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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에서 아이와 기차 타고 보령 가는 날 저기, 저것 좀 볼래? 학교와 학원밖에 모르는 아이에게 나는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보여 주었다 학교 밖의 교실을, 교실보다 더 광활한 교과서를! 내가 아직 작은 아이였을 때, 지금의 전주시청 자리에 있던 옛 전주역에서 군산행 비둘기호 열차를 탔다.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끝도 없이 펼쳐진 만경들을 지나, 기적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던 만경강 철교를 건너면 구이리역이 나온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만나는 곳, 사투리가 싱싱하게 쏟아졌다. 군산행 기차에는 생선을 팔고 돌아가는 아줌마들의 고무 다라이(함지)에서 풍겨오는 비린내도 함께 타고 있었다. 장항은 처음 가보는 길이라 우리는 자주 길을 물었고, 누구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때로는 한참 말동무가 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장엄하게 지는 노을을 보았다. 장항으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광활한 한 권의 교과서였다. 어느새 다시 5월이다. 오월은 여전히 푸르구나! “학교와 학원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과 지평선을 보여주고 싶다. 내게 살아갈 힘이 되어 주던 그 싱싱한 비린내의 기억을 나누어 주고 싶다./ 박태건 시인
엄마, 꽃집에서 적어 왔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건 미선나무,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이건 꽃기린 둘을 붙이면, 모든 슬픔이 사라진 다음에도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엄마, 우리 이 말 기르자 이 시는 동시입니다. 동시이지만 어른들에게 더 많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4·3, 4·16, 4·19라는 뿌리를 ‘사월’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는 시와 동시를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로 ‘동시’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어른들이 이런 좋은 시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경종호 시인
하 추운 날인데 뜨신 국말이밥이래도 먹구 가렴 고개 너머 모과나무 선 조막손이네 들러 아궁이 앞에서 몸이래두 좀 데우구 가렴 이 빠진 사기그릇에 술 한사발 하며 서리 묻은 날개래두 털구 가렴 불이나 쬐며 이야기래두 하다 가렴 우리는 마중하는 일에도 배웅하는 일에도 참 다정한 족속인가 보다. 한 철 들렀다가는 기러기를 보내는 일에도 못내 아쉬워 공중에 대고 이렇게 말추렴을 보탠다. “하 추운 날” “몸이래두 좀 데우구 가”면 남아서 보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훈훈해질 것이다. 우리의 성정이 이렇듯 다감한 건 철마다 들고나는 생명들이 많은 터에 살아서일 것이다. 계절이 돌아오듯 이제 보내면 영영 작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가렴”이라고 다정한 마음을 얹어 보내는 게 아닐까? 아마도 기러기가 돌아오는 철이 되면 우리는 이렇게 마중할 듯싶다. ‘아랫목 데워놨어, 어서 오렴’ / 문신 시인
아무 일도 없다 하여 내가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내게서 멀어진 기억들이 떠오르는 저녁 아무렇지 않게 발을 떼지만 자신마저 숨길 수는 없고 아무렇지 않고 아무렇지 않아서 파고드는 기억들 내가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지나온 날들이 뼈아픈 저녁 꽃그늘 아래서 씁니다. 와락,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올해 봄은 부고가 유난히 많습니다. 바람이 불면 꽃나무 가지는 몸을 떨며 하늘에 꽃잎을 날려 보냅니다. 꽃잎은 떨어지면 그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이 되풀이되겠지요. 시인은 ‘너무 멀리 떠난’ 기억의 자리를 떠올립니다. ‘파고드는 기억’은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한 시간의 자리가 아닐까요? 시인은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전북문학의 큰어른이었던 이보영 문학평론가입니다.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을 떼겠지만’, 문득 너무 멀리 떠나왔다는 생각에 주저앉는 날도 있겠지요. 봄날 저녁에 ‘아무렇지 않게 파고드는 기억으로 뼈 아파’할 시인에게 꽃자리가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태건 시인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 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눈물은 너무 무거워 엎드려 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4월이다. 얼마나 단단한 슬픔의 등에 신은 걸터앉아 있는 것일까? 4.19가 있었고, 416, 세월호가 있던 계절이다./ 경종호 시인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흰 공기와 밥과 피어오르는 김을 치환하면 원초적 세계와 삶, 그 삶을 영위해 가야 할 순결한 영혼이 비친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것들은 점염되거나 스스로 파멸하는데 그것의 정체는 본질적 인간 정신의 상실이다. ‘지나가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사라진다’로 해석하면 피어올라 사라지는 김이 곧 그것이며,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문득 한 그릇의 따뜻한 밥 앞에서 그것과 마주한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자각하면서도 그저 밥을 먹는 행위는 상실감에 무기력해진 나, 또는 우리들의 군상일 것인데, 우리네 삶이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무엇이 상실된 세계에 던져진 것은 아닐지. / 김유석 시인
낱알처럼 외로워지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탑을 쌓았다 낱알처럼 외로워지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쌓은 탑이 외로움이 되었다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외로움 낱알 이 시를 쓴 승한 스님은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스님과 시인 모두 자기 안에 언어의 탑을 쌓는 사람이다. 스님이 언어를 버리는 침묵의 탑을 쌓는다면, 시인은 말의 그림자로 엮은 무언의 탑을 세운다. 침묵과 무언은, 그래서 외로운 말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나 그 침묵이 그 무언이 사실은 그 사람의 전부라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낱알의 힘이 아닐까? 외로움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낱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 낱알에서 탄생했으니, “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외로움”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볼 일이다./문신 시인
다 읽고 꽂은 책을 바라보는 마음은 돌아선 이 뒷모습에 눈을 두는 마음 아직 읽지 않은 책 앞에 둔 마음은 가만히 손잡고 심장의 말을 기다리는 일 두근거리네, 갑자기 당신을 만날 때마다 읽지 않은 책으로 열리면 어떨까 문득 책허리를 붙잡고 서 있어도 좋은 얼굴 가까이 대고 콧바람을 맞아도 좋은 아직 열지 않은 마음 설레며 들춰 봐도 좋을 책은 애인이다. 다 읽은 책은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는 정든 연인 같고 이제 막 펼치려는 책은 그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가슴부터 졸이는 짝사랑 같다. 절반쯤 읽다 덮고 싶은 책은 마음을 달래야 하는 토라진 애인 같고 다 읽고 나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실연의 아련함 같아서 좋다. 이들 중 가장 쓸쓸하고도 기특한 건 한 번 펼쳐지지도 않은 채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다. 이름도 얼굴도 생소한 이가 낯익은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모습은 애인을 두고 딴 데 한눈판 이를 기다리는 외사랑 같다. 딴엔 버려진 사랑, 내가 그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그에게서 버림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데, 마냥 허리를 붙잡고 콧바람을 쐬는 연애를 하는 이는 얼마나 좋을까. / 김유석 시인
아버지 돌아가시고 시골집 팔아 김제 시내 아파트로 이사 가신 어머니 말씀 여기가 천국이다야 풀이 안 난다야 ‘풀 맬 필요 없는 아파트가 천국’이라는 어머니 말을 시인은 받아적습니다. 이 말에는 고단했던 생애와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이 배어 있기 때문이지요. 숱한 고생과 아픔을 견뎌온 이에게는 일상의 작은 평안조차 천국처럼 다가왔을 것입니다. 어쩌면 천국이란 간절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안도감이 아닐까요? 지난겨울,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 했던 날들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기름차가 빙판길을 오르지 못해 보일러가 꺼졌거든요. (지난주, 도시가스 설비를 마치며 큰 걱정 하나를 덜었습니다.) 하여, 유난히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의 발걸음은 조금씩 천국에 가까워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행복은 불행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행의 터널을 통과한 뒤에 마주하는 후련한 감정 그 자체일 테니까요. 겨울이 가고 어느덧 봄이 시작됩니다. 시인의 어머니, 그리고 여러분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그동안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태건 시인
누구도 핍박해 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문득, 무릎을 붙잡고 울어본 날들이 그리워진다. 모든 일들이 사(赦)하여 되었으리라 생각했던 날 들을 꺼내 놓고 다시 여쭈어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쉽게 사(赦)하여 주시기엔 당신의 몸은 너무 여리지 않았습니까? 며칠 전이 설이었다. 나이가 하나 더 늘었다.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길, 가로등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리라, 나를 위로한다./경종호 시인
보이는 걸 전부 그리지 마라 화면을 꽉 채우지 마라 비워두란다 덜 그리는 게 꽉 채우는 거라니 할 말 다 쏟아놓고 나면 허전하듯 적당한 침묵이 더 많은 웅변이 되듯 눈앞에 겹겹이 펼쳐진 풍경 앞에 보고도 안 보이는 게 너무 힘들다 그 힘마저 빼란다 그래야 한 폭의 단단한 현실이 된단다. 여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빈자리가 아니라 남은 자리라는 뜻이어서 그렇다. 비어서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다는 희망으로 온전히 완성해 내는 게 여백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보고도 안 보이는” 역설에서 우리의 살림이 엿보이고, 그것이 “단단한 현실” 같아서 자꾸만 안 보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 마음을 “침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침묵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여백이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의 여백이고자 하는 말 없는 존재들을 사랑하게 된다. 비어 있는 의자처럼, 언제든 채워질 수 있는 여백. 그곳에 당신이 도착한다면 참 좋겠다. /문신 시인
부석작에서 콩대가 콩닥거리며 이 방을 데웠을 거라 생각 하면 재와 연기가 새벽이 올 때까지 방을 돌고 있다고 생각 하면 콩 속에 맺힌 영혼이 텅 빈 몸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생 각하면 나는 데워진다 빈 깍지같이 살다 간 영혼들이 빈 깍지 같 은 나를 오래 데우다가 긴 굴뚝으로 천천히 새어 나가고 또 나처럼 서툰 이가 있어 바닥을 떠돌며 마지막 온기로 나를 받든다고 생각하면 반복한 말을 잃어버린 누군가 구들장 아 래 있다고 생각하면 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몇백년 전 먼 혈육이 식은 심장을 타닥거리며 나에게 무슨 말인가 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궁이를 가진 방에 가만히 누우면 몸을 데우는 온기가 은연히 스민다. 그 온기 속 알맹이를 털어낸 것들을 밀어 넣는 누군가의 등이 보이고 뜨겁게 비틀며 사그라지는 불꽃이 어린다. 다독다독 깜박거리는 불씨가 내 몸에 누는 냄새가 맡아진다. 빈 것이 빈 것을 어루는 생의 구들, 무언가를 품었던 깍지가 사르는 불꽃이 삶이라면 그것의 온기는 또 다른 몸을 데우는 영혼이리라. / 김유석 시인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 호되게 아파본 사람이다. 한 사나흘 누웠다가 일어나니 세상의 반은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이 없다. 정작 아픈 사람은 한 손으로 링거 들고 다른 손으로는 바지춤을 잡고 절뚝절뚝 화장실로 발을 끄는데 화장실 앞 복도엔 다녀온 건지 기다리는 건지 그 사람도 눈꺼풀이 무겁다. 방금 누고 온 오줌과 색이 똑같은 샛노란 링거액들은 대롱대롱 흔들리고 통증과 피로의 색이 저렇듯 누렇겠지 싶은데 몽롱한 눈으로 링거병을 보고 있자니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 링거병이 따뜻하게도 보이는 것 같다. SNS에는 화려함이 가득하지만, 주변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찬 듯 느껴집니다. 환자의 고통을 나타내는 소변과 치유를 위한 링거액이 같은 노란빛인 것처럼, 시인은 통증과 치유가 결국 하나임을 깨닫습니다.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먼저 감각하니까요.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후배를 만났을 때,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고단함을 읽어냈습니다. (저도 아픈 가족이 있거든요.)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저를 먼저 걱정하는 후배를 보며, 상처받은 이들의 위로가 마치 따뜻한 ‘링거병’처럼 위태해 보이는 세상을 그나마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아픈 이들이 많아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 박태건 시인
뒤뜰에 창을 냈다 사과나무 묘목은 언제 몸을 열까 궁금함과 기다림 사이 그리움이 움튼다 여전하다 소식 없다 꿈쩍없더니 비비비 한 사흘 비 갠 뜰에 내려 두리번거린다 딱새다 통 통 통 발자국을 찍는다 휘이청 기다리는 먹이를 물고 사과나무에 앉아 망을 보다 푸릉 떠난 가지 오오래 흔들린다 흔들 흐은 들들들 손 흔든다 산다는 것 서로의 다리가 되어 건너는 것이구나 그리하여 어린 사과나무의 긴 잠이 깨었는가 꼬물꼬물 꼼지락거리며 눈곱만 한 이파리를 내미네 한 잎의 초록도 사랑이 깃든 후에야 싹을 틔우는 저 아름다운 이치라니 흔들리는 것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을까? 사과나무 가지와 딱새, 그리 별것도 아닌 것들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해 초록이 돋고, 우주의 한 순간도 열린다. 문득,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던 것들,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던 것들이 하찮아진다. 그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며 소멸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눈길 하나로 내 미소가 더욱 깊어지던 순간을 생각한다. 나를 스쳐 간, 내가 스쳐 온 인연들을 가만히 꺼내본다. 실은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나를 키웠고 앞으로도 나를 보듬어주리라. 그것이 꼭 사랑이 아니어도 될지 모른다. / 경종호 시인
전북일보는 올해부터 본보 신춘문예 당선자 모임인 ‘문우회’와 함께 시인들의 안목이 담긴 시편들을 정기 연재합니다. 문신‧경종호‧박태건‧김유석 시인이 소개하는 시편을 통해 일상 속에서 문학을 더 가깝게 만나고, 시가 주는 위로와 활력을 나누고자 합니다. ‘새아침을 여는 시’는 매주 월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시냇물 속에 누가 별빛 한 점 내걸었다 바람이 닦아 놨을 잔물결 소리 만지작거리며 별은 반짝반짝 빛난다 시냇물은 오래된 기억일수록 더 맑게 닦아 놓는다 지푸라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또옥똑 떨어지는 짚시랑물을 손바닥에 받아내던 가시내 눈알 속에도 저렇게 별이 반짝였다 뒷머리 갈래 내어 참새 꽁지같이 묶어서 목선이 더 가늘어진 별 시냇물 속 깊숙한 데서 쌀알처럼 빛난다 새해가 되면 마음에 새기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올해는 자주 별 올려다보기를 정했다. 별 본 지 오래이기도 하지만, 사는 일이 고단해서였을까? 그간 고개 숙이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우러르는 일도 드물어졌다. 아무리 허름한 사람이라도 우러르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보다 맑게 빛나는 별빛 같을 텐데. 그런 마음으로 이 시를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별은 스스로 빛나기 전에 우러러보는 사람의 눈빛을 닮아 반짝거린다는 걸. 올 한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빛 하나 내거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우러르는 날들 많아졌으면 좋겠다. /문신 시인
흐린 하늘에서 떨어져 나와 숲에 누운 별 하나 외로운 상념에 잠겨 있다 초록 잎새 바람결에 가늘게 떨고 있는데 마음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잡히지 않는 그리움은 그림자 붙들어 놓지 못하고 다람쥐 높은 꿀밤나무 위에 올라 나보란 듯 꼬리를 흔들어 댄다 각자의 생각으로 그늘진 살아온 날의 고뇌의 흔적을 말없이 더듬고 있는데 별은 보이지 않는데 별이 되어 영혼을 사랑하겠단다 봄의 숲은 생명이 초록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숲의 여름은 치열한 생의 숨소리를 듣고 만지며 가슴에 간직한다. 가을의 숲은 어떠랴. 고난 속에 피어나는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 열매로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 겨울의 숲은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생존을 위하여 움츠리고 빈곤의 고통을 견뎌야 초록을 꿈꾼다. “잡히지 않는 그리움은” 다람쥐처럼 “꼬리를 흔들어”대며 도망친다. 숲은 화자의 고뇌를 만지작거리며 위로해 준다. 별처럼 화자의 영혼을 사랑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겨울의 생존을 터득하려고 떡갈나무를 껴안고 볼 일이다. 숲으로 가봐야겠다./ 이소애 시인
한여름 밤의 줄기찬 소낙비 소리처럼 갈바람에 떨고 있는 깐치밥처럼 내 마음 초라하고 외로워도 또 가는가 하면 돌아오는 속절없는 세월 앞에 오늘 같은 날엔 모두를 내려놓고 텁텁한 탁주 한 사발 육자배기 한 가락이 제격 일턴데…… 뉘를 그리워한들 떠나간 사람이 돌아올 리 없고 쉼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인연이 그리운 시방 삶에 물음표 붙이고 고민해 본들 정답은 머리를 하늘로 올리고 흔들리는 시소 타기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생각만 짙게 드는구려! △ 「삶의 정답은」 없다. 다만 삶은 화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삶은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텁텁한 탁주 한 사발” 마실 때의 행복이 삶의 존재 이유입니다. 아무리 고된 상처에 몸부림쳐도, 아무리 무지개처럼 화려하고 풍족한 하루를 즐겨도 “떠나간 사람이 돌아올 리 없”는 슬픈 삶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내 주위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이별의 아픔을 준다. 긴 이별의 문턱에서 화자는 가난해져야 행복할지도 모른다. 삶은 시소 타기처럼 즐거움과 괴로움이 번갈아 가며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이소애 시인
한 모금에 바람이 불고 한 모금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 모금에 생각은 꼬리를 물고 한 모금에 비가를 부르고 한 모금에 뼛속까지 두렵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쓰다 여기에 숨결이 다 들어 있었다 우주가 들어 있었다 한 모금 심연의 떨림으로 그렇게 내게 왔다 △ 커피 한 잔은 이별을 품고 피어난 늦가을 구절초의 애절한 숨결이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쓰디쓸 때가 있다. 얼마 만인가. 커피 한 잔의 잔잔한 그리움에 마음이 요동치다니. 한 모금 전율. 작은 폭풍 안에 보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흔들릴 때 커피 향이 눈물이다, ‘떨림으로’ 다가오면 꽃은 울음을 삼킨 듯 고요하다. “심연의 떨림으로” 찻잔이 흔들린다./ 이소애 시인
산사 가는 길 바람의 속삭임으로 감이 익어간다 가슴 속에 불의 중심을 지녔던 사람들 시간에 기대어 너랑나랑도 함께 익어간다 익는다는 것은 몸을 태우는 일이다 불꽃을 피우는 일이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빛이 빚어낸 길 즈믄 밤 등블 하나 걸어 놓는 일이다 △ “감이 익어간다‘ 가을 중심부에서 가을을 보내는 일은 “바람의 속삭임으로” 이별한다. 마치 “즈믄 밤 등불”처럼 내 “몸을 태우는” 슬픔을 등에 짊어지고 가을의 뒷모습이 멀찌감치 가고 있다. 시간이 나의 삶에 기대어 감이 익어가듯 붉어지면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인다. 이별의 슬픔이 늦가을을 온통 스산한 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가 두고 떠나야 것들이 정겨울 때도 감이 익어간다. “너랑나랑도 함께 익어”가는 감은 외롭지 않겠다. 이별을 연습하기 위해 가을이 간다./ 이소애 시인
난 모든 너를 들고 자랑한다 이것은 종종 나였으며,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앞으로네 방 모퉁이의 Marshall 스피커 엘피판은 무언가를 몸에 품고 아주 변칙적인 자국을 보여준다 대단한 너, 레코드판에 욱여넣은 모든 너 누군가 신성한 LP에 둥근 손톱자국을 둘러 묻혔네 저것도 돌아오며 아픈 시작과 끝점을 가졌겠어 한 바퀴로 맺어지는 손을 보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시계 놀이 툭 떨어지는 레코드 바늘, 반복됨, 판을 깊게 긁다 안쪽에 묻는 △세상의 모든 흔적은 “아픈 시작과 끝점을 가졌”을까? 그래서 평범한 손톱조차 “아주 변칙적인 자국”을 남기는 것일까? “종종 나였으며,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앞”을 담은 “엘피판” 음반에는 노래조차 골이 져 기록되는데, 이 “신성한” 기록에 묻어있는 “둥근 손톱자국”은 얼마나 많은 “아픈 시작과 끝점”이 골이 져야 비로소 곡조를 이룰 수 있을까? “레코드판에 욱여넣은 모든 너”는 마침내 “모든 앞”을 걸어볼 수 있을까?/ 김제김영
군산조선소 정상화, ‘SOC 구축’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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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라, 사라지는 풍경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하여
정청래 다해드림센터장과 전북
시작이 가장 무거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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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수용시 늘어난 감면혜택 및 주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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