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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작에서 콩대가 콩닥거리며 이 방을 데웠을 거라 생각 하면 재와 연기가 새벽이 올 때까지 방을 돌고 있다고 생각 하면 콩 속에 맺힌 영혼이 텅 빈 몸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생 각하면 나는 데워진다 빈 깍지같이 살다 간 영혼들이 빈 깍지 같 은 나를 오래 데우다가 긴 굴뚝으로 천천히 새어 나가고 또 나처럼 서툰 이가 있어 바닥을 떠돌며 마지막 온기로 나를 받든다고 생각하면 반복한 말을 잃어버린 누군가 구들장 아 래 있다고 생각하면 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몇백년 전 먼 혈육이 식은 심장을 타닥거리며 나에게 무슨 말인가 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궁이를 가진 방에 가만히 누우면 몸을 데우는 온기가 은연히 스민다. 그 온기 속 알맹이를 털어낸 것들을 밀어 넣는 누군가의 등이 보이고 뜨겁게 비틀며 사그라지는 불꽃이 어린다. 다독다독 깜박거리는 불씨가 내 몸에 누는 냄새가 맡아진다. 빈 것이 빈 것을 어루는 생의 구들, 무언가를 품었던 깍지가 사르는 불꽃이 삶이라면 그것의 온기는 또 다른 몸을 데우는 영혼이리라. / 김유석 시인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 호되게 아파본 사람이다. 한 사나흘 누웠다가 일어나니 세상의 반은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이 없다. 정작 아픈 사람은 한 손으로 링거 들고 다른 손으로는 바지춤을 잡고 절뚝절뚝 화장실로 발을 끄는데 화장실 앞 복도엔 다녀온 건지 기다리는 건지 그 사람도 눈꺼풀이 무겁다. 방금 누고 온 오줌과 색이 똑같은 샛노란 링거액들은 대롱대롱 흔들리고 통증과 피로의 색이 저렇듯 누렇겠지 싶은데 몽롱한 눈으로 링거병을 보고 있자니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 링거병이 따뜻하게도 보이는 것 같다. SNS에는 화려함이 가득하지만, 주변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찬 듯 느껴집니다. 환자의 고통을 나타내는 소변과 치유를 위한 링거액이 같은 노란빛인 것처럼, 시인은 통증과 치유가 결국 하나임을 깨닫습니다.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먼저 감각하니까요.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후배를 만났을 때,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고단함을 읽어냈습니다. (저도 아픈 가족이 있거든요.)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저를 먼저 걱정하는 후배를 보며, 상처받은 이들의 위로가 마치 따뜻한 ‘링거병’처럼 위태해 보이는 세상을 그나마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아픈 이들이 많아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 박태건 시인
뒤뜰에 창을 냈다 사과나무 묘목은 언제 몸을 열까 궁금함과 기다림 사이 그리움이 움튼다 여전하다 소식 없다 꿈쩍없더니 비비비 한 사흘 비 갠 뜰에 내려 두리번거린다 딱새다 통 통 통 발자국을 찍는다 휘이청 기다리는 먹이를 물고 사과나무에 앉아 망을 보다 푸릉 떠난 가지 오오래 흔들린다 흔들 흐은 들들들 손 흔든다 산다는 것 서로의 다리가 되어 건너는 것이구나 그리하여 어린 사과나무의 긴 잠이 깨었는가 꼬물꼬물 꼼지락거리며 눈곱만 한 이파리를 내미네 한 잎의 초록도 사랑이 깃든 후에야 싹을 틔우는 저 아름다운 이치라니 흔들리는 것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을까? 사과나무 가지와 딱새, 그리 별것도 아닌 것들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해 초록이 돋고, 우주의 한 순간도 열린다. 문득,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던 것들,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던 것들이 하찮아진다. 그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며 소멸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눈길 하나로 내 미소가 더욱 깊어지던 순간을 생각한다. 나를 스쳐 간, 내가 스쳐 온 인연들을 가만히 꺼내본다. 실은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나를 키웠고 앞으로도 나를 보듬어주리라. 그것이 꼭 사랑이 아니어도 될지 모른다. / 경종호 시인
전북일보는 올해부터 본보 신춘문예 당선자 모임인 ‘문우회’와 함께 시인들의 안목이 담긴 시편들을 정기 연재합니다. 문신‧경종호‧박태건‧김유석 시인이 소개하는 시편을 통해 일상 속에서 문학을 더 가깝게 만나고, 시가 주는 위로와 활력을 나누고자 합니다. ‘새아침을 여는 시’는 매주 월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시냇물 속에 누가 별빛 한 점 내걸었다 바람이 닦아 놨을 잔물결 소리 만지작거리며 별은 반짝반짝 빛난다 시냇물은 오래된 기억일수록 더 맑게 닦아 놓는다 지푸라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또옥똑 떨어지는 짚시랑물을 손바닥에 받아내던 가시내 눈알 속에도 저렇게 별이 반짝였다 뒷머리 갈래 내어 참새 꽁지같이 묶어서 목선이 더 가늘어진 별 시냇물 속 깊숙한 데서 쌀알처럼 빛난다 새해가 되면 마음에 새기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올해는 자주 별 올려다보기를 정했다. 별 본 지 오래이기도 하지만, 사는 일이 고단해서였을까? 그간 고개 숙이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우러르는 일도 드물어졌다. 아무리 허름한 사람이라도 우러르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보다 맑게 빛나는 별빛 같을 텐데. 그런 마음으로 이 시를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별은 스스로 빛나기 전에 우러러보는 사람의 눈빛을 닮아 반짝거린다는 걸. 올 한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빛 하나 내거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우러르는 날들 많아졌으면 좋겠다. /문신 시인
흐린 하늘에서 떨어져 나와 숲에 누운 별 하나 외로운 상념에 잠겨 있다 초록 잎새 바람결에 가늘게 떨고 있는데 마음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잡히지 않는 그리움은 그림자 붙들어 놓지 못하고 다람쥐 높은 꿀밤나무 위에 올라 나보란 듯 꼬리를 흔들어 댄다 각자의 생각으로 그늘진 살아온 날의 고뇌의 흔적을 말없이 더듬고 있는데 별은 보이지 않는데 별이 되어 영혼을 사랑하겠단다 봄의 숲은 생명이 초록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숲의 여름은 치열한 생의 숨소리를 듣고 만지며 가슴에 간직한다. 가을의 숲은 어떠랴. 고난 속에 피어나는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 열매로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 겨울의 숲은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생존을 위하여 움츠리고 빈곤의 고통을 견뎌야 초록을 꿈꾼다. “잡히지 않는 그리움은” 다람쥐처럼 “꼬리를 흔들어”대며 도망친다. 숲은 화자의 고뇌를 만지작거리며 위로해 준다. 별처럼 화자의 영혼을 사랑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겨울의 생존을 터득하려고 떡갈나무를 껴안고 볼 일이다. 숲으로 가봐야겠다./ 이소애 시인
한여름 밤의 줄기찬 소낙비 소리처럼 갈바람에 떨고 있는 깐치밥처럼 내 마음 초라하고 외로워도 또 가는가 하면 돌아오는 속절없는 세월 앞에 오늘 같은 날엔 모두를 내려놓고 텁텁한 탁주 한 사발 육자배기 한 가락이 제격 일턴데…… 뉘를 그리워한들 떠나간 사람이 돌아올 리 없고 쉼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인연이 그리운 시방 삶에 물음표 붙이고 고민해 본들 정답은 머리를 하늘로 올리고 흔들리는 시소 타기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생각만 짙게 드는구려! △ 「삶의 정답은」 없다. 다만 삶은 화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삶은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텁텁한 탁주 한 사발” 마실 때의 행복이 삶의 존재 이유입니다. 아무리 고된 상처에 몸부림쳐도, 아무리 무지개처럼 화려하고 풍족한 하루를 즐겨도 “떠나간 사람이 돌아올 리 없”는 슬픈 삶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내 주위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이별의 아픔을 준다. 긴 이별의 문턱에서 화자는 가난해져야 행복할지도 모른다. 삶은 시소 타기처럼 즐거움과 괴로움이 번갈아 가며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이소애 시인
한 모금에 바람이 불고 한 모금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 모금에 생각은 꼬리를 물고 한 모금에 비가를 부르고 한 모금에 뼛속까지 두렵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쓰다 여기에 숨결이 다 들어 있었다 우주가 들어 있었다 한 모금 심연의 떨림으로 그렇게 내게 왔다 △ 커피 한 잔은 이별을 품고 피어난 늦가을 구절초의 애절한 숨결이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쓰디쓸 때가 있다. 얼마 만인가. 커피 한 잔의 잔잔한 그리움에 마음이 요동치다니. 한 모금 전율. 작은 폭풍 안에 보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흔들릴 때 커피 향이 눈물이다, ‘떨림으로’ 다가오면 꽃은 울음을 삼킨 듯 고요하다. “심연의 떨림으로” 찻잔이 흔들린다./ 이소애 시인
산사 가는 길 바람의 속삭임으로 감이 익어간다 가슴 속에 불의 중심을 지녔던 사람들 시간에 기대어 너랑나랑도 함께 익어간다 익는다는 것은 몸을 태우는 일이다 불꽃을 피우는 일이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빛이 빚어낸 길 즈믄 밤 등블 하나 걸어 놓는 일이다 △ “감이 익어간다‘ 가을 중심부에서 가을을 보내는 일은 “바람의 속삭임으로” 이별한다. 마치 “즈믄 밤 등불”처럼 내 “몸을 태우는” 슬픔을 등에 짊어지고 가을의 뒷모습이 멀찌감치 가고 있다. 시간이 나의 삶에 기대어 감이 익어가듯 붉어지면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인다. 이별의 슬픔이 늦가을을 온통 스산한 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가 두고 떠나야 것들이 정겨울 때도 감이 익어간다. “너랑나랑도 함께 익어”가는 감은 외롭지 않겠다. 이별을 연습하기 위해 가을이 간다./ 이소애 시인
난 모든 너를 들고 자랑한다 이것은 종종 나였으며,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앞으로네 방 모퉁이의 Marshall 스피커 엘피판은 무언가를 몸에 품고 아주 변칙적인 자국을 보여준다 대단한 너, 레코드판에 욱여넣은 모든 너 누군가 신성한 LP에 둥근 손톱자국을 둘러 묻혔네 저것도 돌아오며 아픈 시작과 끝점을 가졌겠어 한 바퀴로 맺어지는 손을 보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시계 놀이 툭 떨어지는 레코드 바늘, 반복됨, 판을 깊게 긁다 안쪽에 묻는 △세상의 모든 흔적은 “아픈 시작과 끝점을 가졌”을까? 그래서 평범한 손톱조차 “아주 변칙적인 자국”을 남기는 것일까? “종종 나였으며,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앞”을 담은 “엘피판” 음반에는 노래조차 골이 져 기록되는데, 이 “신성한” 기록에 묻어있는 “둥근 손톱자국”은 얼마나 많은 “아픈 시작과 끝점”이 골이 져야 비로소 곡조를 이룰 수 있을까? “레코드판에 욱여넣은 모든 너”는 마침내 “모든 앞”을 걸어볼 수 있을까?/ 김제김영
곰보딱지 낯짝 땜에 평생을 놀림감 가엾고 짠한 마음 생각수록 안 됐네 젊어선 사흘거리로 별명 땜에 싸움질 곰보딱지 별명땜에 울고불던 지난 세월 그나마도 이젠 옛말 곰보딱지 아줌니 귀먹고 눈 어두어져 뉘 뭐래도 괜찮소 △ 옛날에는 마마를 앓아 얼굴에 흉이 있는 사람들을 얕잡아 부르는 단어도 있었다. 지금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다. 이름 대신 “곰보딱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아줌니”는 평생을 두고 얼마나 원망스럽고 분통이 터지는 세월을 살았을까? “사흘거리로” “싸움질”하는 것으로도 한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 귀가 어두워졌다. 눈도 어두워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는 세상에게 휘둘리지 않을 중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는 남의 의견 말고 내 신념으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요해지게 되는 것이다./김제 김영
직박구리와 박새가 앨토 소프라노 참새는 소프라노 까치가 테너 하니 까마귀가 바리톤으로 응답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경덕재에 터를 잡은 새들은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웃으며 꿈나라를 청한다 그들이 웃음잔치 하는 가운데 인간들은 자신처럼 운다고 우긴다 매일 웃는 새들을 닮고 싶다 △ 세상을 내 잣대로 보는 일을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내 안의 모순을 돌아보는 일도 드물어졌다. 바람을 어떤 사람은 ‘분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휘몰아친다’라고 한다. 붉은 꽃을 어떤 사람은 ‘곱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요염하다’라고 한다. 새소리를 시인은 “웃음잔치”한다고 느끼는데 “인간들은 자신처럼 운다”라고 “우긴다” 그러니 내 마음이 하는 일이여 늘 맑고 환하고 곱기를!/ 김제김영
흰 접시 바닥 위에 생달걀을 올려놓다 소리도 잠시 섞여 둥글둥글 흔들린다 투명한 탄력이 굴절된 잡음을 털어낸다 청결한 내막 내막內膜 안에서는 탯줄 끝에 이어진 맥박이 바닥까지 숨을 참고 찍어 멈출 때 더 비틀거리고 더 깊이 깨어난다 삶의 무게를 떨어뜨리는 낙하지점 검은 눈빛 한 점 추錘가 둥긂 속 모든 흔들림, 떠도는 혼돈을 붙잡고 들끓는 붉은 고요 탄생 신화 껍질을 탁, 깨트리는 순간의 절정 나 안에 나를 찾아서 나를 흔든다 △ “흰 접시” “위에” “생달걀”을 깨뜨리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의 말을 빌려오면 묘사라는 말보다는 “해체”라고 써야 할 것이다. 시 한 편에 이렇게나 많은 것을 ‘숨겨서 보여줄 수 있다’니 참 놀라울 뿐이다. “소리도 잠시 섞여 둥글둥글 흔들린다” 이 한 행만으로도 시집 한 권이 또 태어나겠다. 모든 인생은 ‘나의 밖’이든 ‘나의 안’이든 소리가 섞여야 흔들린다. 흔들리다 깨어나는 과정이다. 또 “투명한 탄력”은 어떤가? 우리 안에 있는 이 탄력이야말로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굳이 ‘헤세’나 ‘프로이드’가 거들지 않아도 생은 깨지고 깨면서 겹겹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리라. <김제김영>
허물어지지 마라 물러서지도 마라 흔들리며 다가서는 견고한 사랑을 위하여 빈들에 적적히 서 있는 허황한 벽에도 이슬이 내리고 꽃은 핀다 허물어지지 마라 물러서지도 마라 누구도 다가서지 않는다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다 △ “벽에도/이슬이 내리고/꽃은 핀다”라는 구절에서 다시 힘을 얻는 독자들이 많을 듯하다. “빈들에 적적히 서 있”어서 늘 고단하고 외로운 것은 벽의 몫이다. “누구도 다가서지 않”고, 심지어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 “벽”이 있다. 그래도 “허물어지”거나 “물러서”지 않는 이유는 “흔들리며 다가서는/ 견고한 사랑을 위”해서다. 벽의 존재 가치가 “사랑” 때문이다. 외롭고 고단하고 “절망조차 다가서지 않”는 당신에게도 오늘은 “이슬”과 “꽃”이 찾아들 것이다. / 김제 김영
화려한 꽃그림자에 가려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 너를 찾아 길을 잃었을 때 푸른 산자락이나 강물을 끄을고 너는 아슬하게 손짓한다 은하의 입자들이 모여서 되었기에 너의 눈은 언제나 젖어있다. 내 사랑 부족하여 너를 가두려 해도 너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너를 부르면 달려올 것 같아도 투명한 나신이 되어 숨는다 껴안으면 스러지는 여인 한 번도 입술을 주지 않은 꽃 꽃바구니 변두리에서 나는 안개가 몰려오는 새벽을 기다린다 △「안개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의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겉으로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잊힌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의 쓸쓸함과 그리움, 그리고 그 존재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조용한 헌신과 애틋함이 가슴 깊이 스민다, 꽃은 드러나지 않지만 곁을 채우는 존재처럼 그리움도 사랑도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사랑한다는 말도 작게, 아주 작게 숨어서 고백하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껴안으면 스러지는 여인”으로 화자의 기억 속에 살고 있을 꽃그림자였을 것이다./ 시인 이소애
어머니는 밥이 무서웠다 삼시세끼 행여 새끼들 굶길까 숙이고 또 숙이시며 닦고 또 닦았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설렘과 두근거림에 거울을 만지작거리는 자식들 학교 중단시킬까 불안하여 텅 빈 통장 자꾸 열어서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셨다 그것은 오직 어머니의 몫 꽃이 피는 줄도, 꽃구경은 사치스러운 여인들의 것이라고 바닷가 해수욕도 가을 단풍 구경도 모두 남들 이야기라고 밥을 무서워하던 젊은 어머니는 어느새 팔순 노인이 되시어 늙어가는 자식들 먹을거리 투정을 보면서 말씀하신다 그렇게 밥이 무섭냐? △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밥’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의 눈물, 노동, 사랑, 그리고 세월을 다시 보게 해준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어머니의 삶과 마음이 담긴 사랑의 표현이다. 자식들 도시락에 삼시세끼 정성을 쏟으며 자신의 건강과 삶은 돌보지 못한 채 살아온 어머니였다. 희생은 밥에 녹아있다. 그렇게 자란 자식이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되고 ‘밥의 무게’,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회한의 표현이다. “그렇게 밥이 무섭냐?” 어머니의 사랑이 소리로 다가온다./ 시인 이소애
구순을 벌써 넘으신 가형을 모시고 봄마저 힘들어 하시는 꽃길을 걷는데 꽃말이듯 혼잣말을 하신다 아기들은 눈만 뜨면 이쁜짓만 느는데 늙은이는 눈만 뜨면 미운짓만 느는구나 흐드러진 철쭉꽃을 사진에 담으며, 대구가 절창이십니다, 형님 그래도,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잖아요 △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사랑과 미움이 결국은 하나의 몸이다. 하나의 존재 안에 있다는 깊고 잔잔한 깨달음을 전해주는 시다.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잖아요”는 모든 생의 순간들이 서로 이어진 하나의 존재임을 말한다. 그 말이 따뜻하면서도 먹먹하게 마음을 울린다. 꽃잎처럼 지고 피는 삶의 흐름 속에 늙음도 젊음도 결국 하나! 우리 모두 한 몸, 하나의 생이라는 깊은 위로와 공감이 스며든다. “꽃말이듯/혼잣말”처럼다가온다. /시인 이소애
오늘도 찰방(察訪)다리 강물은 말없이 증언처럼 흘러가는데 마천(馬川) 찰방터 분지엔 뿌연 먼지만 묻어 있구나 조선말 관리들의 탐학에 시달리다 못한 떼족들이 삼례벌 너른 벌판에 모여 분연히 일어선 십만여 불꽃들은 다 어디 갔을까 죽창을 들고 쓰러진 원혼(冤魂)의 더미를 넘으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던 함성들이 이제는 다 묻혀서 새로운 혼불로 돋아났는가 워어렁, 워어렁 △ “워어롱, 워어렁” 삼례에서 봉기하면서 농민군의 함성이 “찰방다리 강물”에 실려 돌아오고 있다. 들린다. 주먹 불끈 쥐고 하늘 높이 찌르며 억압에 맞서 싸웠던 그날. “찰방터 분지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을 소리, 소리, 소리를 강물은 알고 있을 터. 역사의 무게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이 새로운 혼불로 되살아난다. 백성의 항거와 그 정신을 “삼례벌 너른 벌판에 모”였던 발자국들이 살아서 그들의 치열한 외침과 희생을 현재로 불러오는 시였다. 마음이 뜨거워 진다./ 시인 이소애
까치 부부는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에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아마 그들 부부는 무척 외로움을 타는지, 사람 사는 마을 앞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집을 짓고 아슬아슬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까치 부부는 겨울 양식이 충분치 않은지, 혹한인 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양식을 물어 올리고 있습니다. 진눈깨비 내리는 날씨인데도 때로는 낡은 집을 고치느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인지 마른 나뭇가지 위에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들 부부의 명상은 사시사철 끝나지 않는 것 같지만, 특히 오늘 같은 겨울 날씨에는 더욱 쓸쓸한 모습으로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합니다. 아마 까치 부부는 노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깊게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집을 떠난 자식들이 이 혹한을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는지, 자못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모양 같기도 합니다. △ <까치집>은 까치 부부의 겨울나기를 통해 인간 삶의 단면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까치가 마을 근처에 집을 짓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진눈깨비 속에서도 먹이를 나르고 집을 수리하는 모습은 근면한 삶의 풍경입니다. 노후를 대비하는 나믓가지 위의 고요함은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생의 그림이었습니다. 둥지를 떠난 자식들을 걱정하는 노부부의 하루는 기도였다.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가족의 단단한 온기가 숨어 있어 슬픔이 감돈다./ 시인 이소애
세월을 주름잡아 구김살 없이 다려놓은 햇볕. 조용히 강물 따라 흘러갔는데 눈 떠보니 바다. △ 200년대 초반에 발생한 ‘민조시’는 우리 전통 시가를 발전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3, 4, 5, 6(3+3, 2+4)의 18자로 만들어진 시가문학이다. 음수율을 엄격히 지키되 내재율을 살려 쓰는 장르다. 요즘 현대시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마침표도 반드시 찍어야 한다. 민조시의 ‘노래(歌)는 얼마든지 여지가 있다. “조용히/강물 따라/흘러갔”다는 말은 세월이 주는 의무와 책임에 순응하며 살았다는 말일 것이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바다”에 도착했다는 시적 화자는 한 소식을 깨닫고 이제는 고요하고 넓은 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작품의 “바다”는 우리가 도달하고야 마는 생의 궁극이다./ 김제김영
요즘 분리수거를 하다 보니 쓰레기 배출 내용물이 별로 없다 비닐봉지는 내 피부의 나이 플라스틱은 딱딱한 내 자존심 빈병은 속을 게워 낸 것마냥 개운하다 깡통은 내 머리의 회색 그늘 숲속 연두 바람에 흔들리며 빈 소리가 요란하다 일생의 소중했던 삶의 편린들을 대충 분리수거 하고 보니 이제 남는 것은 황량한 벌판에서 밀려오는 사나운 허무함 그리고 외로움만 남을 뿐이다 △ 분리해서 수거할 것들은 물건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이나 사고도 물건과 마찬가지로 소비재로 구분되기도 한다. 푸석해 보이는 “내 피부”와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서 유연성이라고는 없는 “내 자존심”도 때로는 과감하게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그러고나면 나는 “빈 병”처럼 “개운”할 것이다. “삶의 편린들”을 다 정리하고 나면 “허무함”과 “외로움”만 남을지라도 다시 차오르는 나는 “연두 바람”처럼 상긋할 것이다./김제김영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완주‧전주 통합,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해야
태풍의 눈 ‘통합 전주시장’
공직 후보자, 아는 만큼 참모습이 보인다
김온 : 다섯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