의 불꽃을 밝히리라. 세계가 전북으로 전북에서 세계로! 2036 하계올림픽 △ 김성주 시인, 전북 특별자치도체육회 스포츠 공정위원이다. 전북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들과 경쟁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셨다. 김관영 전북자치 도지사와 전북도의회 의장, 전북자치도 교육감 등 주요 인사와 도민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올림픽 유치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전북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 올림픽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대 내외에 선포하는 뜻 시다./ 이소애 시인
저녁녘 썰물 소리 돛단배 하나 애환의 닻올리고 수평선에 걸린 파도사이를 홀로 나는 새 한 마리처럼 홀로 노 저으며 석양에 홀로 숨 가쁜 돛단배 하나 바다 저편에 마음을 담고 멀어져 가는 선창에 아쉬운 듯 눈길 보낸다. △ 생의 바다에서 “돛단배” 같은 시적 화자가 “수평선에 걸린 파도 사이를” 이리저리 흔들리며 “애환” 속에 살았어도 “선창”이 “멀어져 가는” 나이에는 “홀로 나는 새”처럼 홀가분하다. 삶이 낡아가는 시간을 시적 화자는 “저녁녘 썰물 소리”라고 표현했다. 저녁도 서글픈데 썰물까지 지고, “홀로 숨 가쁜” 인생의 “석양”이다. 게다가 마음은 이미 “바다 저편에” 두었다. “아쉬운 듯”하지만, 더는 아쉽지 않은 “눈길”은 이만하면 되었다는 자족도 한 자락 깔려 있다. 오늘은 해지는 바다를 보러 가자. 가서 삐걱거리는 삶을 다시 챙겨보자. /김제김영
[사설] 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
[오목대] 우물안 개구리(井底之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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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집행부와 치열한 논쟁과 협력이 군민을 위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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