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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며, 어떤 이는 잘 다듬어진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가 느끼는 감동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사탕 한 개의 감동

 

 

굉장히 오래된 일이지만 생생하게 살아오는 아름다운 기억이 하나 있다. 85년 나는 영등포교도소에 있었다. 반듯이 누워 발을 뻗으면 겨우 한뼘 정도의 여유가 남는 0.7평짜리 독방생활이 지리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솔깃한 제안 하나를 받았다.

 

 

한글을 모르는 소년수에게 한글을 깨치게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고 세계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다는 우리나라에 자기 이름 석자 못쓰는 사람이 있다는게 믿기지 않아 호기심도 생기고 오랜 독방생활로 사람의 향기가 그립기도 하여 선뜻 승낙하였다.

 

 

내가 가르칠 아이는 15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만한 키, 왜소한 체구에 벌써 감옥에 6번째 들어왔다. 내가 가르칠 교재는 없었고 볼펜조차 지급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판판한 프라스틱 판에 버터를 바르고(사실 안티프라민이 성능이 훨씬 좋다) 그 위에 비닐을 씌운 판을 종이대신 사용하고 볼펜대신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

 

 

한글공부는 고작해야 요즘 유치원 아이들이 하는 ‘1,2,3’ 숫자 쓰기와 ‘가나다라’를 반복해서 쓰는 정도였다. 뭐 가르친다고 할만한 것도 없었지만 소년은 매우 열심이었다. 이윽고 몇일 후 아이는 자기 손으로 자기 이름을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너무나 기뻐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후 소년은 하루에 한 번 있는 운동시간에 내 방 앞을 지날 때 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형이 확정되어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다.

 

 

이감가는날 소년은 매우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로 나에게 사탕 하나를 주고 갔다. 나는 이 사탕을 오랫동안 먹을 수 없었다. 소년은 고아라 면회오는 사람도 없었으니 같은 방의 다른 사람이 준 사탕을 아껴두었다가 주고 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했다. 대신 나는 이런 아이들을 전과자로 만들어버리는 세상과의 대결을 맹세했다.

 

 

올해 설 덕담으로는 TV CF에서 시작된 ‘부자되세요’라는 말을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더 많이 들었다. 이 때 참 어색하여 ‘뭐 부자까지는…그냥…’하고 어정쩡하게 답하게 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의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해 소원이 부자가 되는 거는 어쩐지 씁쓸하다.

 

 

선거를 앞두고는 후보들이 앞다투어 CEO대통령, CEO도지사를 표방하는 데 열을 올린다. 과연 기업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모두를 잘 살게 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정주영을 대통령으로 뽑았어야 했다.

 

 

 아름다운 ‘바보’들의 행진

 

 

남들은 받고서도 안 받았다고 시치미를 떼다가 증거를 내밀면 탄압이라고 강변하는데 ‘스스로 나도 떳떳지 않은 돈을 받았노라’고 고백하는 ‘바보’가 있다. 남들은 모두 아니라고 하는데 자기 혼자 옳다고 믿으며 불나방처럼 무모하게 뛰어드는 ‘바보’도 있다.

 

 

사탕을 전해 준 소년수의 거친 손길,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이런 아름다운 ‘바보’들을 아름다움 속에 집어넣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이 싸움으로만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나는 많은 사람의 땀과 희생을 통해 차츰 이루어져가리라 굳게 믿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우리는 그것에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아름다운 ‘바보’들의 행진이 계속되길 바란다.

 

 

/ 김성주 (시민행동 21 뉴미디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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