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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일지 않게 스란치마 끄는 소리로 그러나 여물게 굴러떨어지는 잎새에 흘러 소년의 반짝이는 이 꽃잎에 앉아 소녀의 부끄러움 산천을 씻는 빗물 방울방울 산도 들도 초록 세상 한 마리 새로 날아서 올라 구름도 초록으로 물들이고 싶은 △‘스란치마’는 소란 단을 부착한 치마다. 전통 혼례 의상이지만 녹색당의와 스란치마를 입고 폐백을 올리는 건 신부의 꿈이었다. 대청마루를 지날 때 스쳐 지나가는 스란치마의 소리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마음이 초록일 때 마음을 적시는 빗방울도 초록으로 스민다. 초록은 순수한 자연의 무채색이다. 초록을 더 초록으로 물들이는 빗방울은 젊은 날의 기억으로, 초록 세상의 공간으로 간다. 꽃잎이 초록으로 스미는 곳, 젊은 꿈이 있었던 공간일터. /이소애 시인
한쪽 접시에 눈물 일흔네댓 방울 올려놓고, 눈금 맞추려 또 한쪽엔 잔별 일만 팔천 개를 올렸습니다 바늘은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월명공원 갯바람 열댓 필을 올려도 그대로입니다 돼지감자 꽃잎에 밤새 내린 이슬이 반짝, 처량해 그 빛 몇 방울 저울에 올렸습니다 이제야 양팔이 수평입니다 △수평을 맞추는 일 참 지난하다. 더군다나 시인의 눈물에 수평을 맞추는 일이라니. 시인의 눈물 일흔너댓 방울은 얼마큼의 무게일까? 잔별 일만 팔천 개에 갯바람 열댓 필 더하고, 거기에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빛까지 더해야 비로소 시인의 눈물에 값을 매겨볼 수 있다. 작품 하나를 위해 수없이 올려다보는 별의 이마와 갯바람 속을 떠도는 보헤미안의 영혼과 아침 이슬에 햇살 찾아오는 순간까지를 다 포착해야 비로소 한 편 시가 완성된다. /김제김영 시인
미당시문학관 옥상에 올라서 보니 미당생가와 미당묘가 지척에 놓여있다 소쩍새가 우는 소요산과 소요산 넘어가는 질마재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태어남과 죽음과 시와 삶이 고향마을의 손바닥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또 하나 설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서있는 발아래 전시실에는 미당 생애의 빛과 그림자였던 국화 옆에서와 친일시가 다정하게 낮과 밤을 같이 보내고 있다 아픔 같은 것이 한숨 같은 것이 질마재 구름처럼 가고 없으면 좋으련만 겨울을 이겨낸 마늘밭은 왜 저리 독하게 푸른가 거기 동백숲에서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언제 새끼들 데리고 노래를 가르쳐 본 적이 있는가? 소요음영, 이러 저리 거닐면서 시를 읊는다는 말. 미당 선생님의 시혼이 바람의 노래로 푸른 마늘밭을 가꾸고, 흰 구름 질끈 동여맨 여름이 바람을 불러 푸른 들판을 가꾼다. 시가 노래라는 말이 맞는다면, ‘인간은 말을 배움으로써 문화의 세계에 진입한다’는 라캉의 말에 댓글을 달고 싶다. ‘노래와 친해져야 인간은 비로소 시의 맛을 알기 시작한다’라고. /김제김영 시인
슬픔은 수령하되 눈물은 남용 말 것 주머니가 가벼우면 미소를 얹어줄 것 지갑과 안전거리를 유지할 것 침묵의 틈에 매운 대화를 첨가할 것 어제와 비교되며 부서진 나를 이웃동료와 견주지 말 것 인맥은 사람에 국한시키지 말 것 그늘에 빛을 채우는 일에 일 할은 할애할 것 고난은 추억의 사원으로 읽을 것 손을 내려다보면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들에게 시간을 가공 중이라고 말해줄 것 나에게 돌아오는 길엔 고개 들어야 보이는 별들에게 일과를 고하는 것 잊지 말 것 △날마다 주어지는 하루를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안다. 정말 간절하게 딱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우리는 안다. 하루를 사용하는 법에 대한 시인의 성찰이 귓바퀴를 늘어나게 한다. 인맥을 사람만으로 국한한 좁은 안목을 반성한다. 그늘을 지나쳐버린 무관심을 반성한다. 하늘을 우러러 별에게 하루를 고하지 않은 실수를 알아챈다. 고난을 의연하게 견디려는 의기가 새롭다. /김제김영 시인
오천 원짜리 고추밭에 이만 원짜리 약을 뿌린다 긴 장마에 가슴 바닥까지 젖어버린 늙은 어머니의 시름처럼 번져가는 역병 탄저병 쏟아부은 정성이야 저렇게 체념 속에서 뭉개졌다지만 씨앗 비료 농약값 아무리 계산해도 맞지 않는 셈을 하며 악마의 색으로 분사되는 하얀 농약에 엉켜버린 머리를 감는다 암만 생각해도 그들의 잘못인 양 싶어 잘난 얼굴들 박힌 신문을 찢어 병든 가지마다 만국기처럼 걸어놓고 그들만의 합리 위에 진한 살충제를 뿌린다 △농사는 생명을 길러내는 일이어서 세상의 모든 농부는 신의 마음으로 생명을 가꾼다. ‘오천 원짜리 고추밭에/이만 원짜리 약을 뿌’리는 일이 생명에 대한 외경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씨앗 비료 농약값’을 계산하면 몇 번이고 밑지는 일은 이제 그렇다 치고 ‘쏟아부은 정성’까지 ‘뭉개지는’ 작황이 ‘암만 생각해도’ 위정자 내지는 지도자의 잘못인 것만 같다. ‘그들만의 합리’가 휘날리는 고추밭에 ‘진한 살충제’를 뿌려본들 작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선한 논리라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이치는 농사도 예외가 없다. /김제김영 시인
소리 없이 떠난 날들이 생각난다 온 몸이 시리도록 꼭 조여 놓은 나사 밀려오는 잡다한 사념들 이제는 더 이상 생각도 싫어지는 지난날들이지만 가슴은 향수 젖듯 차분히 파도처럼 밀려온다 모든 것은 내 마음 안에 보석처럼 곱게 묻어두고 팬에 기름 두르듯 가끔씩 내 삶의 윤활유로 쓰자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내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를 찾고 싶다 △시적 화자는 지난 세월 동안 “온몸이 시리도록 꼭 조여 놓은 나사”처럼 살았다. 나사가 풀어지면 내가 풀어지고, 내가 풀어지면 가족이 풀어지고, 가족이 풀어지면 삶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살아내려면 “꼭 조여 놓은 나사”처럼 시간도, 돈도. 몸가짐도, 마음가짐도 단단해야 했다. 이런 시적 화자가 자신의 지난날을 이제는 “삶의 윤활유로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고통을 극복하고 난 자리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삶이 피어났다. 더는 고통에 잡혀 있지도 않을 것이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내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나를” 가꿀 뿐이다. /김제김영 시인
함께 쓰던 창고에서 그대 몫이 빠져나가 뻥 뚫린 공간의 깊이와 넓이 /윤현순 △“뻥 뚫린 공간의 / 깊이와 넓이”에서 나는 마치 수렁에 빠져들어 가는 멍청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황량한 마음이길래 공간의 깊이와 넓이가 보일까. 캄캄한 밤하늘을 비행하는 괴상한 흔들림과 정지의 영혼이 어지럼증을 몰고 오는 공허, 화자의 처절하고 쓸쓸한 뒷모습이 담장 아래로 숨어 있었다. “그대 몫”은 나의 전부였으며, 나의 존재를 끌고 가며 나를 주관하였던 사람이었다. 아! 텅 빈 공간의 떨림. 텅 빈 허공에서 들리는 새의 날갯짓. 삶의 동반자였던 사람. 그 사람의 빈자리는 침묵의 긴 여운처럼 뼈 아픈 그리움이 배신감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소애 시인
물줄기 흐름 따라 부비고 깨어지고 다시 또 뒹굴면서 새 아침 맞이하고 얼마를 구르고 나야 바람꽃 피어날까. 돌이켜 꿈도 잊고 갈 길도 내려놓고 네 지금 옆 자리에 누구누구 함께 있나. 이제 막 실눈을 뜨니 온 누리 눈부시다. 여뀌랑 고마리랑 고이 절로 붉어 있고 한 자리 앉고 보니 미리내 자락이네. 달빛이 가득 내려와 새로 듣는 물소리여. /김광원 △한 송이 바람꽃은 “부비고 깨어지고” 뒹굴면서 아픈 상처를 견디어낼 때 꽃은 피어난다. 아픔이 꽃의 성장을 함께하며 부대껴야 꽃의 색이 얼굴 내민다는 시가 유혹한다. 꽃을 바라보며 꽃의 마음을 소리로 듣는다는 시인. 달빛과 미리내 자락일지언정 돌밭은 물소리에 하루가 열린다는 곳. 소리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있겠고, “여뀌랑 고마리랑” 물소리를 먹고 꽃피우는 눈물일 수도 있겠다. 돌밭에서 멈춤의 시간은 흐르는 물이 거꾸로 흐를 때가 아닐까. /이소애 시인
바다 한 채가 솟아올랐다 안과 밖이 한 판 사투를 벌인다. 그물을 털자 멸치 떼들이 쏟아져 튀어나온다 한 시절, 사내들을 휘감던 등줄기 풍랑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바스러지도록 초秒를 다투어야 했다 부딪치지 않으려고 수많은 날 헛춤을 추어야 했다 살점 떼어준 바다에 새살 차오르면 다시 은빛 숨결이다 푸른 점들이 꿈틀댈 때마다 만삭의 속살을 토해내는 바다 비린내 켜켜 내려앉은 구릿빛 사내들이 파도의 페달을 밟는다 바다를 퍼 올리는 술배 소리에 남해, 은비늘 꽃 만발한다. /황보림 △“파도의 페달을 밟는다”는 절창이다. 금방 구릿빛 사내들이 은빛 전쟁에 사투를 벌이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전쟁이 아닌 노랫소리로 멸치 떼들을 유혹했다면 얼마나 멋진 풍광일까. 멸치는 그물에 걸렸어도 춤을 출 것이다. 풍랑을 바다의 춤으로 여길 사내들의 굵은 팔뚝이 바다를 퍼 올릴 술배 소리였겠다. “은비늘 꽃”이 남해에 가득 피어나면 파도 페달을 밟고 시동을 걸겠다. 은빛 춤을 보러 갈까 보다. /이소애 시인
어느 날 갑자기 엉떡에다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았다. 가까이 가보니 홍조 띤 그녀의 얼굴, 얼굴이 눈웃음치고 있었다. 연지 분 냄새보다 진한 향그러움이 나를 꼬옥 껴안는다. 나는 능청스런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최상영 △봄이면 언덕배기에 무리 지어 피는 꽃. 마치 광대가 분장한 것같이 아름다워 ‘광대나물’이라 불렀던가. 시인은 “홍조 띤 그녀의 얼굴”로 보이는 꽃이 "나를 꼬옥 껴안는다"고 한다. 밭두렁 꼭대기 비탈진 곳에서 “눈웃음”으로 양탄자를 깔았을 것. 연지 분 냄새가 몸에 배도록 꽃은 붉게 타올랐을 것. 광주리나물, 목걸레나물, 코딱지나물이라고 불렀던 풋풋한 어린 시절이 추억을 불러낸다. 잎 모양이 코딱지처럼 생겨서 눈웃음조차 아꼈던 기억으로 시를 품어 본다. 코딱지나물이 봄을 불렀다. /이소애 시인
빛이 등을 돌리자 숨죽인 거미의 그물망에 한 각씩 깊어지는 어둠 잘려 나간 골목 풍경들 좁혀진 배경에 밀도 따라 물이 파고들 듯 가닥가닥 모이는 빛 순간이다, 어둠과의 교차 삶과 죽음이 그렇듯 /전길중 △생각만 해도 무섭다. 정전의 어둠이 나를 지상에서 보이지 않도록 감춘다고 하는 두려움이 무섭다. “삶과 죽음이 그렇듯” 내 몸에 노크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어둠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쇠사슬을 마음에 칭칭 담아놓기 때문이다. 내 곁에 있어야 할 사람과 이별을 시키는 어둠. 두렵다. “빛이 등을 돌”린다면 그동안 소식 뜸하던 이들이 별빛처럼 깜박거릴까. 어둠과 빛은 순간으로 교차한다. 그 어둠이 “잘려 나간 골목”에서 서성거리는 공포의 세상은 천둥 번개처럼 무섭다. /이소애 시인
말갛게 익어가는 산열매 속엔 맑은 물소리가 알알이 박혀 있다 그 물소리 하나 똑 다서 입에 넣으면 아! 새콤한 산의 향기 말갛게 익어가는 산열매 속엔 맑은 햇살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 햇살 하나 똑 따서 입에 넣으면 아! 사르르 녹는 빨간 해 /허호석 △세상 모든 것이 저 혼자 익어가는 것은 없지요. 자그마한 산열매 하나가 익으려면 맑은 물소리와 맑은 햇살이 힘을 보태야 하지요. 어디 이것들뿐이겠어요. 햇살을 실어 나르는 다람쥐의 낭창낭창한 꼬리, 물소리를 업어 키우는 바위의 단단한 등, 그리고 또 산열매를 들여다보는 시인의 그윽한 눈길까지 함께 이룬 것이지요.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이만큼 익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배려에 빚진 것을 새삼 깨닫네요. 모든 인연들에 감사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김제김영 시인
그대는 내게 있어 마르지 않는 샘물이어요 그대 있기에 가슴은 설레임으로 부풀고 그대 있기에 깊은 사색 감미롭고 바알간 그리움에 젖어요 그대 있기에 빛나는 눈동자로 다음을 약속하고 그대 있기에 허연 억새 찬란해 보이고 저문 들녘 외롭지 않아요 (중략) 하지만 돌아서 눈 감으면 왜 이리 눈물이 날까요 / 배순금 △그 사람이 없으면 세상 아무것에도 의미 없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내다가도 곰곰 짚어갈수록 콧날 시큰하게 울리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 좋은 일보다 궂은일에, 기쁜 일보다 슬픈 일에 꼭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눈물 콧물 다 쏟아놓아도 “내게 있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삶의 활력이 되는 그런 사람 마음에 하나씩은 다 간직하고 산다. /김제김영 시인
음악은 풀에서 시작된다 바람 끝이 닿을 때 맺혔던 이슬이 떨어질 때 풀잎은 비올라의 현이 된다 귀를 열고 청력의 볼륨을 높이면 저 신의 음률을 들을 수 있다 신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무관심한 저 풀잎에 있다 거기서 노래를 만들고 있다 /문효치 △봄꽃 지고 나면, 강아지풀과 수크령을 바라보며 여름과 가을을 지난다. 변변한 줄기도 없이 기도하는 고개뿐인 풀들이다. 바람 속에서 기도하는 저들의 목선은 어떤 미인의 목선도 단번에 압도할 만큼 부드럽고 온유하다. 저물 무렵 노을을 등에 지고 비탈밭에 모여 기도하는 수크령의 풍경은 밀레의 만종보다 아름답다. 바람에게 등을 내어준 채, 까끄라기마다 바람의 울림을 정직하게 받아쓰는 수크령은 황야의 사자보다 더 근엄하다. 이럴 때는 신이 수크령의 현을 켜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음악은 풀에서 시작되는 게 틀림없다. /김제김영 시인
한순간 섬광 같은 것이 지나간다 잡으려면 도망가고 아쉬워 망설이면 다시 발끝에서 빛나는 아침 이슬방울 같은 것 그 속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있고 내가 흘린 땀과 눈물도 있다 가야할 길이 보인 듯해서 손 내밀어 잡으려면 또 사라지는 비 갠 날의 무지개 같은 것 도망갔다 되돌아오는 애인 같은 것 /이희정 △섬광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시상과 아침이슬처럼 잡으려다 번번이 놓치는 시상이 있다. 안타까이 스쳐 지나가는 시상은 나의 어린 시절과 눈물과 땀이다. 기어이 잡아보고 싶은 그래서 괜찮은 시 하나 써보고 싶은 시상은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 같기도 하고, 포기할까 생각하면 다시 슬며시 들어오는 애인 같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시상을 잡으려고 늘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다. /김제김영 시인
애써 식구들 손 잡고 모여 앉으면 호미로 찍어 피 흘리며 몸뚱이 통째로 뽑혀 쓰러진다 어쩌자고 저를 찍어낸 호미를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다 그토록 오랜 세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었던 이유∼ /최경순 △풀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또 풀은 언제까지 살아남을까? 틀림없이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최시인의 '풀이 사는 길'을 읽으면 떠오르는 의문이다. 성경을 비롯해 천지창조에 대한 대부분 기록은 사람이 맨 처음 이 세상에 오게 된 역사를 기술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창세기도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는 여섯째 날이 천지창조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잊고 있을 것이다. 풀은 사람보다 먼저 세상에 왔다. 그러나 풀은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일년생이 많고 연대기를 기록할 만큼 긴 생을 누리지 않는다. 그러나 끈질기게 다시 살아난다. /김제김영 시인
어느날인가 부터 고개를 들면 내가 오르고자 했던 위가 보이고 있었다. 한 걸음만 오르면 한 걸음만 오르면 그 순간 이어령 선생께서 말을 걸어왔다. 위가 보이면 옆으로 가라 부처도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네가 주었던 것도 잊어버려라 무주상보시 주문에 걸린 아이처럼 지금껏 걸어온 길에 점하나 찍고 나는 위가 아닌 옆으로 가려한다. /김미림 △金美林 문학박사(1992년 월간 시문학 우수상으로 등단) 현)전북문단 편집위원, 전주풍물시 사무국장.시집) 꽃불놓는 진달래. 세상태어나는 풍경소리로 . 직녀성에서 바라다 보니.
시어詩語가 꿈틀대다 붓질하고 싶은 풍경이 살아나다 문득 걸어가고 싶은 곳이 다가오다 낮추어 따라가는 시선의 끝 경계 짓는 비좁은 그림자 끈을 붙잡고 한 생의 방점을 놓는 다리 한 발짝 두 발짝 별빛 근원을 찾아가는 길 하늘에 닿으라 중력에 이끌리어 무질서 속 질서를 향하여, /이점이 △길은 화자가 걸어야 할 방점을 놓는 다리여서, 길은 시어가 꿈틀대고 붓질하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일어나는 생의 광장이다. 화자는 길에서 별빛의 소리를 듣는다. 별빛으로 따라가면 하늘이 보이고 무질서한 세상을 벗어나 질서로 이끈다. 달려가지 않고 한 발짝씩 걸어가야 할 광야에서 길을 찾는다. 단단하고 올곧은 화자의 방점은 오직 질서를 향하여 뚜벅뚜벅 걷는 일일 것이다. 그 길이 울퉁불퉁한 비탈길 일지라도 힘차게 걸어갈 것이다. /이소애 시인
어머니의 서랍에는 오방색 헝겊이 부적처럼 있었다 오빠의 배냇저고리는 물론 언니가 사다 준 꽃무늬 팬티가 오랫동안 새것인 채 서랍 속에 있었다. 어느 날 텅 빈 서랍 속에서 비단 천으로 싸고 또 싼 네모난 상자를 꺼내시던 어머니 둥근 안경을 낀 아버지의 삼십 대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 한 장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날마다 정리하던 빈 서랍 가끔은 무엇을 찾는지 아침까지 더듬는 날도 있었다 요양병원 가시기 전날까지 무수히 여닫고 뒤지던 서랍 희미한 기억 너머에 숨겨둔 박물관 물품처럼 고이 간직했던 소중한 어머니의 사랑들 /안영 △요양원에 가실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을 떠올려 본다. 목이메인다. 서랍은 어머니의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을 터. 어머니의 기억 창고인 서랍. 서랍 속에는 오빠가 있고, 언니의 꽃무늬 팬티가 있었다. 빈 서랍을 가득 채운 아버지의 청춘이 고스란히 있었기에 옛사랑을 꺼내어 보는 슬픔과 그리움이 있는 공간. 오방색이 어머니 생각이다. 서너 뼘 되는 서랍이지만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기억을 담고 있다. 수수만 년을 비단 천으로 싸고 또 싼 슬프디슬픈 어머니의 등 굽은 뒷모습이 보인다. 슬프다. /이소애 시인
고영 두 사람이 한 자전거를 타고 한 묶음이 되어 지나간다 핸들을 조종하는 남자 뒤에서 남자를 조종하는 여자 허리를 껴안고 중심을 잡는다 남자의 근육 세포가 미세함 그대로 여자의 가슴에 전해진다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를 조종해가는 완벽한 합일! 지금, 세상의 중심이 저들에게 있다 △오랜만에 짜릿한 전율이 감도는 ‘사랑’이다.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는 것 같은 사랑 이야기여서 잊고 살았던 사랑을 다시 찾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던, “한 묶음이 되어” 달렸던 추억이 기억으로 나의 청춘을 불사른다. “허리를 껴안고 중심을 잡는” 그 순간은 바람도 비껴가지 않았던가. “핸들을 조종하는 남자”의 등은 이 세상에서 제일 듬직하고 커 보이지 않았던가. 고통은 ‘사랑’의 무늬였습니다. 이소애 시인
새만금의 것은 새만금에게
전주문화재단 20년, 정체성·역할 재정립을
지방선거 본격 불법행위 신속 엄단 대응을
“시민의 일상이 관광이 되는 도시 전주”
단체장 경선이 중요한 이유
탑-승한
지속 가능한 토석 채취를 위한 방안
논란빚는 전주 경전철사업 포기
‘인저리 타임’보다 ‘추가시간’이 좋아요
고전과 전통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