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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여름을 말리느라 매미는 시끄럽게 울어대며 가을을 재촉하는데 세월의 빠름에 아쉬움이 커가는 노인의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마가 끝이 나고 매미의 힘찬 날개 짓은 여름을 말리는 듯하고, 우렁차게 우는 소리는 가을을 부르는 듯한데, 자꾸 세월이 가는 것이 노인에게는 아쉬움이 더해간다.
꽃샘바람이 살랑대며 능선을 넘어오면 잠자던 가지에서 새싹들이 내밀 즈음 기다렸던 그리운 소식도 함께 오겠지. 세찬 바람결을 잊으려는 매화도 갈 곳 잃은 마음을 달래려는 듯 품을 열고 가냘픈 손짓을 하는데. 꿈에 그리던 여인도 전령을 따라 고운 바람결에 미소를 담은 채 해맑은 모습으로 고개 넘어 찾아오겠지 △꽃샘바람 분다. 잠자던 가지에서 새싹이 돋는다. 매화도 손짓하고 바람결에 들려오는 남녘의 소식도 손짓한다. 꽁꽁 언 땅이 겨울을 견뎌내는 힘은 단 하나, 봄이 데리고 올 여인의 미소다. 여인은 우리가 바라던 각자의 소망이며 꿈이다. 온천지에 봄빛 가득하다. 우리가 기다리던 여인도 “해맑은 모습으로 고개를 넘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김제김영 시인
겨울잠에서 깬 지렁이가 쭉 쭈욱 한바탕 몸을 늘린다 어디로 갈까 눈도 귀도 다리도 없는데 온몸을 꿈틀꿈틀 꼬불꼬불 땅속에 길을 내며 산수유 발가락을 간질간질 개나리 발가락을 간질간질 발가락들이 웃는다 방긋방긋 봄이 웃는다 △겨울잠을 자던 지렁이 한 마리가 세상에 봄을 불러온다. 어두운 땅속을 헤집어가며 산수유와 개나리와 목련을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콧속이 간질거리다 재채기 터지듯이 뿌리가 간질거리다 봄꽃이 팡! 팡! 터진다. 나무가 새잎을 낸다. 간질거린다는 말은 미동도 없어 죽은 줄 알았던 감각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지렁이가 기지개를 켰다는 말이다. 방긋방긋 웃는 봄이 온다는 말이다. /김제김영 시인
언제부터일까 뒤꿈치 터진 양말 한 켤레 함부로 걸려있네 고단한 발품으로 찢긴 상처 후우욱 구멍으로 빠져나온 한숨이 가슴속을 파고드네 어느새 흰머리가 돋고 복숭아뼈 그 자리에 새겨진 꽃잎 두 쌍 거친 들길 걷다 걷다 보풀로 물집이 맺혀있네 가늘게 떨고 있는 울타리 코끝 구멍 난 양말 한 켤레 아내의 고단한 하루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네 △고단한 하루가 키워내는 것들이 있다. 구멍 난 양말이 돋아주는 것들이 있다. 가진 것 없어도 기백만큼은 짱짱한 젊은 아버지들과 나이는 들었어도 사랑은 아직도 낡지 않은 부모님들과 풋과일처럼 상큼하나 아직은 덜 성숙한 아이들을 저 구멍 난 양말이 키웠다. 정작 본인은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한 번도 위태롭지 않았던 것처럼 태연하게 웃어주는 아내가 키웠다. 해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김제김영 시인
보리밥에 열무김치 비벼주던 칼국수 집이 사라졌다 대를 이어오던 누이반점이 문을 닫았고 초밥집과 왕돈까스집도 임시파일처럼 삭제당했다 자애로운 불빛이 자취를 감춘 골목식당은 이야기를 얹은 숟가락과 밥그릇 대신 임대 놓는다는 시든 현수막 바람에 멍들어 있다 양손을 들고 꿇어앉아 있는 의자들과 그림자들이 손님인 듯 빈둥빈둥 튀어나와 지나친 시련과 피로를 야금야금 삼킨다 어둠이 꽁초를 던지고 가래침을 뱉는 검은 에너지가 적막을 켜켜이 지어 소복이 퍼 담는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불빛이 꺼버린 가게와 바람에 찢어진 현수막만 아우성치던 시장 골목들이 지독한 어둠을 딛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어둠은 꼭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만은 아니어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환한 마음이 되었다. 서로의 가슴에 훈훈한 불씨가 되어 서로의 안녕을 챙기는 따듯한 이웃이 되었다. “적막을 켜켜이 지어”내던 시간은 이젠 웃음을 담뿍 담아 건네주는 훈훈한 인정이 되었다. /김제김영 시인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다리골, 섣달부터 정월 내내 저 삼천팔백오십 마리의 황태덕장, 오장육부 죄다 수행에 들어 속엣것 다 내어주는 찬란한 보시 눈보라가 덕장 사잇길로 달음박질하고, 칼바람이 구름의 표정을 읽고 있을 황태의 등짝을 만져주고 있다. 바람은 묶인 황태를 채찍질하며 ‘맛’을 토닥거리고 있다. 두 마리씩 묶여 비움으로 “섣달부터 정월 내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다. 제 몸 말려들어 가는 아픔이 어느 날 갑자기 감정 이입이 되는 날, 강풍에 몸서리치는 황태 꼬리는 보이지 않고 바짝 깡마른 몸뚱어리가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찬란한 보시”라고 화자가 말했던가. 밤잠 설치는 날 가난한 시인은 황태덕장 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소애 시인
방금 내린 커피 향 한 모금 긴 비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귀룽나무 새싹을 쓰다듬는 봄바람 잉크 냄새 배어 있는 새 책 △시인은 싱싱하다. 유혹적인 사물이 있어 부럽다. 힘들 때 마음을 움직여 줄 수 있는 “커피 향 한 모금”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청춘이다. 좌절했을 때 딛고 일어설 “잉크 냄새 배어 있는 새 책”이 시야에 가깝게 있다는 현실이 행복에 젖어 있는 초록빛이다. 유혹을 하는 게 아니라 유혹을 당하도록 긍정적인 시야의 감성을 지닌 시인이다.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세상을 쓰다듬는 화자는 자기의 감정에 순응하는 시인이 아닐까. /이소애 시인
꽃밭에 꽃 꽃 꽃 가득 피었다. 꽃밭에 한번 엎어져 보자던 그, 사람 오지 않고 꽃밭에 꽃 꽃 꽃 시든다. 어떤 사람을 ‘그리운 사람’이라고 할까?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시계 초침을 정지시켜놓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과거는 없다. 다만 기억만 존재할 뿐이다. 그 기억이 떠오르면 그리운 사람도 꽃밭에 꽃처럼 피어있을 것이다.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사람, 마음을 움직여 줄 수 있는 그 사람이 그리운 사람이다. 아니 “꽃밭에/ 한번 엎어져 보자던” 기억으로 오는 사람이 그리운 사람이다. 매정하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꽃은 시든다. 그리움은 몸이 기억한다. 몸에 스며든 감정은 매일매일 꽃처럼 피어난다. /이소애 시인
내 인생의 여든 무렵 릴케의 시 「가을날」을 다시 읽어보네. 과일 한 알이 곱게 물들어가듯 흠결 없는 남은 생에 어떻게 곱게 늙어갈까를 생각하네. 여든 무렵에 다형茶兄의 시 「가을의 기도」를 다시 읽어보네 알몸이 된 나무 위의 까마귀처럼 늙은 시간의 절대고독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를 생각하네. 아, 내 인생의 가을 무렵 뉘엿뉘엿 떨어지는 일몰을 보며 너무도 아쉬운 지상과의 작별, 어떻게 죽음의 순간 맞이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 △ ‘팔순’에 다시 읽어 본 릴케의 시 「가을날」은 무대의 마지막 커튼을 닫는 것 같았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첫 행에서 두려움과 무서움, 그러나 곱디고운 “뉘엿뉘엿 떨어지는” 마음의 공간으로 끌어당겼다. “흠결 없는 남은 생”을 위하여 「가을의 기도」는 절대고독을 견디어 낸다. 아름다운 삶의 결실을 맺기 위한 내적인 준비가 부럽다. 생의 굴곡을 일몰의 찬란한 빛처럼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기도할 화자의 모습이 슬프다. /이소애 시인
바람 일지 않게 스란치마 끄는 소리로 그러나 여물게 굴러떨어지는 잎새에 흘러 소년의 반짝이는 이 꽃잎에 앉아 소녀의 부끄러움 산천을 씻는 빗물 방울방울 산도 들도 초록 세상 한 마리 새로 날아서 올라 구름도 초록으로 물들이고 싶은 △‘스란치마’는 소란 단을 부착한 치마다. 전통 혼례 의상이지만 녹색당의와 스란치마를 입고 폐백을 올리는 건 신부의 꿈이었다. 대청마루를 지날 때 스쳐 지나가는 스란치마의 소리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마음이 초록일 때 마음을 적시는 빗방울도 초록으로 스민다. 초록은 순수한 자연의 무채색이다. 초록을 더 초록으로 물들이는 빗방울은 젊은 날의 기억으로, 초록 세상의 공간으로 간다. 꽃잎이 초록으로 스미는 곳, 젊은 꿈이 있었던 공간일터. /이소애 시인
한쪽 접시에 눈물 일흔네댓 방울 올려놓고, 눈금 맞추려 또 한쪽엔 잔별 일만 팔천 개를 올렸습니다 바늘은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월명공원 갯바람 열댓 필을 올려도 그대로입니다 돼지감자 꽃잎에 밤새 내린 이슬이 반짝, 처량해 그 빛 몇 방울 저울에 올렸습니다 이제야 양팔이 수평입니다 △수평을 맞추는 일 참 지난하다. 더군다나 시인의 눈물에 수평을 맞추는 일이라니. 시인의 눈물 일흔너댓 방울은 얼마큼의 무게일까? 잔별 일만 팔천 개에 갯바람 열댓 필 더하고, 거기에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빛까지 더해야 비로소 시인의 눈물에 값을 매겨볼 수 있다. 작품 하나를 위해 수없이 올려다보는 별의 이마와 갯바람 속을 떠도는 보헤미안의 영혼과 아침 이슬에 햇살 찾아오는 순간까지를 다 포착해야 비로소 한 편 시가 완성된다. /김제김영 시인
미당시문학관 옥상에 올라서 보니 미당생가와 미당묘가 지척에 놓여있다 소쩍새가 우는 소요산과 소요산 넘어가는 질마재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태어남과 죽음과 시와 삶이 고향마을의 손바닥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또 하나 설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서있는 발아래 전시실에는 미당 생애의 빛과 그림자였던 국화 옆에서와 친일시가 다정하게 낮과 밤을 같이 보내고 있다 아픔 같은 것이 한숨 같은 것이 질마재 구름처럼 가고 없으면 좋으련만 겨울을 이겨낸 마늘밭은 왜 저리 독하게 푸른가 거기 동백숲에서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언제 새끼들 데리고 노래를 가르쳐 본 적이 있는가? 소요음영, 이러 저리 거닐면서 시를 읊는다는 말. 미당 선생님의 시혼이 바람의 노래로 푸른 마늘밭을 가꾸고, 흰 구름 질끈 동여맨 여름이 바람을 불러 푸른 들판을 가꾼다. 시가 노래라는 말이 맞는다면, ‘인간은 말을 배움으로써 문화의 세계에 진입한다’는 라캉의 말에 댓글을 달고 싶다. ‘노래와 친해져야 인간은 비로소 시의 맛을 알기 시작한다’라고. /김제김영 시인
슬픔은 수령하되 눈물은 남용 말 것 주머니가 가벼우면 미소를 얹어줄 것 지갑과 안전거리를 유지할 것 침묵의 틈에 매운 대화를 첨가할 것 어제와 비교되며 부서진 나를 이웃동료와 견주지 말 것 인맥은 사람에 국한시키지 말 것 그늘에 빛을 채우는 일에 일 할은 할애할 것 고난은 추억의 사원으로 읽을 것 손을 내려다보면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들에게 시간을 가공 중이라고 말해줄 것 나에게 돌아오는 길엔 고개 들어야 보이는 별들에게 일과를 고하는 것 잊지 말 것 △날마다 주어지는 하루를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안다. 정말 간절하게 딱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우리는 안다. 하루를 사용하는 법에 대한 시인의 성찰이 귓바퀴를 늘어나게 한다. 인맥을 사람만으로 국한한 좁은 안목을 반성한다. 그늘을 지나쳐버린 무관심을 반성한다. 하늘을 우러러 별에게 하루를 고하지 않은 실수를 알아챈다. 고난을 의연하게 견디려는 의기가 새롭다. /김제김영 시인
오천 원짜리 고추밭에 이만 원짜리 약을 뿌린다 긴 장마에 가슴 바닥까지 젖어버린 늙은 어머니의 시름처럼 번져가는 역병 탄저병 쏟아부은 정성이야 저렇게 체념 속에서 뭉개졌다지만 씨앗 비료 농약값 아무리 계산해도 맞지 않는 셈을 하며 악마의 색으로 분사되는 하얀 농약에 엉켜버린 머리를 감는다 암만 생각해도 그들의 잘못인 양 싶어 잘난 얼굴들 박힌 신문을 찢어 병든 가지마다 만국기처럼 걸어놓고 그들만의 합리 위에 진한 살충제를 뿌린다 △농사는 생명을 길러내는 일이어서 세상의 모든 농부는 신의 마음으로 생명을 가꾼다. ‘오천 원짜리 고추밭에/이만 원짜리 약을 뿌’리는 일이 생명에 대한 외경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씨앗 비료 농약값’을 계산하면 몇 번이고 밑지는 일은 이제 그렇다 치고 ‘쏟아부은 정성’까지 ‘뭉개지는’ 작황이 ‘암만 생각해도’ 위정자 내지는 지도자의 잘못인 것만 같다. ‘그들만의 합리’가 휘날리는 고추밭에 ‘진한 살충제’를 뿌려본들 작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선한 논리라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이치는 농사도 예외가 없다. /김제김영 시인
소리 없이 떠난 날들이 생각난다 온 몸이 시리도록 꼭 조여 놓은 나사 밀려오는 잡다한 사념들 이제는 더 이상 생각도 싫어지는 지난날들이지만 가슴은 향수 젖듯 차분히 파도처럼 밀려온다 모든 것은 내 마음 안에 보석처럼 곱게 묻어두고 팬에 기름 두르듯 가끔씩 내 삶의 윤활유로 쓰자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내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를 찾고 싶다 △시적 화자는 지난 세월 동안 “온몸이 시리도록 꼭 조여 놓은 나사”처럼 살았다. 나사가 풀어지면 내가 풀어지고, 내가 풀어지면 가족이 풀어지고, 가족이 풀어지면 삶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살아내려면 “꼭 조여 놓은 나사”처럼 시간도, 돈도. 몸가짐도, 마음가짐도 단단해야 했다. 이런 시적 화자가 자신의 지난날을 이제는 “삶의 윤활유로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고통을 극복하고 난 자리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삶이 피어났다. 더는 고통에 잡혀 있지도 않을 것이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내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나를” 가꿀 뿐이다. /김제김영 시인
함께 쓰던 창고에서 그대 몫이 빠져나가 뻥 뚫린 공간의 깊이와 넓이 /윤현순 △“뻥 뚫린 공간의 / 깊이와 넓이”에서 나는 마치 수렁에 빠져들어 가는 멍청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황량한 마음이길래 공간의 깊이와 넓이가 보일까. 캄캄한 밤하늘을 비행하는 괴상한 흔들림과 정지의 영혼이 어지럼증을 몰고 오는 공허, 화자의 처절하고 쓸쓸한 뒷모습이 담장 아래로 숨어 있었다. “그대 몫”은 나의 전부였으며, 나의 존재를 끌고 가며 나를 주관하였던 사람이었다. 아! 텅 빈 공간의 떨림. 텅 빈 허공에서 들리는 새의 날갯짓. 삶의 동반자였던 사람. 그 사람의 빈자리는 침묵의 긴 여운처럼 뼈 아픈 그리움이 배신감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소애 시인
물줄기 흐름 따라 부비고 깨어지고 다시 또 뒹굴면서 새 아침 맞이하고 얼마를 구르고 나야 바람꽃 피어날까. 돌이켜 꿈도 잊고 갈 길도 내려놓고 네 지금 옆 자리에 누구누구 함께 있나. 이제 막 실눈을 뜨니 온 누리 눈부시다. 여뀌랑 고마리랑 고이 절로 붉어 있고 한 자리 앉고 보니 미리내 자락이네. 달빛이 가득 내려와 새로 듣는 물소리여. /김광원 △한 송이 바람꽃은 “부비고 깨어지고” 뒹굴면서 아픈 상처를 견디어낼 때 꽃은 피어난다. 아픔이 꽃의 성장을 함께하며 부대껴야 꽃의 색이 얼굴 내민다는 시가 유혹한다. 꽃을 바라보며 꽃의 마음을 소리로 듣는다는 시인. 달빛과 미리내 자락일지언정 돌밭은 물소리에 하루가 열린다는 곳. 소리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있겠고, “여뀌랑 고마리랑” 물소리를 먹고 꽃피우는 눈물일 수도 있겠다. 돌밭에서 멈춤의 시간은 흐르는 물이 거꾸로 흐를 때가 아닐까. /이소애 시인
바다 한 채가 솟아올랐다 안과 밖이 한 판 사투를 벌인다. 그물을 털자 멸치 떼들이 쏟아져 튀어나온다 한 시절, 사내들을 휘감던 등줄기 풍랑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바스러지도록 초秒를 다투어야 했다 부딪치지 않으려고 수많은 날 헛춤을 추어야 했다 살점 떼어준 바다에 새살 차오르면 다시 은빛 숨결이다 푸른 점들이 꿈틀댈 때마다 만삭의 속살을 토해내는 바다 비린내 켜켜 내려앉은 구릿빛 사내들이 파도의 페달을 밟는다 바다를 퍼 올리는 술배 소리에 남해, 은비늘 꽃 만발한다. /황보림 △“파도의 페달을 밟는다”는 절창이다. 금방 구릿빛 사내들이 은빛 전쟁에 사투를 벌이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전쟁이 아닌 노랫소리로 멸치 떼들을 유혹했다면 얼마나 멋진 풍광일까. 멸치는 그물에 걸렸어도 춤을 출 것이다. 풍랑을 바다의 춤으로 여길 사내들의 굵은 팔뚝이 바다를 퍼 올릴 술배 소리였겠다. “은비늘 꽃”이 남해에 가득 피어나면 파도 페달을 밟고 시동을 걸겠다. 은빛 춤을 보러 갈까 보다. /이소애 시인
어느 날 갑자기 엉떡에다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았다. 가까이 가보니 홍조 띤 그녀의 얼굴, 얼굴이 눈웃음치고 있었다. 연지 분 냄새보다 진한 향그러움이 나를 꼬옥 껴안는다. 나는 능청스런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최상영 △봄이면 언덕배기에 무리 지어 피는 꽃. 마치 광대가 분장한 것같이 아름다워 ‘광대나물’이라 불렀던가. 시인은 “홍조 띤 그녀의 얼굴”로 보이는 꽃이 "나를 꼬옥 껴안는다"고 한다. 밭두렁 꼭대기 비탈진 곳에서 “눈웃음”으로 양탄자를 깔았을 것. 연지 분 냄새가 몸에 배도록 꽃은 붉게 타올랐을 것. 광주리나물, 목걸레나물, 코딱지나물이라고 불렀던 풋풋한 어린 시절이 추억을 불러낸다. 잎 모양이 코딱지처럼 생겨서 눈웃음조차 아꼈던 기억으로 시를 품어 본다. 코딱지나물이 봄을 불렀다. /이소애 시인
빛이 등을 돌리자 숨죽인 거미의 그물망에 한 각씩 깊어지는 어둠 잘려 나간 골목 풍경들 좁혀진 배경에 밀도 따라 물이 파고들 듯 가닥가닥 모이는 빛 순간이다, 어둠과의 교차 삶과 죽음이 그렇듯 /전길중 △생각만 해도 무섭다. 정전의 어둠이 나를 지상에서 보이지 않도록 감춘다고 하는 두려움이 무섭다. “삶과 죽음이 그렇듯” 내 몸에 노크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어둠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쇠사슬을 마음에 칭칭 담아놓기 때문이다. 내 곁에 있어야 할 사람과 이별을 시키는 어둠. 두렵다. “빛이 등을 돌”린다면 그동안 소식 뜸하던 이들이 별빛처럼 깜박거릴까. 어둠과 빛은 순간으로 교차한다. 그 어둠이 “잘려 나간 골목”에서 서성거리는 공포의 세상은 천둥 번개처럼 무섭다. /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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