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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확률적 진실의 의미

 사실(fact)은 진실(truth)이 남긴 조각의 일부다. 인간은 진실이 남긴 조각들 즉 사실들을 찾아내고 꿰맞추어 진실을 추정할 뿐 진실 그 자체를 알지 못한다. 설령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하더라도 손바닥 안쪽을 봤느냐 바깥쪽을 봤느냐에 따라 사실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추정되는 진실 또한 달라진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진실을 알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하고, 판사의 판결이 그러하고, 한 시대의 보편적 상식이 또한 그러하다. 사학자는 선대가 남긴 일부의 기록과 유물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추정하여 기술한다. 판사는 사건 현장에 남겨진 일부의 단서를 통해 사건의 상황을 추정하여 판결한다. 모두 다 진실이 흘린 조각들을 뒤늦게 찾아 그 진실을 추정할 뿐이다. 대부분이 진실에 가까운 추정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역사의 왜곡과 판결의 오류가 왕왕 존재하지 않았던가. 결국 인간은 절대적 진실보다는 확률적 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 누구의 주장이 더 신뢰성이 있는가는 단지 확률로서 판가름될 뿐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데 폭우가 쏟아졌다고 또는 한 여름 복더위에 서리가 내렸다고 말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아주 희박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희박한 가능성에 의존하기보다는 차라리 무시하는 편이 낫다.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행운이지 당첨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하는 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정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또 다시 두 아들의 병역문제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고위층 자녀들의 병역기피가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또한 본인의 문제가 아닌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너무 몰아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후보가 들고 나온 정치상품이 전 현직 대통령들이 들고 나왔던 정치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박정희 전두환은 '산업화'란 정치상품을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은 '민주화'란 정치상품을 그것도 목숨걸고 들고 나왔고 또한 평가를 받았다. 이에 비해 이 후보는 그가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보여준 '준법정신'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았고 아마도 이것이 그의 정치상품일 것이다.

 이 후보의 정치상품이 다름 아닌 철저한 '준법정신'이기 때문에 '고위층 자녀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 혹은 '당사자가 아닌 아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넘겨줄 수는 없다. 말하자면 그의 정치상품에 하자가 생긴 것이다. 이 후보가 걸어온 소위 '대쪽같은 길'을 생각해 볼 때, 그런 비리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아들이 모두 체중미달로 게다가 신장이 179cm인 장남이 체중미달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또한 병적기록표에 나타난 몇몇 의문들 역시 단순한 실수로 보기에는 너무도 확률이 낮다. 이런 실수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정도로 우리 나라 병무행정이 허술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후보의 인품과 경륜, 무엇보다도 그가 지금까지 몸소 보여준 '준법정신'이란 양질의 정치상품을 고려한다면, 설마 그릴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체중미달과 병적기록표의 의문이 그것도 한가족에게 동시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예외적이다. 이 후보가 결백하다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도 그 확률이 너무도 낮기 때문에 이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매우 답답해한다. 이 후보는 "나는 결백하니 무조건 믿어 달라"라는 식의 감정적 호소를 하기보다는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도 좋으니 더도 말고 현재의 확률을 조금만이라도 높일 수 있는 사실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정말로 이 후보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 정도 확률을 뒷받침하는 진실의 조각 즉 사실은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후보 정치상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확실한 품질보증서까지도 덤으로 얻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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