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01년의 끝에 서 있다. 하지만 2001년이 정부가 정한 '지역문화의 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 '지역문화의 해'를 결산하는 모임이 서울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각 지역의 문화현장에서 활동하는 100여명의 문화활동가들과 담당 공무원들이 참석, 열띤 사례발표와 토론을 펼쳤는데 저마다 지역의 문화를 꽃피우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토로하였다.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에서는 전문 문화인력의 부족으로 담당 공무원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업무의 과중함을, 또 농촌지역일수록 향토 유물이나 사적지가 많이 산재해 있는데 예산이 태부족한 탓에 기초적인 자료정리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도시지역은 지역의 문화적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지역 축제들의 남발을, 또 지역의 대형문화행사에 '점령군'처럼 왔다가 갈등만 일으키고 돌아가는 서울 문화 전문가들의 오만함을, 또 지역주민들의 손에 의해 직접 만들어지는 지역문화에 대한 관의 소홀한 대우 등 수많은 문제들이 탁자위에 펼쳐졌다.
어느 것 하나 공감되지 않는 얘기가 없었으나 모두의 적극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우리의 지역문화가 서울의 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인천 등 수도권 지역과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문화활동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더욱 민감하였다.
사실 돌이켜보면 지역에서의 삶과 문화가 강력한 중앙집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이미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매일 저녁, 퇴근길 라디오를 통해 서울의 교통상황에 대해 소상히 듣는다.
전주에서, 그리고 각 지방에서 퇴근을 서두르는 우리가 왜 서울의 상세한 교통정보를 들어야만 하는가. 하지만 공공의 전파가 서울에 집중되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우리는 신문을 통해 서울에 있는 백화점들의 세일 광고를 흔히 접하게 된다. 또 사투리를 쓰면 촌놈 취급받기 일쑤이고, 학교에서는 기어이 서울의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이른바 표준말을 가르치고야 만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이 서울 사람들을 기준으로 통일되고 있는 판에 지역의 삶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화가 온존할 수 있겠는가? 서울에서의 삶과 문화가 전국민의 표준적 삶과 문화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지역의 특색을 보존하자는 노력은 자칫하면 시대착오적 발상이나 분열주의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두발을 딛고 사는 지역은 각 지역마다 자연적 환경도,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이웃과 맺는 공동체 네트워크의 규범도, 그 과정에서 축적된 역사와 문화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의 문화가 표준적 삶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이야기하고,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문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서로의 존재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이제 며칠후면 지역문화를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들은 종결되고 '지역문화의 해'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지역문화의 해'를 선정하건 말건 지역문화는 이전에도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지역문화를 위한 지역주민의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 문윤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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