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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거처에서 나는 행복했고 너라는 안식을 얻어 나는 더 괜찮아졌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 ‘우리’란 관계에서 내가 누구에겐가 두 사람의 한쪽인 ‘나’를 떠올린다. 한 알의 씨앗에서 둘이 보이고, 마른 가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여린 초록빛에서 둘이 피어난다. 찔레꽃 꽃봉오리에서도 서로 껴안은, 오므리고 꼭꼭 부둥켜안은 둘의 향기를 맡는다. 서로 고통과 슬픔을 쪼개어 나눌 수 있는 든든한 동행이 부럽다. 고통을 버티거나 아픔에 대한 희망이 아침 이슬방울만큼 있어도 둘은 태양으로 보인다. 둘의 힘. 절망적인 소금사막에서도 ‘우리’가 ‘행복’한 감정을 공유했다면 온 세상을 껴안은 시가 존재한다./ 이소애 시인
그녀 곁을 스칠 때 얼굴은 열을 품고 호흡은 풍랑을 일으킨다. 마음을 그녀에게 몽땅 빼앗긴 채 가슴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다가갈 수 없는 발걸음은 한숨뿐이다. 그녀 곁을 스친 후 가슴은 아픔 되어 더 큰 슬픔으로 이어지는데 눈길 한번 주지 못한 아쉬움에 발걸음 뒤로 묶고 그녀가 남기고 간 석양에 홀로 서있노라. △ 우리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산다. 짝사랑의 대상은 무한하고 다양하다. 사람, 돈, 지위, 권력, 희망 등 우리가 바라고 함께하고자 마음을 기울였던 모든 순간과 과정이 짝사랑의 대상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짝사랑의 대상이 넓어지고 짙어진다. 이성을 향한 추억 속의 짝사랑도 더 짙어지고 지나온 삶의 궤적을 따라다니면 짝사랑의 대상도 더 넓어진다.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눈길 한 번 주지 못한” 짝사랑이어도 실패한 사랑은 아니다. 내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으니까. / 김제김영
부슬부슬 봄비 맞으며 무상한 세월 안고 뚜욱뚜욱 내려앉는다 가랑가랑 가랑비 봄 마중 오는 소리 하늘 향한 꽃노래 하이얀 꽃잎들 온화한 땅김 그리워 쉬임 모르고 내려 온다 언제나 맑은 가슴에 향기로움 품어 그리움만 쌓인다 △ “하늘 향한 꽃노래”가 <백목련 연가>였던가. 폭설과 천둥 번개를 이겨내고 생명을 지켜온 나무가 꽃을 피웠다. 먼발치에서 하얀 꽃잎이 나뭇가지를 부둥켜안고 숨비소리를 내는 꽃, 백목련. “봄 마중 오는 소리”에 응답하는 꽃의 펄럭임이 조심스럽다. 외로움에 젖은 가녀린 여인의 몸짓일까? “온화한 땅김 그리워”에서 얼마나 그리움이 짧은 생의 존재 이유가 눈물처럼 “뚜욱뚜욱” 흘리는 것일까. 쉼 없이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이 “세월 안고” “꽃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시가 좋다./ 시인 이소애
까만 밤 어둠을 베고 눈을 감는다 고독이 고소해서 맛있는 시간이다 찰나에, 외로움이 소리 지르며 울고 있다 쌓아놓은 삶의 갈피 사이로 그 책 주인공들의 외침과 내 사상의 무게가 맞물려 하나둘 철학자들이 베게 밑으로 몰려든다 몸은 빈 바람처럼 휘청거리고 시간이 별의 가슴으로 스미는 지금, 생의 한 가운데의 흰 구름처럼 고독한 철학자와 함께 내려앉은 행복을 한 점씩 씹고 있다 △ 잠은 다 잔 듯하다. 시적 화자의 “베게 밑으로” “하나둘 철학자들이” “몰려”들었으니 얼마나 소란스럽기도 하고 진중하기도 하랴! 엎치락뒤치락 생각이 많아지랴! 철학자마다 생의 비의 하나쯤은 슬그머니 풀어놓을 테고, 시적 자아의 “사상의 무게”도 만만치 않을 테니 “까만 밤”은 얼마나 더 암흑으로 번져가랴! 비록 잠은 못 잤어도, “고독”과 “외로움”으로 “몸은 빈 바람처럼 휘청거”려도, 내일은 또 얼마나 행복하랴! 고독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 김제 김영
우산이 넘어진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신발이 없다 평생을 맨발로 산다 바지도 없다 불평하지 않는다 잠시 머물 집도 없다 자신을 바르게 지키고 있을 뿐 계단을 오르기 위한 곧은 걸음으로 넓은 이마 가벼운 몸 어깨와 허리를 펴고 눈에 보이는 것 흉내 내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오래 품고 살아야 한다며 말없이 일어서서 가슴은 접지 않는다 △ 우산을 쓴 사람은 비에 젖지 않는다.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도 여간해서는 우산에는 치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산은 “소리도” 없고 “잠시 머물 집도” 없는 “맨발”의 성자다. 평생을 “넓은 이마”와 “가벼운 몸” 그리고 “곧은 허리”를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한다. 심지어 “넘어”져도 “말없이 일어”선다. 우산은 끝까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슴은 접지 않는” 성자다. /김제김영
따로 할 말 없는 나의 연모를 그대가 알았으면 좋으련만 그대 복사꽃 위에 내 가슴 살포시 붙이고 따뜻한 꿈 지피며 서편에 달 다 질 때까지 남은 여정 그대와 더불어 영원한 혼불 태우려니 행여 바람 한 자락에 지는 복사꽃 되려 하지 아니하겠지. △ 복사꽃은 “바람 한 자락에 지는 꽃”이다. 그러나 마음 안의 복사꽃은 계절과 상관없이 환하다. 철이 없다고 해도 좋고 철을 모른다고 해도 좋다. “나의 연모를/그대가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남은 여정”을 복사꽃과 함께 “영원한 혼불”이 되고 싶다. 철모르는 그리고 철이 없는 마음속의 복사꽃은 시적 화자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절대 시들지 않을 것이다. “복사꽃”을 “시” 또는 “문학”으로 바꾸어 읽으면 시인으로 사는 법을 알 수 있다. / 김제김영
나는 정원사예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꽃을 피우기 위해 한평생을 몸 바친 정원사 제자들 앞에 서면 얼굴 빨개지던 꽃다운 스무 살부터 무지개빛 고운 꿈 엮어 오색실로 수를 놓았죠 찬란한 아침 햇살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어요. 잘 참고 사랑하며 더 좋은 꽃 피게 해달라고, 어느덧 황혼이 깃드니 이젠 더욱 찬란한 내일을 기약해야겠죠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길 밖엔 모른다오. 언제나 희망에 찾던 행복한 정원사. △ 평생을 교사로 산 시인의 말이 공감 백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꽃을 피우”는 일이 교사의 일이어서 교사는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교사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가르치는 아이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고운 “오색실로” 하루를 설계하고 “찬란한 아침 햇살”에 기도로 시작하는 일과가 교사의 일이다. 요즘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세상에서 내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와 교사다. 같은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믿어주는 시절을 우리는 다시 마련할 수 있을까?<김제김영>
연필심 꾹꾹 눌러 편평히 고른 지면 위에 너를 심는다 당연한 듯 비스듬히 쓰러지는 너 마음의 문을 열어 토닥이고 상처도 내보지만 너는 항상 비스듬하다 쓰러진 심지 지면의 숨소리 이해할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오늘도 맨바닥의 단어들 쓸어 모으며 다시 연필심을 깎는다 △ 문학이란 우리 생활과 연관된 것들은 물론 무관하게 여겼던 것들까지도 사랑하게 만든다. 시적 자아는 “오늘도 맨바닥의 단어들 쓸어 모으며/다시 연필심을 깎는” 행위를 날마다 반복한다. 반복은 완성을 향해 가는 첫걸음이자 완성에 도달하는 전부다. “다시 연필심을 깎”는 행위는 내 마음을 깎는 행위고 나를 돌아보고 다시 발견하는 행위다. 이는 분주한 일상으로 나타나는 나(아我)를 “깎”아내고 보다 근원적이고 진실한 나(오吾)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좋은 시인은 연필심처럼 마음을 다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김제김영
꽃샘추위 여인이여 내 꼬마 각시 닮은 여인이여 작은 몸에 큰 봄 붙인 노루귀 수놓은 초록치마 여인이여 겨우내 참았던 그리움 눈 녹는 밤에 반 뼘쯤 온 여인이여 님보다 먼저 온 부끄럼에 노루 귓속에 몸 숨긴 여인이여 말 많은 세상사 헛바람에 상처 입을까 노루귀로 온몸 덥고 사는 여인이여 △ “꽃샘추위”에 피어나는 꽃이 있다. “작은 몸에 큰 봄을 붙”이고 피어나는 꽃이 있다. 제 몸피를 다 덮고도 남는 귀를 가진 이른 봄의 전령사가 있다. 노루귀꽃이다. 시적 화자는 “눈 녹는 밤에 반 뼘쯤 온 여인”이라는 절창으로 표현했다. 솜털 보송한 꽃대는 물론이고 커다란 귀를 예쁘게 펴들고 부끄러운 듯 “노루 귓속에 몸 숨긴” 꽃이다. 노루귀꽃이 피면 봄은 벌써 우리들 무르팍에 앉아있다./ 김제김영
꿈에 중섭의 아이들을 만났다 사나흘 전에 큰 눈이 내린 듯 처마 끝이 꽁꽁했다 중섭의 아이들은 빙판 같은 볼을 하고 있었다 드러낸 아랫도리가 퍼랬다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치켜올려 하늘을 쳐다보고는 그새 땅바닥에 엎드려 곱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하늘을 그린다고 큰아이가 말했다 새를 그린다고 작은 아이가 말했다 아이들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중섭이 가난을 끄덕이고 있었다 겨울 하늘이 쓱쓱 스케치해 놓은 아이들의 얼굴답게 짱짱했다 또 눈이 퍼부을 듯 중섭은 눈이 까맸다 목탄처럼 까맸다 △ “목탄처럼” “눈이 까”만 화가가 시절을 견디고 있다. 아이들은 “빙판 같은 볼”을 하고 “아랫도리가 퍼”렇게 얼었다. 추위에 “곱은 손가락”이지만, 아이들은 “하늘을 그”리고 “새를 그린다” 천진무구한 아이들을 보며 가난한 중섭은 또 “목탄”을 집어 들 것이다. “하늘”이 펼쳐주는 배경엔 “새”가 맘껏 날아볼 것이다. 한 폭의 그림이 중섭의 화판을 벗어나 우리의 삶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김제김영>
바람을 잡으려다 휘청거린다 잠시 멈추고 하늘을 봐 구름이 탄식하는 소리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 시냇물이 노래하는 소리 마음 문 열고 가만히 하늘의 소리 들어 봐 산다는 것 그냥 순리 따라 섭리 따라 바람결처럼 바람처럼 △ 곱디고운 시인의 자태가 스며든 시가 스산했던 마음으로 맑은 시냇물이 씻겨 준다. 마음이 얼마나 고요해야 ‘구름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릴까. 자연과 소통하는 화자는 한 마리 새처럼 날개를 바람의 속도에 맞추며 나를 것이다. 가장 슬프고 고통을 견디어 내는 신음이 곧 노래하는 시냇물 소리였을 것이다. 마음이 천사여서 화자는 하늘의 소리를 순종하며, 끄덕이며,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무릎을 꿇으며 두 손 모아 뜨거운 자비를 바람결과 물결에 띄울 것이다./ 이소애 시인
오래된 붓을 보았다 족제비도 산토끼도 아닌 물가 움막에 사는 갈대의 머리털로 만든 거였다 물이랑 사이 난독의 문장이 올라오곤 했다 년도가 불분명한 묵은 서체였다 오랜 기억 속 필담을 나눈 적도 있는 듯했다 목책 바깥 시큰둥하니 내가 있는 쪽으로 긴 모가지를 뻗어 조탁의 언어들 넘실댔다 바람이 책장을 넘기며 빠르게 읽어갔다 먹이 마르기 전 필법을 훔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갈대의 머리털로 만든’ 붓은 누구에겐가 보낼 시를 허공에 썼으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체로 나눈 ‘필담’은 오래오래 견디어 온 세상 이야기였을 것. 천변을 거닐면서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마법의 붓이 움막에서 산다. 날개 달린 편지가 가슴 속으로 날아들기도 한다. 어쩌다 감동을 주는 시 한 구절을 만나면 언어의 ‘조탁’도 하는 ‘오래된 붓’에 마음을 빼앗긴다. 화자의 산책은 행여 ‘필법을 훔쳐야겠다’라는 욕심이 발동하지 않을까./이소애 시인
거울 속에서 여기저기 피어난 꽃으로 어머니를 보네 그 꽃이 피었다며 설워하시던 어머니의 가슴을 가만히 더듬네 당신 홀로 애만 태우고 사시다가 문득 강물을 보셨지 싶네 봄날 목련 방긋하여 설렘으로 나이 잊더니 오늘 어머니 무릎에 누웠네 △ 어머니가 설워하시던 꽃은 검버섯 꽃이다. 이젠 거울 속에서만 생각으로 피어나는 검은 꽃, 화자는 울컥 그리움이 솟아 어머니 젖가슴을 더듬는다. 빈손이다. 어릴 적 어머니 품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어머니 냄새에 젖어 본 그때가 검버섯으로 피어난다. 양지바른 마루에서 어머니 무릎에 누워서 귓밥을 살살 긁어내던 귀지개가 시를 엮었다. 아들을 예뻐했기에 목련꽃처럼 바라만 보아도 행복했겠다. 애틋한 기억이 눈물을 강물처럼 흐르게 한다. 시인은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검버섯 꽃의 꽃말을 터득한다./ 이소애 시인
황태는 설악에서 자라는 나무다 미시령 넘어가는 길 인제군 용대리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황태 가파른 겨울바람에 비늘 다 떨어뜨리고 가시만 남은 나무들 한 놈 툭, 끊어다가 한 솥 가득 끓여내고 싶다 간밤 술에 얼얼한 뱃속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대는 황태의 손가락이 쓰린 속을 찌른다 얼음계곡으로 줄지어 몸을 말리는 저것들, 몸이 더워지면 주저 없이 속초 바다에 뛰어들 기세다 말을 버린 것들은 혀부터 단단해진다 나도 저 나무껍질 같은 지느러미 하나 갖고 싶어서 산의 정수리를 쓸어내리는 겨울바람에 눈을 부릅뜬다 △ 인제군 용대리 황태 덕장에는 덕걸이 작업을 하고 있을 주민들의 한파가 휘몰아친다. 황금빛 황태로 변신하려면 눈과 바람으로 혹독한 세상과 싸워야 하는 참혹한 시간을 만난다. ‘가시만 남은’ 황태로 새로운 탄생이 몸값을 올리는 것일 터. 누군가에게 ‘얼음계곡으로 줄지어 몸을’ 말렸던 생의 부대낌이 당신의 즐거움이다. ‘술에 얼얼한 뱃속’의 쓰린 속을 달래는 일이 미시령을 넘어간다. 덕걸이의 추위를 골똘하게 쏟아내는 기쁨이 있다. 황태라는 이름은 겨울이 기억할 몫이다./ 이소애 시인
감나무 가지 끝에 작은 등 하나 허공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한 생애가 천둥과 사나운 비바람에 맞서 떫은 맛 다 우려내고 묵묵히 소신공양 기다리며 그 꿈 꽉 붙잡고 있는 가난한 저 고집固執 하나 △ ‘감나무 가지 끝에/ 작은 등’은 붉게 익은 감이다. 자기 몸을 배고픈 까치를 위해 아슬아슬하게 비바람을 견디며 생을 ‘꽉 붙잡고’ 있다. 폭설에도 까닥하지 않는다. ‘묵묵히’ 매달린 홍시를 보면 차라리 어둠을 밝히는 전등 불빛 같다. 골목길 오가는 가난한 사람에게 무거운 발걸음을 밝혀주는 고마운 등이면 어쩌랴. 감나무는 홍시를 위해 연약한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바람길을 바꾸기도 한다. 소신공양임을 눈치챈 까치가 자비를 베푼다. 정다운 두 마리의 새가 홍시를 서로 먹여주며 ‘허공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이소애 시인
하얗게 비추는 숭고함은 잎보다 서둘렀다 먼저 있을 생각에 미움의 껍질들 없어진 진실 마음 서둘러 하늘에 담는다 후드둑 떨어질까 봐 북쪽 바람으로 귀를 기울이는 여인의 고운 자태는 잠깐의 애달픔이 웃프구나 △ 숭고하게 피어난 봄날의 목련잎은 그 숭고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잎보다 먼저 피어난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하던가? 벼르고 별러서 피워낸 숭고함이 “후드둑 떨어질까 봐” 염려스럽다. 봄날의 목련이 “미움의 껍질들/ 없어진 진실 마음”을 “서둘러 하늘에 담”는 이유다. 어디 목련뿐이랴! 가을을 단풍도 그렇고 세상을 등지는 모든 것도 그렇다. 숭고함을 위해서 산 생이 “잠깐의 애달픔”이고 “웃픈” 삶일지언정 삼릐 숭고함 한 자락을 하늘에 담는 것이 존재 이유일 것이다./ 김제김영
소꿉친구였던 배산은 소풍 와서 보물찾기 한 이유로 내 발을 붙들었나! 인생이란 여행에서 아직도 뒷동산을 오르내리게 내 생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백제왕도였던 어울마당 단오 풍악을 울려 주고 출복 받은 해맞이까지 이곳에다 차린다 하늘 아래 이만한 명소가 또 어디 있으랴 내가 찾고 싶은 발길 요람이 나를 불렀던가! 여정의 동행자로 내가 그의 손을 붙들었던가! 내게 주어진 산지에서 배산 정기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숨 쉬고 산 것이 고마워 백제의 깃발 흔들어 대는 사리장엄 같은 보화 나도 한번 이 뒷동산에서 찾고 싶다.
손으로는 열 수 없는 문 안으로 잠긴 문도 한 숨결로 여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집집마다 문밖을 나서면 철모를 쓰고, 첨단 번호표를 단 수문장이 밤낮으로 철벽을 두르는데 숯덩이 된 가마솥 심술보 들끓는 한중막 문들은 강철 빗장 가로질러 성벽이 따로 없으리 그리다 미워하다 붉어진 가슴은 밀치고 당기는 고무줄 끝 뒤돌아 서 가슴 비우니, 그들은 한낱 티끌 저 작은 볼우물에 피어나는 맑음 한 송이 그 빛 한줄기에 성벽도 철벽도 한 숨결에 다 무너져 내리고야 만다 △ 미소처럼 큰 무기는 없다. 정말 그렇다. 상대방의 미소는 “철벽”같은 사람도, “가마솥 심술보” 같은 사람도, “들끓는 한증막” 같은 사람도 일시에 무장 해제시킨다. 미소는 “안으로 잠”겨 “손으로는 열 수 없”다. “작은 볼우물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려면 우선“가슴 비우”는 일이 먼저다. 비우고 마주하는 미소는 “성벽”도 “철벽”도 “한 숨결에” 무너뜨리는 것이다. 오늘은 서운했던 사람을 찾아 마음 비우고 미소로 화해해야겠다. <김제김영>
변기 막힐 때 뚫어펑 세제 넣고 기다리면 시원하게 뚫린다 배탈 났을 때 소화제 한 알 먹고 기다리면 금방 낫는다 마음이 답답할 때 오징어 듬뿍 넣은 엄마표 김치전 한 장 먹으면 스르르 풀린다 △ 모든 병에는 반드시 병을 고치는 약이 있다. 심지어 옛날엔 ‘공갈 염소똥’도 ‘배 아플 때 먹는 약’이라는 노래도 있었다. 막히고 답답한 것들은 뚫어주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혹은 증세에 따라 적절한 약 내지는 치료요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약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병증들도 있다. 사람이나 자연이 치료할 수 있는 병증이기 때문이다. 미열엔 이마에 서늘하게 올려주는 ‘엄마 손’이고 배가 아플 땐 배를 살살 쓸어내려 주는 ‘엄마 손’이 ‘약손’이다. 그 중엔 “마음이 답답”한 병증은 “오징어 듬뿍 넣은/엄마표 김치전”이다. 식약동원,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말 생각난다. <김제김영>
씨를 뿌리는 것은 양이요 씨를 받는 것은 음이지만 양, 음의 조화로 생명이 존재하듯 음은 양을 위해 섬김의 대상으로 음덕을 쌓으며 희생함으로써 헌신의 깨달음 속 지혜 뿌리 깊은 나무 되어 꽃이 피고 열매 맺듯 음의 기운이 서서히 승천할… △ 세상 모든 것은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지만, 잘 살펴보면 식물과 동물 그리고 무생물까지도 음과 양이 함께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한 사람의 말에도 음과 양이 함께 들어있고, 같은 행동도 음과 양의 경우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시인이 쓰는 시 속의 단어도 음과 양이 어울려 들어있다. 더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인간 자체의 높낮이나 귀천으로 해석하지 마라. 남자 속에도 음과 양이 있고, 하늘에도 음과 양이 있고, 세상에는 음이나 양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심지어 하나의 나사 속에도 음과 양이 동시에 들어있다. 음과 양은 생존이나 번식을 위해 상보하고 상극하는 시스템일 뿐이다. /김제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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